야설친구의 내용을 친구야설(http://ditjf1.blogspot.com/)블로그로 옮긴후 계속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야설 친구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여직원 괴롭히기 -23부
“네, 어서 오세요. 들어오세요.”
“네, 실례 좀 할게요.”
강주와 민희는 영통의 장마담 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장마담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민희를 바라보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을 보곤 기겁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하루가 지나고 나니 푸른빛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니 비록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연적일 수 있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말할 수 없는 정도인 것이다.
“아유, 어떻게 해. 병원에는 가 본 거야? 응? 자기야......”
“응, 조금 전에 다녀오는 길이야.”
강주를 다정하게 부르는 장마담의 모습에 비록 신세를 지러 온 처지라지만 민희의 눈빛에 표독스런 기운이 스친다. 장마담도 민희의 기운을 느꼈는지 마치 씨앗싸움을 다투는 여자들처럼 잠시 긴장이 흐르기도 하지만 이내 강주의 너스레로 넘어가 버린다.
“자, 바둑아, 이리 와서 좀 기대고 앉아.”
“아유...... 강주씨, 아파 죽겠는데 자꾸 놀리지 마. 이 씨......”
“어머! 참...... 자기는 그런 소리가 어디 있어? 사랑하는 사람한테......”
장마담이 먼저 긴장을 풀어 버리려는 듯 민희를 배려해 주는 소리를 하고 소파에 기대어 앉는 민희를 부축해 준다.
“고마워요. 언니......”
장마담은 역시 화류계 십 년의 경륜인지 바로 민희에게서 언니 소리를 받아낸다.
“사람을 어떻게 이 지경을 만들 수가 있어? 강주씨, 차라리 그 박부장 패거리들을 시켜서라도 어떻게 해 버리지. 그냥 두고만 볼 거야?”
“에헤이...... 예쁜 입에서 어떻게 그런 살벌한 소리가 나오나? 매사를 그렇게 처리하면 이 땅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어쨌거나 다 지난 일이니까 잊어버리고 여기서 며칠 푹 쉬면서 몸이나 회복할 수 있도록 네가 잘 좀 도와 줘.”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말고...... 밥은 먹고 온 거야? 밥 차려줄까?”
“아니, 나는 시간이 없어서 나가 봐야 하니까 너희들이나 먹어. 나중에 전화할게. 민희 너는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강원장 전화 오면 일절 받지 마.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하게 할 거니까......”
“응, 이따가 올 거야?”
“음....... 그때 가 봐서...... 일단 전화 해 줄게......”
“으응...... 조심해.”
오늘은 전 점포 재고조사를 실시하는 날이니 매장을 순회하며 상황을 감독할 필요가 있어 일단 인천 용현동 본사로 향한다.
“아니, 황부장은 왜 안 나갔어요? 본사 직원들 모두 매장 지원 나가라고 했잖아요?”
“아! 네...... 저는 사장님이 들어오라고 하셔서...... 저도 이제 막 들어오는 길입니다.”
“사장님이? 왜요?”
“글쎄요...... 저도 아직 모릅니다. 뭐 긴히 시키실 일이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요? 음......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 매장은 본사에서 지원 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건데......”
“아! 저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습니다.”
“음...... 그럼 됐습니다. 저기...... 재고 보유 현황 뽑아둔 것 어디 있죠?”
“여기 있습니다.”
“그럼 나는 나가 볼 테니까...... 무슨 변화 있으면 전화를 주셔야 합니다. 사장님 지시라고 해서 황부장님이 오늘처럼 내 시야를 벗어나면 업무 통제가 안 되질 않습니까?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이미 며칠 전부터 민희가 회장의 눈 밖에 나고, 그 결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미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사장도 민희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아 나설 수도 있는 일이다. 냄새 나는 일은 맡아서 할 개가 따로 있는 법이고 만약 그렇다면 그 개는 황부장이 될 터이니 미리 단속을 해 둘 일이다.
가까운 매장부터 순회를 시작한다. 이미 점장들은 강주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거리낌 없이 셔터를 들어 올려 매장으로 들어선다.
“아!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그래, 잘 진행하고 있지요?”
“네, 이미 시작했습니다.”
매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온 강주는 점장을 부른다.
“지금 전부 중단시키고 정량정리부터 다시 하세요. 어제 교육 안 받았습니까?”
“......”
“재고조사를 하고 다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저렇게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하면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못 끝냅니다. 다섯 개면 다섯 개, 열 개면 열 개씩 정해진 양대로 정리를 하고 조사를 시작하라고 했을 거 아닙니까?”
“아! 네......”
“얼른 정리부터 다시 하라고 하세요. 그래야 정확하고 더 빨리 끝낼 수 있어요.”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 재고 현황을 넘겨보며 다음 이동할 점포를 찾는데 전화가 울린다.
“네......”
“오빠......저예요. 보라......”
“응, 그래...... 어디에 있니?”
“저, 집이에요.”
“오늘은 재고조사라서 안 온 거야? 너, 자식 그러면 일당 깎아 버린다. 하하하......”
“아유, 오빠......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
“왜? 무슨 일 있어?”
“조금 전에 비서실에 있는 후배하고 통화했는데 지금 회사 분위기가 이상하대......”
“그게 무슨 소리야?”
“전에 오빠가 후배 중에 누구 소개시켜 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얘기해 둔 애가 있는데 누가 오빠에 대해서 전무실에 투서를 했다나 봐. 그래서 감사팀이 가동됐다고 하는 것 같던데......”
“뭐야? 그게 누구래? 투서한 사람이......”
“그건 아직 모르고......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으면 다시 전화 해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봐야지. 아유, 어떻게 해요? 오빠......”
“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게도 무슨 연락이 있겠지.”
보라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강주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 건드려 온 여자도 한둘이 아닌데다가 상가 번영회와의 계약도 엄밀히 따진다면 회사에서 파견 나와 있는 소장으로서 당연히 회사를 대표하는 입장이니 회사의 명의로 했어야 할 일인 것을 개인 명의로 처리를 해 문제가 될 소지가 너무나 많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자칫하면 형사 고발을 당할 수도 있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투서를 했는지부터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음...... 민철이니?”
“네, 형님...... 웬 일이세요?”
“혹시 최근에 주차장 코너에 대해서 물어 본 사람들 없었니?”
“아유, 그거야 한 두 사람이 아니니 말 할 것도 없죠? 장사가 잘 되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다 하고 싶어 하는데요.”
“음...... 그래, 알았다.”
누구라도 강주가 책임자인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니 민철이에게는 더 얻을 정보가 없어 할 수 없이 번영회장에게 전화를 넣는다.
“아, 회장님?......”
“아니에요. 소장님..... 저예요.”
회장의 부인이 전화를 받는다.
“으응, 회장은 어다 갔어요?”
“네, 손님이 와서 나갔어요. 소장님에 대해서 뭐 묻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이미 감사팀이 들이닥친 모양이다.
“아, 아...... 별 일 아니에요. 혹시 전에 나하고 번영회하고 계약한 것에 대해서 누가 물어본 사람 없었어요?”
“몰라요. 나는 못 들었는데...... 혹시 총무가 알지 않을까?......”
“그래요. 알았어요. 내가 전화 해 볼게요.”
하기야 공증문서도 총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그것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네, 저 슈퍼 최소장입니다.”
“아, 소장님...... 요즘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도 소장님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 그래요? 혹시 계약에 관해서 묻던가요?”
“네, 회사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보여드리긴 했는데......”
“네...... 뭐, 잘 하셨습니다. 그나저나 그 전에는 왔던 사람 없던가요?”
“네, 있었습니다. 그 때도 주차장에다가 왜 저런 시설을 했냐면서 공유면적 확인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보여줬습니다. 뭐...... 나중에는 이상 없다고 하고 그냥 가기에 별 일 아닌 줄 알고 있었는데......”
“네...... 그랬군요. 잘 알았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네, 네......”
이미 완전히 올무에 걸려들은 모양이다. 더 이상은 손 쓸 방법이 없으니 그저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강주의 손을 전화기로 이끌어간다.
“응, 혜영아......”
“아유...... 그새를 못 참고 전화 하는 것 좀 봐. 그렇게 걱정이 돼? 호호호...... 아유, 민희씨...... 전화 받아 봐.”
“아니, 민희 말고 너한테 물어 볼 게 있어.”
“나한테?...... 뭘?......”
“전에 얘기했던 거...... 옛날에 너 대출 받으려고 했다는 서류 말이야. 그것 좀 찾아 볼 수 있을까?”
“음...... 가서 봐야 아는데...... 왜? 급한 일이야?”
“으응...... 내가 지금 사면초가다. 그거라도 있으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강주는 장마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는다. 더 이상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아 차를 타고 본사로 돌아와 버린다. 황부장은 어디를 갔는지 자리에 보이지도 않지만 지금 거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어찌 됐든 장마담이 서류를 보관하고만 있다면 거래를 통해서 형사고발은 피할 수 있을 것이고, 일이야 의왕매장과 영진유통만 돌아보면 될 일이다. 기왕 물은 엎질러진 것이고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편히 생각하기로 한다.
“어어...... 경주씨가 여긴 어쩐 일이야?”
“어머! 이사님...... 인천에 오시면 전화 해 준다고 하고선 한 번도 연락을 안 해 줘요?”
“허허...... 내가 그동안 좀 바빴어. 미안해.”
“치...... 참, 민희는 연락 안 와요?”
“으응?...... 민희씨가 나한테 연락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아유...... 계집애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으응...... 사장님 외부 모임에는 민희가 파트너로 잘 다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나보고 같이 나가자고 해서...... 아유, 계집애...... 내 전화도 안 받고......”
“그럼 지금 사장님 만나러 온 거야?”
“으응......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달리 갈 데도 없어서 일찍 왔어.”
강주는 넌지시 미경이의 일에 대해서 떠 보기로 한다.
“참, 미경씨는 며칠 전에 한 번 만났다.”
“어머! 그 언니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더니......”
“뭘 하는데 그렇게 바빠?”
“아유, 몰라요. 언니가 뭘 시켰는지 우리 사무실에서 직원 한 명 빼달라고 하더니 며칠씩 데리고 다니던데......”
데리고 다니는 똘마니들이 사고라도 친 모양이지만 그걸 물어보면 공연히 말이 들어갈 것 같아 속내를 감춘다.
“그래? 미경씨도 변호사 개업하려나? 하하하......”
“그럼, 이사님...... 나, 갈게요. 나중에 봐요.”
“잠깐만...... 아직 시간 있다면서...... 따라와 봐.”
경주의 팔을 이끌어 당직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사장을 만날 터이니 민희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해 사전에 어지럽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금 강주의 심정은 섹스를 통해서라도 잊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머! 어떻게 하려고?......”
“조용히만 하면 돼. 스릴 있어 좋잖아?”
문을 닫아걸고 돌아보자 엉거주춤 강주를 바라본다.
“아유, 나 지금 점을 보니까 관계하지 말라던데.......”
“지랄, 생 쑈를 하고 자빠졌네. 야! 지 구멍 가지고 하는 오입도 점쟁이 허락 맡고 한다든? 왜? 구청 가서 물어보고 오지? 아니면 네 남편이 주인이냐? 네 남편이 하라면 너도 할 거야?”
서둘러 음순을 열어간다. 거래현장에 사랑이 개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 두 사람은 단지 후일을 도모하는 거래에 섹스의 형식을 빌려온 것뿐이니 거칠 것도 없는 일일 것이다. 강주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 경주를 괴롭힌다.
“후욱...... 쑤우우욱......”
“아아아흑...... 아이 참...... 아파...... 천천히 해......”
발코니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문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해 정들은 회사에서 이제 정리를 해야 한다니 감회가 어린다. 비록 깔끔한 마무리가 아쉽긴 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네, 여보세요”
“네, 소장님이시죠? 여기 전무님 실 미쓰조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이다. 매도 일찍 맞는 게 편하다고 하니 피할 일도,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 네...... 최강주입니다.”
“지금, 휴가 중이시던데...... 전무님 호출이 있으시거든요. 들어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그러지요.”
“그러시면 다섯 시에 약속 잡아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세요?”
“네, 알았습니다.”
아직 감사팀이 회사로 복귀도 하지 않았을 시간에 연락이 오는 것을 보니 전화보고를 받은 모양이다. 감사결과에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서둘러 차를 몰아가며 장마담에게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으응, 강주씨...... 언니 아까 나갔는데...... 자기 전화 받고......”
“민희야, 왜 그 전화를 네가 받아?”
“나도 옷 사러 밖에 나왔어. 당장 갈아입을 속옷도 없는데...... 내 전화는 전화가 많이 걸려 와서 아예 배터리 빼 버리고 이거 쓰라고 언니가 주던데......”
“어이쿠...... 그래, 알았다.”
“왜? 자기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신경 쓰지 마. 다시 전화 해 줄게......”
“으응...... 저녁에 와. 보고 싶어.”
“야, 보챌 걸 보채라. 하하하...... 어제 보고 아침에 헤어졌는데 뭐가 보고 싶어?”
“치...... 남의 집에 얹혀 있으니까 기도 죽고 기분 이상하단 말이야. 자기라도 있으면 좀 날 거 아냐?”
“그래, 나중에 상황 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추락하기 시작했으니 맨땅에 부딪히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비서실 정보를 캐려 했건만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모양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터덜거리며 전무실로 향한다. 비서가 강주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 맞는다.
“제가 최강주입니다.”
“네, 기다리십시오.”
비서가 인터폰으로 보고를 하고 이내 들어가라고 신호를 준다.
“전무님, 반갑습니다. 최소장입니다.”
“으음...... 그리 앉아요.”
의외로 부드럽게 강주를 맞아들인다. 자리에서 일어서 소파로 내려앉으며 비서에게 커피를 시킨다.
“자, 최소장...... 차 들어요.”
“네, 네......”
“그래, 확실히 최소장이 수완이 좋더군. 내가 감탄을 했어요. 그 수원 매장이 매출이 좋아진 것이 그냥 좋아진 게 아니더라고......”
“......”
“그래, 어디부터 말을 할까?......”
“이미 소식 듣고 왔습니다. 음...... 처분대로 따르겠습니다.”
“쯧쯧...... 나도 최소장 같은 인재를 이렇게 마주앉게 돼서 마음이 안 좋아요. 그래, 이미 알고 왔다고 하니 그동안의 정을 봐서 형사 고발은 안 하는 것으로 하겠어요. 그 대신 이미 운영진에서 다 알고 있는 일이니 형평상 사직처리는 피하지 못할 거고 내일쯤 직원을 보낼 테니까 번영회와 맺은 계약을 내 앞으로 변경시키도록 하세요. 내 말 알겠습니까?”
“아!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쩐지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상가 공유면적의 십 년간의 권리를 탐냈던 것이다. 마땅히 회사로 귀속시켜야 할 권리를 지위를 이용해서 착복하겠다는 것이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강주로서는 그간 받아 두었던 보증금을 한 번에 토해 내야 하는 입장이니 타격이 없지 않지만 의왕매장 진정이에게 부탁하면 안 될 일도 아니니 나름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불과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전무실을 빠져 나온다. 이미 합의를 했으니 더 이상 바라보고 있을 이유도 없다. 전무는 쾌재를 부를 것이고 강주는 정리를 서둘러야 할 일이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허둥지둥 장마담이 들어선다.
“야! 혜영아,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너도 입장 불편할 텐데......”
“뭐야? 벌써 끝나 버린 거예요?”
“으응...... 그래도 다행히 합의는 잘 됐어. 저 인간도 그게 탐나는지 그냥 권리 넘겨주고 옷 벗는 선에서 끝냈어.”
“아유, 자기가 말했던 서류가 집에 있던데 이제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 그만 가자.”
“아유......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잖아. 아깝고...... 저 인간도 순 도둑놈인데......”
“허허허......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 뭐, 높은 자리에 있으면 큰 도둑놈이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작은 도둑놈이고......”
“아이, 그러지 말고 한 번 들이대기나 해 봐.”
나름대로 속이 상하는지 투정을 부리는 장마담을 한참 바라보더니 서류를 받아든다.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후 다시 장마담을 바라본다.
“그럼, 혜영이 너...... 불편해도 얼굴 한 번 비춰줄 수 있어?”
“왜? 어떻게 할 건데?......”
“이거 상무가 좋아할만 한 일이거든...... 자기도 진급을 목 타게 기다려 왔을 텐데...... 이사회에서 터뜨리면 대박이잖아? 다만 진위여부를 가려야 할 필요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네가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장마담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 상관없어. 나야 화류계 인생인데...... 상무도 내 손님으로 만들어 버리지 뭐...... 호호호......”
“정말이지? 그럼 가자.”
강주는 장마담과 함께 상무실을 찾아가 면담을 신청한다. 상무실 비서는 익히 강주를 알고 있으니 바로 연결을 시켜주고 이내 상무와 마주앉는다.
“그래, 최소장. 나도 얘기는 들었어. 거...... 잘 좀 하지 그랬어? 허허허......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신가?”
이미 퇴사시키기로 결정 된 사안이니 더 이상 나무라지도 않고 웃음으로 때우는 인상이다. 강주는 서류를 내밀고 장마담은 상무에게 인사를 한다.
“어머! 상무님, 저 모르시겠어요? 저 장비서예요. 장혜영이라고요.”
“으응?...... 자, 장비서?...... 아니?......”
“호호......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 서류나 한 번 보세요. 상무님이 좋아하실 내용인데......”
오래 전 자신을 곤란하게 하고 사라진 장비서가 강주와 함께 나타나니 상무는 몹시 당황한 모양이다. 황급히 서류를 흩어보고는 질문을 한다.
“이, 이게 무슨 서류지?”
“그게 그 당시 상무님을 곤경에 빠뜨린 대가로 전무님이 저에게 송금해 주신 증거자료예요. 그거면 상무님께 상당히 유용하실 텐데요?”
“으음...... 두 사람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호호...... 저 강주씨하고 동업하고 있어요. 우리 친구예요.”
장마담은 지난번 강주가 박부장에게 소개한 대로 동업자라고 소개를 하고 지갑을 열어 상무에게 명함을 내민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되겠어?”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해 주세요. 전무님......”
장마담은 당돌하게 상무에게 전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도발적으로 웃어 보인다. 확실히 극한상황에서는 여자들이 훨씬 대범한 모습을 연출한다.
“으음...... 사람 참......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건 하나도 안 변했구먼......”
“이사회에 바로 조치하실 수 있잖아요? 그럼 그 원인이 뭔지도 조사할 거고 그럼 그 당시 땅값을 튀긴 것도 다 나타날 거 아니에요? 제가 다 증언해 드릴게요.”
“정말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겠어? 도대체 두 사람 어떤 사이야? 내가 술을 한 잔 하러 가더라도 최소장한테 실수해서는 안 될 거 아니야?”
“어머! 그럼 그렇게 해 주시는 거예요? 호호호...... 우리 애인이에요. 호호호......”
“그것 봐, 내가 눈치가 있는데 최소장한테 다리 부러질 뻔 했잖아? 하하하......”
“아! 이거 감사합니다.”
“그래, 일단 한 번 해 보자고...... 그 대신 철저하게 끝까지 가야 하니까 각오하고 밀어붙여야 돼.”
“아유, 알았다니까요. 그럼 이만 가 봐도 되겠지요? 가요. 강주씨......”
“으응,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내가 따로 연락 줌세. 자넨 그저 모른 척 하고 있어.”
“네, 그나저나 한 가지만 더 여쭙고 가겠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투서를 한 건지 궁금한데......”
“음...... 좋아, 알려주지. 그 대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하네.”
상무는 테이블의 메모수첩을 넘기더니 이름을 불러준다.
“이미경이란 사람인데 신원은 확실한 사람이야. 그래서 조사에 착수했고......”
“왜? 자기 아는 사람이야?”
“으응...... 아, 알았습니다. 심려 끼치는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무서운 일이다. 이제는 뭔가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다. 강주는 십 년간의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 억울한 것보다 자기를 음해한 사람이 더욱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황부장의 아내 미경이가 그 장본인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자기를 내사 했다는 것이니 아파트의 소유권을 가져오기 이전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보복의 차원도 아니니 필경 회장의 지시였을 것이다. 회장이 자신에게 나쁜 감정이 있을 리도 없으니 자기 회사에 붙들어 두기 위한 포석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가려 쓰되 곤란한 처지로 몰고 가 헤어나지 못하게 해 두고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은혜를 입히자는 수작이라니 그 가증스러움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제 회장도 회장이지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지 미경이에 대한 감정이 더욱 나빠진다.
“크......”
“아유, 가게에 가서 마시자니까 꼭 소주를 사다 마셔요. 집에 안주도 없는데......”
“그냥 계란 프라이나 한 장 부쳐와.”
“나, 지금 가게 나가봐야 하는데 민희씨가 좀 해줘.”
“그래요, 언니...... 내가 해 줄 게 얼른 나가봐요.”
“그리고 두 사람 나 없다고 너무 친한 척 하기 없기...... 호호호......”
“아유, 참..... 언니는?......”
“허허...... 참, 너희들 그 사이 많이 친해졌다? 아까는 눈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던데......”
“어머! 우리가 언제......”
“정말 미쳤나 봐......”
“혜영아, 가게에 요즘 박부장 똘마니들 와 있니?”
“으응, 그 애들은 아주 점잖아서 맘에 들어.”
“푸훗, 그래? 나중에 나도 가게에 갈 테니까 밤 열 시쯤 만나자고 말 좀 해 둬.”
“응, 알았어. 그럼 이따가 같이 나와. 술이나 한 잔 해야지. 민희씨 환영파티...... 호호호......”
“그래.”
“자기야, 아까 옷장 열어보니까 남자 옷도 있던데...... 그거 자기 옷이지?”
“으응?...... 아마 그럴 걸?...... 혜영이 혼자 사는 집에 무슨 남자 옷이 있겠어?”
“나...... 요즘 와서 느끼는 건데...... 자기 겉보기하고는 많이 다르더라.”
“뭐가?......”
“회장언니하고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순 풋내기인 줄 알았는데...... 혜영언니 같은 마담하고 살림을 차리고 있질 않나...... 깡패 같은 사람들이 인사도 하고......”
“푸훗...... 야! 이게 무슨 살림을 차린 거냐? 요즘 계속 인천으로 다니다보니까 옷에 땀 냄새 난다면서 갈아입으라고 한 벌 사다 준 건데......”
“피...... 한 벌은 무슨...... 자기 옷 엄청 많던데?......”
“으응? 그래?......”
민희는 보란 듯이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어 보이고 과연 그 안에는 강주에게 열린 혜영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다양한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강주는 내심 흐뭇하지만 민희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여 민희의 안색을 살피며 웃어 버린다.
“참 나...... 기가 막혀서...... 하여튼 도깨비놀음 같아서 여자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허허허......”
“치...... 것 봐. 내 말이 맞지. 솔직히 말해 봐. 자기 나 모르는 여자 몇이나 더 있어?”
강주는 술을 마시다 흘끔 민희를 바라보고는 다시 술을 마신다.
“나?...... 글쎄다...... 나는 자유연애주의자니까 그런 거 묻지 마. 그런 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잖아......”
“피...... 갖다 붙이기는......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못 끌어내서 안달을 했어? 뭐 송희하고 결혼하면 자기 처형이라서 싫다면서?......”
“지금도 달라진 건 없어. 내 여자고 내 처형이고 내 가족인데......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난 굳이 말릴 생각은 없어. 네가 즐기는 거라면...... 그렇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다면 그건 정말 아니잖아.”
“음...... 그럼 내가 자기 말고 다른 사람 좋아해도 된다는 거야?”
“네가 그런다고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설혹 떠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칫...... 말도 안 돼. 나도 뭐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섹스를 하고나면 생기는 신뢰감 같은 것도 있잖아?”
“신뢰감 하고는 다르지. 그러고 나면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어떤 동질감 같은 것도 생겨서 끈끈해지기는 하겠지. 섹스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야. 그러면서 사랑이 싹틀 수도 있겠지. 우리처럼...... 그러면 너는 섹스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거래를 기대하면서 섹스를 하고나면 이젠 다 이루어졌다고 믿을 수 있는 거야?”
“그야 물론 아니지. 계속 연결을 하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그게 사랑하고는 다른 거야. 너...... 내가 하나 물어 볼 테니까 대답해 봐.”
“......”
“군 입대를 앞둔 남자애가 자기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고 언약식으로 동침을 요구했는데, 이 여자애는 임신할 것이 두려워서 동침을 거절했어. 그러자 그 남자애는 평소에 이 여자애가 자기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이 여자애를 떠나가 버렸다면 정말 이 여자애가 그 애를 사랑하지 않아서 동침을 거절한 걸까? 또, 그 남자애는 정말 이 여자애를 사랑했던 걸까?”
“음...... 잘 모르겠는데......”
“사랑한다면 상대가 잘 되길 바라고 믿어줄 수 있어야지. 믿을 수 없어서 언약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랑이 아니란 말이야. 그 여자애는 오히려 거짓사랑에 적절하게 대응을 한 셈이고...... 정말 내 몸처럼 사랑한다면 구속하질 말아야지. 자기는 군대에 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함께 할 것이라는 신뢰도 보내주고...... 자기가 없는 동안 상대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지낼 것도 소망해 주고......”
“음......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다 우리 주변에 어긋난 환경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 너 나 할 것 없이 도덕적으로 살지도 못하면서 머릿속에는 뿌리 깊은 유교적 교육이 자리 잡고 있고 그러다 보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기는 거야. 다만 나는 그 생각을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에게로 확장했을 뿐이야. 나는 진심으로 민희, 네가 행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어. 잘 생각해 봐. 요즘 황혼 이혼이 많아지는 이유가 뭔지 알아? 한 평생을 살면서 불편부당한 대접을 받아 왔다고 이제 허리에 힘도 빠져 오갈 곳 없는 영감을 버리는 거거든. 복수라면 아주 치사하고 잔인한 복수인 셈이지. 그 할머니는 평생을 부부라는 포장 속에 숨어서 일신의 안락을 영위해 오고서도 마지막 아름다워야 할 인생의 황혼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거야. 이혼을 할 거였으면 진작 했어야지. 혼자 살아가야 할 세상이 두려워서 거짓사랑 뒤에 숨어 기대다가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자 평생을 함께 해온 반려자를 버리는 것은 일평생 배우자를 상대로 창녀 짓을 해 온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 민희, 너에게는 강원장이 그런 놈이었다는 말이야. 그래서 네가 즐거워서 만들어 가는 로맨스라면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싫어했던 거고......”
“그럼 자기는 나 한 평생 아껴주고 사랑해 줄 자신 있어?”
어느새 민희는 강주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강주는 그런 민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쿡...... 바둑아...... 주례사 낭독 하냐? 킥킥......”
“아이, 빨리 말해 봐......”
“그냥 믿으라고 그랬지? 사랑한다면...... 그래, 하기야 방금 말 한 할머니들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할아버지들도 잘못 살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 고작 몇 푼 되지도 않는 재산을 장악하고 배우자들을 꼼짝 못하도록 했으니 그런 보복을 당하는 거야. 내가 오늘을 살다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그러잖아?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들이 언제고 나와 동등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줘야지. 우선 민희 앞으로 아파트나 한 채 사줄까? 킥킥......”
“아이, 내가 언제 집 사 달라고 했어? 진짜로 알아들었나 봐? 나도 재산분할 청구하고 위자료 받아 낼 거야. 그러면 아파트 한 채는 떨어져.”
“봐.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거야.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요구하거나 하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잘 살던 부부도 이혼까지 가게 될 걸...... 내가 죽고 나면 다 네 것이라는 것...... 그거 말짱 다 소용없는 짓이지. 생일 날 밥상 받아먹자고 석 달 열흘 굶는 거나 똑같은 일이야. 앞으로 도래할 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가 너와 나, 우리에게는 천국이어야 하는 거야. 재산을 장악함으로 해서 그것 때문에 배우자가 자신에게 순종을 한다고 믿게 되면 이미 사랑은 물 건너간 거야. 그렇다면 정말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일이니 그게 하루하루가 지옥이지 무슨 천국이겠어? 하하하......”
“그래, 난 강주씨 믿어...... 으음......”
“우린 평생을 부부가 아니더라도 친오빠나 친동생처럼, 친누나처럼 그렇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마.”
민희는 미더운 눈길을 보내며 팔을 뻗어 강주의 목을 끌어안는다.
“자기야, 나 지금 하고 싶어.”
“야...... 너 몸도 아픈데 왜 이렇게 밝혀? 계집애가......”
“치...... 이따가 혜영언니랑 같이 들어오면 못하잖아? 언니가 자기한테 안겨서 자려고 하면 내가 신세지는 마당에 끼어들 수도 없고...... 빨리......”
민희가 힘겹게 일어서서는 강주의 팔을 이끌어 침대로 데려가고 엉거주춤 따라가는 강주가 민희에게 묻는다.
“너 옆구리 결린다면서......”
“으응...... 내가 차라리 밑에 누우면 괜찮을 것 같아. 어제는 옆으로 해서 더 아팠나 봐...... 호호호......”
민희는 천천히 옷을 벗고 침대로 올라가 눕고 강주는 다가가 팬티를 벗겨 내린다.
“후훗...... 이거 어제 입은 거 아니네? 오늘 사 온 거야?”
“으흥...... 예쁘지?”
“그래...... 쭈우우웁...... 후루룹...... 쭈우웁......”
민희의 다리를 접어 옆으로 세워두고 머리를 들이밀어 혀로 음순을 빨아들인다. 분홍빛 예쁜 속살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강주의 입속으로 이슬을 토해낸다.
“아아아흥...... 흐으윽...... 자기야......”
한참의 애무로 달뜬 민희가 긴 손가락을 강주의 머리칼에 꽂아 쥐고 흔들어 강주의 얼굴은 온통 민희의 애액으로 번들거린다.
거웃에 문질러 입가를 닦아내고는 천천히 몸을 실어 허리와 배꼽을 타고 젖가슴을 물어간다. 아직도 몸이 불편한 민희를 배려해 애무를 충분히 해 주려는 모양이다.
“아흑, 그만...... 빨리 해 줘......”
“으흠...... 조금만 더 하고...... 쭈우웁...... 쭈우웁......”
“아학...... 싫어......”
얼굴을 마주쳐 입을 맞춰가자 민희의 손이 밑으로 내려와 강주의 좆을 잡아간다. 입으로는 신음을 흘리며 한껏 벌린 사타구니 속으로 음순을 맞추고는 강주의 엉덩이를 다리로 감아버린다. 팔을 뻗어 엉덩이를 잡아당기니 후끈 달아오른 민희의 몸속으로 스며들 듯 미끄러져 들어간다.
“으흐흥...... 아학......”
“그럼...... 힘들어도 좀 참아...... 민희야......”
“으응...... 어서 해 줘. 사랑해...... 여보......”
민희는 강주와의 대화로 얼마든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 더욱 더 강주에게 몰입한다. 이 순간만큼은 바로 내 남자라는 소유욕에 사타구니를 찢어지도록 벌려 강주의 좆을 받아들인다.
강주가 좆질을 할 때마다 시큰 거리는 옆구리 통증도 오히려 자극이어서 민희로 하여금 콧소리를 절로 흘리게 한다.
“후욱, 후욱......”
“아학, 아학...... 흐으으응...... 여보......”
민희의 콧소리에 몸을 들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밀어 넣는다. 가볍게 어깨를 쥐고 속도를 높인다. 빠른 허리놀림에 놀란 민희의 눈이 크게 떠진다.
“아학, 아파...... 살살...... 천천히......”
“조금만...... 후욱, 참아...... 너 아파서...... 안 되겠어.”
양 팔로 어깨를 감아쥐고 민희의 사타구니를 맹렬히 치고 들어간다. 민희의 다리는 저절로 접혀 양 팔로 붙들어 잡고 오로지 강주의 좆질에 흔들리는 대로 몸뚱이를 내맡긴다.
“아항, 아항, 아항......... 아아아아아항......”
“훅, 훅, 훅, 훅...... 우우우우욱...... 울컥......”
한참의 빠른 좆질로 민희의 속을 흥건히 채워준다. 질 속으로 후끈한 느낌을 느끼는지 강주의 엉덩이를 다리로 감아온다. 가느다란 떨림으로 흥분을 전해오는 민희의 귓불을 물어준다.
“아아아흑...... 아흑...... 여...... 보......”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퇴근 후 장을 보러 나가는 부부의 모습이어서 보기에도 흐뭇하다. 민희도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여서 한결 자연스럽고 커다란 모자 밑으로 검은 선글라스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자기야, 걸어가려고?......”
“응, 술 마시고 올 건데...... 아니면 혜영이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타고 오던지......”
“으응, 그래도 되겠네...... 후훗...... 거기 아가씨들 있는 술집인데 내가 가도 되나?”
“뭐...... 룸에서 우리끼리 마실 건데 무슨 상관이야?......”
하모니 카페 입구로 들어서니 이미 강주를 알고 있는 웨이터들이 환대를 해주고 지난번 박부장과 함께 온 청년들이 대기하고 있어 다다가 물어본다.
“으응?...... 혹시 박부장이 와 있나요?”
청년들도 강주를 알아보는지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해 오고 민희는 당황해 한 걸음 물러난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네 와 계십니다.”
“으음...... 그러면 민희는 잠시 내실에 가 있을래?”
“으응...... 그럴게.”
민희는 허둥지둥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내실로 가고 강주는 박부장과 마주앉는다.
“아니, 처남이 어쩐 일이십니까?”
“네, 동생들을 보자고 하셨다면서요? 혹시 지난번 그 일 때문에......”
“아! 네, 뭐 기왕 처남을 만났으니 처남하고 의논을 하면 되겠네요. 사실은.......”
강주는 박부장에게 그간의 경과를 설명해준다. 그 사이 술이 차려지고 혜영은 어느새 강주의 곁에 앉아 시중을 들고 있다. 박부장도 곁에 앉은 아가씨에게 술을 받으며 강주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 그러면 그 회장이란 여자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말씀이신다요?”
“아니, 뒷조사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가족사항 정도만 알면 뭔가 틈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양반은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섣불리 들이댔다가 잘못하면 들통이 날 수도 있으니까 아예 접근하지 마시고 제가 듣기론 결혼한 딸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다른 가족들을 찾다 보면......”
“아! 네, 알았습니다. 그건 제가 지시를 해 두겠습니다. 그나저나 또 정필이 녀석에게 돈을 주셨다던데......”
“아니, 그 사람은 뭐 그렇게 입이 가벼워요?...... 하하하...... 그 뭐...... 산속에 애들 데리고 있으려면 돈도 제법 필요할 거 아닙니까?”
“아주 이 기회에 내 밑에 있는 녀석을 하나 매부에게 붙여드릴 테니까 동생 삼아 데리고 다니십시오. 이 녀석이 검도를 한 녀석이라 몸도 날래고 무엇보다 생기길 잘 생겨서 건달 티가 안 나니까 매부에게 딱 적당할 겁니다. 갑자기 저희들 만나려면 이렇게 일일이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고......”
“아유, 아닙니다. 내가 무슨......”
“어머! 자기야, 그렇게 해...... 그 쪽 사람들 웃기지도 않는데 갑자기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그리고 그 여자 아파트는 확 날려 버리지. 왜 그냥 두는데?”
“아니지, 일단은 그 사람들 의도대로 넘어가는 척 해야지. 그 집이야 언제가 됐든 내가 넘겨 버리면 그만인 것을...... 내가 내용을 아는 척 하면 더욱 경계를 할 거 아냐?”
“그럼 매부 다니시던 회사도 그만둔 것처럼 소문을 내야 할 텐데...... 휴가 끝나고 출근을 하시게 되면 다 알게 될 거 아닙니까?”
“음...... 일단 날이 밝아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겁니다. 상무가 작업에 성공하면 뭐...... 휴직처리를 해 달라고 위장을 할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진짜 그만둬도 사실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관계없습니다. 어쨌든 나를 음해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지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니까요. 하여튼 상무에게 무슨 연락 있으면 혜영이 네가 잘 처리해 줘야 돼.”
“으응...... 그건 걱정 마.”
박부장은 아가씨를 시켜 대기 중인 청년을 불러들이더니 누군가를 부르라고 지시를 한다.
“아니, 왜요? 처남...... 나 그런 친구들 필요 없다니까요.”
“그러지 마시고 제 말대로 하세요. 저도 조금이나마 매부에게 신세를 갚아야 할 텐데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이런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운전이나 시키면서 데리고 있다가 급할 때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좋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래, 자기야...... 그렇게 해. 나는 자기 말 듣고 나니까 심장이 떨려 죽겠는데......”
“허허허...... 마담은 아무 걱정 마세요. 이 가게는 물론 마담도 퇴근할 때까지 제 동생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 네, 고마워요. 부장님...... 저는 저 말고 강주씨 말한 거예요.”
“그래요. 매부도 그렇게 하세요. 그 녀석 밑으로 공부하는 동생들도 있는 모양이던데 차라리 매부가 가끔 용돈이라도 쥐어주면 그게 제 밑에 있는 것보다 그 녀석에게도 좋을 겁니다.”
“허허...... 거 참......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 대신 그 친구는 제가 알아서 쓸 테니까 처남은 아예 잊어버리십시오.”
“아! 물론입니다. 매부에게 보내면 그 때부터는 매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너무 편을 가르시면 제가 섭섭합니다.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십시다. 지금 처남이 여기 이 사람 가게를 지켜 주는 것도 고맙고, 제가 앞으로 신세 질 일이 점점 더 많아질지도 모르는데...... 산이야 지금 팔아봐야 헐값일 것이고...... 정아가 하고 있는 가게를 아주 정아 앞으로 권리를 넘겨줄 테니까...... 그러면 저도 신세갚음이 좀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 매부, 정말 그렇게까지 해도 되겠습니까?”
“뭐...... 정아가 나한테 남도 아니고 제가 괜히 처남 앞에서 생색만 내는 겁니다.”
“아! 하하하...... 생색이라니요. 정말 고맙습니다. 매부...... 그 녀석들이 항상 눈에 밟혔는데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제가 아무 걱정도 없겠습니다.”
“그러면 그럽시다. 나중에 만날 그 친구를 통해서 정리해 드릴 거고..... 차차 기회 봐서 저 산도 필요하면 팔아서 우리가 쓰십시다. 어차피 처남도 이 사업에 뛰어드셨으니 끝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자금이 부족해서 힘드시는 모양이던데......”
“매부......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허허...... 너무 감격하실 거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저대로...... 처남은 그냥 처남대로 각자 성공합시다. 다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자는 거예요.”
“아! 네, 알았습니다. 하여튼 매부 말씀이라면 섶을 쥐고 불 속에 들어가라고 해도 따를 테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아이고...... 참, 나는 바비큐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하하하......”
“하하하......”
이윽고 문이 열리며 웨이터의 안내로 눈썹이 짙은 청년이 들어선다.
“형님, 부르셨습니까?”
“응, 그래. 인사 드려라. 내 매부 되시는 분인데 오늘부터는 네가 따라다니며 좀 모시도록 해. 나하고도 늘 연결이 끊어지면 안 되니까......”
“아! 네, 저..... 정인호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나는 최강주요. 나이는?......”
“네, 스물다섯입니다.”
“어머! 영계네? 호호호......”
“그래, 나보다 어리니 다행이군. 나는 정필이가 형님이라고 할 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하하하......”
“오늘부터는 이 분이 너를 책임 져 줄 테니까 각별히 모셔라. 나도 한 수 접히는 분이니까...... 자, 그럼 매부...... 저도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아! 네, 저는 안 나가겠습니다.”
박부장이 나간 후에 민희와 혜영, 정인호가 자리에 함께 앉아있다.
“저......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말고 이사님이라고 불러.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할 텐데...... 나는 그 형님 소리가 영 안 좋더라고..... 어색하고...... 자네한테는 그냥 이름을 부를 테니까......”
“아! 네, 이사님. 알았습니다.”
“호호호...... 나한테는 뭐라고 부를 거예요?”
대뜸 장마담이 나서자 민희도 앞으로 나서며 얼굴을 들이민다.
“호호호...... 나는?”
“네, 네?......”
“하하하...... 뭐가 어려워? 한 사람은 마담이고 한 사람은 바둑이지...... 하하하......”
“뭐라고요? 우리는 다 형수예요. 알았지요?”
“아! 네, 네...... 형수님......”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호의 표정이 재미있어 웃음 속에 술자리가 무르익는다.
“음...... 아까 박부장한테 얼핏 들었는데 검도를 했다면서?......”
“아! 네...... 우슈도 조금 했습니다.”
“어머! 그럼 싸움 잘 하시겠다...... 아유......이제 좀 안심이 되네.”
“하하...... 우산이나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우리 식구들 한 다섯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맨 손으로는 두 명 정도......”
“오호...... 그 친구들도 보통은 아닐 텐데...... 대단하군.”
장마담의 차를 인호가 운전하여 아파트로 돌아오고 강주는 인호에게 자기 자동차 열쇠를 주며 아침에 만나기로 한다.
“자, 이 차를 끌고 갔다가 내일 아침에 여기로 건너 와.”
“네, 이사님. 차에는 목검을 몇 개 실어두겠습니다.”
“으응...... 그런 건 자네가 알아서 하고......”
“네, 내일 뵙겠습니다.”
현관을 들어서자 비로소 안락한 공간에서 느끼는 느긋함에 소파에 몸을 던진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강주씨...... 환기라도 좀 시키지. 두 사람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야? 일 나간 사이에 자기들끼리 내 침대에서...... 응?”
“어머! 언니 미안해. 아까 창문 열어 뒀는데...... 아직도 냄새 나?”
“호호호...... 속았지? 그냥 넘겨짚었는데...... 아유, 재미있어라......”
“아유, 언니......”
“너희들...... 오늘은 접근 금지다. 너희들끼리 끌어안고 자. 나는 소파에서 혼자 잘 거니까......”
“어머머! 그런 게 어디 있어? 금방 이실직고 해 놓고...... 이젠 내 차례야. 호호호......”
혜영은 커다란 엉덩이로 누워있는 강주를 타고 올라 목에 매달린다.
“네, 실례 좀 할게요.”
강주와 민희는 영통의 장마담 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장마담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민희를 바라보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을 보곤 기겁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하루가 지나고 나니 푸른빛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니 비록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연적일 수 있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말할 수 없는 정도인 것이다.
“아유, 어떻게 해. 병원에는 가 본 거야? 응? 자기야......”
“응, 조금 전에 다녀오는 길이야.”
강주를 다정하게 부르는 장마담의 모습에 비록 신세를 지러 온 처지라지만 민희의 눈빛에 표독스런 기운이 스친다. 장마담도 민희의 기운을 느꼈는지 마치 씨앗싸움을 다투는 여자들처럼 잠시 긴장이 흐르기도 하지만 이내 강주의 너스레로 넘어가 버린다.
“자, 바둑아, 이리 와서 좀 기대고 앉아.”
“아유...... 강주씨, 아파 죽겠는데 자꾸 놀리지 마. 이 씨......”
“어머! 참...... 자기는 그런 소리가 어디 있어? 사랑하는 사람한테......”
장마담이 먼저 긴장을 풀어 버리려는 듯 민희를 배려해 주는 소리를 하고 소파에 기대어 앉는 민희를 부축해 준다.
“고마워요. 언니......”
장마담은 역시 화류계 십 년의 경륜인지 바로 민희에게서 언니 소리를 받아낸다.
“사람을 어떻게 이 지경을 만들 수가 있어? 강주씨, 차라리 그 박부장 패거리들을 시켜서라도 어떻게 해 버리지. 그냥 두고만 볼 거야?”
“에헤이...... 예쁜 입에서 어떻게 그런 살벌한 소리가 나오나? 매사를 그렇게 처리하면 이 땅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어쨌거나 다 지난 일이니까 잊어버리고 여기서 며칠 푹 쉬면서 몸이나 회복할 수 있도록 네가 잘 좀 도와 줘.”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말고...... 밥은 먹고 온 거야? 밥 차려줄까?”
“아니, 나는 시간이 없어서 나가 봐야 하니까 너희들이나 먹어. 나중에 전화할게. 민희 너는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강원장 전화 오면 일절 받지 마.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하게 할 거니까......”
“응, 이따가 올 거야?”
“음....... 그때 가 봐서...... 일단 전화 해 줄게......”
“으응...... 조심해.”
오늘은 전 점포 재고조사를 실시하는 날이니 매장을 순회하며 상황을 감독할 필요가 있어 일단 인천 용현동 본사로 향한다.
“아니, 황부장은 왜 안 나갔어요? 본사 직원들 모두 매장 지원 나가라고 했잖아요?”
“아! 네...... 저는 사장님이 들어오라고 하셔서...... 저도 이제 막 들어오는 길입니다.”
“사장님이? 왜요?”
“글쎄요...... 저도 아직 모릅니다. 뭐 긴히 시키실 일이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요? 음......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 매장은 본사에서 지원 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건데......”
“아! 저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습니다.”
“음...... 그럼 됐습니다. 저기...... 재고 보유 현황 뽑아둔 것 어디 있죠?”
“여기 있습니다.”
“그럼 나는 나가 볼 테니까...... 무슨 변화 있으면 전화를 주셔야 합니다. 사장님 지시라고 해서 황부장님이 오늘처럼 내 시야를 벗어나면 업무 통제가 안 되질 않습니까?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이미 며칠 전부터 민희가 회장의 눈 밖에 나고, 그 결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미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사장도 민희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아 나설 수도 있는 일이다. 냄새 나는 일은 맡아서 할 개가 따로 있는 법이고 만약 그렇다면 그 개는 황부장이 될 터이니 미리 단속을 해 둘 일이다.
가까운 매장부터 순회를 시작한다. 이미 점장들은 강주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거리낌 없이 셔터를 들어 올려 매장으로 들어선다.
“아!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그래, 잘 진행하고 있지요?”
“네, 이미 시작했습니다.”
매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온 강주는 점장을 부른다.
“지금 전부 중단시키고 정량정리부터 다시 하세요. 어제 교육 안 받았습니까?”
“......”
“재고조사를 하고 다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저렇게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하면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못 끝냅니다. 다섯 개면 다섯 개, 열 개면 열 개씩 정해진 양대로 정리를 하고 조사를 시작하라고 했을 거 아닙니까?”
“아! 네......”
“얼른 정리부터 다시 하라고 하세요. 그래야 정확하고 더 빨리 끝낼 수 있어요.”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 재고 현황을 넘겨보며 다음 이동할 점포를 찾는데 전화가 울린다.
“네......”
“오빠......저예요. 보라......”
“응, 그래...... 어디에 있니?”
“저, 집이에요.”
“오늘은 재고조사라서 안 온 거야? 너, 자식 그러면 일당 깎아 버린다. 하하하......”
“아유, 오빠......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
“왜? 무슨 일 있어?”
“조금 전에 비서실에 있는 후배하고 통화했는데 지금 회사 분위기가 이상하대......”
“그게 무슨 소리야?”
“전에 오빠가 후배 중에 누구 소개시켜 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얘기해 둔 애가 있는데 누가 오빠에 대해서 전무실에 투서를 했다나 봐. 그래서 감사팀이 가동됐다고 하는 것 같던데......”
“뭐야? 그게 누구래? 투서한 사람이......”
“그건 아직 모르고......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으면 다시 전화 해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봐야지. 아유, 어떻게 해요? 오빠......”
“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게도 무슨 연락이 있겠지.”
보라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강주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 건드려 온 여자도 한둘이 아닌데다가 상가 번영회와의 계약도 엄밀히 따진다면 회사에서 파견 나와 있는 소장으로서 당연히 회사를 대표하는 입장이니 회사의 명의로 했어야 할 일인 것을 개인 명의로 처리를 해 문제가 될 소지가 너무나 많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자칫하면 형사 고발을 당할 수도 있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투서를 했는지부터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음...... 민철이니?”
“네, 형님...... 웬 일이세요?”
“혹시 최근에 주차장 코너에 대해서 물어 본 사람들 없었니?”
“아유, 그거야 한 두 사람이 아니니 말 할 것도 없죠? 장사가 잘 되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다 하고 싶어 하는데요.”
“음...... 그래, 알았다.”
누구라도 강주가 책임자인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니 민철이에게는 더 얻을 정보가 없어 할 수 없이 번영회장에게 전화를 넣는다.
“아, 회장님?......”
“아니에요. 소장님..... 저예요.”
회장의 부인이 전화를 받는다.
“으응, 회장은 어다 갔어요?”
“네, 손님이 와서 나갔어요. 소장님에 대해서 뭐 묻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이미 감사팀이 들이닥친 모양이다.
“아, 아...... 별 일 아니에요. 혹시 전에 나하고 번영회하고 계약한 것에 대해서 누가 물어본 사람 없었어요?”
“몰라요. 나는 못 들었는데...... 혹시 총무가 알지 않을까?......”
“그래요. 알았어요. 내가 전화 해 볼게요.”
하기야 공증문서도 총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그것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네, 저 슈퍼 최소장입니다.”
“아, 소장님...... 요즘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도 소장님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 그래요? 혹시 계약에 관해서 묻던가요?”
“네, 회사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보여드리긴 했는데......”
“네...... 뭐, 잘 하셨습니다. 그나저나 그 전에는 왔던 사람 없던가요?”
“네, 있었습니다. 그 때도 주차장에다가 왜 저런 시설을 했냐면서 공유면적 확인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보여줬습니다. 뭐...... 나중에는 이상 없다고 하고 그냥 가기에 별 일 아닌 줄 알고 있었는데......”
“네...... 그랬군요. 잘 알았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네, 네......”
이미 완전히 올무에 걸려들은 모양이다. 더 이상은 손 쓸 방법이 없으니 그저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강주의 손을 전화기로 이끌어간다.
“응, 혜영아......”
“아유...... 그새를 못 참고 전화 하는 것 좀 봐. 그렇게 걱정이 돼? 호호호...... 아유, 민희씨...... 전화 받아 봐.”
“아니, 민희 말고 너한테 물어 볼 게 있어.”
“나한테?...... 뭘?......”
“전에 얘기했던 거...... 옛날에 너 대출 받으려고 했다는 서류 말이야. 그것 좀 찾아 볼 수 있을까?”
“음...... 가서 봐야 아는데...... 왜? 급한 일이야?”
“으응...... 내가 지금 사면초가다. 그거라도 있으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강주는 장마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는다. 더 이상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아 차를 타고 본사로 돌아와 버린다. 황부장은 어디를 갔는지 자리에 보이지도 않지만 지금 거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어찌 됐든 장마담이 서류를 보관하고만 있다면 거래를 통해서 형사고발은 피할 수 있을 것이고, 일이야 의왕매장과 영진유통만 돌아보면 될 일이다. 기왕 물은 엎질러진 것이고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편히 생각하기로 한다.
“어어...... 경주씨가 여긴 어쩐 일이야?”
“어머! 이사님...... 인천에 오시면 전화 해 준다고 하고선 한 번도 연락을 안 해 줘요?”
“허허...... 내가 그동안 좀 바빴어. 미안해.”
“치...... 참, 민희는 연락 안 와요?”
“으응?...... 민희씨가 나한테 연락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아유...... 계집애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으응...... 사장님 외부 모임에는 민희가 파트너로 잘 다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나보고 같이 나가자고 해서...... 아유, 계집애...... 내 전화도 안 받고......”
“그럼 지금 사장님 만나러 온 거야?”
“으응......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달리 갈 데도 없어서 일찍 왔어.”
강주는 넌지시 미경이의 일에 대해서 떠 보기로 한다.
“참, 미경씨는 며칠 전에 한 번 만났다.”
“어머! 그 언니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더니......”
“뭘 하는데 그렇게 바빠?”
“아유, 몰라요. 언니가 뭘 시켰는지 우리 사무실에서 직원 한 명 빼달라고 하더니 며칠씩 데리고 다니던데......”
데리고 다니는 똘마니들이 사고라도 친 모양이지만 그걸 물어보면 공연히 말이 들어갈 것 같아 속내를 감춘다.
“그래? 미경씨도 변호사 개업하려나? 하하하......”
“그럼, 이사님...... 나, 갈게요. 나중에 봐요.”
“잠깐만...... 아직 시간 있다면서...... 따라와 봐.”
경주의 팔을 이끌어 당직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사장을 만날 터이니 민희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해 사전에 어지럽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금 강주의 심정은 섹스를 통해서라도 잊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머! 어떻게 하려고?......”
“조용히만 하면 돼. 스릴 있어 좋잖아?”
문을 닫아걸고 돌아보자 엉거주춤 강주를 바라본다.
“아유, 나 지금 점을 보니까 관계하지 말라던데.......”
“지랄, 생 쑈를 하고 자빠졌네. 야! 지 구멍 가지고 하는 오입도 점쟁이 허락 맡고 한다든? 왜? 구청 가서 물어보고 오지? 아니면 네 남편이 주인이냐? 네 남편이 하라면 너도 할 거야?”
서둘러 음순을 열어간다. 거래현장에 사랑이 개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 두 사람은 단지 후일을 도모하는 거래에 섹스의 형식을 빌려온 것뿐이니 거칠 것도 없는 일일 것이다. 강주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 경주를 괴롭힌다.
“후욱...... 쑤우우욱......”
“아아아흑...... 아이 참...... 아파...... 천천히 해......”
발코니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문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해 정들은 회사에서 이제 정리를 해야 한다니 감회가 어린다. 비록 깔끔한 마무리가 아쉽긴 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네, 여보세요”
“네, 소장님이시죠? 여기 전무님 실 미쓰조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이다. 매도 일찍 맞는 게 편하다고 하니 피할 일도,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 네...... 최강주입니다.”
“지금, 휴가 중이시던데...... 전무님 호출이 있으시거든요. 들어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그러지요.”
“그러시면 다섯 시에 약속 잡아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세요?”
“네, 알았습니다.”
아직 감사팀이 회사로 복귀도 하지 않았을 시간에 연락이 오는 것을 보니 전화보고를 받은 모양이다. 감사결과에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서둘러 차를 몰아가며 장마담에게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으응, 강주씨...... 언니 아까 나갔는데...... 자기 전화 받고......”
“민희야, 왜 그 전화를 네가 받아?”
“나도 옷 사러 밖에 나왔어. 당장 갈아입을 속옷도 없는데...... 내 전화는 전화가 많이 걸려 와서 아예 배터리 빼 버리고 이거 쓰라고 언니가 주던데......”
“어이쿠...... 그래, 알았다.”
“왜? 자기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신경 쓰지 마. 다시 전화 해 줄게......”
“으응...... 저녁에 와. 보고 싶어.”
“야, 보챌 걸 보채라. 하하하...... 어제 보고 아침에 헤어졌는데 뭐가 보고 싶어?”
“치...... 남의 집에 얹혀 있으니까 기도 죽고 기분 이상하단 말이야. 자기라도 있으면 좀 날 거 아냐?”
“그래, 나중에 상황 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추락하기 시작했으니 맨땅에 부딪히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비서실 정보를 캐려 했건만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모양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터덜거리며 전무실로 향한다. 비서가 강주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 맞는다.
“제가 최강주입니다.”
“네, 기다리십시오.”
비서가 인터폰으로 보고를 하고 이내 들어가라고 신호를 준다.
“전무님, 반갑습니다. 최소장입니다.”
“으음...... 그리 앉아요.”
의외로 부드럽게 강주를 맞아들인다. 자리에서 일어서 소파로 내려앉으며 비서에게 커피를 시킨다.
“자, 최소장...... 차 들어요.”
“네, 네......”
“그래, 확실히 최소장이 수완이 좋더군. 내가 감탄을 했어요. 그 수원 매장이 매출이 좋아진 것이 그냥 좋아진 게 아니더라고......”
“......”
“그래, 어디부터 말을 할까?......”
“이미 소식 듣고 왔습니다. 음...... 처분대로 따르겠습니다.”
“쯧쯧...... 나도 최소장 같은 인재를 이렇게 마주앉게 돼서 마음이 안 좋아요. 그래, 이미 알고 왔다고 하니 그동안의 정을 봐서 형사 고발은 안 하는 것으로 하겠어요. 그 대신 이미 운영진에서 다 알고 있는 일이니 형평상 사직처리는 피하지 못할 거고 내일쯤 직원을 보낼 테니까 번영회와 맺은 계약을 내 앞으로 변경시키도록 하세요. 내 말 알겠습니까?”
“아!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쩐지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상가 공유면적의 십 년간의 권리를 탐냈던 것이다. 마땅히 회사로 귀속시켜야 할 권리를 지위를 이용해서 착복하겠다는 것이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강주로서는 그간 받아 두었던 보증금을 한 번에 토해 내야 하는 입장이니 타격이 없지 않지만 의왕매장 진정이에게 부탁하면 안 될 일도 아니니 나름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불과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전무실을 빠져 나온다. 이미 합의를 했으니 더 이상 바라보고 있을 이유도 없다. 전무는 쾌재를 부를 것이고 강주는 정리를 서둘러야 할 일이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허둥지둥 장마담이 들어선다.
“야! 혜영아,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너도 입장 불편할 텐데......”
“뭐야? 벌써 끝나 버린 거예요?”
“으응...... 그래도 다행히 합의는 잘 됐어. 저 인간도 그게 탐나는지 그냥 권리 넘겨주고 옷 벗는 선에서 끝냈어.”
“아유, 자기가 말했던 서류가 집에 있던데 이제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 그만 가자.”
“아유......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잖아. 아깝고...... 저 인간도 순 도둑놈인데......”
“허허허......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 뭐, 높은 자리에 있으면 큰 도둑놈이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작은 도둑놈이고......”
“아이, 그러지 말고 한 번 들이대기나 해 봐.”
나름대로 속이 상하는지 투정을 부리는 장마담을 한참 바라보더니 서류를 받아든다.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후 다시 장마담을 바라본다.
“그럼, 혜영이 너...... 불편해도 얼굴 한 번 비춰줄 수 있어?”
“왜? 어떻게 할 건데?......”
“이거 상무가 좋아할만 한 일이거든...... 자기도 진급을 목 타게 기다려 왔을 텐데...... 이사회에서 터뜨리면 대박이잖아? 다만 진위여부를 가려야 할 필요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네가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장마담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 상관없어. 나야 화류계 인생인데...... 상무도 내 손님으로 만들어 버리지 뭐...... 호호호......”
“정말이지? 그럼 가자.”
강주는 장마담과 함께 상무실을 찾아가 면담을 신청한다. 상무실 비서는 익히 강주를 알고 있으니 바로 연결을 시켜주고 이내 상무와 마주앉는다.
“그래, 최소장. 나도 얘기는 들었어. 거...... 잘 좀 하지 그랬어? 허허허......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신가?”
이미 퇴사시키기로 결정 된 사안이니 더 이상 나무라지도 않고 웃음으로 때우는 인상이다. 강주는 서류를 내밀고 장마담은 상무에게 인사를 한다.
“어머! 상무님, 저 모르시겠어요? 저 장비서예요. 장혜영이라고요.”
“으응?...... 자, 장비서?...... 아니?......”
“호호......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 서류나 한 번 보세요. 상무님이 좋아하실 내용인데......”
오래 전 자신을 곤란하게 하고 사라진 장비서가 강주와 함께 나타나니 상무는 몹시 당황한 모양이다. 황급히 서류를 흩어보고는 질문을 한다.
“이, 이게 무슨 서류지?”
“그게 그 당시 상무님을 곤경에 빠뜨린 대가로 전무님이 저에게 송금해 주신 증거자료예요. 그거면 상무님께 상당히 유용하실 텐데요?”
“으음...... 두 사람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호호...... 저 강주씨하고 동업하고 있어요. 우리 친구예요.”
장마담은 지난번 강주가 박부장에게 소개한 대로 동업자라고 소개를 하고 지갑을 열어 상무에게 명함을 내민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되겠어?”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해 주세요. 전무님......”
장마담은 당돌하게 상무에게 전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도발적으로 웃어 보인다. 확실히 극한상황에서는 여자들이 훨씬 대범한 모습을 연출한다.
“으음...... 사람 참......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건 하나도 안 변했구먼......”
“이사회에 바로 조치하실 수 있잖아요? 그럼 그 원인이 뭔지도 조사할 거고 그럼 그 당시 땅값을 튀긴 것도 다 나타날 거 아니에요? 제가 다 증언해 드릴게요.”
“정말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겠어? 도대체 두 사람 어떤 사이야? 내가 술을 한 잔 하러 가더라도 최소장한테 실수해서는 안 될 거 아니야?”
“어머! 그럼 그렇게 해 주시는 거예요? 호호호...... 우리 애인이에요. 호호호......”
“그것 봐, 내가 눈치가 있는데 최소장한테 다리 부러질 뻔 했잖아? 하하하......”
“아! 이거 감사합니다.”
“그래, 일단 한 번 해 보자고...... 그 대신 철저하게 끝까지 가야 하니까 각오하고 밀어붙여야 돼.”
“아유, 알았다니까요. 그럼 이만 가 봐도 되겠지요? 가요. 강주씨......”
“으응,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내가 따로 연락 줌세. 자넨 그저 모른 척 하고 있어.”
“네, 그나저나 한 가지만 더 여쭙고 가겠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투서를 한 건지 궁금한데......”
“음...... 좋아, 알려주지. 그 대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하네.”
상무는 테이블의 메모수첩을 넘기더니 이름을 불러준다.
“이미경이란 사람인데 신원은 확실한 사람이야. 그래서 조사에 착수했고......”
“왜? 자기 아는 사람이야?”
“으응...... 아, 알았습니다. 심려 끼치는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무서운 일이다. 이제는 뭔가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다. 강주는 십 년간의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 억울한 것보다 자기를 음해한 사람이 더욱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황부장의 아내 미경이가 그 장본인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자기를 내사 했다는 것이니 아파트의 소유권을 가져오기 이전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보복의 차원도 아니니 필경 회장의 지시였을 것이다. 회장이 자신에게 나쁜 감정이 있을 리도 없으니 자기 회사에 붙들어 두기 위한 포석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가려 쓰되 곤란한 처지로 몰고 가 헤어나지 못하게 해 두고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은혜를 입히자는 수작이라니 그 가증스러움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제 회장도 회장이지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지 미경이에 대한 감정이 더욱 나빠진다.
“크......”
“아유, 가게에 가서 마시자니까 꼭 소주를 사다 마셔요. 집에 안주도 없는데......”
“그냥 계란 프라이나 한 장 부쳐와.”
“나, 지금 가게 나가봐야 하는데 민희씨가 좀 해줘.”
“그래요, 언니...... 내가 해 줄 게 얼른 나가봐요.”
“그리고 두 사람 나 없다고 너무 친한 척 하기 없기...... 호호호......”
“아유, 참..... 언니는?......”
“허허...... 참, 너희들 그 사이 많이 친해졌다? 아까는 눈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던데......”
“어머! 우리가 언제......”
“정말 미쳤나 봐......”
“혜영아, 가게에 요즘 박부장 똘마니들 와 있니?”
“으응, 그 애들은 아주 점잖아서 맘에 들어.”
“푸훗, 그래? 나중에 나도 가게에 갈 테니까 밤 열 시쯤 만나자고 말 좀 해 둬.”
“응, 알았어. 그럼 이따가 같이 나와. 술이나 한 잔 해야지. 민희씨 환영파티...... 호호호......”
“그래.”
“자기야, 아까 옷장 열어보니까 남자 옷도 있던데...... 그거 자기 옷이지?”
“으응?...... 아마 그럴 걸?...... 혜영이 혼자 사는 집에 무슨 남자 옷이 있겠어?”
“나...... 요즘 와서 느끼는 건데...... 자기 겉보기하고는 많이 다르더라.”
“뭐가?......”
“회장언니하고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순 풋내기인 줄 알았는데...... 혜영언니 같은 마담하고 살림을 차리고 있질 않나...... 깡패 같은 사람들이 인사도 하고......”
“푸훗...... 야! 이게 무슨 살림을 차린 거냐? 요즘 계속 인천으로 다니다보니까 옷에 땀 냄새 난다면서 갈아입으라고 한 벌 사다 준 건데......”
“피...... 한 벌은 무슨...... 자기 옷 엄청 많던데?......”
“으응? 그래?......”
민희는 보란 듯이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어 보이고 과연 그 안에는 강주에게 열린 혜영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다양한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강주는 내심 흐뭇하지만 민희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여 민희의 안색을 살피며 웃어 버린다.
“참 나...... 기가 막혀서...... 하여튼 도깨비놀음 같아서 여자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허허허......”
“치...... 것 봐. 내 말이 맞지. 솔직히 말해 봐. 자기 나 모르는 여자 몇이나 더 있어?”
강주는 술을 마시다 흘끔 민희를 바라보고는 다시 술을 마신다.
“나?...... 글쎄다...... 나는 자유연애주의자니까 그런 거 묻지 마. 그런 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잖아......”
“피...... 갖다 붙이기는......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못 끌어내서 안달을 했어? 뭐 송희하고 결혼하면 자기 처형이라서 싫다면서?......”
“지금도 달라진 건 없어. 내 여자고 내 처형이고 내 가족인데......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난 굳이 말릴 생각은 없어. 네가 즐기는 거라면...... 그렇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다면 그건 정말 아니잖아.”
“음...... 그럼 내가 자기 말고 다른 사람 좋아해도 된다는 거야?”
“네가 그런다고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설혹 떠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칫...... 말도 안 돼. 나도 뭐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섹스를 하고나면 생기는 신뢰감 같은 것도 있잖아?”
“신뢰감 하고는 다르지. 그러고 나면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어떤 동질감 같은 것도 생겨서 끈끈해지기는 하겠지. 섹스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야. 그러면서 사랑이 싹틀 수도 있겠지. 우리처럼...... 그러면 너는 섹스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거래를 기대하면서 섹스를 하고나면 이젠 다 이루어졌다고 믿을 수 있는 거야?”
“그야 물론 아니지. 계속 연결을 하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그게 사랑하고는 다른 거야. 너...... 내가 하나 물어 볼 테니까 대답해 봐.”
“......”
“군 입대를 앞둔 남자애가 자기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고 언약식으로 동침을 요구했는데, 이 여자애는 임신할 것이 두려워서 동침을 거절했어. 그러자 그 남자애는 평소에 이 여자애가 자기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이 여자애를 떠나가 버렸다면 정말 이 여자애가 그 애를 사랑하지 않아서 동침을 거절한 걸까? 또, 그 남자애는 정말 이 여자애를 사랑했던 걸까?”
“음...... 잘 모르겠는데......”
“사랑한다면 상대가 잘 되길 바라고 믿어줄 수 있어야지. 믿을 수 없어서 언약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랑이 아니란 말이야. 그 여자애는 오히려 거짓사랑에 적절하게 대응을 한 셈이고...... 정말 내 몸처럼 사랑한다면 구속하질 말아야지. 자기는 군대에 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함께 할 것이라는 신뢰도 보내주고...... 자기가 없는 동안 상대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지낼 것도 소망해 주고......”
“음......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다 우리 주변에 어긋난 환경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 너 나 할 것 없이 도덕적으로 살지도 못하면서 머릿속에는 뿌리 깊은 유교적 교육이 자리 잡고 있고 그러다 보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기는 거야. 다만 나는 그 생각을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에게로 확장했을 뿐이야. 나는 진심으로 민희, 네가 행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어. 잘 생각해 봐. 요즘 황혼 이혼이 많아지는 이유가 뭔지 알아? 한 평생을 살면서 불편부당한 대접을 받아 왔다고 이제 허리에 힘도 빠져 오갈 곳 없는 영감을 버리는 거거든. 복수라면 아주 치사하고 잔인한 복수인 셈이지. 그 할머니는 평생을 부부라는 포장 속에 숨어서 일신의 안락을 영위해 오고서도 마지막 아름다워야 할 인생의 황혼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거야. 이혼을 할 거였으면 진작 했어야지. 혼자 살아가야 할 세상이 두려워서 거짓사랑 뒤에 숨어 기대다가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자 평생을 함께 해온 반려자를 버리는 것은 일평생 배우자를 상대로 창녀 짓을 해 온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 민희, 너에게는 강원장이 그런 놈이었다는 말이야. 그래서 네가 즐거워서 만들어 가는 로맨스라면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싫어했던 거고......”
“그럼 자기는 나 한 평생 아껴주고 사랑해 줄 자신 있어?”
어느새 민희는 강주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강주는 그런 민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쿡...... 바둑아...... 주례사 낭독 하냐? 킥킥......”
“아이, 빨리 말해 봐......”
“그냥 믿으라고 그랬지? 사랑한다면...... 그래, 하기야 방금 말 한 할머니들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할아버지들도 잘못 살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 고작 몇 푼 되지도 않는 재산을 장악하고 배우자들을 꼼짝 못하도록 했으니 그런 보복을 당하는 거야. 내가 오늘을 살다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그러잖아?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들이 언제고 나와 동등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줘야지. 우선 민희 앞으로 아파트나 한 채 사줄까? 킥킥......”
“아이, 내가 언제 집 사 달라고 했어? 진짜로 알아들었나 봐? 나도 재산분할 청구하고 위자료 받아 낼 거야. 그러면 아파트 한 채는 떨어져.”
“봐.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거야.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요구하거나 하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잘 살던 부부도 이혼까지 가게 될 걸...... 내가 죽고 나면 다 네 것이라는 것...... 그거 말짱 다 소용없는 짓이지. 생일 날 밥상 받아먹자고 석 달 열흘 굶는 거나 똑같은 일이야. 앞으로 도래할 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가 너와 나, 우리에게는 천국이어야 하는 거야. 재산을 장악함으로 해서 그것 때문에 배우자가 자신에게 순종을 한다고 믿게 되면 이미 사랑은 물 건너간 거야. 그렇다면 정말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일이니 그게 하루하루가 지옥이지 무슨 천국이겠어? 하하하......”
“그래, 난 강주씨 믿어...... 으음......”
“우린 평생을 부부가 아니더라도 친오빠나 친동생처럼, 친누나처럼 그렇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마.”
민희는 미더운 눈길을 보내며 팔을 뻗어 강주의 목을 끌어안는다.
“자기야, 나 지금 하고 싶어.”
“야...... 너 몸도 아픈데 왜 이렇게 밝혀? 계집애가......”
“치...... 이따가 혜영언니랑 같이 들어오면 못하잖아? 언니가 자기한테 안겨서 자려고 하면 내가 신세지는 마당에 끼어들 수도 없고...... 빨리......”
민희가 힘겹게 일어서서는 강주의 팔을 이끌어 침대로 데려가고 엉거주춤 따라가는 강주가 민희에게 묻는다.
“너 옆구리 결린다면서......”
“으응...... 내가 차라리 밑에 누우면 괜찮을 것 같아. 어제는 옆으로 해서 더 아팠나 봐...... 호호호......”
민희는 천천히 옷을 벗고 침대로 올라가 눕고 강주는 다가가 팬티를 벗겨 내린다.
“후훗...... 이거 어제 입은 거 아니네? 오늘 사 온 거야?”
“으흥...... 예쁘지?”
“그래...... 쭈우우웁...... 후루룹...... 쭈우웁......”
민희의 다리를 접어 옆으로 세워두고 머리를 들이밀어 혀로 음순을 빨아들인다. 분홍빛 예쁜 속살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강주의 입속으로 이슬을 토해낸다.
“아아아흥...... 흐으윽...... 자기야......”
한참의 애무로 달뜬 민희가 긴 손가락을 강주의 머리칼에 꽂아 쥐고 흔들어 강주의 얼굴은 온통 민희의 애액으로 번들거린다.
거웃에 문질러 입가를 닦아내고는 천천히 몸을 실어 허리와 배꼽을 타고 젖가슴을 물어간다. 아직도 몸이 불편한 민희를 배려해 애무를 충분히 해 주려는 모양이다.
“아흑, 그만...... 빨리 해 줘......”
“으흠...... 조금만 더 하고...... 쭈우웁...... 쭈우웁......”
“아학...... 싫어......”
얼굴을 마주쳐 입을 맞춰가자 민희의 손이 밑으로 내려와 강주의 좆을 잡아간다. 입으로는 신음을 흘리며 한껏 벌린 사타구니 속으로 음순을 맞추고는 강주의 엉덩이를 다리로 감아버린다. 팔을 뻗어 엉덩이를 잡아당기니 후끈 달아오른 민희의 몸속으로 스며들 듯 미끄러져 들어간다.
“으흐흥...... 아학......”
“그럼...... 힘들어도 좀 참아...... 민희야......”
“으응...... 어서 해 줘. 사랑해...... 여보......”
민희는 강주와의 대화로 얼마든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 더욱 더 강주에게 몰입한다. 이 순간만큼은 바로 내 남자라는 소유욕에 사타구니를 찢어지도록 벌려 강주의 좆을 받아들인다.
강주가 좆질을 할 때마다 시큰 거리는 옆구리 통증도 오히려 자극이어서 민희로 하여금 콧소리를 절로 흘리게 한다.
“후욱, 후욱......”
“아학, 아학...... 흐으으응...... 여보......”
민희의 콧소리에 몸을 들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밀어 넣는다. 가볍게 어깨를 쥐고 속도를 높인다. 빠른 허리놀림에 놀란 민희의 눈이 크게 떠진다.
“아학, 아파...... 살살...... 천천히......”
“조금만...... 후욱, 참아...... 너 아파서...... 안 되겠어.”
양 팔로 어깨를 감아쥐고 민희의 사타구니를 맹렬히 치고 들어간다. 민희의 다리는 저절로 접혀 양 팔로 붙들어 잡고 오로지 강주의 좆질에 흔들리는 대로 몸뚱이를 내맡긴다.
“아항, 아항, 아항......... 아아아아아항......”
“훅, 훅, 훅, 훅...... 우우우우욱...... 울컥......”
한참의 빠른 좆질로 민희의 속을 흥건히 채워준다. 질 속으로 후끈한 느낌을 느끼는지 강주의 엉덩이를 다리로 감아온다. 가느다란 떨림으로 흥분을 전해오는 민희의 귓불을 물어준다.
“아아아흑...... 아흑...... 여...... 보......”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퇴근 후 장을 보러 나가는 부부의 모습이어서 보기에도 흐뭇하다. 민희도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여서 한결 자연스럽고 커다란 모자 밑으로 검은 선글라스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자기야, 걸어가려고?......”
“응, 술 마시고 올 건데...... 아니면 혜영이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타고 오던지......”
“으응, 그래도 되겠네...... 후훗...... 거기 아가씨들 있는 술집인데 내가 가도 되나?”
“뭐...... 룸에서 우리끼리 마실 건데 무슨 상관이야?......”
하모니 카페 입구로 들어서니 이미 강주를 알고 있는 웨이터들이 환대를 해주고 지난번 박부장과 함께 온 청년들이 대기하고 있어 다다가 물어본다.
“으응?...... 혹시 박부장이 와 있나요?”
청년들도 강주를 알아보는지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해 오고 민희는 당황해 한 걸음 물러난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네 와 계십니다.”
“으음...... 그러면 민희는 잠시 내실에 가 있을래?”
“으응...... 그럴게.”
민희는 허둥지둥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내실로 가고 강주는 박부장과 마주앉는다.
“아니, 처남이 어쩐 일이십니까?”
“네, 동생들을 보자고 하셨다면서요? 혹시 지난번 그 일 때문에......”
“아! 네, 뭐 기왕 처남을 만났으니 처남하고 의논을 하면 되겠네요. 사실은.......”
강주는 박부장에게 그간의 경과를 설명해준다. 그 사이 술이 차려지고 혜영은 어느새 강주의 곁에 앉아 시중을 들고 있다. 박부장도 곁에 앉은 아가씨에게 술을 받으며 강주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 그러면 그 회장이란 여자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말씀이신다요?”
“아니, 뒷조사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가족사항 정도만 알면 뭔가 틈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양반은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섣불리 들이댔다가 잘못하면 들통이 날 수도 있으니까 아예 접근하지 마시고 제가 듣기론 결혼한 딸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다른 가족들을 찾다 보면......”
“아! 네, 알았습니다. 그건 제가 지시를 해 두겠습니다. 그나저나 또 정필이 녀석에게 돈을 주셨다던데......”
“아니, 그 사람은 뭐 그렇게 입이 가벼워요?...... 하하하...... 그 뭐...... 산속에 애들 데리고 있으려면 돈도 제법 필요할 거 아닙니까?”
“아주 이 기회에 내 밑에 있는 녀석을 하나 매부에게 붙여드릴 테니까 동생 삼아 데리고 다니십시오. 이 녀석이 검도를 한 녀석이라 몸도 날래고 무엇보다 생기길 잘 생겨서 건달 티가 안 나니까 매부에게 딱 적당할 겁니다. 갑자기 저희들 만나려면 이렇게 일일이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고......”
“아유, 아닙니다. 내가 무슨......”
“어머! 자기야, 그렇게 해...... 그 쪽 사람들 웃기지도 않는데 갑자기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그리고 그 여자 아파트는 확 날려 버리지. 왜 그냥 두는데?”
“아니지, 일단은 그 사람들 의도대로 넘어가는 척 해야지. 그 집이야 언제가 됐든 내가 넘겨 버리면 그만인 것을...... 내가 내용을 아는 척 하면 더욱 경계를 할 거 아냐?”
“그럼 매부 다니시던 회사도 그만둔 것처럼 소문을 내야 할 텐데...... 휴가 끝나고 출근을 하시게 되면 다 알게 될 거 아닙니까?”
“음...... 일단 날이 밝아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겁니다. 상무가 작업에 성공하면 뭐...... 휴직처리를 해 달라고 위장을 할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진짜 그만둬도 사실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관계없습니다. 어쨌든 나를 음해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지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니까요. 하여튼 상무에게 무슨 연락 있으면 혜영이 네가 잘 처리해 줘야 돼.”
“으응...... 그건 걱정 마.”
박부장은 아가씨를 시켜 대기 중인 청년을 불러들이더니 누군가를 부르라고 지시를 한다.
“아니, 왜요? 처남...... 나 그런 친구들 필요 없다니까요.”
“그러지 마시고 제 말대로 하세요. 저도 조금이나마 매부에게 신세를 갚아야 할 텐데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이런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운전이나 시키면서 데리고 있다가 급할 때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좋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래, 자기야...... 그렇게 해. 나는 자기 말 듣고 나니까 심장이 떨려 죽겠는데......”
“허허허...... 마담은 아무 걱정 마세요. 이 가게는 물론 마담도 퇴근할 때까지 제 동생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 네, 고마워요. 부장님...... 저는 저 말고 강주씨 말한 거예요.”
“그래요. 매부도 그렇게 하세요. 그 녀석 밑으로 공부하는 동생들도 있는 모양이던데 차라리 매부가 가끔 용돈이라도 쥐어주면 그게 제 밑에 있는 것보다 그 녀석에게도 좋을 겁니다.”
“허허...... 거 참......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 대신 그 친구는 제가 알아서 쓸 테니까 처남은 아예 잊어버리십시오.”
“아! 물론입니다. 매부에게 보내면 그 때부터는 매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너무 편을 가르시면 제가 섭섭합니다.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십시다. 지금 처남이 여기 이 사람 가게를 지켜 주는 것도 고맙고, 제가 앞으로 신세 질 일이 점점 더 많아질지도 모르는데...... 산이야 지금 팔아봐야 헐값일 것이고...... 정아가 하고 있는 가게를 아주 정아 앞으로 권리를 넘겨줄 테니까...... 그러면 저도 신세갚음이 좀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 매부, 정말 그렇게까지 해도 되겠습니까?”
“뭐...... 정아가 나한테 남도 아니고 제가 괜히 처남 앞에서 생색만 내는 겁니다.”
“아! 하하하...... 생색이라니요. 정말 고맙습니다. 매부...... 그 녀석들이 항상 눈에 밟혔는데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제가 아무 걱정도 없겠습니다.”
“그러면 그럽시다. 나중에 만날 그 친구를 통해서 정리해 드릴 거고..... 차차 기회 봐서 저 산도 필요하면 팔아서 우리가 쓰십시다. 어차피 처남도 이 사업에 뛰어드셨으니 끝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자금이 부족해서 힘드시는 모양이던데......”
“매부......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허허...... 너무 감격하실 거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저대로...... 처남은 그냥 처남대로 각자 성공합시다. 다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자는 거예요.”
“아! 네, 알았습니다. 하여튼 매부 말씀이라면 섶을 쥐고 불 속에 들어가라고 해도 따를 테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아이고...... 참, 나는 바비큐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하하하......”
“하하하......”
이윽고 문이 열리며 웨이터의 안내로 눈썹이 짙은 청년이 들어선다.
“형님, 부르셨습니까?”
“응, 그래. 인사 드려라. 내 매부 되시는 분인데 오늘부터는 네가 따라다니며 좀 모시도록 해. 나하고도 늘 연결이 끊어지면 안 되니까......”
“아! 네, 저..... 정인호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나는 최강주요. 나이는?......”
“네, 스물다섯입니다.”
“어머! 영계네? 호호호......”
“그래, 나보다 어리니 다행이군. 나는 정필이가 형님이라고 할 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하하하......”
“오늘부터는 이 분이 너를 책임 져 줄 테니까 각별히 모셔라. 나도 한 수 접히는 분이니까...... 자, 그럼 매부...... 저도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아! 네, 저는 안 나가겠습니다.”
박부장이 나간 후에 민희와 혜영, 정인호가 자리에 함께 앉아있다.
“저......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말고 이사님이라고 불러.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할 텐데...... 나는 그 형님 소리가 영 안 좋더라고..... 어색하고...... 자네한테는 그냥 이름을 부를 테니까......”
“아! 네, 이사님. 알았습니다.”
“호호호...... 나한테는 뭐라고 부를 거예요?”
대뜸 장마담이 나서자 민희도 앞으로 나서며 얼굴을 들이민다.
“호호호...... 나는?”
“네, 네?......”
“하하하...... 뭐가 어려워? 한 사람은 마담이고 한 사람은 바둑이지...... 하하하......”
“뭐라고요? 우리는 다 형수예요. 알았지요?”
“아! 네, 네...... 형수님......”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호의 표정이 재미있어 웃음 속에 술자리가 무르익는다.
“음...... 아까 박부장한테 얼핏 들었는데 검도를 했다면서?......”
“아! 네...... 우슈도 조금 했습니다.”
“어머! 그럼 싸움 잘 하시겠다...... 아유......이제 좀 안심이 되네.”
“하하...... 우산이나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우리 식구들 한 다섯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맨 손으로는 두 명 정도......”
“오호...... 그 친구들도 보통은 아닐 텐데...... 대단하군.”
장마담의 차를 인호가 운전하여 아파트로 돌아오고 강주는 인호에게 자기 자동차 열쇠를 주며 아침에 만나기로 한다.
“자, 이 차를 끌고 갔다가 내일 아침에 여기로 건너 와.”
“네, 이사님. 차에는 목검을 몇 개 실어두겠습니다.”
“으응...... 그런 건 자네가 알아서 하고......”
“네, 내일 뵙겠습니다.”
현관을 들어서자 비로소 안락한 공간에서 느끼는 느긋함에 소파에 몸을 던진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강주씨...... 환기라도 좀 시키지. 두 사람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야? 일 나간 사이에 자기들끼리 내 침대에서...... 응?”
“어머! 언니 미안해. 아까 창문 열어 뒀는데...... 아직도 냄새 나?”
“호호호...... 속았지? 그냥 넘겨짚었는데...... 아유, 재미있어라......”
“아유, 언니......”
“너희들...... 오늘은 접근 금지다. 너희들끼리 끌어안고 자. 나는 소파에서 혼자 잘 거니까......”
“어머머! 그런 게 어디 있어? 금방 이실직고 해 놓고...... 이젠 내 차례야. 호호호......”
혜영은 커다란 엉덩이로 누워있는 강주를 타고 올라 목에 매달린다.
여직원 괴롭히기 -22부
“어머! 오빠, 지금 나오시는 거예요?”
“아니, 아까 와서 황부장하고 볼 일 좀 보고 오는 중이야. 보라야, 교육은 다 끝났니?”
“아니요, 점심 먹고 한두 시간 더 할 것 같은데요.”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
“호호...... 여기 점장들이 희숙이한테 말을 거는 게 재미있는지 질문을 많이 해서 길어졌어요. 아유...... 희숙이 계집애, 제법이던데요.”
“허허허...... 그래? 야...... 그거 생각 외로 호응이 좋으니 다행이다.”
“저...... 이사님, 이것 좀 봐 주십시오.”
부소장이 전산출력 받아 온 자료를 내밀며 강주에게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뭔데 그래?”
“네, 이 매장은 매출이 좋긴 한데...... 그래도 매출에 비해서 재고가 엄청 많은 것 같은데요?”
“다른 곳은 어때?”
“다른 곳은 대체로 적절한 수준입니다. 유독 이 매장만 타 매장에 비해서 재고가 많이 있네요.”
“그동안 점장들도 자주 바뀌었다고 하던데 보나마나 책임 질만한 놈도 없을 거고, 꼴에 점포 간에 매출 경쟁들은 했을 테니 제 값 안 받고 싸게 팔아서 장부상 재고액수만 많아진 거겠지. 음...... 그래도 무작정 의심만 할 수는 없으니까 전 점포 재고조사를 해서 기초재고를 다시 잡는 수밖에 없을 거야. 저...... 김과장님, 여기 재고조사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습니까?”
“기록으로는 작년 연말인데요?”
“에이그...... 분기마다는 못해도 육 개월에 한 번씩은 해서 털어 줘야지. 황부장님, 재고조사를 할 때는 아침부터 했습니까?”
“아니오, 보통 폐점 후에 남아서 하곤 했습니다.”
“아주 죽여주는구먼...... 아, 그래가지고 숫자가 정확하게 나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지요. 애들은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를 텐데......”
강주의 손짓에 사람들이 하나 둘 강주의 자리로 모여든다.
“우선...... 하루 영업을 안 하면 자금이 어떻게 돌아가게 되는지 경리파트에 가서 확인해 보고 얘기하는 게 좋겠는데 황부장이 알아볼래요?”
“아, 이사님...... 그건 사장님이 직접 관리를 하시기 때문에 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황부장이 머리를 긁으며 강주에게 대답을 한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허점에 그간 관리를 맡아 온 책임자로서 면목이 없다는 뜻일 게다.
“허허...... 참, 이게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사장님이 돈주머니를 꿰차고 다니시나. 그래?...... 음...... 김과장님,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기안 속에 경리파트도 과로 승격시키고 경리과장 맡을만한 분도 한 번 물색해 보세요. 전결규정도 새로 작성하시고......”
“네, 알았습니다.”
“지금, 사장님 사무실에 계신가요?”
“회장님 연락 받고 나가셨는데요.”
“그래요? 이거 전화로 물어 볼 수도 없고...... 어디 계신지 황부장이 전화 한 번 넣어보세요.”
잔뜩 늘어졌던 회사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다시 활기차게 돌아가는 모습에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진다. 요즘처럼 불투명한 경제현실에 그들이 정작 원하는 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쉽고 편한 일자리도 아니고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며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금자리를 꾸며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줄 안정된 직장일 것이다.
우리만큼은 평생직장을 보장해준다며 전 세계를 향해 까불어 대던 일본 사회에서도 직장 폐쇄며 대량해고로 전전긍긍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하물며 회사의 뼈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작은 일 조차도 콩나물 심부름 가는 아이처럼 상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하던 일에 전결의 확대며 부서의 개편이란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에 기대가 가득하여 아이 같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저...... 이사님, 전화 연결되었습니다.”
“아! 네, 저...... 최이사입니다.”
“어머! 네, 이사님.”
“아니, 왜 회장님이 받으십니까?”
“호호호...... 저이가 지금 전화를 못 받아요. 여기 지금 병원이라......”
“왜요?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호호호...... 그게 아니고......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이사님도 이쪽으로 오세요. 하실 말씀 있으면 여기서 점심이나 함께 하면서 하시고......”
“음...... 그러면 그렇게 하지요. 거기가 어디입니까?”
“네, 여기 구월동 농협 앞으로 오시면......”
“아, 민희씨네 병원......”
“아! 알고 계시네요? 호호호...... 아유, 계집애 벌써......이사님 약혼자는 어디 손 볼 데도 없는 미인이시던데......”
“허허허...... 네, 그럼 곧 가겠습니다.”
짐작이 된다. 회장 뿐 아니라 사장도 그렇게 젊어 보였던 것이 모두 약물의 힘인 모양이다. 틈틈이 주사를 찔러대고 온갖 영양제를 맞아대니 십 년씩은 젊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닌 일이다. 민희를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 없더라도 민희의 남편 얼굴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심란해진다.
결국 한 처가를 두고 동서로 지내야 할 사람이니 반갑다기보다는 처해있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뿐이다.
마침 강주가 도착할 즈음 사장은 처치가 모두 끝났는지 원장실로 강주를 불러들인다.
“아! 최이사님, 인사하세요. 여기는 강원장이고......”
“아! 네, 반갑습니다. 저, 최강주라고 합니다.”
“네, 저는 강민규입니다. 어서 오세요.”
뿔테 안경에 창백한 표정이 영락없이 공부를 많이 하느라 햇빛을 못 본 심약한 우등생 같은 얼굴로 강주를 맞아준다. 송희의 언니나 형부에게 들은 바로는 엘리트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하니 별로 사귀고 싶은 인물은 아니고 게다가 병원 칼잡이와 구멍가게 껌 장수가 대화를 하려 해도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니 할 얘기도 서로 없는 처지다.
식사를 하러 나서는 중에 사장에게 재고조사 건에 대해 보고를 하니 회장이 가로막고 나서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대꾸를 한다.
“아! 그럼 해야지요. 그렇게 해서 정확한 관리가 가능하다면 하세요. 하여튼 황부장 순 엉터리 같은 게...... 아유, 당신은 돈 주머니만 차고 있으면 뭐 해요? 다 옆구리로 새는 줄도 모르고......”
“허허허...... 참, 그게 그러면 점장들이 물건을 빼돌릴 수도 있다는 얘기라는 거지요?”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점장들이 자주 바뀐다는데, 바뀔 때마다 재고조사를 해서 인수인계를 확실히 한 것도 아니니까, 누구 책임인지 모호한 상황 아닙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지요. 꼭 물건을 빼돌린다기보다는 우리 점장끼리 경쟁이라도 할 것 같으면 제 값을 안 받고 싸게 팔아 매출액만 키울 수도 있는 거니까 정작 장사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밑지고 있는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허허...... 거 참......”
“이것도 다 관리자가 잘못한 겁니다. 직원들 탓이 아니에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을 그렇게 안 해서 그런 거라고 봐야지요. 그나저나 회장님, 저 강원장은 왜 식사하러 같이 안 갑니까?”
“아! 놔두세요. 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공연히 식사 분위기 망칠까 봐 가자고 안 했어요.”
“아, 네......”
회장 부부와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네......”
“응, 자기...... 나야.”
“어! 민희야. 어디니?”
“으응...... 우리 남편이 점심 먹자고 해서 지금 들어가는 중이야. 자기 이따가 형부한테 갈 거야?”
“그럼, 가야지. 약속했는데......”
“쿡쿡...... 그럼 나도 갈까? 그런데 저이가 같이 가려고 할지 모르겠네.”
“야, 아직은 안 돼. 괜히 네 남편하고 같이 만나면 결국 회장이 우리 사이가 처형, 제부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그게 무슨 꼴이야.”
“우리 남편이 자기 아직 모르잖아. 나만 모른 척 하면 되는 거지.”
“야, 회장이 불러서 마침 금방 만났어. 네 남편 얼굴 보니까 완전히 재수 없게 생겼더라. 킥......”
“어머! 그랬어? 자기하곤 영 딴 판이지? 그래도 그런 소리 들으니까 별로 기분은 안 좋네.”
“쿡...... 미안...... 아임쏘리...... 올 거면 차라리 혼자 오든지......”
“으이그...... 저녁에는 혼자 다니는 꼴을 못 본다니까...... 생긴 거 봤다면서......”
“야! 나 처음에 만났을 때도 외박은 안 했지만 밤늦게까지는 같이 있었잖아?”
“그때야 회장 언니하고 같이 있었으니까 그랬지.”
“참 벨도 없는 인간들...... 마누라 길바닥에 내돌리고...... 너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이혼해라. 내가 한 평생 예뻐해 주면서 살 테니까......”
“치...... 송희만 아니라면 나도 차라리 그러고 싶어. 요즘은 자기 만나고 나서 정말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정 곤란하면 내가 의왕에 관리하는 점포가 있는데...... 거기도 이층에 병원도 있고 그렇거든. 내가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볼 테니까 너희 부부도 아예 회장하고 정리하고 그리로 옮기던지......”
“뭘 그렇게까지...... 호호호...... 그래도 말이라도 고마우이. 서방님......”
“그래, 차차 생각해 봐. 나도 네가 힘들어 하는 거 보기 싫어서 그러니까...... 그리고 결국은 회장하고 인연 끊어야 될 거 아냐? 나, 너 그러고 사는 거 정말 못 본다니까......”
“네, 잘 알았습니다. 호호호...... 그럼 내일 쯤 다시 전화할게.”
본사로 돌아오니 마침 식사들을 끝내고 다시 교육을 시작하려는 터라 강주가 교육장으로 들어선다. 교육을 보조하던 부소장과 보라가 주의를 환기시키고 희숙이가 강단에서 내려오자 어느새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점장들도 이미 강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으니 눈빛을 빛내며 마른 침들을 삼킨다.
“음...... 제가 최이사입니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그간 경영상태 악화로 인해서 이 사업을 접을 것인가, 다시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 경영진에서 갈등이 많이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실태를 파악하고 제가 슈퍼바이저 역할을 자임하면서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이 회사를 살려보고자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지금 교육중이신데,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때입니다. 이 빗물을 잘 받아둬야 여러분은 가뭄에 유용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빗물은 사방 어디나 고르게 쏟아지지만 여러분이 준비한 그릇이 얼마나 크고 작은가에 따라 나중에 담긴 물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교육을 잘 받으시고 이제 점포로 돌아가시면 내일은 영업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재고조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그 결과를 두고 여러분들을 문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료를 백지화시키고 새로이 그 기초가 되는 숫자를 알기 위한 것이니만큼 조금의 숫자조작도 있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전체 점장들의 인사이동을 단행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재고조사를 할 것인데 그때 조사한 것과 일치가 되지 않는다면 숫자를 조작한 것으로 알고 해당 점장은 업무방해로 고발조치를 할 것이니 이 점 참고하시고 정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재고조사 요령과 기준에 대해서는 강사로부터 설명이 있을 겁니다.”
강주는 희숙이에게 다시 교육장을 맡기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실제로 점장들의 인사이동 계획은 없지만 돌아가는 회사의 분위기가 얼마든지 그럴 법한 일이니 사전포석으로 숫자조작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로 그저 던져 둔 말이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에 잠도 부족하고 저녁에는 약속도 있으니 일찌감치 주변을 정리해 수원으로 갈 채비를 한다.
“아, 이사님 퇴근하실 겁니까?”
“네, 먼저 갈 테니까 교육 마무리 잘 하시고 내일부터는 업체 불러들여서 계약 재조정 할 거니까 황부장도 저 친구들 잘 도와줘야 합니다.”
“아...... 네, 알았습니다.”
“자, 그럼 나중에 봅시다.”
차를 움직여 수원으로 향한다. 간밤에 박부장에게 부탁해 둔 일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본다.
“네, 처남...... 접니다.”
“아! 매부...... 안 그래도 전화 하려던 참인데...... 그게 좀 이상한 게 차주가 여자로 나오던데요. 어제 매부한테 들은 느낌으로는 남자인 것처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네, 차주가...... 여기 어디 적어 뒀는데...... 아, 이미경이라는 여자고......”
“아,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입니다. 야...... 그러면 알 길이 없다는 말인가요?......그건 명의만 그렇게 했다는 얘기 같은데......”
“하하하...... 곧 알 수는 있을 겁니다. 차주가 여자로 나오는 게 이상해서 제가 발 빠른 애들 몇 명 붙여 뒀습니다. 그 여자한테 붙어 다니다 보면 눈에 띄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뭐 그렇게까지...... 하하하......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내가 우리 처남들을 보면 마치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참, 그리고 술은 납품하셨나요?”
“네, 매부 덕분에 다행히 숨통이 트였습니다. 하하하......”
“다음에 또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뭐, 저도 좋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 일은 소식 들어오는 대로 좀 알려 주시고요.”
“네, 제가 한 밤중이라도 전화 드리겠습니다.”
창고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도 않고 바로 침대에 쓰러진다. 매장 일도 다소 궁금했지만 가보면 또 길어질 것 같아서 휴가 중임을 핑계로 차를 바로 아파트로 집어넣어 버렸다. 후줄근한 집이라도, 기다려주는 이 없어도 피곤이 무기인지 역시 내 보금자리가 좋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여우같은 마누라와 퇴근한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팔 다리 하나씩 붙들고 늘어질 토끼 닮은 새끼들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아쉬움도 잠깐이고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든다.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뜬다.
“나야.”
“응, 민희야......”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니 잠을 제법 잔 모양이다. 한껏 기지개를 켜며 피로를 떨쳐 버린다.
“지금 어디야? 나, 수원에 왔는데......”
“뭐?...... 혼자?......”
“응......”
“그럼 어디 있는데?...... 언니 집이야?”
“아니, 언니 집 근처에 있는데...... 자기부터 볼까 싶어서...... 흑......”
“야, 야...... 왜 그래? 민희야. 너 어디야?”
“여기...... 자기가 관리하는 슈퍼 앞인 거 같아.”
“그래, 거기 그대로 있어. 금방 나갈게......”
울먹이는 민희의 목소리에 잠을 떨친다.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나가니 선글라스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예쁜 모습의 민희가 손을 흔든다. 금방 흐느낀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히 상인들을 마주치면 인사 받기도 불편할 것 같아 길 건너에서 그저 손짓으로 부르니 민희가 천천히 건너온다.
“어쩐 일이야? 혼자서......”
“으응, 우리 어디 좀 들어가자.”
“그래, 이리 들어 와. 내가 이렇게 산다. 허허허...... 보고서 웃지나 마라.”
창고로 들어서며 두리번거리는 민희를 앉히고 음료수를 꺼내준다.
“어머! 자기 이렇게 해 놓고 사는 거야? 안 불편해?”
“불편할 게 뭐 있어? 물 나오겠다. 화장실 가깝겠다. 민생고 다 해결 되는데...... 하하하......그나저나 이리 와라. 좀 안아보자.”
“아이, 싫어. 저리 가......”
강주를 떠미는 손길에 언뜻 푸른빛이 비친다. 조금 전 흐느낌이 착각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강주는 빠른 손길로 민희의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겨 버린다.
“어머! 아이, 왜 이래? 빨리 줘......”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황급히 가려 봐야 시퍼런 눈두덩은 이미 눈에 들어왔고, 자세히 보니 얼굴을 가리는 팔뚝에도 군데군데 멍 자욱이 선명하다.
“누가 그랬어? 강원장이야? 응? 네 남편이 그런 거야?”
“흑......”
민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제 마누라를 시정잡배들 노리개로 내굴리는 놈이 무슨 이유에서 민희를 때렸을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그렇다면 민희를 이렇게 만들어서 상품가치를 떨어뜨려서도 안 될 것인데 얼마나 대단한 잘못을 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까 자기도 다녀갔다면서?......”
“으응, 그런데?......”
“요즘 내가 회장 언니를 며칠 피하고 안 만나니까 아까 와서 되게 뭐라고 했던 모양이야.”
“뭐야? 그럼 회장이 시킨 거야?”
“설마 그러기야 했겠어?...... 내가 이제 사람들 만나는 거 싫다고...... 살림이나 할 테니까 차라리 건물 비워주고 병원에 취직하자고 했더니...... 그냥 그러다가 싸운 거야. 그런데 막상 어딜 가려고 해도 갈만 한 데도 없잖아. 그래서 그냥 자기 보러 온 거야.”
민희야 설마라며 회장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실어주지만 강주가 보아 온 회장은 아직도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황부장의 부인 미경이를 보고 나니 친위대를 이끌고 다니면서도 마치 각각의 쓰임새를 달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서로가 서로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점조직처럼 운영해 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집에는 들어가야 되잖아?”
“피...... 내가 너한테 들어붙을까 봐 겁나니?”
“야, 어디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 그 얼굴로 언니나 형부도 못 볼 거 아냐?”
“밥 생각도 없는데......”
“그래도 따라 와. 무조건 먹어 둬. 인마. 싸움도 힘이 나야 싸울 거 아냐?”
“푸훗...... 꼭 부부싸움 많이 해본 사람처럼 말하네?”
“야, 인생이 다 싸움의 연속 아니냐?”
상가 삼층의 식당에 자리를 잡으니 주인이 반겨준다. 아무래도 민희의 얼굴 꼴이 말이 아니라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꼭꼭 닫는다. 주문한 음식이 다 들어오도록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는 민희를 보니 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강원장을 두들겨 패 주고 싶은 심정이다.
부부란 함께 부대끼고 크고 작은 산과 골을 건너며 정을 쌓게 마련이지만 의외로 가장 가까이 살면서 가장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또한 부부 사이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손짓 발짓을 동원해 조금만 노력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일인데 부부간에는 이 또한 통하지 않는 일이다. 이미 돌처럼 굳어진 마음으로 자신만을 고집하면 또 다른 돌덩이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으니 정한 이치일 것이다. 부부간에도 마치 흐르는 물처럼 겸손이 자리할 수 있다면 작은 물방울 둘이 뭉쳐 더 큰 물방울 하나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인데 차라리 고개를 돌려 이미 돌처럼 굳어진 세태를 탓할 일이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란 민희가 황급히 모자를 들어 얼굴을 가린다.
“여긴 아무도 없는데......”
아마 일행을 기다리는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미안한 듯 고개를 꾸벅이고 문을 닫아주니 그제서 민희는 모자를 내리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킥......”
“아유...... 웃지 마. 남은 창피해 죽겠는데......”
방금 뱉고 지나간 말이 맴돌며 귀에 어린다.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히 방 안에는 두 사람이나 있었지만 그걸 보고서도 아무도 없다고 말을 하니,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있어도 없다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그럴 것이다. 이미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곁에 있어도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라면 이미 두 사람은 생면부지 남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노릇이다. 볼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문을 두드릴 때 나야...... 한 마디에 문을 열고 맞아들일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말 한 마디 안에 들어 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 쉬지 않고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 내가 온전한 나여야만 비로소 내 가족도 온전한 가족일 것이다.
“아! 전화 왔다. 여보세요?”
“네, 매부...... 접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아...... 그 자식들, 인천에 조직 애들도 아니고 그냥 양아치 같은데요? 도대체 그건 왜 알아보신 겁니까? 혹시 매부한테 무슨 골치 아픈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 그래요? 그럼 뭐 썩 걱정할 일도 아닌 것 같네요. 난 혹시라도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가 생길지도 몰라서 그저 노파심에 물어본 겁니다. 그 정도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 매부, 매부......”
“네.......”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 조직 애들 같으면 차라리 상대하기가 깔끔하고 쉬워요. 거래를 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런 놈들은 덩치가 작아서 치고 숨으면 찾기도 어렵고 또, 애들이 어리다 보니까 철이 없어서 한 번 사고를 치면 대형 사고를 친단 말입니다. 다른 차가 또 한 대 접수 돼서 조회를 해 보니까 이 자식은 전과가 많아요. 혹시라도 매부한테 위협이 되는 녀석들 같으면 사전에 손을 쓰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그런 겁니까? 아...... 그러면....... 일단 알았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으응, 아니야. 민희 너...... 혹시 미경이가 젊은 애들 데리고 다니는 거 알고 있니?”
“으응, 말은 들었어.”
“솔직히 말해 봐. 만난 적은 없어?”
“없다니까...... 한 번 언니가 그 애들 데리고 같이 놀러가자고 했다가 회장 언니한테 크게 혼나서 그냥 그런 줄만 알고 있어.”
“그 애들 뭐 하는 애들인데?......”
“에이그,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자기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에헤이...... 말 해 보라니까......”
“푸훗...... 진짜 모른다니까? 그냥 미경이 언니한테 놀아주면서 관리나 잘 하라고 하는 것만 들었어. 이것도 나한테 들었다고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내가 무슨 바보냐? 그런 소리를 하게......”
“이제 그만 나가자. 나, 그냥 집에 가기 싫단 말이야.”
“그냥 안 가면...... 어쩔 건데?......”
“이 씨...... 다 알면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민희의 얼굴을 보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어 어정쩡한 표정으로 식당을 빠져 나온다.
“네......”
“응, 동생 어디야?”
전화를 받아들고는 민희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고 시킨 후 말을 잇는다.
“네...... 지금 수원으로 가는 중인데 차가 많이 막히네...... 한 시간 정도 걸리겠는데......”
“응, 그래 조심해서 와. 송희도 조금 전에 출발한다고 전화 왔었어.”
“네......”
상인들을 피해 상가 뒤를 돌아 창고로 들어간다.
“쿡쿡...... 야, 재미있다.”
“야, 뭐가 재미있냐? 나는 누님한테 들킬까 봐 아슬아슬한데......”
민희는 침대 곁에 서서 원피스 지퍼를 내린다. 심하게 맞았는지 몸 곳곳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어 더욱 처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강주를 바라볼 때는 애써 웃어주는 표정이 강주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강주도 서둘러 옷을 벗고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아 입을 맞춰준다.
“쭈우웁...... 후루룹......”
“아야야...... 허리 잡지 마......”
“야,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해? 괜찮겠어? 병원에 안 가도 돼?”
“괜찮아. 견딜 수 있어.”
“자, 그럼 조심해서 누워 봐.”
어린아이 다루 듯 조심조심 민희에게 다가간다. 아무래도 체중을 싣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뒤로 끌어안아준다. 민희는 강주의 발기한 좆을 쥐어 몇 번 주무르고 자신의 비경으로 인도하여 길을 낸다.
“흐으응......”
“후욱, 후욱......”
전신이 아파 보여 애무도 해줄 수 없으니 그냥 밀고 들어가 삽입을 한다.
“으으으...... 흐으윽.”
“많이 아파?...... 후욱.”
“괜찮아. 빨리 해 줘...... 흐윽, 흐윽.”
마치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허리를 흔든다. 마땅히 쥘 곳이 없어 두리번거리다가 골반에도 멍 자욱이 있지만 할 수 없이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아야...... 하악, 하악, 하악......”
강주에게 엉덩이를 내맡긴 채 힘이 드는지 고개를 옆으로 뻗어 강주의 팔을 베고 기댄다.
머리에서 나는 향수 냄새는 전처럼 여전한데 힘이 들어 쩔쩔매는 민희를 어찌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부족함이 원망스럽다.
잔뜩 뒤로 내민 엉덩이에 화풀이라도 하듯 더욱 몰아쳐 만족하지도 못한 채 사정을 해 버린다.
신경이 다른 곳에 있으니 몰입하지 못하는 탓일 게다.
“어흐으윽...... 울컥...... 울컥...... 크윽......”
“아흐으으응......”
“에이 씨바...... 미안해......”
“아니야...... 난 좋았어...... 괜찮아......”
민희는 더욱 옆구리가 결리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돌아누워 강주의 입술을 찾아 부딪쳐 오고 강주는 어쩌지 못하고 받아 주기만 한다.
“아야야...... 흐으읍...... 쭈우웁...... 후루룹...... 아으흐흥......”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부둥켜안은 채 질에서 흐르기 시작하는지 민희가 엉거주춤 일어선다.
“아야야...... 아유, 부축 좀 해줘...... 어머나! 깜짝이야. 아유...... 언......니......”
“뭐야? 아!...... 누님......”
민희는 쩔쩔 매며 옷을 찾아 몸을 가리고 강주는 멍청히 반쯤 일어서 부녀회 총무를 바라본다.
“너희들...... 도대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 누님 일단 앉아서 얘기합시다.”
부녀회 총무는 마침 베란다에 나와서 전화를 하고 있었고 그걸 모르는 강주는 민희를 데리고 창고로 들어갔으니 그 모습을 위에서 모두 지켜보던 총무가 약이 올라 내려왔는데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니 귀를 의심하고 처음부터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민희는 몸 밑으로 흐르고 있는 것에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있고 민희의 얼굴을 본 총무는 아연실색 이유를 묻는다.
할 수 없이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지만 송희만 모를 뿐 세 자매 모두 강주를 사랑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언니...... 미안해......”
“그게 무슨 네 탓이니? 다 그 망할 놈 때문이지. 어떻게 할 거야? 차라리 이혼 해. 동생, 네가 좀 어떻게 해 봐. 아유...... 얘, 이 꼴이 뭐야? 도대체......”
두 자매는 끌어안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고 민희는 진정시키는 강주를 따라 욕실로 들어간다.
“우선 집으로 가자.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얘기하자.”
“안 돼. 언니...... 집에 가야지.”
“집은 무슨 집. 일단 여기서 자. 형부도 만나보고...... 동생, 넌 뭐해? 빨리 데리고 올라가.”
신경이 있는 대로 곤두선 총무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민희를 설득한다.
“아! 으응...... 알았어. 자, 민희야. 일단 올라가자.”
“아이 참...... 알았어.”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나야......”
“어머! 언니도 왔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형부랑 싸운 거야?”
이미 도착해 있던 송희가 강주는 본체만체 민희를 붙들고 사정을 물어본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앉아 걱정을 해주니 민희는 공연히 서러운 마음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지만 속사정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얘들 이혼 시킬 거야.”
“어허...... 당신도 참...... 무슨 그런 일로...... 부부싸움이란 게 다 칼로 물 베기야. 오늘만 참으면 내일은 다 풀어질 일을 갖고......”
“아유, 당신은 모르면 잠자코 있어요.”
민희의 일로 공연히 시끄러워질 것 같아 강주가 나서서 식구들을 만류한다.
“자, 자...... 두 분 그만하시고...... 즐거운 날인데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애들도 배가 고플 텐데...... 송희, 너도 안 먹었지?”
“으응...... 아유, 오빠, 미안해...... 우리 언니 처음 볼 텐데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 어떻게 해?”
“으응...... 뭐, 형님 말마따나 칼로 물 베긴데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민희와 함께 이미 식사를 마쳤지만 할 수 없이 다시 식탁에 앉아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숟가락질을 한다. 민희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소파에 앉아 딴전을 부리면서도 강주의 그 모습이 우스운지 한 번씩 시선을 마주치며 혀를 내밀어 약을 올린다.
정작 자기 모습은 생각도 않고 강주를 약 올리는 모습에 우스워 밥을 먹다가 사래가 들려 콜록거린다.
“큭...... 큭.......”
“어머! 오빠...... 여기 물......”
등을 두들기는 송희에게 손사래를 치고 식탁에서 물러나 물을 마신다. 마침 핑계거리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벗어난다.
“아이고...... 저도 얹혔는지...... 그만 먹어야 되겠습니다.”
“아, 이거 참...... 공연히 자네도 처제 때문에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구먼.”
“아, 아닙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올게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무니 민희가 슬그머니 따라 나온다. 강주가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다.
“야, 스릴 있어서 좋긴 한데...... 킥킥...... 너 얼굴이 바둑이처럼 돼 가지고 지금 얼마나 웃기는지 알아?”
“이 씨...... 너 죽을래?”
한참을 노닥거리는데 식사를 마친 송희가 베란다로 나오며 말을 붙여 온다.
“어머! 오빠...... 언니랑 벌써 많이 친해졌네? 호호호......”
“으응, 알고 보니 처형이 나하고 동갑이던데...... 그냥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어.”
“피...... 또 처형이란다.”
송희는 은근히 싫지 않은 듯 강주의 어깨를 때리면서도 마치 소박맞고 친정으로 쫓겨 온 듯 보이는 언니에게 미안한지 민희의 기색을 살핀다.
“오빠, 우리 슈퍼에 가 보자.”
“야, 너 또 지난번처럼 그러려고 그러지?”
“킥...... 재미있잖아. 가자. 으응?”
송희를 이길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이끌려 나서는데 민희도 가려는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긴다.
“언니도 갈 거야?”
“으응...... 나도 궁금하네. 같이 가 보자.”
“큰언니...... 우리 슈퍼에 갔다 올게......”
“그래, 그럼 올 때 술안주하게 고기 좀 사 올래?”
“으응...... 알았어.”
역시나 송희는 강주에게 매달리 듯 안겨서 걸어가고 강주는 뒤따라오는 민희가 신경 쓰이는지 송희에게 핀잔을 준다.
“야, 너희 언니 기분이 별로 안 좋을 텐데, 이렇게 매달려서 갈 거야?”
“어머! 참 호호호...... 언니, 빨리 와.”
“그래, 계집애...... 강주씨가 그렇게 좋으니?”
“어머! 언니는 왜 함부로 이름을 부르고 그래?”
“참 나...... 그럼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제부라고 하리? 그리고 나이도 동갑인데...... 안 그래? 강주야......”
민희는 말이 나온 김에 송희를 약 올리려는지 능글거리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고 강주도 맞장구를 쳐 준다.
“으응...... 그렇지 민희야...... 하하하......”
“어머! 뭐야. 두 사람...... 이 씨......”
송희는 약이 올라 큰 소리로 발을 구르며 앞 서 가고 두 사람은 허리를 잡고 웃는다. 주차장을 통과해 매장으로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 오고 송희는 어느새 다시 강주의 팔짱을 끼고 행복해 한다.
강주는 장난기가 발동해 야채코너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가고 청과야채 담당이 인사를 해 온다.
“아! 소장님, 반갑습니다. 휴가 중이신데 자주 뵙습니다.”
“응, 그래...... 수고 많다.”
강주는 송희와 민희를 돌아보며 묻는다.
“고기 구워 먹으려면 고추도 있어야겠지?”
“몰라, 오빠가 알아서 사요.”
“킥...... 그래, 아저씨 고추 얼마예요.”
“어머! 뭐야? 오빠는...... 무슨 말이 그래? 호호호......”
송희는 얼굴이 빨개져서 민희 뒤로 숨고 강주와 민희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야채담당도 민망한지 고추를 담으며 미소를 짓는다.
“아이고, 참...... 소장님 여전하십니다. 하하하......”
“하하하...... 재미있잖아. 그래, 계속 수고해라......”
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코너로 걸음을 옮기면서 송희와 민희에게 말을 건다.
“빨리 와. 왜...... 이제 창피해?”
“아유...... 엉큼하게...... 아주 웃기고 있어. 언니도 있는데......”
“호호호...... 얘, 뭐 어때서 그래? 강주씨가 재미있게 해 주니까 좋은데......”
“언니도 웃긴다? 얼음공주가 왜 이렇게 오빠한테는 상냥하실까?”
“얘는 내가 뭘...... 칫...... 네 남자 친구니까 그러는 거지. 그리고 나하곤 동갑이라잖아?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그렇지? 강주야.......”
“으응...... 그렇지. 민희야. 하하하......”
“또 그런다. 또......”
“자, 자...... 송희야. 여자들이 정육 코너에서는 어떻게 하는 줄 알아?”
“뭐를?......”
“곰거리를 사러 와서는 족이나 사골 같은 거...... 고르다가 정육담당을 쓰윽 쳐다보면서...... 아저씨 족 같은 거 하나 주세요. 이러는데.......”
“아유 씨...... 또......”
“호호호.......”
“하하하......”
강주가 자꾸만 음담패설 같은 소리를 늘어놓자 송희는 아예 민희에게 가서 팔짱을 끼고 딴전을 부린다.
“아유...... 오빠 이제 아는 척 하지 마.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어.”
“에이...... 재미있는 거 하나 더 있는데......”
이번에는 민희가 바짝 다가서며 묻는다.
“호호호...... 재미있는데 얘는 뭘 그래?...... 나도 써먹어야겠다. 호호호...... 어서 말 해 봐.”
“어머! 언니는 미쳤나 봐. 결혼하면 여자가 이렇게 뻔뻔해져도 되는 거야?”
“아유, 가만히 있어 봐. 좀 들어 보게...... 호호호......”
“으음...... 닭을 사면서...... 껍데기에 지방질이 많으니까 싫어하는 여자들이 많거든...... 요염하게 정육담당을 쳐다보면서 이러는 거지. 아저씨 저는 다 벗겨주세요. 쿡쿡......”
“호호호......”
“푸훗......”
“어어...... 송희도 웃었다. 하하하......”
“내가 언제...... 미쳤나 봐. 둘 다......”
고기를 사들고 나오면서 송희는 한 팔에는 강주를, 다른 한 팔은 민희에게 팔짱을 끼고 즐거워한다. 우울해 보이는 언니를 위로해 주기 위해 애써주는 강주가 고맙고, 쌀쌀맞은 언니가 자신의 남자인 강주에게는 유독 친절히 대해 주니 그도 고마운 모양이다. 그저 모르는 것이 약일뿐이다.
“저...... 소장님, 손님이 찾으시는데요?”
“뭐야? 허허...... 참...... 아니 휴가 중에 누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니 정필이가 허리를 꺾어 절을 한다.
“어머! 오빠, 저 사람 누구야? 무슨 인사를 저렇게...... 무섭게 생겼다.”
“푸훗, 무섭긴...... 그냥 아는 사람이야. 잠깐만 기다려. 가보고 올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더 사고 있어.”
“으응...... 빨리 와.....”
강주가 나오니 정필이도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주차장에는 전날 풍물시장을 할 때 얼굴을 익힌 사내들도 몇이 앉아 있다가 강주를 보고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해 온다.
“자, 자...... 이쪽으로 와. 아니...... 무슨 인사들을 그렇게 해? 하하하...... 사람 곤란하게시리......”
“아니, 매형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박부장에게 무슨 언질을 받은 모양이다.
“으응? 전화?...... 아! 집에 두고 온 모양이다...... 그래, 형한테 무슨 얘기라도 들었어? 내가 걱정 돼서 온 거야?.....”
“네...... 그런데 형님이 찾는 그 놈들은 뭐예요? 그냥 싹 쓸어버릴까요?”
“아니야. 이 사람아...... 무슨 영화 찍어? 그건 그저 내가 궁금해서 알아본 거야. 그나저나 요즘 산에서 애들 데리고 뭐 한다면서......”
“허허...... 네. 그저 운동이나 하고 농사도 짓고 그럽니다.”
“참 나...... 설마 네가 그러겠다. 자, 돈도 많이 필요할 텐데, 이거 갖다 쓰고 다른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지내. 괜히 면회 가게 만들지 말고......”
“아유, 형님...... 웬 돈을 이렇게......”
“산중에 똘마니들 데리고 있으려면 돈 많이 필요할 거 아냐? 그리고 너도 전화 잘 안 될 때가 많던데...... 항상 열어놓고......”
“네, 지금은 산에 소형 발전기를 준비해 둬서 전기 쓸 수 있도록 해 뒀습니다.”
“어쩌면 내가 처남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몰라서 그래. 전화 항상 열어 둬.”
“음...... 그 놈들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제가 치워 버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괜히 지레짐작으로 사고 치지 마. 나중에 연락해 줄게.”
강주는 민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쩌면 정필이의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몰라 회사에서 수령한 수표를 정필이에게 내밀어 마음을 써 준다. 황부장의 부인 미경이가 관리한다는 젊은 사내들이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회장이 비밀스럽게 미경이를 내세워 몸 보시를 시켜가며 관리를 할 때에는 그 쓰임새가 있을 것이고 짐작컨대 떳떳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래 중에 필요 없는 상대를 제거하고 또는 보복이나 복종시키는 일에 써먹었다면 결코 민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를 해 두는 것뿐이다.
정필이 일행을 보내고 다시 매장으로 들어선다. 부소장이 강주에게 인사를 해 온다.
“아! 부소장님...... 지금 자리가 준비 됐는데...... 어차피 내가 휴가 끝날 때까지는 계셔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나 잘 하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소장님.”
“인천으로 가셔야 하니까 미리 주변정리도 해 두시고......”
“네, 네...... 알았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아파트로 올라가니 밖에서 기다리던 민희의 언니가 강주를 붙잡는다.
“자, 너희 먼저 들어가. 나는 동생하고 얘기 좀 하고 들어갈게”
“응......”
“오빠, 빨리 들어 와.”
“그래.”
“으음...... 송희 데리고 다닐 때 조심 해. 눈치 차리지 못하게...... 동생, 저 애 이혼시켜야 할 텐데...... 계속 여기 데리고 있으면 결국 그놈이 찾아올 거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일단 본인 의사를 물어 보세요. 이혼 할 생각이 있는지...... 그저 병원만 옮겨주면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제가 다른 장소에 민희를 숨겨줄 데야 많이 있지만 본인이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동생은 그게 무슨 소리야? 무조건 이혼 시켜야 돼. 저 애가 창녀야? 뭐야? 자기가 좋아서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 나쁜 새끼...... 형님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도 내 동생을 데리고 있으니까 그저 예쁘게만 봐 줬는데...... 하여튼 민희는 내가 따로 얘기할 테니까 그럼...... 동생이 어디 숨겨 줄 데가 있긴 있는 거지? 이혼시킬 동안만 둘이 못 만나게 데리고 있어.”
“네...... 집은 얼마든지 있지만 지금 제가 불안한 건 민희가 이혼을 하더라도 그 회장이 거느리고 있는 다른 여자가 양아치 같은 애들을 부리고 있어서...... 그게 자꾸 신경이 쓰이네요. 자칫 민희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어머! 그럼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될까?”
“허허...... 참, 누님도...... 경찰에 뭐라고 신고를 해요? 누가 뭘 잘못했다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 저대로 보낼 수도 없고......”
“일단 민희가 마음을 정하면 내가 다른 곳에 숨겨두고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혹시 그런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가서 대응을 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깡패들이라면서......”
“푸훗...... 누님, 나 싸움 잘 해요.”
강주는 장난스럽게 알통을 들어 보인다.
“아유...... 지금 장난 칠 때야?”
“걱정 말아요.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도 있는 법이니까...... 아까 민희도 봐서 알 거예요. 일단 민희 뜻이나 물어 보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어. 일단 들어가자.”
둘러 앉아 고기를 굽는 와중에 민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이 설득이 길어지는 모양이다. 송희는 작은 언니의 얼굴이 말이 아닌 지경이니 오히려 강주에게 면목이 없어 자꾸만 술을 권한다.
“오빠, 미안해요. 손님을 불러놓고 분위기가 이래서......”
“어허...... 처제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 친구가 왜 손님이야. 우리 식구지. 괜찮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야.”
“아유...... 작은 형부 그렇게 안 봤는데...... 여자를 저렇게 때리는 게 어디 있어? 혹시 형부도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어허...... 이거 불똥이 왜 갑자기 나한테 튀나? 허허허......”
“오빠도 나중에 나 때리기만 해 봐. 그냥 콱 죽어 버릴 거니까......”
“어어...... 무시무시하게 왜 그래? 하하하...... 걱정 마. 못난 놈들이나 여자를 때리지. 도대체 아까워서 자기 여자를 어떻게 때려?”
방문이 열리더니 강주를 불러들인다. 송희는 무언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강주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자 어깨가 으쓱해져 강주의 등을 떠민다. 민희는 쪼그리고 앉은 무릎 사이에서 얼굴을 들며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곤 강주를 바라본다.
“그럼 강주씨...... 나 어디 숨겨 줄 데는 있어? 미경이 언니가 데리고 있는 애들이 나 해코지할지도 모른다면서?......아까 슈퍼에서 본 사람들도 보통 사람 같지는 않던데......”
“으음...... 그렇게 결심한 거야? 너 숨겨 줄 데야 많이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데?......”
“푸훗...... 뭐, 송희한테는 미안하지만 자기한테 들어붙어야지. 어떻게 하겠어? 강주씨가 나 책임진다면서?......”
강주는 슬쩍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민망한지 뒷덜미를 긁는다. 이런 경우 확실히 여자가 남자보다 대범한 모양이다. 한 자매간 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고 나니 못할 말이 없는 표정이다.
“자식...... 그래, 내가 책임질게. 아무 걱정 하지 마. 일단 내일 송희 보내놓고 함께 가자.”
“그래, 아무튼 너희들도 조심해. 송희 눈치 못 채도록...... 아유, 참...... 이게 무슨 일이야......”
늦도록 술을 마시고 거실에서 모두 이야기나 하며 놀다가 함께 자자고 청하는 걸 뿌리치고 내려온다. 공연히 함께 자다가 송희 앞에서 실수라도 하게 되면 정말 난감한 일이고 코앞에 숙소가 있는데 편안한 잠자리를 두고 고생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모니 장마담에게 전화를 건다.
“응, 혜영아...... 나야. 강주......”
“응, 강주씨...... 오늘 올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내가 다른 데 딱히 부탁할 만한 데도 없어서 그러는데...... 여자 한 사람만 너희 집에 며칠 데리고 있어 줄 수 없을까?”
“어머머! 뭐라고? 자기 지금 뭐라고 했어?”
강주는 할 수 없이 장마담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다시 이해를 구한다.
“어머나...... 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을까? 자기 마누라를...... 아유, 그런 인간들은 약 먹여놓고 물건을 아주 싹둑 잘라 버려야 돼.”
“참 나...... 이거 여자들이 더 무섭다니까...... 그러니까 혜영아...... 사정 좀 봐 줘라.”
“그래, 알았어. 강주씨 부탁이니까 특별히 들어 주는 거야. 그 대신 내 앞에서는 친한 척 하기 없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강주가 의심을 받는다면 의왕매장도 이미 회장이 알고 있으니 안심하고 숨길만 한 곳은 전혀 연관을 지을 수 없는 장마담의 집이 안성맞춤일 것이다.
낮에 잠을 자서 그런지 잠도 오질 않아 컴퓨터를 켜서 폰에 있는 사진들을 저장해 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나가보니 두 자매가 내려와 있다.
“어! 누님, 민희도 왔네? 왜 안자고 내려왔어?”
“으응...... 심란해서 잠도 안 와. 동생하고 편하게 상의도 더 해야 하 것 같아서...... 집에는 애들 아빠하고 송희도 있으니까 불안해서 목소리도 크게 못 내잖아.”
“형님은 자요?”
“응, 송희도 술이 취해서 애들 방에서 잠들었어.”
“아유...... 이게 무슨 일이니? 우리 세 자매가 모두 너한테 매달려서......”
“걱정 말아요. 나중에 모두 한 집에서 삽시다. 아니, 그럼 더 불편할 거고 모두 한 아파트에서 삽시다. 왔다 갔다 하면서...... 킥킥......”
“아유, 장난치지 마. 가슴 떨려 죽겠어.”
“언니, 걱정하지 마. 자기 이젠 돈 많이 벌어야겠다. 아파트를 세 채나 마련하려면...... 호호호...... 차라리 이렇게 결심하니까 홀가분하고 좋다. 강주씨가 나한테는 구세주나 다름없네.”
“참, 너희들도 천생연분이다. 어쩌면 그렇게 남 얘기하듯 잘 하니?”
“하하하...... 뭐, 구세주가 별 겁니까? 그저 밥이나 먹여주면 되는 거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그런 마음고생을 해가면서 살아요? 그건 결코 잘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뉘여 있었다고 하니 말구유는 다름 아닌 여물통이고 여물통은 밥그릇이니 그 안에 담겨있던 예수는 사람들에게 밥으로 온 것일 게다. 먹고사는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이겠지만 조금 더 잘 먹고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마음고생하며 자신과 가족을 나락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저 한 공기 밥에 만족을 하고 시원한 냉수로 배를 채워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사랑만 가득하다면 자신의 몸을 세상의 밥으로 내어 준 예수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밥이 되어 씹혀도 좋을 일이다.
“참 나...... 갖다 붙이기는...... 아유...... 그래도 죄 짓는 거 같아서......”
“죄요? 그럼 이민 갈까?......”
죄라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같은 사안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죄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 다분히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언제 어디서라도 적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리라고 할 만할 것이다. 속뜻을 보자면 빗나간 행위, 과녁에서 벗어나는 일을 죄라고 한다 하니 배우자를 속이고 외도를 하는 것이 좁은 의미의 죄라면 죄이겠으나 스스로 행복할 권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타인에게 강제하지 않는 한, 천부적으로 주어진 권리를 누구라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에 따라 간통을 벌하는 입장이 각기 다른 것은 그 시각차이일 것이고 천부적인 권리보다 기혼남녀의 정조를 윗자리에 두어 법으로 지켜주는 것은 모두를 철모르는 철부지로 보는 것이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도덕적으로 포장되고 교육적으로 조작된 죄의식일 것이다. 선행을 베풀고 그 생색을 내는 사람이야말로 이미 받을 보상을 다 받은 셈이니 죄의식도 그와 다름 아닐 것이다.
아파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셈을 치렀다면 차원 다른 해방된 삶 속에서 솔직한 인간본연의 행복을 누리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엉터리 같은 죄의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남녀가 서로에게 목적이어야 하겠지만 섹스와 사랑을 묶어서 생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섹스는 사랑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일 수는 없는 일이며 섹스로 상대를 구속한다면 이미 그 자유의지를 꺾는 것이니 사랑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유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부부간의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는 풍토에서 간통을 여전히 백안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 센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섹스는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지, 섹스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워야 할 행위를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먹고 사는 이유로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피......”
“허허......
“얘, 민희 너는 여기서 잘래?”
“아유, 싫어...... 나 지금도 옆구리가 결려. 나 먼저 올라갈 테니까 언니나 더 있다가 올라 와. 그럼 강주씨...... 우리 언니 행복하게 해 줘. 호호호......”
“아유, 얘는 빨리 올라가기나 해. 나도 금방 갈게.”
나가는 민희를 배웅하고는 문을 잠그고 돌아와 옷을 벗는다. 강주와 동생의 정사 장면을 떠올리며 후끈 달아오른 모습이다.
“봐, 이렇게 문단속을 잘 해야지. 그게 무슨 꼴이니?”
“하하하...... 그래서 이렇게 됐으니 결국 다 잘 된 거 아니요? 탁 터놓고 얘기 할 수 있으니...... 얘기하고 나니까 속도 후련하잖아요.”
강주도 서둘러 옷을 벗고 서비스를 기대하는 듯 침대에 누워 버리고 그녀는 강주의 좆을 문질러 세우고는 배 위에 걸터앉아 잔뜩 벌어져 색스러운 질 속으로 밀어 넣는다.
“흐으응......”
“어헉, 바로 넣어도 괜찮아?......”
“으흐으으응...... 나 벌써 물 나왔어. 괜찮아......”
강주는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해주며 흥분을 끌어올리고 이미 동생에게 노출되고 공개된 섹스를 기대해서인지 부녀회 총무는 한껏 달아올라 요분질을 해 대고 있다.
“아학...... 하악...... 아학.”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좆을 빼 낼 때는 다시 채워 줄 기대감에 몸을 떨고 엉덩이를 내려 사타구니를 마주칠 때에는 질벽을 긁어주는 느낌과 깊숙한 삽입으로 낯 설은 통증을 쾌감으로 즐긴다.
“으흐으응...... 허억...... 허억......”
한동안의 방아질로 물을 쏟아 두 사람의 사타구니가 흥건해질 즈음 강주가 자세를 바꿔 그녀의 엉덩이에 매달리고 그 엉덩이는 가득한 기대로 강주를 맞아들인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거친 심호흡으로 마주치는 속도를 더해 간다.
질 깊숙이 찔러오는 강주에게 이제는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신뢰를 보내준다.
동생들을 모두 잘 부탁한다는 의미 일 것이다.
“하악, 여보...... 여보...... 사랑해......”
“그래, 누님...... 후욱, 후욱, 내 여보야...... 후욱......”
빠른 좆질로 사정의 기운이 몰려온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착각 속에 불꽃놀이를 즐긴다.
“으으으으흑...... 울컥...... 꿀럭......”
질속에서 터지는 폭죽의 기운을 느끼고는 천천히 앞으로 엎어진다. 엉덩이 위로 느껴지는 강주의 체중만큼이나 포만감을 느끼는지 엎어진 채 좆이 꽂힌 엉덩이에 경련을 일으킨다.
“후우...... 누님, 나를 뭐라고 불렀지?”
“으흥...... 여보...... 내가 동생 여보라고 부르면 좋아했잖아?”
“후훗...... 물론 좋지...... 얼마나 좋은데...... 한 번 더 해 봐.”
“차암...... 여보......”
“아니, 아까 와서 황부장하고 볼 일 좀 보고 오는 중이야. 보라야, 교육은 다 끝났니?”
“아니요, 점심 먹고 한두 시간 더 할 것 같은데요.”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
“호호...... 여기 점장들이 희숙이한테 말을 거는 게 재미있는지 질문을 많이 해서 길어졌어요. 아유...... 희숙이 계집애, 제법이던데요.”
“허허허...... 그래? 야...... 그거 생각 외로 호응이 좋으니 다행이다.”
“저...... 이사님, 이것 좀 봐 주십시오.”
부소장이 전산출력 받아 온 자료를 내밀며 강주에게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뭔데 그래?”
“네, 이 매장은 매출이 좋긴 한데...... 그래도 매출에 비해서 재고가 엄청 많은 것 같은데요?”
“다른 곳은 어때?”
“다른 곳은 대체로 적절한 수준입니다. 유독 이 매장만 타 매장에 비해서 재고가 많이 있네요.”
“그동안 점장들도 자주 바뀌었다고 하던데 보나마나 책임 질만한 놈도 없을 거고, 꼴에 점포 간에 매출 경쟁들은 했을 테니 제 값 안 받고 싸게 팔아서 장부상 재고액수만 많아진 거겠지. 음...... 그래도 무작정 의심만 할 수는 없으니까 전 점포 재고조사를 해서 기초재고를 다시 잡는 수밖에 없을 거야. 저...... 김과장님, 여기 재고조사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습니까?”
“기록으로는 작년 연말인데요?”
“에이그...... 분기마다는 못해도 육 개월에 한 번씩은 해서 털어 줘야지. 황부장님, 재고조사를 할 때는 아침부터 했습니까?”
“아니오, 보통 폐점 후에 남아서 하곤 했습니다.”
“아주 죽여주는구먼...... 아, 그래가지고 숫자가 정확하게 나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지요. 애들은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를 텐데......”
강주의 손짓에 사람들이 하나 둘 강주의 자리로 모여든다.
“우선...... 하루 영업을 안 하면 자금이 어떻게 돌아가게 되는지 경리파트에 가서 확인해 보고 얘기하는 게 좋겠는데 황부장이 알아볼래요?”
“아, 이사님...... 그건 사장님이 직접 관리를 하시기 때문에 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황부장이 머리를 긁으며 강주에게 대답을 한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허점에 그간 관리를 맡아 온 책임자로서 면목이 없다는 뜻일 게다.
“허허...... 참, 이게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사장님이 돈주머니를 꿰차고 다니시나. 그래?...... 음...... 김과장님,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기안 속에 경리파트도 과로 승격시키고 경리과장 맡을만한 분도 한 번 물색해 보세요. 전결규정도 새로 작성하시고......”
“네, 알았습니다.”
“지금, 사장님 사무실에 계신가요?”
“회장님 연락 받고 나가셨는데요.”
“그래요? 이거 전화로 물어 볼 수도 없고...... 어디 계신지 황부장이 전화 한 번 넣어보세요.”
잔뜩 늘어졌던 회사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다시 활기차게 돌아가는 모습에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진다. 요즘처럼 불투명한 경제현실에 그들이 정작 원하는 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쉽고 편한 일자리도 아니고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며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금자리를 꾸며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줄 안정된 직장일 것이다.
우리만큼은 평생직장을 보장해준다며 전 세계를 향해 까불어 대던 일본 사회에서도 직장 폐쇄며 대량해고로 전전긍긍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하물며 회사의 뼈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작은 일 조차도 콩나물 심부름 가는 아이처럼 상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하던 일에 전결의 확대며 부서의 개편이란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에 기대가 가득하여 아이 같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저...... 이사님, 전화 연결되었습니다.”
“아! 네, 저...... 최이사입니다.”
“어머! 네, 이사님.”
“아니, 왜 회장님이 받으십니까?”
“호호호...... 저이가 지금 전화를 못 받아요. 여기 지금 병원이라......”
“왜요?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호호호...... 그게 아니고......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이사님도 이쪽으로 오세요. 하실 말씀 있으면 여기서 점심이나 함께 하면서 하시고......”
“음...... 그러면 그렇게 하지요. 거기가 어디입니까?”
“네, 여기 구월동 농협 앞으로 오시면......”
“아, 민희씨네 병원......”
“아! 알고 계시네요? 호호호...... 아유, 계집애 벌써......이사님 약혼자는 어디 손 볼 데도 없는 미인이시던데......”
“허허허...... 네, 그럼 곧 가겠습니다.”
짐작이 된다. 회장 뿐 아니라 사장도 그렇게 젊어 보였던 것이 모두 약물의 힘인 모양이다. 틈틈이 주사를 찔러대고 온갖 영양제를 맞아대니 십 년씩은 젊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닌 일이다. 민희를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 없더라도 민희의 남편 얼굴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심란해진다.
결국 한 처가를 두고 동서로 지내야 할 사람이니 반갑다기보다는 처해있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뿐이다.
마침 강주가 도착할 즈음 사장은 처치가 모두 끝났는지 원장실로 강주를 불러들인다.
“아! 최이사님, 인사하세요. 여기는 강원장이고......”
“아! 네, 반갑습니다. 저, 최강주라고 합니다.”
“네, 저는 강민규입니다. 어서 오세요.”
뿔테 안경에 창백한 표정이 영락없이 공부를 많이 하느라 햇빛을 못 본 심약한 우등생 같은 얼굴로 강주를 맞아준다. 송희의 언니나 형부에게 들은 바로는 엘리트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하니 별로 사귀고 싶은 인물은 아니고 게다가 병원 칼잡이와 구멍가게 껌 장수가 대화를 하려 해도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니 할 얘기도 서로 없는 처지다.
식사를 하러 나서는 중에 사장에게 재고조사 건에 대해 보고를 하니 회장이 가로막고 나서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대꾸를 한다.
“아! 그럼 해야지요. 그렇게 해서 정확한 관리가 가능하다면 하세요. 하여튼 황부장 순 엉터리 같은 게...... 아유, 당신은 돈 주머니만 차고 있으면 뭐 해요? 다 옆구리로 새는 줄도 모르고......”
“허허허...... 참, 그게 그러면 점장들이 물건을 빼돌릴 수도 있다는 얘기라는 거지요?”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점장들이 자주 바뀐다는데, 바뀔 때마다 재고조사를 해서 인수인계를 확실히 한 것도 아니니까, 누구 책임인지 모호한 상황 아닙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지요. 꼭 물건을 빼돌린다기보다는 우리 점장끼리 경쟁이라도 할 것 같으면 제 값을 안 받고 싸게 팔아 매출액만 키울 수도 있는 거니까 정작 장사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밑지고 있는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허허...... 거 참......”
“이것도 다 관리자가 잘못한 겁니다. 직원들 탓이 아니에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을 그렇게 안 해서 그런 거라고 봐야지요. 그나저나 회장님, 저 강원장은 왜 식사하러 같이 안 갑니까?”
“아! 놔두세요. 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공연히 식사 분위기 망칠까 봐 가자고 안 했어요.”
“아, 네......”
회장 부부와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네......”
“응, 자기...... 나야.”
“어! 민희야. 어디니?”
“으응...... 우리 남편이 점심 먹자고 해서 지금 들어가는 중이야. 자기 이따가 형부한테 갈 거야?”
“그럼, 가야지. 약속했는데......”
“쿡쿡...... 그럼 나도 갈까? 그런데 저이가 같이 가려고 할지 모르겠네.”
“야, 아직은 안 돼. 괜히 네 남편하고 같이 만나면 결국 회장이 우리 사이가 처형, 제부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그게 무슨 꼴이야.”
“우리 남편이 자기 아직 모르잖아. 나만 모른 척 하면 되는 거지.”
“야, 회장이 불러서 마침 금방 만났어. 네 남편 얼굴 보니까 완전히 재수 없게 생겼더라. 킥......”
“어머! 그랬어? 자기하곤 영 딴 판이지? 그래도 그런 소리 들으니까 별로 기분은 안 좋네.”
“쿡...... 미안...... 아임쏘리...... 올 거면 차라리 혼자 오든지......”
“으이그...... 저녁에는 혼자 다니는 꼴을 못 본다니까...... 생긴 거 봤다면서......”
“야! 나 처음에 만났을 때도 외박은 안 했지만 밤늦게까지는 같이 있었잖아?”
“그때야 회장 언니하고 같이 있었으니까 그랬지.”
“참 벨도 없는 인간들...... 마누라 길바닥에 내돌리고...... 너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이혼해라. 내가 한 평생 예뻐해 주면서 살 테니까......”
“치...... 송희만 아니라면 나도 차라리 그러고 싶어. 요즘은 자기 만나고 나서 정말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정 곤란하면 내가 의왕에 관리하는 점포가 있는데...... 거기도 이층에 병원도 있고 그렇거든. 내가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볼 테니까 너희 부부도 아예 회장하고 정리하고 그리로 옮기던지......”
“뭘 그렇게까지...... 호호호...... 그래도 말이라도 고마우이. 서방님......”
“그래, 차차 생각해 봐. 나도 네가 힘들어 하는 거 보기 싫어서 그러니까...... 그리고 결국은 회장하고 인연 끊어야 될 거 아냐? 나, 너 그러고 사는 거 정말 못 본다니까......”
“네, 잘 알았습니다. 호호호...... 그럼 내일 쯤 다시 전화할게.”
본사로 돌아오니 마침 식사들을 끝내고 다시 교육을 시작하려는 터라 강주가 교육장으로 들어선다. 교육을 보조하던 부소장과 보라가 주의를 환기시키고 희숙이가 강단에서 내려오자 어느새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점장들도 이미 강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으니 눈빛을 빛내며 마른 침들을 삼킨다.
“음...... 제가 최이사입니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그간 경영상태 악화로 인해서 이 사업을 접을 것인가, 다시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 경영진에서 갈등이 많이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실태를 파악하고 제가 슈퍼바이저 역할을 자임하면서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이 회사를 살려보고자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지금 교육중이신데,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때입니다. 이 빗물을 잘 받아둬야 여러분은 가뭄에 유용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빗물은 사방 어디나 고르게 쏟아지지만 여러분이 준비한 그릇이 얼마나 크고 작은가에 따라 나중에 담긴 물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교육을 잘 받으시고 이제 점포로 돌아가시면 내일은 영업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재고조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그 결과를 두고 여러분들을 문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료를 백지화시키고 새로이 그 기초가 되는 숫자를 알기 위한 것이니만큼 조금의 숫자조작도 있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전체 점장들의 인사이동을 단행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재고조사를 할 것인데 그때 조사한 것과 일치가 되지 않는다면 숫자를 조작한 것으로 알고 해당 점장은 업무방해로 고발조치를 할 것이니 이 점 참고하시고 정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재고조사 요령과 기준에 대해서는 강사로부터 설명이 있을 겁니다.”
강주는 희숙이에게 다시 교육장을 맡기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실제로 점장들의 인사이동 계획은 없지만 돌아가는 회사의 분위기가 얼마든지 그럴 법한 일이니 사전포석으로 숫자조작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로 그저 던져 둔 말이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에 잠도 부족하고 저녁에는 약속도 있으니 일찌감치 주변을 정리해 수원으로 갈 채비를 한다.
“아, 이사님 퇴근하실 겁니까?”
“네, 먼저 갈 테니까 교육 마무리 잘 하시고 내일부터는 업체 불러들여서 계약 재조정 할 거니까 황부장도 저 친구들 잘 도와줘야 합니다.”
“아...... 네, 알았습니다.”
“자, 그럼 나중에 봅시다.”
차를 움직여 수원으로 향한다. 간밤에 박부장에게 부탁해 둔 일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본다.
“네, 처남...... 접니다.”
“아! 매부...... 안 그래도 전화 하려던 참인데...... 그게 좀 이상한 게 차주가 여자로 나오던데요. 어제 매부한테 들은 느낌으로는 남자인 것처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네, 차주가...... 여기 어디 적어 뒀는데...... 아, 이미경이라는 여자고......”
“아,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입니다. 야...... 그러면 알 길이 없다는 말인가요?......그건 명의만 그렇게 했다는 얘기 같은데......”
“하하하...... 곧 알 수는 있을 겁니다. 차주가 여자로 나오는 게 이상해서 제가 발 빠른 애들 몇 명 붙여 뒀습니다. 그 여자한테 붙어 다니다 보면 눈에 띄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뭐 그렇게까지...... 하하하......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내가 우리 처남들을 보면 마치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참, 그리고 술은 납품하셨나요?”
“네, 매부 덕분에 다행히 숨통이 트였습니다. 하하하......”
“다음에 또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뭐, 저도 좋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 일은 소식 들어오는 대로 좀 알려 주시고요.”
“네, 제가 한 밤중이라도 전화 드리겠습니다.”
창고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도 않고 바로 침대에 쓰러진다. 매장 일도 다소 궁금했지만 가보면 또 길어질 것 같아서 휴가 중임을 핑계로 차를 바로 아파트로 집어넣어 버렸다. 후줄근한 집이라도, 기다려주는 이 없어도 피곤이 무기인지 역시 내 보금자리가 좋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여우같은 마누라와 퇴근한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팔 다리 하나씩 붙들고 늘어질 토끼 닮은 새끼들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아쉬움도 잠깐이고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든다.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뜬다.
“나야.”
“응, 민희야......”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니 잠을 제법 잔 모양이다. 한껏 기지개를 켜며 피로를 떨쳐 버린다.
“지금 어디야? 나, 수원에 왔는데......”
“뭐?...... 혼자?......”
“응......”
“그럼 어디 있는데?...... 언니 집이야?”
“아니, 언니 집 근처에 있는데...... 자기부터 볼까 싶어서...... 흑......”
“야, 야...... 왜 그래? 민희야. 너 어디야?”
“여기...... 자기가 관리하는 슈퍼 앞인 거 같아.”
“그래, 거기 그대로 있어. 금방 나갈게......”
울먹이는 민희의 목소리에 잠을 떨친다.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나가니 선글라스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예쁜 모습의 민희가 손을 흔든다. 금방 흐느낀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히 상인들을 마주치면 인사 받기도 불편할 것 같아 길 건너에서 그저 손짓으로 부르니 민희가 천천히 건너온다.
“어쩐 일이야? 혼자서......”
“으응, 우리 어디 좀 들어가자.”
“그래, 이리 들어 와. 내가 이렇게 산다. 허허허...... 보고서 웃지나 마라.”
창고로 들어서며 두리번거리는 민희를 앉히고 음료수를 꺼내준다.
“어머! 자기 이렇게 해 놓고 사는 거야? 안 불편해?”
“불편할 게 뭐 있어? 물 나오겠다. 화장실 가깝겠다. 민생고 다 해결 되는데...... 하하하......그나저나 이리 와라. 좀 안아보자.”
“아이, 싫어. 저리 가......”
강주를 떠미는 손길에 언뜻 푸른빛이 비친다. 조금 전 흐느낌이 착각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강주는 빠른 손길로 민희의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겨 버린다.
“어머! 아이, 왜 이래? 빨리 줘......”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황급히 가려 봐야 시퍼런 눈두덩은 이미 눈에 들어왔고, 자세히 보니 얼굴을 가리는 팔뚝에도 군데군데 멍 자욱이 선명하다.
“누가 그랬어? 강원장이야? 응? 네 남편이 그런 거야?”
“흑......”
민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제 마누라를 시정잡배들 노리개로 내굴리는 놈이 무슨 이유에서 민희를 때렸을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그렇다면 민희를 이렇게 만들어서 상품가치를 떨어뜨려서도 안 될 것인데 얼마나 대단한 잘못을 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까 자기도 다녀갔다면서?......”
“으응, 그런데?......”
“요즘 내가 회장 언니를 며칠 피하고 안 만나니까 아까 와서 되게 뭐라고 했던 모양이야.”
“뭐야? 그럼 회장이 시킨 거야?”
“설마 그러기야 했겠어?...... 내가 이제 사람들 만나는 거 싫다고...... 살림이나 할 테니까 차라리 건물 비워주고 병원에 취직하자고 했더니...... 그냥 그러다가 싸운 거야. 그런데 막상 어딜 가려고 해도 갈만 한 데도 없잖아. 그래서 그냥 자기 보러 온 거야.”
민희야 설마라며 회장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실어주지만 강주가 보아 온 회장은 아직도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황부장의 부인 미경이를 보고 나니 친위대를 이끌고 다니면서도 마치 각각의 쓰임새를 달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서로가 서로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점조직처럼 운영해 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집에는 들어가야 되잖아?”
“피...... 내가 너한테 들어붙을까 봐 겁나니?”
“야, 어디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 그 얼굴로 언니나 형부도 못 볼 거 아냐?”
“밥 생각도 없는데......”
“그래도 따라 와. 무조건 먹어 둬. 인마. 싸움도 힘이 나야 싸울 거 아냐?”
“푸훗...... 꼭 부부싸움 많이 해본 사람처럼 말하네?”
“야, 인생이 다 싸움의 연속 아니냐?”
상가 삼층의 식당에 자리를 잡으니 주인이 반겨준다. 아무래도 민희의 얼굴 꼴이 말이 아니라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꼭꼭 닫는다. 주문한 음식이 다 들어오도록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는 민희를 보니 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강원장을 두들겨 패 주고 싶은 심정이다.
부부란 함께 부대끼고 크고 작은 산과 골을 건너며 정을 쌓게 마련이지만 의외로 가장 가까이 살면서 가장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또한 부부 사이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손짓 발짓을 동원해 조금만 노력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일인데 부부간에는 이 또한 통하지 않는 일이다. 이미 돌처럼 굳어진 마음으로 자신만을 고집하면 또 다른 돌덩이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으니 정한 이치일 것이다. 부부간에도 마치 흐르는 물처럼 겸손이 자리할 수 있다면 작은 물방울 둘이 뭉쳐 더 큰 물방울 하나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인데 차라리 고개를 돌려 이미 돌처럼 굳어진 세태를 탓할 일이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란 민희가 황급히 모자를 들어 얼굴을 가린다.
“여긴 아무도 없는데......”
아마 일행을 기다리는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미안한 듯 고개를 꾸벅이고 문을 닫아주니 그제서 민희는 모자를 내리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킥......”
“아유...... 웃지 마. 남은 창피해 죽겠는데......”
방금 뱉고 지나간 말이 맴돌며 귀에 어린다.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히 방 안에는 두 사람이나 있었지만 그걸 보고서도 아무도 없다고 말을 하니,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있어도 없다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그럴 것이다. 이미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곁에 있어도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라면 이미 두 사람은 생면부지 남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노릇이다. 볼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문을 두드릴 때 나야...... 한 마디에 문을 열고 맞아들일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말 한 마디 안에 들어 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 쉬지 않고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 내가 온전한 나여야만 비로소 내 가족도 온전한 가족일 것이다.
“아! 전화 왔다. 여보세요?”
“네, 매부...... 접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아...... 그 자식들, 인천에 조직 애들도 아니고 그냥 양아치 같은데요? 도대체 그건 왜 알아보신 겁니까? 혹시 매부한테 무슨 골치 아픈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 그래요? 그럼 뭐 썩 걱정할 일도 아닌 것 같네요. 난 혹시라도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가 생길지도 몰라서 그저 노파심에 물어본 겁니다. 그 정도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 매부, 매부......”
“네.......”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 조직 애들 같으면 차라리 상대하기가 깔끔하고 쉬워요. 거래를 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런 놈들은 덩치가 작아서 치고 숨으면 찾기도 어렵고 또, 애들이 어리다 보니까 철이 없어서 한 번 사고를 치면 대형 사고를 친단 말입니다. 다른 차가 또 한 대 접수 돼서 조회를 해 보니까 이 자식은 전과가 많아요. 혹시라도 매부한테 위협이 되는 녀석들 같으면 사전에 손을 쓰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그런 겁니까? 아...... 그러면....... 일단 알았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으응, 아니야. 민희 너...... 혹시 미경이가 젊은 애들 데리고 다니는 거 알고 있니?”
“으응, 말은 들었어.”
“솔직히 말해 봐. 만난 적은 없어?”
“없다니까...... 한 번 언니가 그 애들 데리고 같이 놀러가자고 했다가 회장 언니한테 크게 혼나서 그냥 그런 줄만 알고 있어.”
“그 애들 뭐 하는 애들인데?......”
“에이그,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자기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에헤이...... 말 해 보라니까......”
“푸훗...... 진짜 모른다니까? 그냥 미경이 언니한테 놀아주면서 관리나 잘 하라고 하는 것만 들었어. 이것도 나한테 들었다고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내가 무슨 바보냐? 그런 소리를 하게......”
“이제 그만 나가자. 나, 그냥 집에 가기 싫단 말이야.”
“그냥 안 가면...... 어쩔 건데?......”
“이 씨...... 다 알면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민희의 얼굴을 보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어 어정쩡한 표정으로 식당을 빠져 나온다.
“네......”
“응, 동생 어디야?”
전화를 받아들고는 민희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고 시킨 후 말을 잇는다.
“네...... 지금 수원으로 가는 중인데 차가 많이 막히네...... 한 시간 정도 걸리겠는데......”
“응, 그래 조심해서 와. 송희도 조금 전에 출발한다고 전화 왔었어.”
“네......”
상인들을 피해 상가 뒤를 돌아 창고로 들어간다.
“쿡쿡...... 야, 재미있다.”
“야, 뭐가 재미있냐? 나는 누님한테 들킬까 봐 아슬아슬한데......”
민희는 침대 곁에 서서 원피스 지퍼를 내린다. 심하게 맞았는지 몸 곳곳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어 더욱 처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강주를 바라볼 때는 애써 웃어주는 표정이 강주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강주도 서둘러 옷을 벗고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아 입을 맞춰준다.
“쭈우웁...... 후루룹......”
“아야야...... 허리 잡지 마......”
“야,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해? 괜찮겠어? 병원에 안 가도 돼?”
“괜찮아. 견딜 수 있어.”
“자, 그럼 조심해서 누워 봐.”
어린아이 다루 듯 조심조심 민희에게 다가간다. 아무래도 체중을 싣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뒤로 끌어안아준다. 민희는 강주의 발기한 좆을 쥐어 몇 번 주무르고 자신의 비경으로 인도하여 길을 낸다.
“흐으응......”
“후욱, 후욱......”
전신이 아파 보여 애무도 해줄 수 없으니 그냥 밀고 들어가 삽입을 한다.
“으으으...... 흐으윽.”
“많이 아파?...... 후욱.”
“괜찮아. 빨리 해 줘...... 흐윽, 흐윽.”
마치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허리를 흔든다. 마땅히 쥘 곳이 없어 두리번거리다가 골반에도 멍 자욱이 있지만 할 수 없이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아야...... 하악, 하악, 하악......”
강주에게 엉덩이를 내맡긴 채 힘이 드는지 고개를 옆으로 뻗어 강주의 팔을 베고 기댄다.
머리에서 나는 향수 냄새는 전처럼 여전한데 힘이 들어 쩔쩔매는 민희를 어찌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부족함이 원망스럽다.
잔뜩 뒤로 내민 엉덩이에 화풀이라도 하듯 더욱 몰아쳐 만족하지도 못한 채 사정을 해 버린다.
신경이 다른 곳에 있으니 몰입하지 못하는 탓일 게다.
“어흐으윽...... 울컥...... 울컥...... 크윽......”
“아흐으으응......”
“에이 씨바...... 미안해......”
“아니야...... 난 좋았어...... 괜찮아......”
민희는 더욱 옆구리가 결리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돌아누워 강주의 입술을 찾아 부딪쳐 오고 강주는 어쩌지 못하고 받아 주기만 한다.
“아야야...... 흐으읍...... 쭈우웁...... 후루룹...... 아으흐흥......”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부둥켜안은 채 질에서 흐르기 시작하는지 민희가 엉거주춤 일어선다.
“아야야...... 아유, 부축 좀 해줘...... 어머나! 깜짝이야. 아유...... 언......니......”
“뭐야? 아!...... 누님......”
민희는 쩔쩔 매며 옷을 찾아 몸을 가리고 강주는 멍청히 반쯤 일어서 부녀회 총무를 바라본다.
“너희들...... 도대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 누님 일단 앉아서 얘기합시다.”
부녀회 총무는 마침 베란다에 나와서 전화를 하고 있었고 그걸 모르는 강주는 민희를 데리고 창고로 들어갔으니 그 모습을 위에서 모두 지켜보던 총무가 약이 올라 내려왔는데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니 귀를 의심하고 처음부터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민희는 몸 밑으로 흐르고 있는 것에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있고 민희의 얼굴을 본 총무는 아연실색 이유를 묻는다.
할 수 없이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지만 송희만 모를 뿐 세 자매 모두 강주를 사랑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언니...... 미안해......”
“그게 무슨 네 탓이니? 다 그 망할 놈 때문이지. 어떻게 할 거야? 차라리 이혼 해. 동생, 네가 좀 어떻게 해 봐. 아유...... 얘, 이 꼴이 뭐야? 도대체......”
두 자매는 끌어안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고 민희는 진정시키는 강주를 따라 욕실로 들어간다.
“우선 집으로 가자.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얘기하자.”
“안 돼. 언니...... 집에 가야지.”
“집은 무슨 집. 일단 여기서 자. 형부도 만나보고...... 동생, 넌 뭐해? 빨리 데리고 올라가.”
신경이 있는 대로 곤두선 총무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민희를 설득한다.
“아! 으응...... 알았어. 자, 민희야. 일단 올라가자.”
“아이 참...... 알았어.”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나야......”
“어머! 언니도 왔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형부랑 싸운 거야?”
이미 도착해 있던 송희가 강주는 본체만체 민희를 붙들고 사정을 물어본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앉아 걱정을 해주니 민희는 공연히 서러운 마음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지만 속사정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얘들 이혼 시킬 거야.”
“어허...... 당신도 참...... 무슨 그런 일로...... 부부싸움이란 게 다 칼로 물 베기야. 오늘만 참으면 내일은 다 풀어질 일을 갖고......”
“아유, 당신은 모르면 잠자코 있어요.”
민희의 일로 공연히 시끄러워질 것 같아 강주가 나서서 식구들을 만류한다.
“자, 자...... 두 분 그만하시고...... 즐거운 날인데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애들도 배가 고플 텐데...... 송희, 너도 안 먹었지?”
“으응...... 아유, 오빠, 미안해...... 우리 언니 처음 볼 텐데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 어떻게 해?”
“으응...... 뭐, 형님 말마따나 칼로 물 베긴데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민희와 함께 이미 식사를 마쳤지만 할 수 없이 다시 식탁에 앉아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숟가락질을 한다. 민희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소파에 앉아 딴전을 부리면서도 강주의 그 모습이 우스운지 한 번씩 시선을 마주치며 혀를 내밀어 약을 올린다.
정작 자기 모습은 생각도 않고 강주를 약 올리는 모습에 우스워 밥을 먹다가 사래가 들려 콜록거린다.
“큭...... 큭.......”
“어머! 오빠...... 여기 물......”
등을 두들기는 송희에게 손사래를 치고 식탁에서 물러나 물을 마신다. 마침 핑계거리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벗어난다.
“아이고...... 저도 얹혔는지...... 그만 먹어야 되겠습니다.”
“아, 이거 참...... 공연히 자네도 처제 때문에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구먼.”
“아, 아닙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올게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무니 민희가 슬그머니 따라 나온다. 강주가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다.
“야, 스릴 있어서 좋긴 한데...... 킥킥...... 너 얼굴이 바둑이처럼 돼 가지고 지금 얼마나 웃기는지 알아?”
“이 씨...... 너 죽을래?”
한참을 노닥거리는데 식사를 마친 송희가 베란다로 나오며 말을 붙여 온다.
“어머! 오빠...... 언니랑 벌써 많이 친해졌네? 호호호......”
“으응, 알고 보니 처형이 나하고 동갑이던데...... 그냥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어.”
“피...... 또 처형이란다.”
송희는 은근히 싫지 않은 듯 강주의 어깨를 때리면서도 마치 소박맞고 친정으로 쫓겨 온 듯 보이는 언니에게 미안한지 민희의 기색을 살핀다.
“오빠, 우리 슈퍼에 가 보자.”
“야, 너 또 지난번처럼 그러려고 그러지?”
“킥...... 재미있잖아. 가자. 으응?”
송희를 이길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이끌려 나서는데 민희도 가려는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긴다.
“언니도 갈 거야?”
“으응...... 나도 궁금하네. 같이 가 보자.”
“큰언니...... 우리 슈퍼에 갔다 올게......”
“그래, 그럼 올 때 술안주하게 고기 좀 사 올래?”
“으응...... 알았어.”
역시나 송희는 강주에게 매달리 듯 안겨서 걸어가고 강주는 뒤따라오는 민희가 신경 쓰이는지 송희에게 핀잔을 준다.
“야, 너희 언니 기분이 별로 안 좋을 텐데, 이렇게 매달려서 갈 거야?”
“어머! 참 호호호...... 언니, 빨리 와.”
“그래, 계집애...... 강주씨가 그렇게 좋으니?”
“어머! 언니는 왜 함부로 이름을 부르고 그래?”
“참 나...... 그럼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제부라고 하리? 그리고 나이도 동갑인데...... 안 그래? 강주야......”
민희는 말이 나온 김에 송희를 약 올리려는지 능글거리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고 강주도 맞장구를 쳐 준다.
“으응...... 그렇지 민희야...... 하하하......”
“어머! 뭐야. 두 사람...... 이 씨......”
송희는 약이 올라 큰 소리로 발을 구르며 앞 서 가고 두 사람은 허리를 잡고 웃는다. 주차장을 통과해 매장으로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 오고 송희는 어느새 다시 강주의 팔짱을 끼고 행복해 한다.
강주는 장난기가 발동해 야채코너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가고 청과야채 담당이 인사를 해 온다.
“아! 소장님, 반갑습니다. 휴가 중이신데 자주 뵙습니다.”
“응, 그래...... 수고 많다.”
강주는 송희와 민희를 돌아보며 묻는다.
“고기 구워 먹으려면 고추도 있어야겠지?”
“몰라, 오빠가 알아서 사요.”
“킥...... 그래, 아저씨 고추 얼마예요.”
“어머! 뭐야? 오빠는...... 무슨 말이 그래? 호호호......”
송희는 얼굴이 빨개져서 민희 뒤로 숨고 강주와 민희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야채담당도 민망한지 고추를 담으며 미소를 짓는다.
“아이고, 참...... 소장님 여전하십니다. 하하하......”
“하하하...... 재미있잖아. 그래, 계속 수고해라......”
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코너로 걸음을 옮기면서 송희와 민희에게 말을 건다.
“빨리 와. 왜...... 이제 창피해?”
“아유...... 엉큼하게...... 아주 웃기고 있어. 언니도 있는데......”
“호호호...... 얘, 뭐 어때서 그래? 강주씨가 재미있게 해 주니까 좋은데......”
“언니도 웃긴다? 얼음공주가 왜 이렇게 오빠한테는 상냥하실까?”
“얘는 내가 뭘...... 칫...... 네 남자 친구니까 그러는 거지. 그리고 나하곤 동갑이라잖아?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그렇지? 강주야.......”
“으응...... 그렇지. 민희야. 하하하......”
“또 그런다. 또......”
“자, 자...... 송희야. 여자들이 정육 코너에서는 어떻게 하는 줄 알아?”
“뭐를?......”
“곰거리를 사러 와서는 족이나 사골 같은 거...... 고르다가 정육담당을 쓰윽 쳐다보면서...... 아저씨 족 같은 거 하나 주세요. 이러는데.......”
“아유 씨...... 또......”
“호호호.......”
“하하하......”
강주가 자꾸만 음담패설 같은 소리를 늘어놓자 송희는 아예 민희에게 가서 팔짱을 끼고 딴전을 부린다.
“아유...... 오빠 이제 아는 척 하지 마.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어.”
“에이...... 재미있는 거 하나 더 있는데......”
이번에는 민희가 바짝 다가서며 묻는다.
“호호호...... 재미있는데 얘는 뭘 그래?...... 나도 써먹어야겠다. 호호호...... 어서 말 해 봐.”
“어머! 언니는 미쳤나 봐. 결혼하면 여자가 이렇게 뻔뻔해져도 되는 거야?”
“아유, 가만히 있어 봐. 좀 들어 보게...... 호호호......”
“으음...... 닭을 사면서...... 껍데기에 지방질이 많으니까 싫어하는 여자들이 많거든...... 요염하게 정육담당을 쳐다보면서 이러는 거지. 아저씨 저는 다 벗겨주세요. 쿡쿡......”
“호호호......”
“푸훗......”
“어어...... 송희도 웃었다. 하하하......”
“내가 언제...... 미쳤나 봐. 둘 다......”
고기를 사들고 나오면서 송희는 한 팔에는 강주를, 다른 한 팔은 민희에게 팔짱을 끼고 즐거워한다. 우울해 보이는 언니를 위로해 주기 위해 애써주는 강주가 고맙고, 쌀쌀맞은 언니가 자신의 남자인 강주에게는 유독 친절히 대해 주니 그도 고마운 모양이다. 그저 모르는 것이 약일뿐이다.
“저...... 소장님, 손님이 찾으시는데요?”
“뭐야? 허허...... 참...... 아니 휴가 중에 누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니 정필이가 허리를 꺾어 절을 한다.
“어머! 오빠, 저 사람 누구야? 무슨 인사를 저렇게...... 무섭게 생겼다.”
“푸훗, 무섭긴...... 그냥 아는 사람이야. 잠깐만 기다려. 가보고 올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더 사고 있어.”
“으응...... 빨리 와.....”
강주가 나오니 정필이도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주차장에는 전날 풍물시장을 할 때 얼굴을 익힌 사내들도 몇이 앉아 있다가 강주를 보고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해 온다.
“자, 자...... 이쪽으로 와. 아니...... 무슨 인사들을 그렇게 해? 하하하...... 사람 곤란하게시리......”
“아니, 매형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박부장에게 무슨 언질을 받은 모양이다.
“으응? 전화?...... 아! 집에 두고 온 모양이다...... 그래, 형한테 무슨 얘기라도 들었어? 내가 걱정 돼서 온 거야?.....”
“네...... 그런데 형님이 찾는 그 놈들은 뭐예요? 그냥 싹 쓸어버릴까요?”
“아니야. 이 사람아...... 무슨 영화 찍어? 그건 그저 내가 궁금해서 알아본 거야. 그나저나 요즘 산에서 애들 데리고 뭐 한다면서......”
“허허...... 네. 그저 운동이나 하고 농사도 짓고 그럽니다.”
“참 나...... 설마 네가 그러겠다. 자, 돈도 많이 필요할 텐데, 이거 갖다 쓰고 다른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지내. 괜히 면회 가게 만들지 말고......”
“아유, 형님...... 웬 돈을 이렇게......”
“산중에 똘마니들 데리고 있으려면 돈 많이 필요할 거 아냐? 그리고 너도 전화 잘 안 될 때가 많던데...... 항상 열어놓고......”
“네, 지금은 산에 소형 발전기를 준비해 둬서 전기 쓸 수 있도록 해 뒀습니다.”
“어쩌면 내가 처남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몰라서 그래. 전화 항상 열어 둬.”
“음...... 그 놈들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제가 치워 버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괜히 지레짐작으로 사고 치지 마. 나중에 연락해 줄게.”
강주는 민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쩌면 정필이의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몰라 회사에서 수령한 수표를 정필이에게 내밀어 마음을 써 준다. 황부장의 부인 미경이가 관리한다는 젊은 사내들이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회장이 비밀스럽게 미경이를 내세워 몸 보시를 시켜가며 관리를 할 때에는 그 쓰임새가 있을 것이고 짐작컨대 떳떳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래 중에 필요 없는 상대를 제거하고 또는 보복이나 복종시키는 일에 써먹었다면 결코 민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를 해 두는 것뿐이다.
정필이 일행을 보내고 다시 매장으로 들어선다. 부소장이 강주에게 인사를 해 온다.
“아! 부소장님...... 지금 자리가 준비 됐는데...... 어차피 내가 휴가 끝날 때까지는 계셔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나 잘 하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소장님.”
“인천으로 가셔야 하니까 미리 주변정리도 해 두시고......”
“네, 네...... 알았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아파트로 올라가니 밖에서 기다리던 민희의 언니가 강주를 붙잡는다.
“자, 너희 먼저 들어가. 나는 동생하고 얘기 좀 하고 들어갈게”
“응......”
“오빠, 빨리 들어 와.”
“그래.”
“으음...... 송희 데리고 다닐 때 조심 해. 눈치 차리지 못하게...... 동생, 저 애 이혼시켜야 할 텐데...... 계속 여기 데리고 있으면 결국 그놈이 찾아올 거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일단 본인 의사를 물어 보세요. 이혼 할 생각이 있는지...... 그저 병원만 옮겨주면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제가 다른 장소에 민희를 숨겨줄 데야 많이 있지만 본인이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동생은 그게 무슨 소리야? 무조건 이혼 시켜야 돼. 저 애가 창녀야? 뭐야? 자기가 좋아서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 나쁜 새끼...... 형님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도 내 동생을 데리고 있으니까 그저 예쁘게만 봐 줬는데...... 하여튼 민희는 내가 따로 얘기할 테니까 그럼...... 동생이 어디 숨겨 줄 데가 있긴 있는 거지? 이혼시킬 동안만 둘이 못 만나게 데리고 있어.”
“네...... 집은 얼마든지 있지만 지금 제가 불안한 건 민희가 이혼을 하더라도 그 회장이 거느리고 있는 다른 여자가 양아치 같은 애들을 부리고 있어서...... 그게 자꾸 신경이 쓰이네요. 자칫 민희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어머! 그럼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될까?”
“허허...... 참, 누님도...... 경찰에 뭐라고 신고를 해요? 누가 뭘 잘못했다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 저대로 보낼 수도 없고......”
“일단 민희가 마음을 정하면 내가 다른 곳에 숨겨두고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혹시 그런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가서 대응을 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깡패들이라면서......”
“푸훗...... 누님, 나 싸움 잘 해요.”
강주는 장난스럽게 알통을 들어 보인다.
“아유...... 지금 장난 칠 때야?”
“걱정 말아요.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도 있는 법이니까...... 아까 민희도 봐서 알 거예요. 일단 민희 뜻이나 물어 보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어. 일단 들어가자.”
둘러 앉아 고기를 굽는 와중에 민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이 설득이 길어지는 모양이다. 송희는 작은 언니의 얼굴이 말이 아닌 지경이니 오히려 강주에게 면목이 없어 자꾸만 술을 권한다.
“오빠, 미안해요. 손님을 불러놓고 분위기가 이래서......”
“어허...... 처제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 친구가 왜 손님이야. 우리 식구지. 괜찮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야.”
“아유...... 작은 형부 그렇게 안 봤는데...... 여자를 저렇게 때리는 게 어디 있어? 혹시 형부도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어허...... 이거 불똥이 왜 갑자기 나한테 튀나? 허허허......”
“오빠도 나중에 나 때리기만 해 봐. 그냥 콱 죽어 버릴 거니까......”
“어어...... 무시무시하게 왜 그래? 하하하...... 걱정 마. 못난 놈들이나 여자를 때리지. 도대체 아까워서 자기 여자를 어떻게 때려?”
방문이 열리더니 강주를 불러들인다. 송희는 무언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강주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자 어깨가 으쓱해져 강주의 등을 떠민다. 민희는 쪼그리고 앉은 무릎 사이에서 얼굴을 들며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곤 강주를 바라본다.
“그럼 강주씨...... 나 어디 숨겨 줄 데는 있어? 미경이 언니가 데리고 있는 애들이 나 해코지할지도 모른다면서?......아까 슈퍼에서 본 사람들도 보통 사람 같지는 않던데......”
“으음...... 그렇게 결심한 거야? 너 숨겨 줄 데야 많이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데?......”
“푸훗...... 뭐, 송희한테는 미안하지만 자기한테 들어붙어야지. 어떻게 하겠어? 강주씨가 나 책임진다면서?......”
강주는 슬쩍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민망한지 뒷덜미를 긁는다. 이런 경우 확실히 여자가 남자보다 대범한 모양이다. 한 자매간 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고 나니 못할 말이 없는 표정이다.
“자식...... 그래, 내가 책임질게. 아무 걱정 하지 마. 일단 내일 송희 보내놓고 함께 가자.”
“그래, 아무튼 너희들도 조심해. 송희 눈치 못 채도록...... 아유, 참...... 이게 무슨 일이야......”
늦도록 술을 마시고 거실에서 모두 이야기나 하며 놀다가 함께 자자고 청하는 걸 뿌리치고 내려온다. 공연히 함께 자다가 송희 앞에서 실수라도 하게 되면 정말 난감한 일이고 코앞에 숙소가 있는데 편안한 잠자리를 두고 고생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모니 장마담에게 전화를 건다.
“응, 혜영아...... 나야. 강주......”
“응, 강주씨...... 오늘 올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내가 다른 데 딱히 부탁할 만한 데도 없어서 그러는데...... 여자 한 사람만 너희 집에 며칠 데리고 있어 줄 수 없을까?”
“어머머! 뭐라고? 자기 지금 뭐라고 했어?”
강주는 할 수 없이 장마담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다시 이해를 구한다.
“어머나...... 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을까? 자기 마누라를...... 아유, 그런 인간들은 약 먹여놓고 물건을 아주 싹둑 잘라 버려야 돼.”
“참 나...... 이거 여자들이 더 무섭다니까...... 그러니까 혜영아...... 사정 좀 봐 줘라.”
“그래, 알았어. 강주씨 부탁이니까 특별히 들어 주는 거야. 그 대신 내 앞에서는 친한 척 하기 없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강주가 의심을 받는다면 의왕매장도 이미 회장이 알고 있으니 안심하고 숨길만 한 곳은 전혀 연관을 지을 수 없는 장마담의 집이 안성맞춤일 것이다.
낮에 잠을 자서 그런지 잠도 오질 않아 컴퓨터를 켜서 폰에 있는 사진들을 저장해 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나가보니 두 자매가 내려와 있다.
“어! 누님, 민희도 왔네? 왜 안자고 내려왔어?”
“으응...... 심란해서 잠도 안 와. 동생하고 편하게 상의도 더 해야 하 것 같아서...... 집에는 애들 아빠하고 송희도 있으니까 불안해서 목소리도 크게 못 내잖아.”
“형님은 자요?”
“응, 송희도 술이 취해서 애들 방에서 잠들었어.”
“아유...... 이게 무슨 일이니? 우리 세 자매가 모두 너한테 매달려서......”
“걱정 말아요. 나중에 모두 한 집에서 삽시다. 아니, 그럼 더 불편할 거고 모두 한 아파트에서 삽시다. 왔다 갔다 하면서...... 킥킥......”
“아유, 장난치지 마. 가슴 떨려 죽겠어.”
“언니, 걱정하지 마. 자기 이젠 돈 많이 벌어야겠다. 아파트를 세 채나 마련하려면...... 호호호...... 차라리 이렇게 결심하니까 홀가분하고 좋다. 강주씨가 나한테는 구세주나 다름없네.”
“참, 너희들도 천생연분이다. 어쩌면 그렇게 남 얘기하듯 잘 하니?”
“하하하...... 뭐, 구세주가 별 겁니까? 그저 밥이나 먹여주면 되는 거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그런 마음고생을 해가면서 살아요? 그건 결코 잘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뉘여 있었다고 하니 말구유는 다름 아닌 여물통이고 여물통은 밥그릇이니 그 안에 담겨있던 예수는 사람들에게 밥으로 온 것일 게다. 먹고사는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이겠지만 조금 더 잘 먹고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마음고생하며 자신과 가족을 나락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저 한 공기 밥에 만족을 하고 시원한 냉수로 배를 채워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사랑만 가득하다면 자신의 몸을 세상의 밥으로 내어 준 예수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밥이 되어 씹혀도 좋을 일이다.
“참 나...... 갖다 붙이기는...... 아유...... 그래도 죄 짓는 거 같아서......”
“죄요? 그럼 이민 갈까?......”
죄라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같은 사안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죄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 다분히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언제 어디서라도 적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리라고 할 만할 것이다. 속뜻을 보자면 빗나간 행위, 과녁에서 벗어나는 일을 죄라고 한다 하니 배우자를 속이고 외도를 하는 것이 좁은 의미의 죄라면 죄이겠으나 스스로 행복할 권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타인에게 강제하지 않는 한, 천부적으로 주어진 권리를 누구라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에 따라 간통을 벌하는 입장이 각기 다른 것은 그 시각차이일 것이고 천부적인 권리보다 기혼남녀의 정조를 윗자리에 두어 법으로 지켜주는 것은 모두를 철모르는 철부지로 보는 것이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도덕적으로 포장되고 교육적으로 조작된 죄의식일 것이다. 선행을 베풀고 그 생색을 내는 사람이야말로 이미 받을 보상을 다 받은 셈이니 죄의식도 그와 다름 아닐 것이다.
아파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셈을 치렀다면 차원 다른 해방된 삶 속에서 솔직한 인간본연의 행복을 누리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엉터리 같은 죄의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남녀가 서로에게 목적이어야 하겠지만 섹스와 사랑을 묶어서 생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섹스는 사랑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일 수는 없는 일이며 섹스로 상대를 구속한다면 이미 그 자유의지를 꺾는 것이니 사랑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유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부부간의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는 풍토에서 간통을 여전히 백안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 센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섹스는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지, 섹스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워야 할 행위를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먹고 사는 이유로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피......”
“허허......
“얘, 민희 너는 여기서 잘래?”
“아유, 싫어...... 나 지금도 옆구리가 결려. 나 먼저 올라갈 테니까 언니나 더 있다가 올라 와. 그럼 강주씨...... 우리 언니 행복하게 해 줘. 호호호......”
“아유, 얘는 빨리 올라가기나 해. 나도 금방 갈게.”
나가는 민희를 배웅하고는 문을 잠그고 돌아와 옷을 벗는다. 강주와 동생의 정사 장면을 떠올리며 후끈 달아오른 모습이다.
“봐, 이렇게 문단속을 잘 해야지. 그게 무슨 꼴이니?”
“하하하...... 그래서 이렇게 됐으니 결국 다 잘 된 거 아니요? 탁 터놓고 얘기 할 수 있으니...... 얘기하고 나니까 속도 후련하잖아요.”
강주도 서둘러 옷을 벗고 서비스를 기대하는 듯 침대에 누워 버리고 그녀는 강주의 좆을 문질러 세우고는 배 위에 걸터앉아 잔뜩 벌어져 색스러운 질 속으로 밀어 넣는다.
“흐으응......”
“어헉, 바로 넣어도 괜찮아?......”
“으흐으으응...... 나 벌써 물 나왔어. 괜찮아......”
강주는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해주며 흥분을 끌어올리고 이미 동생에게 노출되고 공개된 섹스를 기대해서인지 부녀회 총무는 한껏 달아올라 요분질을 해 대고 있다.
“아학...... 하악...... 아학.”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좆을 빼 낼 때는 다시 채워 줄 기대감에 몸을 떨고 엉덩이를 내려 사타구니를 마주칠 때에는 질벽을 긁어주는 느낌과 깊숙한 삽입으로 낯 설은 통증을 쾌감으로 즐긴다.
“으흐으응...... 허억...... 허억......”
한동안의 방아질로 물을 쏟아 두 사람의 사타구니가 흥건해질 즈음 강주가 자세를 바꿔 그녀의 엉덩이에 매달리고 그 엉덩이는 가득한 기대로 강주를 맞아들인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거친 심호흡으로 마주치는 속도를 더해 간다.
질 깊숙이 찔러오는 강주에게 이제는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신뢰를 보내준다.
동생들을 모두 잘 부탁한다는 의미 일 것이다.
“하악, 여보...... 여보...... 사랑해......”
“그래, 누님...... 후욱, 후욱, 내 여보야...... 후욱......”
빠른 좆질로 사정의 기운이 몰려온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착각 속에 불꽃놀이를 즐긴다.
“으으으으흑...... 울컥...... 꿀럭......”
질속에서 터지는 폭죽의 기운을 느끼고는 천천히 앞으로 엎어진다. 엉덩이 위로 느껴지는 강주의 체중만큼이나 포만감을 느끼는지 엎어진 채 좆이 꽂힌 엉덩이에 경련을 일으킨다.
“후우...... 누님, 나를 뭐라고 불렀지?”
“으흥...... 여보...... 내가 동생 여보라고 부르면 좋아했잖아?”
“후훗...... 물론 좋지...... 얼마나 좋은데...... 한 번 더 해 봐.”
“차암...... 여보......”
여직원 괴롭히기 -21부
“음...... 부소장, 나예요.”
“네, 소장님.”
“지금 하는 일 모두 중단하고...... 음...... 우선 점심식사부터 해야 되겠네. 천천히 식사하시고 의왕매장 소장을 태워서 함께 용현동 본사로 들어오세요. 나도 시간 맞춰 들어가겠습니다.”
“본사 어디로 가 있을까요?”
“아! 그렇지. 아직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아니, 전에 총무부 김과장 본 적 있잖아? 그 양반한테 가 있어요.”
“네, 네...... 아, 그분이 거기에 있습니까? 알았습니다.”
짧은 휴가기간에 계약을 재조정하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역시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이 유용할 터이니 희숙이를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회장과 강주 일행은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의 한식당으로 걸음을 옮기고 황부장은 전화를 하면서 걷고 있는 강주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느라 함께 뒤처지게 된다.
“저...... 이사님.”
“네, 뭡니까? 말씀하세요.”
잔뜩 주눅이 들어 따라 걷고 있는 황부장에게 다시 본래의 안색을 회복한 강주가 전화기를 접으며 무심히 대꾸를 한다.
“저...... 저는 지금 집에 가서 바로 필증을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뭐, 급한 것도 아닌데 그걸 서둘러요? 식사나 하고 천천히 가세요. 어차피 오늘은 내가 바빠서 등기소 갈 시간도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은 회장님 뵐 면목도 없고...... 또 집사람 모르게 필증을 갖고 오려면......”
“마누라가 그렇게 신경 쓰입니까? 허허...... 참, 나중에 물으면 뭐라고 할 거요?”
“글쎄요. 그게......”
“뭐, 도리 없잖아요? 경마해서 날렸다고 하쇼. 나한테 부탁해서 내가 집은 다시 잡아줬다고 하고...... 입을 맞춥시다. 아파트는 몇 평이요?”
“아! 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알았습니다. 아파트는 서른 네 평인가...... 그렇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래도 식사나 하고 갈 일이지......”
“아닙니다. 지금 밥 생각도 없습니다.”
하기야 집을 날리는 처지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면 그것도 온전한 정신은 아닐 것이다. 멀리서 앞서가던 회장과 부장의 아내 미경이도 걸음을 멈춘 채 두 사람을 돌아보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나중에 사무실에서 봅시다. 괜히 사장님 마주치기 곤란할 것 같으면 어디 피해있던지......”
“네, 제가 알아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황부장은 멀리 서있는 회장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황급히 주차해 둔 곳으로 뛰어가 버린다. 천천히 회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주를 향해 미경이는 앙탈을 부리고 회장은 애써 외면하며 웃음을 짓는다.
“아이 참...... 이사님. 또 저이한테 뭐라고 그랬지요?”
“어허..... 참, 나...... 아무 소리도 안 했어요. 허허허...... 아, 회장님 뭐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호호호...... 그래, 얘...... 이사님은 이제 아무 소리도 안 하기로 약속했는데...... 뭘 그래?”
“그런데 저이, 왜 밥도 안 먹고 그냥 간대요?”
“아! 지금 밥 생각도 없고 브리핑 준비할 게 많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이제 저하고 손발 맞춰서 함께 일하기로 했으니까 미경씨도 괜한 일에 마음 쓸 필요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겠습니다. 하하하......”
입을 잔뜩 내민 채 흘겨보는 미경이의 허리를 돌려세워 걸음을 재촉하고 곧 식당으로 들어선다. 한식당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다다미가 깔려있어 무더위 중에도 무척 시원한 기분이다.
한 자리에 모여 앉은 세 사람 모두가 문제를 해결한 뒤의 차분한 표정과는 관계없이 속으로는 나름대로 쾌재를 부르고 있으니 동상이몽도 이런 경지가 따로 없다.
미경은 회장의 후광으로 남편인 황부장이 무사할 수 있었으니 이 기회에 어떻게든 강주를 잠자리로 끌어들여 제 편을 만들기 위해 여념이 없을 것이고, 회장은 사람을 잘 가려 쓴 덕에 짧은 시간에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으니 남편보다 우수한 자신의 경영능력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쾌재를 부를 사람은 다름 아닌 강주일 터, 황부장에 대한 건은 이미 회장과 더 이상 거론치 않기로 약조를 했으니 거래처 계약이야 수정하면 그뿐이고, 점장들의 점두코너 수입은 매일 보고를 받아 체크하면 그뿐이니, 이억을 호가할 용현동의 아파트 한 채가 고스란히 떨어지게 생겼다. 물론 추후 경과를 보아 다시 돌려 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집을 처분하지 않는 한 그간 착복한 돈을 일거에 마련할 수도 없는 일이고, 처분한다 한들 그 돈은 강주의 돈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목을 걸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점점 단단한 올무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뒤인 강주의 입가에는 그저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을 뿐이다.
“참, 이사님...... 지난번에 부탁하셨던 그 직원은 어떻게 됐나요?”
식사를 모두 마친 후 회장은 내친 김에 강주를 장악하고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미경이 앞에서 과시하듯 부소장의 일을 물어온다.
“아! 네, 회장님 덕분에 벌금형으로 바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제가 회장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저도 회장님께 그 원수는 따로 갚아야 하겠지요? 하하하......”
“어머! 원수요? 호호호......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본사에 와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뒀습니다. 그 친구하고 의왕에 있는 우리 여직원도 곧 내려올 겁니다. 이제 가서 만나 봐야지요.”
“어머! 바로 가시게요? 아이 참, 제가 시간 좀 내달라고 그랬잖아요?”
“허허...... 잘 하면 달려들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미경씨 얘기 들어드릴 시간은 있습니다.”
슬쩍 회장을 바라보니 회장이 강주의 말을 거들고 나선다.
“어머! 참, 내 정신 좀 봐. 이사님...... 나 오늘 헬스클럽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이사님, 나중에 봐요. 얘, 미경아, 나 먼저 간다.”
“참, 그리고 오늘부터 그 두 친구 며칠 간 일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비용 겸해서 이백 정도 인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건 경리파트에 얘기해 둘게요. 아유, 참...... 이사님께 여러 가지로 너무 죄송하네요. 의왕에 있는 그 직원이 약혼자라고 하셨잖아요? 휴가 중에 두 분이서 어디 여행도 못가시고......”
“허허허...... 이렇게라도 보면 되는 거지요. 뭐......”
처음 회장을 만났을 때 그저 흘려 얘기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회장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고 강주도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미경은 자연스럽게 강주에게 다가와 팔짱을 걸며 가슴을 비벼온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기가 물 흐르는 듯하다.
“어디로 갈까?”
“아까 거기 비치호텔 어때요? 이사님.”
“그러지.”
이제 회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교감을 이룬 상태로, 비록 그녀의 전위부대에 민희가 있다는 것 때문에 썩 달가운 입장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장의 본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일 터이니 강주도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회장을 미워하기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물에 뛰어들어야 하고 수렁에 빠진 이를 건지더라도 한 발은 빠뜨려야 할 일이다. 황부장의 아내 미경이는 또 어떤 내력을 가진 인물인지 미경이에게 빠져 보기로 한다.
“그래, 황부장이 전화로 뭐라고 하던데?......”
“호호...... 놀라긴 내가 더 놀랐지. 뭐야......”
“왜?”
강주는 천천히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꼭지를 돌려 물을 맞는다. 미경이도 따라 들어와 강주를 뒤에서 끌어안고 젖무덤을 비벼오니 등으로 느끼는 가슴이 풍만하다. 물속에서도 그녀의 향기는 강주를 자극하기에 충분한지 이미 강주의 몸은 반응하기 시작한다.
“최강주 이사라고 해서...... 나는 자기 무역 쪽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
“쿡쿡......”
“그래서 바로 언니한테 전화했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봐 달라고......”
강주는 돌아서 미경의 젖무덤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부딪치고 미경은 기다렸다는 듯 강주를 들이마신다. 아침부터 애를 태우던 강주를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한 손으로는 적극적으로 강주의 분신을 쓸어 주무른다.
“흐읍...... 쭈우웁....... 후루룹......”
“으흐으음....... 으흥...... 흐으응......”
“후훗...... 미경아. 물속에서 해 본 적 있어?”
“어머! 미쳤어. 쿡쿡......”
강주는 물을 틀어 욕조를 채운다. 샤워꼭지에서도 소나기가 내리고 두 사람은 그 비를 맞으며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이거...... 나한테 주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니?”
강주의 손은 미경의 사타구니를 흩고 지나가며 조금씩 자극하고 그때마다 미경은 움찔거리며 강주를 끌어안는다.
“아이 차암...... 나빠요...... 민희하고 경주만 예뻐해 줬지? 치......”
“허허허...... 너희끼리는 비밀도 없냐? 자, 숙여 봐......”
강주는 쏟아지는 물을 등에 맞으며 미경이를 돌려 잡는다. 발기한 좆이 꺼떡거리며 미경이의 풍만한 엉덩이를 찔러댄다. 음순을 문질러 길을 찾고 천천히 밀어 넣는다.
“뭐...... 말 안 해도 다 알지. 호호호...... 허어억...... 살 사알......”
“후욱, 그럼 우리...... 후욱, 지금 이러고...... 후욱, 있는 거...... 황부장도 알겠네?...... 후욱, 후욱.”
“아이 차암...... 하아악...... 왜 그 사람...... 하악, 으흑...... 얘기는 꺼내고...... 그래? 으으흥......”
“후우욱...... 후욱...... 아...... 씨바...... 황부장 돌겠네...... ”
강주가 엉덩이에 몸을 싣고 팔을 뻗어 젖을 주무르자 미경이는 욕조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을 주며 몸을 지탱한다.
엉덩이는 더욱 강주에게 내밀어져 강주는 젖을 주무르며 허리를 더욱 빠르게 놀린다.
“아학, 하아아악......아흑, 침대로 가서...... 흐윽, 해요......”
“가만히 있어 봐. 후욱...... 후욱.”
회장 주변의 인물들에게선 민희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자꾸만 변태적인 섹스를 갈구하게 된다. 지금도 미경이와 섹스를 하면서 황부장의 이름을 들먹이며 흥분을 몰아간다. 눈앞에 샴푸를 한 줌 짜내 사타구니에 뿌린다. 일어나는 거품과 함께 비눗물이 바닥을 따라 흐르고 강주는 손가락으로 항문을 자극한다.
“하윽, 아야...... 뭐야? 이사니임...... 거기 아니야......”
“후욱, 가만히 있어...... 후욱, 쑤욱......”
이내 손가락을 빼며 좆을 문지르다가 힘차게 밀어 넣는다.
“쑤우우욱......”
“하아아악....... 으흐으으응......”
이제 회장 주변 인물들의 행동반경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니 보통의 섹스로는 성이 차질 않아 항문을 겨냥하고 아예 욕실에서 일을 벌인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빗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기분은 마치 비 오는 날 나체로 길을 걷는 듯 그동안 신경을 써 온 모든 일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물을 입으로 받아 뱉어내고 엉덩이를 철벅거리며 마주쳐간다.
“하윽...... 나 이상해져......”
“후욱...... 쑤욱......”
두 사람의 사이에 사랑이 없어도 쏟아지는 물줄기가 찰박거리며 채워주니 그 또한 위로가 되고, 서로가 마음 없이 붙어있어 마치 짐승처럼 나누는 교미에도 부끄러움을 씻어준다. 어느덧 욕조에 물이 채워져 강주는 항문에서 좆을 꺼내고 그녀의 항문은 아직도 아가리를 벌린 채 벌건 속살을 보여준다.
“쭈우웁...... 후루룹...... 으으흠......”
입을 부딪쳐 나누는 타액으로 서로의 갈증을 씻고, 끌어안아 맞잡은 두 손은 서로에게 흉기가 되어 아프게 자극을 더한다. 미경이를 욕조로 밀어 넣고 다시 엉덩이를 잡아 마주친다. 좆과 엉덩이사이의 물이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며 묘한 자극을 더해준다.
마음과 달리 새로운 자극 때문인지 오래지 않아 이내 사정에 달하고 만다.
“하으으으윽...... 울컥...... 울컥......”
“하으응...... 으흑, 하으윽...... 여보......”
두 사람은 욕조 속에서 출렁이는 물의 자극을 느끼며 입을 맞춰 간다. 강주의 손은 쉼 없이 미경이의 젖가슴과 사타구니를 공략하고 미경은 강주의 좆을 흔들어 남아있는 좆물의 한 방울까지 짜내려고 하는 모양이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욕조 안에서 걸치듯 기대어 있다. 강주는 미경이의 젖무덤을 베개 삼아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고 미경은 강주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애정을 표시한다. 물 위로는 미경이의 질에서 흘러나온 강주의 분신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후훗, 내가 좋았어? 황부장이 좋았어?”
“피...... 남자들은 꼭 그런 걸 물어 보더라?...... 당연히 자기가 좋았지.”
“우리 사장도 물어보든?”
“쿡쿡...... 이사님도 벌써 다 아는가 봐? 호호호......”
“염병...... 사방팔방 죄다 동서로구먼...... 하하하...... 야! 너, 전화 온 모양이다.”
미경이는 대강 물기를 닦고 전화를 받으러 나간다.
“으응, 자기야?”
“......”
“나, 지금 여기 송도비치 근처에 있는데......”
“......”
“백만 원?...... 아유, 갑자기 백만 원이 어디 있어?......”
“......”
“알았어. 그럼 이쪽으로 와. 내가 바로 앞에 있을 테니까......”
“뭐야? 황부장이냐? 에이 씨바...... 쉴 틈이 없어요. 쉴 틈이......”
“호호호...... 아유, 미안해요. 이사님. 다음에 오래 오래......”
대충 물기를 말리고 밖으로 나와 미경이와 헤어져 차에 올라탄다. 페달을 밟아 가던 중 아무래도 황부장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궁금증을 자극한다. 황부장이야 지금 등기필증 때문에라도 심정적으로 마누라를 만나려 하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속내를 감추는 것 같아서 차를 다시 돌려 길모퉁이에서 바라본다.
잠시 후 비치호텔 앞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한 대 들어서더니 젊은 놈들 몇이 내려 미경이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앞뒤로 포옹을 한다. 몸을 터치하는 것도 보통의 기준을 넘어서 여러 놈 모두 보통사이가 아닌 것 같다.
“뭐야? 저거, 한두 놈도 아니고 동시에 여러 놈하고 저러는 모양인데...... 야, 미경이 저것도 보통 물건 아니네...... 그러면 황부장도 말짱 호구라는 말 아냐? 씨바...... 어쩐지 항문도 처음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더라......”
강주는 호기심이 발동되는지 차번호를 적어 포켓에 넣어둔다. 종전 같으면 전혀 소용없을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젠 제법 알고 있는 변호사들도 있으니 어떻게든 알려고만 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내 미경이는 그 차를 타고 젊은 놈들과 함께 사라진다.
용현동 본사에 도착하니 벤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부소장과 희숙이는 이미 사무실에 도착해 있는 모양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려다 매장이 궁금해 슬쩍 들여다본다. 매장은 불과 며칠 만에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 상황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점장의 각오를 보여준다.
한여름 무더위에 긴 소매의 옷을 입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추운 겨울에 짧은 옷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철을 알아 절기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돌아오는 계절에 대비하여 준비할 줄을 알 터이니 그제서 비로소 어른이라 할 만 할 것이다.
경영자들이 운영하던 회사의 폐업이나 정리를 염두에 둘 정도로, 방만한 운영을 해왔던 황부장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추운 겨울이 닥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격이니 이제 최강주라는 된 서리를 준비도 없이 맞게 되고, 하릴없이 빈손에 호미를 쥔 채 언 땅만 긁고 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아! 이사님, 이제 오십니까?”
황부장이 내려와 강주를 맞는다. 강주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 모양이다. 뒤따라 김과장과 부소장도 내려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강주를 바라본다.
“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허허허...... 자, 올라갑시다. 지금 사장님 계신가요?”
“아, 아...... 네, 계십니다.”
“자, 그럼 사장님께 먼저 인사부터 드리고 나올 테니까 잠시 후에 봅시다. 황부장은 따라 오시고......”
“네, 네......”
사장은 강주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환대를 해준다. 이미 회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있는지 황부장을 보는 눈초리가 곱지는 않다.
“음...... 뭐, 별일 아닙니다. 황부장이 경험이 미숙하다 보니 일부 실수한 것이 있었지만 문제 삼을 만 한 일은 아닙니다. 이제 곧 원상회복 될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여기 황부장도 그간 고생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일에 그 정도는 사장님께서 모른 척 해 주셔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사장의 아량에 호소하고 황부장을 배려하는 척 넘어가 버린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린 후에 뿌리가 과연 잘 내리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자꾸 들춰 본다면 그 농사는 필경 망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저 덮어두고 바람이 들지 않도록 그야말로 꼭꼭 밟아서 싹이 틀 때까지는 보호해 줘야 할 일이다.
“아! 네, 뭐...... 그 정도라면 물론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황부장은 앞으로 최이사님 보필하면서 잘 좀 배우도록 해. 사람이 참, 그렇게 안 봤더니 어수룩해 가지고...... 그럼 이사님 향후 계획은 어떻게 갖고 계신지......”
황부장은 비록 핀잔을 들어도 이 순간 강주가 아무소리 않는 것이 더 없이 고마운 일이니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백척간두가 이 자리요, 대문을 열고 나가면 저승길이니 그저 강주의 처분에 따를 뿐이다.
“체제에 큰 변화는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황부장이 혼자 커버해 나가기엔 다소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스핀아웃을 약간 도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핀아웃이라면...... 그건 골프에서 쓰는 말이 아닌가요?”
“아! 네, 그렇기도 하지요. 공을 갖고 하는 경기에서는 외부로 공을 보낼 때 그렇게 쓰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드린 말씀은 일종의 독립운영체제를 말씀 드린 겁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까 현재 황부장이 결재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영업, 상품, 총무 등등 분야별로 나눠서 각과의 과장들이 전결을 할 수 있도록 전결규정을 새롭게 정하면 굳이 체제 개편까지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 네......그게 효과적일 수 있겠군요.”
“물론 사장님이나 황부장이 훨씬 깊이 있고, 보다 포괄적인 결정을 하시겠지만 역시 일이란 현장 감각이 중요하거든요. 각 과 과장들의 책임 하에 실무진에서 훨씬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것들까지 상부의 결재라인을 기다리다간 경쟁회사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전결에 관한 사항들은 제가 둘러보고 추후에 사장님께 결재를 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황부장이 독식해 오던 중요한 안건들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강주의 눈 밖에 날 짓을 더 이상 하지는 않겠지만 불여튼튼 단속을 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점장들은 일단 교육을 통해서 기강을 잡도록 하고 일반직원들은 제가 관리하는 의왕으로 o.j.t를 보내든지, 아니면 그쪽 직원들을 이리 파견을 하든지 해서 교류를 하게 하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아! 네, 그렇게 합시다. 그게 좋겠군요. 자, 그럼 황부장이 모시고 나가서 직원들에게 소개를 해 주세요. 자주는 못 오실 텐데 직원들이 몰라보면 그것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발코니로 나오니 김과장과 부소장이 따라 나온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이사님이라니요?”
“허허...... 그렇게 됐습니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 김과장님께서는 기량을 많이 발휘하셔야 할 겁니다. 이제는 남 눈치 보지 마시고 전결을 확대해 드릴 테니까 능력발휘를 한 번 해 보세요. 기존 우리 회사 전결규정을 참고해서 전 부서 것을 새로 하나 작성해 보세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답답한 적도 많았습니다. 허허허......”
“그리고 부소장은 앞으로 점포를 맡을 때까지 의왕 소장하고 같이 거래처 계약을 재정비하도록 하고...... 참, 그런데 같이 안 왔어?”
“아니요. 아까 잠깐 나가던데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입니다. 와...... 이거 특공대원이라도 된 기분인데요. 하하하......”
“허허...... 뭐, 틀리지 않지. 그리고 두 사람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지요? 영통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와...... 좋지요. 이거 이사님하고 술 마시는 게 얼마만입니까? 하하하......”
“자, 그럼 나는 경리파트에 다녀 올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요.”
복도에서 영통 하모니 장마담에게 전화를 건다. 벌써 가 보려고 마음을 먹은 터에 이런 저런 일로 늦어지니 은근히 보고 싶기도 하다.
“응, 장마담?......”
“누구세요?......”
“나야. 최소장.”
“어머! 또 장마담이라고 한다. 정말 이름 안부를 거예요?”
“큭...... 야, 귀청 떨어지겠다. 소리는...... 하하하...... 오늘 한 잔 하러 갈까 하는데, 가게에 있을 거지?”
“어머! 오늘 올 거야? 나야 항상 가게에 있지. 그럼 혼자 와요. 또 지난번처럼 양아치 같은 애 부르지 말고......”
“하하하...... 알았어. 참, 그리고 그 후에 또 행패 부리거나 하지 않던가?”
“으응, 역시 자기 말이 통하는지 그 뒤로는 안 오던데......”
“으응, 그래?...... 알았어. 나중에 보자.”
정필이에게 전화를 한 적도 없는데 마담의 말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니 다행한 일이다. 궁금한 것은 가서 알아보면 될 일이고 서둘러 경리파트로 걸음을 옮긴다.
“나, 최이사예요. 회장님 전화 안 왔던가요?”
“아! 네, 이사님. 여기 있습니다.”
“뭐야? 이거 삼백만 원짜린데, 나는 이백만 원 신청했는데......”
“네, 나중에 다시 삼백을 드리라는 연락이 왔었어요.”
“음...... 그랬어? 알았어요.
돈을 수령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니 어찌 알고 왔는지 보라가 희숙이를 따라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주를 맞는다.
“어어...... 보라야, 너는 여기 웬 일이니?”
“호호호...... 오빠, 깜짝 놀랐죠?”
“반갑습니다. 이사님...... 보라도 의왕에 코너 맡아서 시작했어요. 오늘 이사님이 불러서 간다니까 따라 온다고 해서......”
“허허...... 참, 너 마침 잘 왔다. 온 김에 희숙이하고 같이 노가다 좀 해야겠다. 그럼 의왕은 아가씨한테 맡겨두고 온 거야?”
“후훗, 네...... 제가 있는 것보다 더 잘 하는데요. 뭐......”
보라와 희숙이가 와 있으니 사무실이 다 훤해진다. 팔등신 미녀들이 둘씩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모두들 강주를 부러워하는 눈치지만 이사와 함께 있으니 흘끔거리며 쳐다볼 뿐이다.
“자, 그럼 오늘은 업체 계약조건을 확인하고 불러들일 업체를 추려내 봐. 황부장님은 기존 계약자료 여기 이 친구들에게 전부 주세요. 김과장님은 업무연락 띄워서 내일 점장회의 소집하고, 희숙이는 내가 자료를 줄 테니까 내일 점장 교육을 맡아서 진행해 봐. 부소장이 도와주고......”
“어머! 제가요?”
“그래, 한 번 해 봐. 다 배운 거니까 기본적인 것들만 짚어주면 돼. 그리고 부소장이 도와 줄 거고...... 보라, 너도 시간 되면 계속 도와주고......”
“네, 알았습니다. 오빠, 나는 일당 줘야 돼요. 오빠 직원 아니니까...... 호호호......”
“오냐, 알았다. 하하하...... 자, 그럼 시작해 봐.”
이제 본격적으로 영진유통의 수정작업이 시작되었다. 사연도 많고 말도 많았지만, 어쨌든 탈 없이 상륙을 한 듯 보인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연기를 내뿜으며 울리는 전화를 받아 든다.
“아! 누님?......”
“응...... 내일인 거 알고 있어?”
“뭐가?......”
“아이 참, 형님생일이라고 했잖아?”
“아아...... 알았어. 내일 저녁...... 킥킥......”
“왜 웃어?”
“으응...... 어떤 여자를 선물할까 싶어서......”
“너, 죽고 싶으면 알아서 해. 킥...... 그럼 내일 봐. 아직도 인천이야?”
“응...... 나, 누님 무지하게 보고 싶다.”
“칫, 거짓말인 거 다 알고 있네. 이 사람아...... 끊어.”
차는 다시 수인 산업도로를 달리고 있다. 김과장은 자기 차로, 강주의 차는 부소장이 운전을 하고 있다. 비록 부소장이 운전기사는 아니지만 남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니 격세지감에 아득하다.
“그래, 애들은 다른 직원들이 태워주기로 했다면서......”
“허허....... 네, 그런 미녀들을 어디 가까이서 봤겠어요? 서로 태워준다고 난리 치던데요? 허허허......”
“그렇겠지. 부소장은 내일 아침에는 김과장하고 같이 돌아오면 될 거야.”
“네,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통에도 아는 분이 계셨습니까?”
“으응, 그냥 친구야. 자, 이거 갖고 있다가 나중에 써. 김과장도 돈 없을 건데 아마 나중에 외박하려면 돈 있어야 할 거 아냐?”
“지난번에 주신 경비 거의 그대로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안식구 갖다 줘. 부지런히 모아서 나중에 의왕에 코너라도 하나 해야 할 거 아냐?”
“아! 네, 고맙습니다. 이사님께 너무 죄송해서......”
“자, 난 좀 잘게. 그...... 커다란 쇼핑센터 있는 곳으로 가면 돼.”
“네......”
“어서 오십시오.”
“음...... 세 사람인데 어디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줘요.”
“어! 사장님은 지난번에......”
“허허...... 기억하는 모양이네? 마담도 좀 불러주고......”
“아! 네, 알았습니다.”
강주 일행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룸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혜영이 들어온다. 일행에게 인사를 한 후 강주의 옆에 앉으며 일행에 대해 묻는다.
“왜, 혼자 온다더니...... 이분들은 누구예요?”
“으응, 나하고 함께 일하는 분들이야.”
혜영은 강주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김과장을 보고 혹시 실수가 될지 몰라 흘끔거리고, 그 모습을 본 김과장은 대뜸 나서며 익숙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연출한다.
“아! 하하하...... 저희들은 다 여기 우리 이사님 부하직원들입니다. 하하하...... 우리 이사님이 오늘 술을 한 잔 사 주신다고 해서 따라 왔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어머! 그런데 무슨 이사님?”
“으응, 중요한 거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어서 술이나 넣어주고......”
“그래, 알았어. 잠깐만 나와 봐.”
혜영은 옆 룸으로 강주를 데리고 들어가 목에 팔을 감고 입을 맞춰온다.
“흐음...... 쭈우우웁...... 후루룹......”
얇은 천 조각 밑으로 부드러운 혜영의 피부를 느끼며 가는 허리를 끌어안아 목에 매달린 혜영을 뒤로 넘긴다.
푹신한 소파에 뒤로 누운 채 강주에게 부드러운 가슴을 내맡기고 올려다보는 혜영의 입가에 웃음기가 어린다.
“쿡...... 강주씨, 어제 외박했지?”
“으응? 왜, 어떻게 알아?”
“아유...... 옷에서 땀 냄새 나는 거 몰라? 호호호......”
“어어...... 그 정도야? 하...... 거 참...... 요즘 인천에 가 있다 보니......”
“오늘 자고 갈 거지?”
“그럼.......”
“그래, 그럼 내가 나중에 집에 가서 빨아줄게. 아유...... 옷 늘어나. 어디 도망 안 갈 거니까 그만 만져. 호호호......”
“후훗...... 그리고 저 친구들 오늘 아가씨들 붙여서 내 보내야 하니까 준비해 주고.......”
“응, 알았어. 그리고 자기도 일단 아가씨 넣어 줄 거지만, 너무 재미있게 놀면 안 돼. 나중에 집에 가서 검사할 거야. 알았지?”
“킥...... 그래, 알았어.”
차려진 술상과 아가씨들의 교태로 술판은 무르익어 김과장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좌석을 오가며 분위기를 즐기고 분위기가 어색한지 어정쩡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던 부소장도 이내 적응한 듯 아가씨를 품에 안고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서던 강주는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지 전화를 들고 번호를 누르지만 잘 연결이 되질 않는 모양이다.
“아니, 이 친구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내실에 있던 혜영이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는 강주에게 다가와 무릎에 손을 얹으며 옆에 앉는다.
“왜 나와 있어?”
“으응, 혜영아. 너...... 그 박부장이라는 사람 연락처 있지?”
“음...... 그거야 술 갖고 오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건데...... 왜, 그 사람 오라고 하려고? 아이, 부르지 마. 자긴 알다가도 모르겠어. 왜 그런 사람들하고 자꾸 어울리고 그래. 안 어울리게......”
“허허허...... 그게 아니고 뭣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전화나 한 번 넣어 봐. 내가 찾는다고 하고 전화번호 불러주면 전화라도 해 줄 거야.”
“응, 알았어. 내가 연락해 줄 테니까 들어가서 술이나 마시고 있어.”
강주의 궁금증은 다름이 아니라 따로 부탁한 적도 없는데 어깨들이 술집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의아한 것이다. 전날 정필이와 술을 마신 후 기억이 나질 않아 그날 있었던 일과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을지 몰라 그것이 내심 불안한 것이다. 다시 룸으로 들어가니 벌써 난장판이다. 강주가 있어서 그랬는지 비교적 점잖게 놀던 부소장도 어느새 아가씨를 끌어안고 젖가슴을 빨아대고 있고, 김과장은 이미 아가씨 팬티를 벗기고 짓궂은 손놀림을 해 대기 시작해 아가씨와 눈길을 마주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강주는 서둘러 두 사람을 아가씨들과 짝 지워 내보내고 조용한 룸에 혜영과 마주앉아 있다.
“술값은 얼마니? 지난번 것도 안준 모양이던데......”
“피...... 술값은 무슨...... 줄 거면 아가씨들 내보낸 값이나 주든지......”
“그래, 자......”
강주는 지갑을 열어 낮에 회사에서 인출한 돈을 혜영에게 내민다.
“어머! 정말 주는 거야? 그런데 뭘 이렇게 큰돈을 내놔? 이건 그냥 자기가 써. 그냥 해본 소리야. 양아치 같은 놈들 정리해 준 것만도 어딘데...... 호호호......”
“푸훗...... 그럼 내가 이 술집 기도로 취직한 셈이네...... 하기야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이 벌지 않겠냐? 그나저나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하나?”
“그러게...... 다시 한 번 전화를 해볼까? 어머!”
혜영은 다시 전화를 하기 위해 룸을 나서려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정필이의 형인 박부장이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 매부. 어떻게 여기까지 와 있습니까?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고......”
“하하하...... 처남, 오랜만입니다. 아, 그래 이런 사업을 하면서 알려주지도 않고 그러십니까?”
반갑게 악수를 하고 마주앉은 자리에 다시 술상이 차려지고 혜영은 강주와 박부장이 친 처남 매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니 뭔가 박부장이 보는 앞에서 못을 박으려는 듯 강주에게 친한 척을 해 온다.
“자기야, 손님도 오셨는데 아가씨 다시 불러야겠지?”
“으응, 아니 우선 처남하고 얘기 좀 하고 나중에......”
“그럼 나는 자기 갈아입을 옷 좀 사가지고 올게. 마시고 있어요.”
“으응, 그래...... 내 옷 사이즈 알고 있어?”
“피...... 마누라가 서방님 옷 사이즈 모를까? 갔다 올게요. 그럼 드시고 계세요.”
눈도장을 찍듯 박부장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마치 남편을 찾아 온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아내의 모습이다. 혜영이 나간 후 그녀의 의도가 적중했는지 박부장이 강주에게 룸의 출입문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질문을 한다.
“아! 저 마담도 매부가 돌봐주고 게십니까?”
“아아...... 네, 사실은 옛날에 한 회사에서 일한 처지라 뭐, 지금은 동업처럼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뭐, 처남 앞에서 정아 문제도 있는데 조금은 미안하네요.”
마땅히 대답할 말이 궁한 강주는 대충 둘러대고 만다.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제 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매부가 그렇게 처남 매부 해가며 막내 녀석도 챙겨주시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행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하하하......”
“아, 참...... 그러게 아까 정필이한테 전화를 해 보니까 통화가 안돼서 큰 처남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나는 매부가 알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매부가 시킨 거 아니었나요? 그 녀석 나한테는 매부가 용인에 어디 땅을 맡겼다면서 거기 관리하러 간다고 하던데요.”
“아아! 그랬어요? 그게 그 소리구나......”
“왜요?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허허...... 아니요. 전에 정필이하고 여기서 술을 한 잔 했는데, 제가 과음을 해서 뒷날 기억을 못하니까 마담이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뭐...... 용인이 어쩌니 하면서 얘기를 했다고......”
“아아...... 네, 하하하...... 난 깜짝 놀랐네요. 난 또 이 녀석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산 속에서 무슨 짓이라도 벌이고 있나 걱정했네요.”
“뭐, 산속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저도 농사나 지어볼까 하고 그 산을 받았는데, 그나마 저는 요즘 바빠서 가 보지도 못하니 정필이가 가 있으면 오히려 안심이지요.”
“그런데 그 녀석이 제 패거리들을 모두 데리고 갔는지 요즘 신갈에서 제 누나가 반찬 갖다 대기도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패거리요? 아! 그래서 여기도 험궂은 아이들이 안 보이는구나...... 하하하......”
아무래도 정필이가 시키지 않은 짓을 벌이는 모양이다. 박부장이 말하는 투로 보아서는 박부장도 알고 있는 듯 보이지만 굳이 캐물을 일도 아니니 그저 넘어간다. 술의 납품문제로 구역다툼을 벌이는 입장에 갑자기 똘마니들을 데리고 산중으로 숨어들었다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는 불을 보듯 훤하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어차피 이들은 강주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이들이니 그 안에서 영화를 찍든, 예술을 하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나저나 여기가 매부가 운영하는 곳이면 앞으로 제가 아이들을 붙여서 잘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저 마담도 제가 정아를 보듯이 지켜 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박부장도 강주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는 듯 바로 반대급부를 제시해 온다.
“네, 처남 정말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사업은 잘 되십니까?”
“뭐, 사업이랄 것도 없지요. 남의 일 대신 해주고 커미션 먹는 일이니 밑에 있는 동생들 밥벌이나 시키는 셈이지요. 참, 매부가 그런 계통 일을 하시니까 혹시 술 한 차 정도 어디 소화 시킬 데 없을까요?”
“술은 왜요?”
“아! 제가 관리해주는 곳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데 요즘 돈이 안돌아서 이게 현찰이 아니고 술을 처분해서 쓰라니까 갑자기 어디 처분할 곳도 마땅치 않고......”
“아! 그럼 내가 약도를 그려 줄 테니까 의왕으로 넘기세요. 내가 전화는 해 둘 테니까요. 이곳도 내가 관리하는 곳이니까 바로 결재를 해드릴 겁니다.”
술을 대량으로 공급 받는 것도 용이한 일이 아니니 강주야말로 오히려 잘 된 일이다. 포켓을 더듬어 종이를 꺼내 절반으로 잘라 약도와 전화번호를 적어 박부장에게 전해준다.
“와...... 이거 매부를 만나니까 한 방에 일이 해결돼 버리네요. 하하하......”
나머지 쪽지에 낮에 적어 둔 차번호가 눈에 들어와 박부장을 바라본다. 변호사에게 갈 것도 없이 박부장이라면 선이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기로 한다.
“아! 처남, 혹시 주변에 있는 경찰 중에 선이 닿는 사람들 좀 있습니까?”
“우리 지역에 있는 친구들은 많이 있지요. 왜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아! 이 차 번호 좀 조회를 해 봤으면 좋겠는데...... 뭐 하는 친군지......”
“아, 차적 조회요? 그거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이리 주세요. 그런데 뭐 하는 사람인지까지 알아내려면 하루정도 시간을 주셔야 할 겁니다.”
“아, 그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박부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차번호를 불러주고 이내 혜영이가 들어와 강주의 곁에 앉는다. 박부장이 대뜸 혜영이에게 말을 건넨다.
“아, 이거 참......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 매부하고 실제로 처남매부는 아니니까 저 너무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하하하......”
“어머! 호호호...... 아유, 참...... 부장님도...... 네. 앞으로는 잘 부탁드립니다.”
“자, 혜영아. 이제 아가씨들 오라고 하고 본격적으로 한 잔 마시자.”
“응, 알았어. 나도 같이 마실 거야. 그래도 괜찮지?”
“으응, 그럼......”
강주는 혜영의 마음을 알아채고 박부장에게 거듭 동업을 강조하며 하모니 카페의 안전에 대해 부탁을 한다. 혜영은 지역 안에서 실세로 거듭나고 있는 사내도 강주에게 매너를 갖춰 대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더 강주에게 매료되어 간다.
술자리가 이슥하여 일어서기로 하고 룸 밖으로 나오니 덩치가 커다란 친구들이 박부장을 보고 절을 한다. 아마 올 때부터 에스코트해서 함께 온 모양이다. 경호해 주는 사람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면 부럽기도 한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 생존경쟁 속에서 도태당하지 않고 위치를 찾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저러는 것일 테니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그 외에는 썩 다를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주는 오늘도 술이 많이 취하는지 혜영에게 부축을 받으며 아파트로 들어선다. 그나마 혜영의 키가 커 부축은 되지만 가냘픈 몸매로 강주를 부축하자니 죽을 지경이다.
“아유, 그러게 작작 마시라니까......”
“어허, 이것이 서방님한테 작작이 뭐야? 작작이......”
“어헝...... 그러니까 자기야...... 정신 좀 차려 봐. 나는 짐도 잔뜩 들고 있는데, 나한테 매달리면 어떻게 해?”
강주는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드러눕고 혜영은 소파 밑에 앉아 강주의 양말부터 벗긴다. 실상 강주는 전혀 취하지도 않았지만 다음날 출근 걱정도 없으니 오롯이 밤을 함께 보낼 여자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일 게다. 그간 섹스에 굶주린 것도 아니지만, 하루하루 피아를 가늠하기 어려운 힘겨운 신경전과 숨 가쁜 암투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의 귀가만을 기다려주며 냄새나는 속옷과 양말을 마다않고 챙겨주는 그런 여자의 정에 더욱 목말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나날이 더해지는 삶의 무게를 안주 삼으면 저녁 무렵 포장마차의 독주도 오히려 싱거울 뿐이니 한 입에 털어 넣어 버리고 입가를 훔치는 우리네 가장들이 비뚤어진 넥타이도 멋스럽게 바람에 휘날리며 휘적휘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통닭집도 있고, 피자집도 있어 아빠의 귀가를 기다리다 잠들었을 꼬마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결국 마누라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라 주머니의 동전을 더듬어 정작 아이들은 좋아하지도 않을 그런 과자 부스러기 몇 봉지를 사들고 초인종을 누르게 되는 그런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킥킥...... 아이고, 간지러워......”
“어머! 뭐야? 자기...... 안 취했지? 이 씨...... 이리 와.”
혜영은 양말을 벗기다 말고 강주의 배 위에 올라타 입술을 부딪쳐 온다. 팔을 들어 허리를 끌어안으니 한줌에 들어온다.
“쭈우웁...... 흐으읍...... 후루룹......”
“쿡...... 혜영아, 우리 여기가 시원한데 여기서 하자.”
“아유, 몰라...... 우선 씻기나 해. 냄새나 죽겠어.”
강주는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털어내며 에어컨 바람 방향에 맞춰 서서 혜영을 돌아본다.
“혜영아, 아까 옷 사러 간다더니 어디 있어?”
“푸훗...... 뭘 입으려고 그래. 보기 좋은데 그냥 그대로 있어. 호호호......”
“킥...... 그럼 그럴까?”
혜영도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강주가 앉은 소파로 와서 나란히 앉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앉아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그 모습 그대로 선남선녀라 할 것이다. 이리저리 리모컨을 누르며 채널을 찾는 강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좆을 만져 세워준다. 자연스럽게 혜영의 젖무덤은 강주의 손에 들어와 있다.
“흐으응...... 아야...... 자기야, 살살 만져.”
“킥킥...... 고무공 같다. 야...... 너 이거 가짜 아니야?”
“피...... 미쳤나 봐......”
혜영은 강주의 좆을 입으로 물어 빨아주고 강주는 허리를 내밀어 발기한 좆을 최대한 혜영의 입으로 밀어 넣는다.
“후루룹...... 턱, 턱......”
“흐윽, 으으흑...... 살살해......”
한 번씩 흔드는 손에 불알이 부딪혀 쾌감에 섞여 통증이 올라온다.
혜영은 미안한 듯 좆을 입에 문 채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웃고, 그 모습이 우스운지 강주는 뒤로 넘어간다.
“흐으윽, 아...... 하하하......”
강주도 몸 위에 혜영을 올려놓고 혜영의 다리를 벌려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민다.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엉덩이를 양손에 말아 쥐고 음순을 입술로 쓸어주며 혀를 내밀어 맛을 본다. 부드러운 속살이 혀에 붙어 따라다니며 이슬을 토해낸다.
“하으윽...... 허어엉......”
한참이나 빨아주니 자극을 견디기 힘든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앙탈을 부리는 혜영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다리를 벌려 배 위로 올라간다. 혜영은 몸으로 강주의 체중을 느끼며 행복에 젖는다. 다리를 최대한 옆으로 벌리며 강주의 좆을 쥐어 비경으로 인도한다.
“흐으으윽...... 아아아......”
혜영의 고운 털이 강주의 배 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몸을 누인다. 혜영은 팔을 둘러 강주의 목을 끌어안고 강주의 팔은 혜영의 어깨 밑으로 넣어 어깨를 붙잡고 있다. 밑에서 치고 올려도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으니 잠시 후 몰아칠 폭풍을 예견하게 해 준다.
“하으으윽...... 강주씨, 살살 해야 돼.”
“후훗, 걱정하지 마. 내 마누라를 아프게 하겠어?”
좆을 비경에 꽂아둔 채 눈을 마주치고 나누는 대화는 한결 더 분위기를 색스럽게 몰고 가 혜영을 부끄럽게 한다.
“피...... 내가 왜 자기 마누란데......”
강주는 허리를 살며시 놀리기 시작한다.
“후우욱...... 이래도...... 후욱, 아니야? 후욱, 후욱......”
“아흑, 아흑......”
“빨리...... 후욱...... 말해...... 후욱......”
“하악, 하악...... 알았어....... 여보...... 하악, 하악......”
이젠 혜영도 충분히 준비가 된 것 같아 허리놀림에 무게를 실어간다. 더욱 깊숙이 강주가 치고 들어오니 혜영의 고개가 꺾이고 눈자위가 넘어간다. 그러나 강주의 팔에 어깨를 붙잡혀 도망갈 곳도 없는 처지니 치고 올라오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악, 하악, 하악......여보......”
다리를 한껏 벌려 사타구니를 마주쳐간다. 강주는 혜영의 귓불을 이로 물어주며 침을 적시고 허리 밑으로는 이미 질퍽해진 곳으로 좆을 부딪쳐 가니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얼마나 허리를 놀렸는지 시간도 모를 즈음 강주를 끌어안은 혜영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를 감아올려 강주를 꼼짝 못하게 하더니 이내 경련을 일으킨다.
“아흐흐윽...... 난 몰라...... 흐흐흑......”
고개를 들어 혜영을 보니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밀고 올라오는 희열이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다. 스르르 힘이 풀리는 혜영의 다리를 옆에 두고 혜영의 기분을 깨지 않도록 천천히 허리를 놀려 강주도 나락을 향해 달려간다.
“흐윽, 흐흐흥...... 흐윽......”
혜영의 눈물을 혀로 핥아주며 잔뜩 발기한 좆을 음순까지 꺼냈다가 다시 질벽을 긁으며 진입하길 여러 번 강주도 절정에 다다른다.
“흐으윽...... 울컥...... 꿀럭......”
“하윽, 여보...... 여...... 보...... 사랑해요......”
강주는 혜영의 사타구니를 몸으로 문질러 가며 여운을 끌어주고 고개를 바로잡아 눈을 마주친다.
“후우우우...... 혜영이 정말 내 마누라지?”
혜영은 달뜬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에...... 강주씨 마누라예요......”
“우리 여기서 그냥 잘까? 뭐, 침대까지 갈 필요도 없겠다. 후훗......”
강주는 혜영의 몸에서 내려와 소파 구석으로 몸을 뉘고 혜영은 몸을 돌려 강주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는다. 서늘한 에어컨 기운에 혜영의 피부가 더운 기운을 발산한다.
“아우우우우...... 잘 잤다.”
벌써 날은 훤하게 밝았다. 워낙 새벽에 들어와 사랑을 나누고 곤하게 잠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혜영은 강주의 옷을 다림질 하고 있어 바로 강주가 꿈꾸는 행복한 광경이다.
“이제 일어났어요? 배고프지 않으면 더 자요. 천천히 가도 된다면서......”
“그 옷은 뭐야? 내 옷 아니잖아?”
“피...... 자기 옷이 아니면 우리 집에 남자 옷이 어디 있어? 어제 입은 옷은 아직 세탁기 안에 그대로 있어. 새로 하나 사왔으니까 오늘은 이거 입고 나가.”
“킥...... 역시 마누라가 최고라니까......”
“피...... 그럴 때만......”
혜영이 덕에 옷을 갈아입으러 갈 필요가 없으니 바로 인천으로 향한다. 희숙이 정도면 능히 점장교육을 감당할 수 있지만 기존의 틀에 익숙해져 있는 영진유통의 점장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또한 걱정이다. 어리석은 이들은 온몸의 가시를 돋운 고슴도치처럼 괜한 피해의식에 젖어 들이댈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만 흐를 일이니 물이란 담는 그릇의 모양대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오히려 시간을 두고 메마른 그릇을 충분히 적시어 줄 것이다.
혜영과 한 번의 교감을 다시 나눈 후 촉촉해진 눈망울로 배웅하던 혜영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의 고향은 여자일 수밖에 없으니 헤어지길 아쉬워하며 배웅하던 그 모습이 삼삼히 눈에 어린다. 아침에 나선 곳으로 다시 저녁에 발길을 되잡아갈 수 없는 것은 우리네 삶이 그러할 것이니 한탄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이 공간을 우리의 천국으로 만들어 행복을 누려야 할 터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미명 아래 매일을 지옥 같은 갈등과 반목 속에서 아귀다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돌아봐야 할 일이다.
“아! 이제 오십니까? 이사님.”
“네, 부장님......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외출하기 좋은 날씨지요?”
“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그런지 말귀는 빠른 모양이다.
“음...... 지금 교육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네, 아주 호응이 좋습니다. 뭐...... 이런 교육이 신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강사가 미모가 출중해서 그런지 아주 고분고분 잘 따라 합니다. 허허허......”
“아! 그래요? 하하하...... 그거 천만다행이네요.”
역시 예쁜 그릇에 담긴 물이 마시기도 좋은 모양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회의실 창문너머로 바라보니 칠판에 잔뜩 도식을 그려놓은 채 열심히 강의를 하는 희숙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사이를 오가며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보라의 모습도 눈에 띈다.
“자, 그럼 나갑시다. 인감은 가지고 있지요?”
“네, 여기 있습니다.”
황부장과 등기소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제 미경이가 떠나던 모습이 떠올라 넌지시 물어본다.
“음...... 혹시 황부장 부인은 회장님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 네...... 저는 잘 모릅니다. 뭐, 별 일 아닌 것 같던데요? 무슨 클럽인가......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하다보니까, 거의 매일 회장님하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요즘처럼 여자들 개판으로 사는 세상에 차라리 회장님하고 다니면 안심이고 좋지요. 뭐...... 그리고 가끔 나름대로 용돈도 만지는 모양이더군요.”
“아...... 그렇군요.”
실소가 터질 뻔 했다. 역시 황부장도 상류층에 포함되는 인간은 못되는 모양이다. 그저 마누라를 회장의 개로 풀어놓고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에 만족하고 살았던 모양이니 다시 미경이의 행태가 궁금해진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무언가 방향타를 제대로 잡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어제도 이백을 수령하기 위해 갔던 경리파트에서 삼백을 지급 받았는데 이것 또한 가끔 포켓에 꼽아주던 음식 부스러기는 아닌지 바짝 머리카락이 곤두서 일어난다.
“네, 소장님.”
“지금 하는 일 모두 중단하고...... 음...... 우선 점심식사부터 해야 되겠네. 천천히 식사하시고 의왕매장 소장을 태워서 함께 용현동 본사로 들어오세요. 나도 시간 맞춰 들어가겠습니다.”
“본사 어디로 가 있을까요?”
“아! 그렇지. 아직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아니, 전에 총무부 김과장 본 적 있잖아? 그 양반한테 가 있어요.”
“네, 네...... 아, 그분이 거기에 있습니까? 알았습니다.”
짧은 휴가기간에 계약을 재조정하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역시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이 유용할 터이니 희숙이를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회장과 강주 일행은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의 한식당으로 걸음을 옮기고 황부장은 전화를 하면서 걷고 있는 강주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느라 함께 뒤처지게 된다.
“저...... 이사님.”
“네, 뭡니까? 말씀하세요.”
잔뜩 주눅이 들어 따라 걷고 있는 황부장에게 다시 본래의 안색을 회복한 강주가 전화기를 접으며 무심히 대꾸를 한다.
“저...... 저는 지금 집에 가서 바로 필증을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뭐, 급한 것도 아닌데 그걸 서둘러요? 식사나 하고 천천히 가세요. 어차피 오늘은 내가 바빠서 등기소 갈 시간도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은 회장님 뵐 면목도 없고...... 또 집사람 모르게 필증을 갖고 오려면......”
“마누라가 그렇게 신경 쓰입니까? 허허...... 참, 나중에 물으면 뭐라고 할 거요?”
“글쎄요. 그게......”
“뭐, 도리 없잖아요? 경마해서 날렸다고 하쇼. 나한테 부탁해서 내가 집은 다시 잡아줬다고 하고...... 입을 맞춥시다. 아파트는 몇 평이요?”
“아! 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알았습니다. 아파트는 서른 네 평인가...... 그렇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래도 식사나 하고 갈 일이지......”
“아닙니다. 지금 밥 생각도 없습니다.”
하기야 집을 날리는 처지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면 그것도 온전한 정신은 아닐 것이다. 멀리서 앞서가던 회장과 부장의 아내 미경이도 걸음을 멈춘 채 두 사람을 돌아보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나중에 사무실에서 봅시다. 괜히 사장님 마주치기 곤란할 것 같으면 어디 피해있던지......”
“네, 제가 알아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황부장은 멀리 서있는 회장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황급히 주차해 둔 곳으로 뛰어가 버린다. 천천히 회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주를 향해 미경이는 앙탈을 부리고 회장은 애써 외면하며 웃음을 짓는다.
“아이 참...... 이사님. 또 저이한테 뭐라고 그랬지요?”
“어허..... 참, 나...... 아무 소리도 안 했어요. 허허허...... 아, 회장님 뭐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호호호...... 그래, 얘...... 이사님은 이제 아무 소리도 안 하기로 약속했는데...... 뭘 그래?”
“그런데 저이, 왜 밥도 안 먹고 그냥 간대요?”
“아! 지금 밥 생각도 없고 브리핑 준비할 게 많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이제 저하고 손발 맞춰서 함께 일하기로 했으니까 미경씨도 괜한 일에 마음 쓸 필요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겠습니다. 하하하......”
입을 잔뜩 내민 채 흘겨보는 미경이의 허리를 돌려세워 걸음을 재촉하고 곧 식당으로 들어선다. 한식당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다다미가 깔려있어 무더위 중에도 무척 시원한 기분이다.
한 자리에 모여 앉은 세 사람 모두가 문제를 해결한 뒤의 차분한 표정과는 관계없이 속으로는 나름대로 쾌재를 부르고 있으니 동상이몽도 이런 경지가 따로 없다.
미경은 회장의 후광으로 남편인 황부장이 무사할 수 있었으니 이 기회에 어떻게든 강주를 잠자리로 끌어들여 제 편을 만들기 위해 여념이 없을 것이고, 회장은 사람을 잘 가려 쓴 덕에 짧은 시간에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으니 남편보다 우수한 자신의 경영능력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쾌재를 부를 사람은 다름 아닌 강주일 터, 황부장에 대한 건은 이미 회장과 더 이상 거론치 않기로 약조를 했으니 거래처 계약이야 수정하면 그뿐이고, 점장들의 점두코너 수입은 매일 보고를 받아 체크하면 그뿐이니, 이억을 호가할 용현동의 아파트 한 채가 고스란히 떨어지게 생겼다. 물론 추후 경과를 보아 다시 돌려 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집을 처분하지 않는 한 그간 착복한 돈을 일거에 마련할 수도 없는 일이고, 처분한다 한들 그 돈은 강주의 돈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목을 걸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점점 단단한 올무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뒤인 강주의 입가에는 그저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을 뿐이다.
“참, 이사님...... 지난번에 부탁하셨던 그 직원은 어떻게 됐나요?”
식사를 모두 마친 후 회장은 내친 김에 강주를 장악하고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미경이 앞에서 과시하듯 부소장의 일을 물어온다.
“아! 네, 회장님 덕분에 벌금형으로 바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제가 회장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저도 회장님께 그 원수는 따로 갚아야 하겠지요? 하하하......”
“어머! 원수요? 호호호......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본사에 와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뒀습니다. 그 친구하고 의왕에 있는 우리 여직원도 곧 내려올 겁니다. 이제 가서 만나 봐야지요.”
“어머! 바로 가시게요? 아이 참, 제가 시간 좀 내달라고 그랬잖아요?”
“허허...... 잘 하면 달려들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미경씨 얘기 들어드릴 시간은 있습니다.”
슬쩍 회장을 바라보니 회장이 강주의 말을 거들고 나선다.
“어머! 참, 내 정신 좀 봐. 이사님...... 나 오늘 헬스클럽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이사님, 나중에 봐요. 얘, 미경아, 나 먼저 간다.”
“참, 그리고 오늘부터 그 두 친구 며칠 간 일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비용 겸해서 이백 정도 인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건 경리파트에 얘기해 둘게요. 아유, 참...... 이사님께 여러 가지로 너무 죄송하네요. 의왕에 있는 그 직원이 약혼자라고 하셨잖아요? 휴가 중에 두 분이서 어디 여행도 못가시고......”
“허허허...... 이렇게라도 보면 되는 거지요. 뭐......”
처음 회장을 만났을 때 그저 흘려 얘기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회장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고 강주도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미경은 자연스럽게 강주에게 다가와 팔짱을 걸며 가슴을 비벼온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기가 물 흐르는 듯하다.
“어디로 갈까?”
“아까 거기 비치호텔 어때요? 이사님.”
“그러지.”
이제 회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교감을 이룬 상태로, 비록 그녀의 전위부대에 민희가 있다는 것 때문에 썩 달가운 입장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장의 본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일 터이니 강주도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회장을 미워하기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물에 뛰어들어야 하고 수렁에 빠진 이를 건지더라도 한 발은 빠뜨려야 할 일이다. 황부장의 아내 미경이는 또 어떤 내력을 가진 인물인지 미경이에게 빠져 보기로 한다.
“그래, 황부장이 전화로 뭐라고 하던데?......”
“호호...... 놀라긴 내가 더 놀랐지. 뭐야......”
“왜?”
강주는 천천히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꼭지를 돌려 물을 맞는다. 미경이도 따라 들어와 강주를 뒤에서 끌어안고 젖무덤을 비벼오니 등으로 느끼는 가슴이 풍만하다. 물속에서도 그녀의 향기는 강주를 자극하기에 충분한지 이미 강주의 몸은 반응하기 시작한다.
“최강주 이사라고 해서...... 나는 자기 무역 쪽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
“쿡쿡......”
“그래서 바로 언니한테 전화했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봐 달라고......”
강주는 돌아서 미경의 젖무덤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부딪치고 미경은 기다렸다는 듯 강주를 들이마신다. 아침부터 애를 태우던 강주를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한 손으로는 적극적으로 강주의 분신을 쓸어 주무른다.
“흐읍...... 쭈우웁....... 후루룹......”
“으흐으음....... 으흥...... 흐으응......”
“후훗...... 미경아. 물속에서 해 본 적 있어?”
“어머! 미쳤어. 쿡쿡......”
강주는 물을 틀어 욕조를 채운다. 샤워꼭지에서도 소나기가 내리고 두 사람은 그 비를 맞으며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이거...... 나한테 주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니?”
강주의 손은 미경의 사타구니를 흩고 지나가며 조금씩 자극하고 그때마다 미경은 움찔거리며 강주를 끌어안는다.
“아이 차암...... 나빠요...... 민희하고 경주만 예뻐해 줬지? 치......”
“허허허...... 너희끼리는 비밀도 없냐? 자, 숙여 봐......”
강주는 쏟아지는 물을 등에 맞으며 미경이를 돌려 잡는다. 발기한 좆이 꺼떡거리며 미경이의 풍만한 엉덩이를 찔러댄다. 음순을 문질러 길을 찾고 천천히 밀어 넣는다.
“뭐...... 말 안 해도 다 알지. 호호호...... 허어억...... 살 사알......”
“후욱, 그럼 우리...... 후욱, 지금 이러고...... 후욱, 있는 거...... 황부장도 알겠네?...... 후욱, 후욱.”
“아이 차암...... 하아악...... 왜 그 사람...... 하악, 으흑...... 얘기는 꺼내고...... 그래? 으으흥......”
“후우욱...... 후욱...... 아...... 씨바...... 황부장 돌겠네...... ”
강주가 엉덩이에 몸을 싣고 팔을 뻗어 젖을 주무르자 미경이는 욕조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을 주며 몸을 지탱한다.
엉덩이는 더욱 강주에게 내밀어져 강주는 젖을 주무르며 허리를 더욱 빠르게 놀린다.
“아학, 하아아악......아흑, 침대로 가서...... 흐윽, 해요......”
“가만히 있어 봐. 후욱...... 후욱.”
회장 주변의 인물들에게선 민희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자꾸만 변태적인 섹스를 갈구하게 된다. 지금도 미경이와 섹스를 하면서 황부장의 이름을 들먹이며 흥분을 몰아간다. 눈앞에 샴푸를 한 줌 짜내 사타구니에 뿌린다. 일어나는 거품과 함께 비눗물이 바닥을 따라 흐르고 강주는 손가락으로 항문을 자극한다.
“하윽, 아야...... 뭐야? 이사니임...... 거기 아니야......”
“후욱, 가만히 있어...... 후욱, 쑤욱......”
이내 손가락을 빼며 좆을 문지르다가 힘차게 밀어 넣는다.
“쑤우우욱......”
“하아아악....... 으흐으으응......”
이제 회장 주변 인물들의 행동반경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니 보통의 섹스로는 성이 차질 않아 항문을 겨냥하고 아예 욕실에서 일을 벌인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빗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기분은 마치 비 오는 날 나체로 길을 걷는 듯 그동안 신경을 써 온 모든 일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물을 입으로 받아 뱉어내고 엉덩이를 철벅거리며 마주쳐간다.
“하윽...... 나 이상해져......”
“후욱...... 쑤욱......”
두 사람의 사이에 사랑이 없어도 쏟아지는 물줄기가 찰박거리며 채워주니 그 또한 위로가 되고, 서로가 마음 없이 붙어있어 마치 짐승처럼 나누는 교미에도 부끄러움을 씻어준다. 어느덧 욕조에 물이 채워져 강주는 항문에서 좆을 꺼내고 그녀의 항문은 아직도 아가리를 벌린 채 벌건 속살을 보여준다.
“쭈우웁...... 후루룹...... 으으흠......”
입을 부딪쳐 나누는 타액으로 서로의 갈증을 씻고, 끌어안아 맞잡은 두 손은 서로에게 흉기가 되어 아프게 자극을 더한다. 미경이를 욕조로 밀어 넣고 다시 엉덩이를 잡아 마주친다. 좆과 엉덩이사이의 물이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며 묘한 자극을 더해준다.
마음과 달리 새로운 자극 때문인지 오래지 않아 이내 사정에 달하고 만다.
“하으으으윽...... 울컥...... 울컥......”
“하으응...... 으흑, 하으윽...... 여보......”
두 사람은 욕조 속에서 출렁이는 물의 자극을 느끼며 입을 맞춰 간다. 강주의 손은 쉼 없이 미경이의 젖가슴과 사타구니를 공략하고 미경은 강주의 좆을 흔들어 남아있는 좆물의 한 방울까지 짜내려고 하는 모양이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욕조 안에서 걸치듯 기대어 있다. 강주는 미경이의 젖무덤을 베개 삼아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고 미경은 강주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애정을 표시한다. 물 위로는 미경이의 질에서 흘러나온 강주의 분신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후훗, 내가 좋았어? 황부장이 좋았어?”
“피...... 남자들은 꼭 그런 걸 물어 보더라?...... 당연히 자기가 좋았지.”
“우리 사장도 물어보든?”
“쿡쿡...... 이사님도 벌써 다 아는가 봐? 호호호......”
“염병...... 사방팔방 죄다 동서로구먼...... 하하하...... 야! 너, 전화 온 모양이다.”
미경이는 대강 물기를 닦고 전화를 받으러 나간다.
“으응, 자기야?”
“......”
“나, 지금 여기 송도비치 근처에 있는데......”
“......”
“백만 원?...... 아유, 갑자기 백만 원이 어디 있어?......”
“......”
“알았어. 그럼 이쪽으로 와. 내가 바로 앞에 있을 테니까......”
“뭐야? 황부장이냐? 에이 씨바...... 쉴 틈이 없어요. 쉴 틈이......”
“호호호...... 아유, 미안해요. 이사님. 다음에 오래 오래......”
대충 물기를 말리고 밖으로 나와 미경이와 헤어져 차에 올라탄다. 페달을 밟아 가던 중 아무래도 황부장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궁금증을 자극한다. 황부장이야 지금 등기필증 때문에라도 심정적으로 마누라를 만나려 하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속내를 감추는 것 같아서 차를 다시 돌려 길모퉁이에서 바라본다.
잠시 후 비치호텔 앞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한 대 들어서더니 젊은 놈들 몇이 내려 미경이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앞뒤로 포옹을 한다. 몸을 터치하는 것도 보통의 기준을 넘어서 여러 놈 모두 보통사이가 아닌 것 같다.
“뭐야? 저거, 한두 놈도 아니고 동시에 여러 놈하고 저러는 모양인데...... 야, 미경이 저것도 보통 물건 아니네...... 그러면 황부장도 말짱 호구라는 말 아냐? 씨바...... 어쩐지 항문도 처음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더라......”
강주는 호기심이 발동되는지 차번호를 적어 포켓에 넣어둔다. 종전 같으면 전혀 소용없을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젠 제법 알고 있는 변호사들도 있으니 어떻게든 알려고만 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내 미경이는 그 차를 타고 젊은 놈들과 함께 사라진다.
용현동 본사에 도착하니 벤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부소장과 희숙이는 이미 사무실에 도착해 있는 모양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려다 매장이 궁금해 슬쩍 들여다본다. 매장은 불과 며칠 만에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 상황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점장의 각오를 보여준다.
한여름 무더위에 긴 소매의 옷을 입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추운 겨울에 짧은 옷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철을 알아 절기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돌아오는 계절에 대비하여 준비할 줄을 알 터이니 그제서 비로소 어른이라 할 만 할 것이다.
경영자들이 운영하던 회사의 폐업이나 정리를 염두에 둘 정도로, 방만한 운영을 해왔던 황부장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추운 겨울이 닥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격이니 이제 최강주라는 된 서리를 준비도 없이 맞게 되고, 하릴없이 빈손에 호미를 쥔 채 언 땅만 긁고 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아! 이사님, 이제 오십니까?”
황부장이 내려와 강주를 맞는다. 강주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 모양이다. 뒤따라 김과장과 부소장도 내려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강주를 바라본다.
“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허허허...... 자, 올라갑시다. 지금 사장님 계신가요?”
“아, 아...... 네, 계십니다.”
“자, 그럼 사장님께 먼저 인사부터 드리고 나올 테니까 잠시 후에 봅시다. 황부장은 따라 오시고......”
“네, 네......”
사장은 강주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환대를 해준다. 이미 회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있는지 황부장을 보는 눈초리가 곱지는 않다.
“음...... 뭐, 별일 아닙니다. 황부장이 경험이 미숙하다 보니 일부 실수한 것이 있었지만 문제 삼을 만 한 일은 아닙니다. 이제 곧 원상회복 될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여기 황부장도 그간 고생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일에 그 정도는 사장님께서 모른 척 해 주셔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사장의 아량에 호소하고 황부장을 배려하는 척 넘어가 버린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린 후에 뿌리가 과연 잘 내리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자꾸 들춰 본다면 그 농사는 필경 망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저 덮어두고 바람이 들지 않도록 그야말로 꼭꼭 밟아서 싹이 틀 때까지는 보호해 줘야 할 일이다.
“아! 네, 뭐...... 그 정도라면 물론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황부장은 앞으로 최이사님 보필하면서 잘 좀 배우도록 해. 사람이 참, 그렇게 안 봤더니 어수룩해 가지고...... 그럼 이사님 향후 계획은 어떻게 갖고 계신지......”
황부장은 비록 핀잔을 들어도 이 순간 강주가 아무소리 않는 것이 더 없이 고마운 일이니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백척간두가 이 자리요, 대문을 열고 나가면 저승길이니 그저 강주의 처분에 따를 뿐이다.
“체제에 큰 변화는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황부장이 혼자 커버해 나가기엔 다소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스핀아웃을 약간 도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핀아웃이라면...... 그건 골프에서 쓰는 말이 아닌가요?”
“아! 네, 그렇기도 하지요. 공을 갖고 하는 경기에서는 외부로 공을 보낼 때 그렇게 쓰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드린 말씀은 일종의 독립운영체제를 말씀 드린 겁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까 현재 황부장이 결재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영업, 상품, 총무 등등 분야별로 나눠서 각과의 과장들이 전결을 할 수 있도록 전결규정을 새롭게 정하면 굳이 체제 개편까지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 네......그게 효과적일 수 있겠군요.”
“물론 사장님이나 황부장이 훨씬 깊이 있고, 보다 포괄적인 결정을 하시겠지만 역시 일이란 현장 감각이 중요하거든요. 각 과 과장들의 책임 하에 실무진에서 훨씬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것들까지 상부의 결재라인을 기다리다간 경쟁회사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전결에 관한 사항들은 제가 둘러보고 추후에 사장님께 결재를 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황부장이 독식해 오던 중요한 안건들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강주의 눈 밖에 날 짓을 더 이상 하지는 않겠지만 불여튼튼 단속을 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점장들은 일단 교육을 통해서 기강을 잡도록 하고 일반직원들은 제가 관리하는 의왕으로 o.j.t를 보내든지, 아니면 그쪽 직원들을 이리 파견을 하든지 해서 교류를 하게 하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아! 네, 그렇게 합시다. 그게 좋겠군요. 자, 그럼 황부장이 모시고 나가서 직원들에게 소개를 해 주세요. 자주는 못 오실 텐데 직원들이 몰라보면 그것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발코니로 나오니 김과장과 부소장이 따라 나온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이사님이라니요?”
“허허...... 그렇게 됐습니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 김과장님께서는 기량을 많이 발휘하셔야 할 겁니다. 이제는 남 눈치 보지 마시고 전결을 확대해 드릴 테니까 능력발휘를 한 번 해 보세요. 기존 우리 회사 전결규정을 참고해서 전 부서 것을 새로 하나 작성해 보세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답답한 적도 많았습니다. 허허허......”
“그리고 부소장은 앞으로 점포를 맡을 때까지 의왕 소장하고 같이 거래처 계약을 재정비하도록 하고...... 참, 그런데 같이 안 왔어?”
“아니요. 아까 잠깐 나가던데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입니다. 와...... 이거 특공대원이라도 된 기분인데요. 하하하......”
“허허...... 뭐, 틀리지 않지. 그리고 두 사람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지요? 영통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와...... 좋지요. 이거 이사님하고 술 마시는 게 얼마만입니까? 하하하......”
“자, 그럼 나는 경리파트에 다녀 올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요.”
복도에서 영통 하모니 장마담에게 전화를 건다. 벌써 가 보려고 마음을 먹은 터에 이런 저런 일로 늦어지니 은근히 보고 싶기도 하다.
“응, 장마담?......”
“누구세요?......”
“나야. 최소장.”
“어머! 또 장마담이라고 한다. 정말 이름 안부를 거예요?”
“큭...... 야, 귀청 떨어지겠다. 소리는...... 하하하...... 오늘 한 잔 하러 갈까 하는데, 가게에 있을 거지?”
“어머! 오늘 올 거야? 나야 항상 가게에 있지. 그럼 혼자 와요. 또 지난번처럼 양아치 같은 애 부르지 말고......”
“하하하...... 알았어. 참, 그리고 그 후에 또 행패 부리거나 하지 않던가?”
“으응, 역시 자기 말이 통하는지 그 뒤로는 안 오던데......”
“으응, 그래?...... 알았어. 나중에 보자.”
정필이에게 전화를 한 적도 없는데 마담의 말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니 다행한 일이다. 궁금한 것은 가서 알아보면 될 일이고 서둘러 경리파트로 걸음을 옮긴다.
“나, 최이사예요. 회장님 전화 안 왔던가요?”
“아! 네, 이사님. 여기 있습니다.”
“뭐야? 이거 삼백만 원짜린데, 나는 이백만 원 신청했는데......”
“네, 나중에 다시 삼백을 드리라는 연락이 왔었어요.”
“음...... 그랬어? 알았어요.
돈을 수령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니 어찌 알고 왔는지 보라가 희숙이를 따라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주를 맞는다.
“어어...... 보라야, 너는 여기 웬 일이니?”
“호호호...... 오빠, 깜짝 놀랐죠?”
“반갑습니다. 이사님...... 보라도 의왕에 코너 맡아서 시작했어요. 오늘 이사님이 불러서 간다니까 따라 온다고 해서......”
“허허...... 참, 너 마침 잘 왔다. 온 김에 희숙이하고 같이 노가다 좀 해야겠다. 그럼 의왕은 아가씨한테 맡겨두고 온 거야?”
“후훗, 네...... 제가 있는 것보다 더 잘 하는데요. 뭐......”
보라와 희숙이가 와 있으니 사무실이 다 훤해진다. 팔등신 미녀들이 둘씩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모두들 강주를 부러워하는 눈치지만 이사와 함께 있으니 흘끔거리며 쳐다볼 뿐이다.
“자, 그럼 오늘은 업체 계약조건을 확인하고 불러들일 업체를 추려내 봐. 황부장님은 기존 계약자료 여기 이 친구들에게 전부 주세요. 김과장님은 업무연락 띄워서 내일 점장회의 소집하고, 희숙이는 내가 자료를 줄 테니까 내일 점장 교육을 맡아서 진행해 봐. 부소장이 도와주고......”
“어머! 제가요?”
“그래, 한 번 해 봐. 다 배운 거니까 기본적인 것들만 짚어주면 돼. 그리고 부소장이 도와 줄 거고...... 보라, 너도 시간 되면 계속 도와주고......”
“네, 알았습니다. 오빠, 나는 일당 줘야 돼요. 오빠 직원 아니니까...... 호호호......”
“오냐, 알았다. 하하하...... 자, 그럼 시작해 봐.”
이제 본격적으로 영진유통의 수정작업이 시작되었다. 사연도 많고 말도 많았지만, 어쨌든 탈 없이 상륙을 한 듯 보인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연기를 내뿜으며 울리는 전화를 받아 든다.
“아! 누님?......”
“응...... 내일인 거 알고 있어?”
“뭐가?......”
“아이 참, 형님생일이라고 했잖아?”
“아아...... 알았어. 내일 저녁...... 킥킥......”
“왜 웃어?”
“으응...... 어떤 여자를 선물할까 싶어서......”
“너, 죽고 싶으면 알아서 해. 킥...... 그럼 내일 봐. 아직도 인천이야?”
“응...... 나, 누님 무지하게 보고 싶다.”
“칫, 거짓말인 거 다 알고 있네. 이 사람아...... 끊어.”
차는 다시 수인 산업도로를 달리고 있다. 김과장은 자기 차로, 강주의 차는 부소장이 운전을 하고 있다. 비록 부소장이 운전기사는 아니지만 남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니 격세지감에 아득하다.
“그래, 애들은 다른 직원들이 태워주기로 했다면서......”
“허허....... 네, 그런 미녀들을 어디 가까이서 봤겠어요? 서로 태워준다고 난리 치던데요? 허허허......”
“그렇겠지. 부소장은 내일 아침에는 김과장하고 같이 돌아오면 될 거야.”
“네,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통에도 아는 분이 계셨습니까?”
“으응, 그냥 친구야. 자, 이거 갖고 있다가 나중에 써. 김과장도 돈 없을 건데 아마 나중에 외박하려면 돈 있어야 할 거 아냐?”
“지난번에 주신 경비 거의 그대로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안식구 갖다 줘. 부지런히 모아서 나중에 의왕에 코너라도 하나 해야 할 거 아냐?”
“아! 네, 고맙습니다. 이사님께 너무 죄송해서......”
“자, 난 좀 잘게. 그...... 커다란 쇼핑센터 있는 곳으로 가면 돼.”
“네......”
“어서 오십시오.”
“음...... 세 사람인데 어디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줘요.”
“어! 사장님은 지난번에......”
“허허...... 기억하는 모양이네? 마담도 좀 불러주고......”
“아! 네, 알았습니다.”
강주 일행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룸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혜영이 들어온다. 일행에게 인사를 한 후 강주의 옆에 앉으며 일행에 대해 묻는다.
“왜, 혼자 온다더니...... 이분들은 누구예요?”
“으응, 나하고 함께 일하는 분들이야.”
혜영은 강주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김과장을 보고 혹시 실수가 될지 몰라 흘끔거리고, 그 모습을 본 김과장은 대뜸 나서며 익숙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연출한다.
“아! 하하하...... 저희들은 다 여기 우리 이사님 부하직원들입니다. 하하하...... 우리 이사님이 오늘 술을 한 잔 사 주신다고 해서 따라 왔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어머! 그런데 무슨 이사님?”
“으응, 중요한 거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어서 술이나 넣어주고......”
“그래, 알았어. 잠깐만 나와 봐.”
혜영은 옆 룸으로 강주를 데리고 들어가 목에 팔을 감고 입을 맞춰온다.
“흐음...... 쭈우우웁...... 후루룹......”
얇은 천 조각 밑으로 부드러운 혜영의 피부를 느끼며 가는 허리를 끌어안아 목에 매달린 혜영을 뒤로 넘긴다.
푹신한 소파에 뒤로 누운 채 강주에게 부드러운 가슴을 내맡기고 올려다보는 혜영의 입가에 웃음기가 어린다.
“쿡...... 강주씨, 어제 외박했지?”
“으응? 왜, 어떻게 알아?”
“아유...... 옷에서 땀 냄새 나는 거 몰라? 호호호......”
“어어...... 그 정도야? 하...... 거 참...... 요즘 인천에 가 있다 보니......”
“오늘 자고 갈 거지?”
“그럼.......”
“그래, 그럼 내가 나중에 집에 가서 빨아줄게. 아유...... 옷 늘어나. 어디 도망 안 갈 거니까 그만 만져. 호호호......”
“후훗...... 그리고 저 친구들 오늘 아가씨들 붙여서 내 보내야 하니까 준비해 주고.......”
“응, 알았어. 그리고 자기도 일단 아가씨 넣어 줄 거지만, 너무 재미있게 놀면 안 돼. 나중에 집에 가서 검사할 거야. 알았지?”
“킥...... 그래, 알았어.”
차려진 술상과 아가씨들의 교태로 술판은 무르익어 김과장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좌석을 오가며 분위기를 즐기고 분위기가 어색한지 어정쩡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던 부소장도 이내 적응한 듯 아가씨를 품에 안고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서던 강주는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지 전화를 들고 번호를 누르지만 잘 연결이 되질 않는 모양이다.
“아니, 이 친구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내실에 있던 혜영이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는 강주에게 다가와 무릎에 손을 얹으며 옆에 앉는다.
“왜 나와 있어?”
“으응, 혜영아. 너...... 그 박부장이라는 사람 연락처 있지?”
“음...... 그거야 술 갖고 오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건데...... 왜, 그 사람 오라고 하려고? 아이, 부르지 마. 자긴 알다가도 모르겠어. 왜 그런 사람들하고 자꾸 어울리고 그래. 안 어울리게......”
“허허허...... 그게 아니고 뭣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전화나 한 번 넣어 봐. 내가 찾는다고 하고 전화번호 불러주면 전화라도 해 줄 거야.”
“응, 알았어. 내가 연락해 줄 테니까 들어가서 술이나 마시고 있어.”
강주의 궁금증은 다름이 아니라 따로 부탁한 적도 없는데 어깨들이 술집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의아한 것이다. 전날 정필이와 술을 마신 후 기억이 나질 않아 그날 있었던 일과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을지 몰라 그것이 내심 불안한 것이다. 다시 룸으로 들어가니 벌써 난장판이다. 강주가 있어서 그랬는지 비교적 점잖게 놀던 부소장도 어느새 아가씨를 끌어안고 젖가슴을 빨아대고 있고, 김과장은 이미 아가씨 팬티를 벗기고 짓궂은 손놀림을 해 대기 시작해 아가씨와 눈길을 마주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강주는 서둘러 두 사람을 아가씨들과 짝 지워 내보내고 조용한 룸에 혜영과 마주앉아 있다.
“술값은 얼마니? 지난번 것도 안준 모양이던데......”
“피...... 술값은 무슨...... 줄 거면 아가씨들 내보낸 값이나 주든지......”
“그래, 자......”
강주는 지갑을 열어 낮에 회사에서 인출한 돈을 혜영에게 내민다.
“어머! 정말 주는 거야? 그런데 뭘 이렇게 큰돈을 내놔? 이건 그냥 자기가 써. 그냥 해본 소리야. 양아치 같은 놈들 정리해 준 것만도 어딘데...... 호호호......”
“푸훗...... 그럼 내가 이 술집 기도로 취직한 셈이네...... 하기야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이 벌지 않겠냐? 그나저나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하나?”
“그러게...... 다시 한 번 전화를 해볼까? 어머!”
혜영은 다시 전화를 하기 위해 룸을 나서려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정필이의 형인 박부장이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 매부. 어떻게 여기까지 와 있습니까?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고......”
“하하하...... 처남, 오랜만입니다. 아, 그래 이런 사업을 하면서 알려주지도 않고 그러십니까?”
반갑게 악수를 하고 마주앉은 자리에 다시 술상이 차려지고 혜영은 강주와 박부장이 친 처남 매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니 뭔가 박부장이 보는 앞에서 못을 박으려는 듯 강주에게 친한 척을 해 온다.
“자기야, 손님도 오셨는데 아가씨 다시 불러야겠지?”
“으응, 아니 우선 처남하고 얘기 좀 하고 나중에......”
“그럼 나는 자기 갈아입을 옷 좀 사가지고 올게. 마시고 있어요.”
“으응, 그래...... 내 옷 사이즈 알고 있어?”
“피...... 마누라가 서방님 옷 사이즈 모를까? 갔다 올게요. 그럼 드시고 계세요.”
눈도장을 찍듯 박부장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마치 남편을 찾아 온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아내의 모습이다. 혜영이 나간 후 그녀의 의도가 적중했는지 박부장이 강주에게 룸의 출입문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질문을 한다.
“아! 저 마담도 매부가 돌봐주고 게십니까?”
“아아...... 네, 사실은 옛날에 한 회사에서 일한 처지라 뭐, 지금은 동업처럼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뭐, 처남 앞에서 정아 문제도 있는데 조금은 미안하네요.”
마땅히 대답할 말이 궁한 강주는 대충 둘러대고 만다.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제 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매부가 그렇게 처남 매부 해가며 막내 녀석도 챙겨주시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행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하하하......”
“아, 참...... 그러게 아까 정필이한테 전화를 해 보니까 통화가 안돼서 큰 처남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나는 매부가 알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매부가 시킨 거 아니었나요? 그 녀석 나한테는 매부가 용인에 어디 땅을 맡겼다면서 거기 관리하러 간다고 하던데요.”
“아아! 그랬어요? 그게 그 소리구나......”
“왜요?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허허...... 아니요. 전에 정필이하고 여기서 술을 한 잔 했는데, 제가 과음을 해서 뒷날 기억을 못하니까 마담이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뭐...... 용인이 어쩌니 하면서 얘기를 했다고......”
“아아...... 네, 하하하...... 난 깜짝 놀랐네요. 난 또 이 녀석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산 속에서 무슨 짓이라도 벌이고 있나 걱정했네요.”
“뭐, 산속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저도 농사나 지어볼까 하고 그 산을 받았는데, 그나마 저는 요즘 바빠서 가 보지도 못하니 정필이가 가 있으면 오히려 안심이지요.”
“그런데 그 녀석이 제 패거리들을 모두 데리고 갔는지 요즘 신갈에서 제 누나가 반찬 갖다 대기도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패거리요? 아! 그래서 여기도 험궂은 아이들이 안 보이는구나...... 하하하......”
아무래도 정필이가 시키지 않은 짓을 벌이는 모양이다. 박부장이 말하는 투로 보아서는 박부장도 알고 있는 듯 보이지만 굳이 캐물을 일도 아니니 그저 넘어간다. 술의 납품문제로 구역다툼을 벌이는 입장에 갑자기 똘마니들을 데리고 산중으로 숨어들었다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는 불을 보듯 훤하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어차피 이들은 강주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이들이니 그 안에서 영화를 찍든, 예술을 하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나저나 여기가 매부가 운영하는 곳이면 앞으로 제가 아이들을 붙여서 잘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저 마담도 제가 정아를 보듯이 지켜 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박부장도 강주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는 듯 바로 반대급부를 제시해 온다.
“네, 처남 정말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사업은 잘 되십니까?”
“뭐, 사업이랄 것도 없지요. 남의 일 대신 해주고 커미션 먹는 일이니 밑에 있는 동생들 밥벌이나 시키는 셈이지요. 참, 매부가 그런 계통 일을 하시니까 혹시 술 한 차 정도 어디 소화 시킬 데 없을까요?”
“술은 왜요?”
“아! 제가 관리해주는 곳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데 요즘 돈이 안돌아서 이게 현찰이 아니고 술을 처분해서 쓰라니까 갑자기 어디 처분할 곳도 마땅치 않고......”
“아! 그럼 내가 약도를 그려 줄 테니까 의왕으로 넘기세요. 내가 전화는 해 둘 테니까요. 이곳도 내가 관리하는 곳이니까 바로 결재를 해드릴 겁니다.”
술을 대량으로 공급 받는 것도 용이한 일이 아니니 강주야말로 오히려 잘 된 일이다. 포켓을 더듬어 종이를 꺼내 절반으로 잘라 약도와 전화번호를 적어 박부장에게 전해준다.
“와...... 이거 매부를 만나니까 한 방에 일이 해결돼 버리네요. 하하하......”
나머지 쪽지에 낮에 적어 둔 차번호가 눈에 들어와 박부장을 바라본다. 변호사에게 갈 것도 없이 박부장이라면 선이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기로 한다.
“아! 처남, 혹시 주변에 있는 경찰 중에 선이 닿는 사람들 좀 있습니까?”
“우리 지역에 있는 친구들은 많이 있지요. 왜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아! 이 차 번호 좀 조회를 해 봤으면 좋겠는데...... 뭐 하는 친군지......”
“아, 차적 조회요? 그거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이리 주세요. 그런데 뭐 하는 사람인지까지 알아내려면 하루정도 시간을 주셔야 할 겁니다.”
“아, 그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박부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차번호를 불러주고 이내 혜영이가 들어와 강주의 곁에 앉는다. 박부장이 대뜸 혜영이에게 말을 건넨다.
“아, 이거 참......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 매부하고 실제로 처남매부는 아니니까 저 너무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하하하......”
“어머! 호호호...... 아유, 참...... 부장님도...... 네. 앞으로는 잘 부탁드립니다.”
“자, 혜영아. 이제 아가씨들 오라고 하고 본격적으로 한 잔 마시자.”
“응, 알았어. 나도 같이 마실 거야. 그래도 괜찮지?”
“으응, 그럼......”
강주는 혜영의 마음을 알아채고 박부장에게 거듭 동업을 강조하며 하모니 카페의 안전에 대해 부탁을 한다. 혜영은 지역 안에서 실세로 거듭나고 있는 사내도 강주에게 매너를 갖춰 대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더 강주에게 매료되어 간다.
술자리가 이슥하여 일어서기로 하고 룸 밖으로 나오니 덩치가 커다란 친구들이 박부장을 보고 절을 한다. 아마 올 때부터 에스코트해서 함께 온 모양이다. 경호해 주는 사람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면 부럽기도 한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 생존경쟁 속에서 도태당하지 않고 위치를 찾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저러는 것일 테니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그 외에는 썩 다를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주는 오늘도 술이 많이 취하는지 혜영에게 부축을 받으며 아파트로 들어선다. 그나마 혜영의 키가 커 부축은 되지만 가냘픈 몸매로 강주를 부축하자니 죽을 지경이다.
“아유, 그러게 작작 마시라니까......”
“어허, 이것이 서방님한테 작작이 뭐야? 작작이......”
“어헝...... 그러니까 자기야...... 정신 좀 차려 봐. 나는 짐도 잔뜩 들고 있는데, 나한테 매달리면 어떻게 해?”
강주는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드러눕고 혜영은 소파 밑에 앉아 강주의 양말부터 벗긴다. 실상 강주는 전혀 취하지도 않았지만 다음날 출근 걱정도 없으니 오롯이 밤을 함께 보낼 여자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일 게다. 그간 섹스에 굶주린 것도 아니지만, 하루하루 피아를 가늠하기 어려운 힘겨운 신경전과 숨 가쁜 암투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의 귀가만을 기다려주며 냄새나는 속옷과 양말을 마다않고 챙겨주는 그런 여자의 정에 더욱 목말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나날이 더해지는 삶의 무게를 안주 삼으면 저녁 무렵 포장마차의 독주도 오히려 싱거울 뿐이니 한 입에 털어 넣어 버리고 입가를 훔치는 우리네 가장들이 비뚤어진 넥타이도 멋스럽게 바람에 휘날리며 휘적휘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통닭집도 있고, 피자집도 있어 아빠의 귀가를 기다리다 잠들었을 꼬마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결국 마누라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라 주머니의 동전을 더듬어 정작 아이들은 좋아하지도 않을 그런 과자 부스러기 몇 봉지를 사들고 초인종을 누르게 되는 그런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킥킥...... 아이고, 간지러워......”
“어머! 뭐야? 자기...... 안 취했지? 이 씨...... 이리 와.”
혜영은 양말을 벗기다 말고 강주의 배 위에 올라타 입술을 부딪쳐 온다. 팔을 들어 허리를 끌어안으니 한줌에 들어온다.
“쭈우웁...... 흐으읍...... 후루룹......”
“쿡...... 혜영아, 우리 여기가 시원한데 여기서 하자.”
“아유, 몰라...... 우선 씻기나 해. 냄새나 죽겠어.”
강주는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털어내며 에어컨 바람 방향에 맞춰 서서 혜영을 돌아본다.
“혜영아, 아까 옷 사러 간다더니 어디 있어?”
“푸훗...... 뭘 입으려고 그래. 보기 좋은데 그냥 그대로 있어. 호호호......”
“킥...... 그럼 그럴까?”
혜영도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강주가 앉은 소파로 와서 나란히 앉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앉아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그 모습 그대로 선남선녀라 할 것이다. 이리저리 리모컨을 누르며 채널을 찾는 강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좆을 만져 세워준다. 자연스럽게 혜영의 젖무덤은 강주의 손에 들어와 있다.
“흐으응...... 아야...... 자기야, 살살 만져.”
“킥킥...... 고무공 같다. 야...... 너 이거 가짜 아니야?”
“피...... 미쳤나 봐......”
혜영은 강주의 좆을 입으로 물어 빨아주고 강주는 허리를 내밀어 발기한 좆을 최대한 혜영의 입으로 밀어 넣는다.
“후루룹...... 턱, 턱......”
“흐윽, 으으흑...... 살살해......”
한 번씩 흔드는 손에 불알이 부딪혀 쾌감에 섞여 통증이 올라온다.
혜영은 미안한 듯 좆을 입에 문 채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웃고, 그 모습이 우스운지 강주는 뒤로 넘어간다.
“흐으윽, 아...... 하하하......”
강주도 몸 위에 혜영을 올려놓고 혜영의 다리를 벌려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민다.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엉덩이를 양손에 말아 쥐고 음순을 입술로 쓸어주며 혀를 내밀어 맛을 본다. 부드러운 속살이 혀에 붙어 따라다니며 이슬을 토해낸다.
“하으윽...... 허어엉......”
한참이나 빨아주니 자극을 견디기 힘든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앙탈을 부리는 혜영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다리를 벌려 배 위로 올라간다. 혜영은 몸으로 강주의 체중을 느끼며 행복에 젖는다. 다리를 최대한 옆으로 벌리며 강주의 좆을 쥐어 비경으로 인도한다.
“흐으으윽...... 아아아......”
혜영의 고운 털이 강주의 배 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몸을 누인다. 혜영은 팔을 둘러 강주의 목을 끌어안고 강주의 팔은 혜영의 어깨 밑으로 넣어 어깨를 붙잡고 있다. 밑에서 치고 올려도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으니 잠시 후 몰아칠 폭풍을 예견하게 해 준다.
“하으으윽...... 강주씨, 살살 해야 돼.”
“후훗, 걱정하지 마. 내 마누라를 아프게 하겠어?”
좆을 비경에 꽂아둔 채 눈을 마주치고 나누는 대화는 한결 더 분위기를 색스럽게 몰고 가 혜영을 부끄럽게 한다.
“피...... 내가 왜 자기 마누란데......”
강주는 허리를 살며시 놀리기 시작한다.
“후우욱...... 이래도...... 후욱, 아니야? 후욱, 후욱......”
“아흑, 아흑......”
“빨리...... 후욱...... 말해...... 후욱......”
“하악, 하악...... 알았어....... 여보...... 하악, 하악......”
이젠 혜영도 충분히 준비가 된 것 같아 허리놀림에 무게를 실어간다. 더욱 깊숙이 강주가 치고 들어오니 혜영의 고개가 꺾이고 눈자위가 넘어간다. 그러나 강주의 팔에 어깨를 붙잡혀 도망갈 곳도 없는 처지니 치고 올라오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악, 하악, 하악......여보......”
다리를 한껏 벌려 사타구니를 마주쳐간다. 강주는 혜영의 귓불을 이로 물어주며 침을 적시고 허리 밑으로는 이미 질퍽해진 곳으로 좆을 부딪쳐 가니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얼마나 허리를 놀렸는지 시간도 모를 즈음 강주를 끌어안은 혜영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를 감아올려 강주를 꼼짝 못하게 하더니 이내 경련을 일으킨다.
“아흐흐윽...... 난 몰라...... 흐흐흑......”
고개를 들어 혜영을 보니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밀고 올라오는 희열이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다. 스르르 힘이 풀리는 혜영의 다리를 옆에 두고 혜영의 기분을 깨지 않도록 천천히 허리를 놀려 강주도 나락을 향해 달려간다.
“흐윽, 흐흐흥...... 흐윽......”
혜영의 눈물을 혀로 핥아주며 잔뜩 발기한 좆을 음순까지 꺼냈다가 다시 질벽을 긁으며 진입하길 여러 번 강주도 절정에 다다른다.
“흐으윽...... 울컥...... 꿀럭......”
“하윽, 여보...... 여...... 보...... 사랑해요......”
강주는 혜영의 사타구니를 몸으로 문질러 가며 여운을 끌어주고 고개를 바로잡아 눈을 마주친다.
“후우우우...... 혜영이 정말 내 마누라지?”
혜영은 달뜬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에...... 강주씨 마누라예요......”
“우리 여기서 그냥 잘까? 뭐, 침대까지 갈 필요도 없겠다. 후훗......”
강주는 혜영의 몸에서 내려와 소파 구석으로 몸을 뉘고 혜영은 몸을 돌려 강주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는다. 서늘한 에어컨 기운에 혜영의 피부가 더운 기운을 발산한다.
“아우우우우...... 잘 잤다.”
벌써 날은 훤하게 밝았다. 워낙 새벽에 들어와 사랑을 나누고 곤하게 잠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혜영은 강주의 옷을 다림질 하고 있어 바로 강주가 꿈꾸는 행복한 광경이다.
“이제 일어났어요? 배고프지 않으면 더 자요. 천천히 가도 된다면서......”
“그 옷은 뭐야? 내 옷 아니잖아?”
“피...... 자기 옷이 아니면 우리 집에 남자 옷이 어디 있어? 어제 입은 옷은 아직 세탁기 안에 그대로 있어. 새로 하나 사왔으니까 오늘은 이거 입고 나가.”
“킥...... 역시 마누라가 최고라니까......”
“피...... 그럴 때만......”
혜영이 덕에 옷을 갈아입으러 갈 필요가 없으니 바로 인천으로 향한다. 희숙이 정도면 능히 점장교육을 감당할 수 있지만 기존의 틀에 익숙해져 있는 영진유통의 점장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또한 걱정이다. 어리석은 이들은 온몸의 가시를 돋운 고슴도치처럼 괜한 피해의식에 젖어 들이댈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만 흐를 일이니 물이란 담는 그릇의 모양대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오히려 시간을 두고 메마른 그릇을 충분히 적시어 줄 것이다.
혜영과 한 번의 교감을 다시 나눈 후 촉촉해진 눈망울로 배웅하던 혜영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의 고향은 여자일 수밖에 없으니 헤어지길 아쉬워하며 배웅하던 그 모습이 삼삼히 눈에 어린다. 아침에 나선 곳으로 다시 저녁에 발길을 되잡아갈 수 없는 것은 우리네 삶이 그러할 것이니 한탄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이 공간을 우리의 천국으로 만들어 행복을 누려야 할 터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미명 아래 매일을 지옥 같은 갈등과 반목 속에서 아귀다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돌아봐야 할 일이다.
“아! 이제 오십니까? 이사님.”
“네, 부장님......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외출하기 좋은 날씨지요?”
“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그런지 말귀는 빠른 모양이다.
“음...... 지금 교육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네, 아주 호응이 좋습니다. 뭐...... 이런 교육이 신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강사가 미모가 출중해서 그런지 아주 고분고분 잘 따라 합니다. 허허허......”
“아! 그래요? 하하하...... 그거 천만다행이네요.”
역시 예쁜 그릇에 담긴 물이 마시기도 좋은 모양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회의실 창문너머로 바라보니 칠판에 잔뜩 도식을 그려놓은 채 열심히 강의를 하는 희숙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사이를 오가며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보라의 모습도 눈에 띈다.
“자, 그럼 나갑시다. 인감은 가지고 있지요?”
“네, 여기 있습니다.”
황부장과 등기소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제 미경이가 떠나던 모습이 떠올라 넌지시 물어본다.
“음...... 혹시 황부장 부인은 회장님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 네...... 저는 잘 모릅니다. 뭐, 별 일 아닌 것 같던데요? 무슨 클럽인가......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하다보니까, 거의 매일 회장님하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요즘처럼 여자들 개판으로 사는 세상에 차라리 회장님하고 다니면 안심이고 좋지요. 뭐...... 그리고 가끔 나름대로 용돈도 만지는 모양이더군요.”
“아...... 그렇군요.”
실소가 터질 뻔 했다. 역시 황부장도 상류층에 포함되는 인간은 못되는 모양이다. 그저 마누라를 회장의 개로 풀어놓고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에 만족하고 살았던 모양이니 다시 미경이의 행태가 궁금해진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무언가 방향타를 제대로 잡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어제도 이백을 수령하기 위해 갔던 경리파트에서 삼백을 지급 받았는데 이것 또한 가끔 포켓에 꼽아주던 음식 부스러기는 아닌지 바짝 머리카락이 곤두서 일어난다.
여직원 괴롭히기 -20부
“아이 참...... 이제 그만 화 풀고 인상 좀 펴 봐. 얘들처럼 왜
그래?”
“......”
강주와 민희는 모텔을 빠져나와 근처의 편의점에서 커피를 빼 마시고 있다. 여전히 강주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고 민희는 보채는 아이를 달래듯 강주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준다.
강주는 지긋이 민희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는 강주의 모습에서 민희는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낀다. 마치 친동기간처럼 진심으로 자신의 처지를 염려해주는 강주의 마음이 느껴지는지 찡한 마음에 어느새 민희의 얼굴도 울상으로 변해 버린다.
“야, 야...... 너야말로 왜 인상을 쓰고 지랄이냐? 지랄이......”
“치...... 저리 비켜. 너 때문에 그러잖아.”
“알았어. 인상 펴...... 무슨 수가 있겠지.”
“씨...... 너부터 펴......”
“하하하...... 너 인상 쓰고 있으니까 제법 볼만 하다. 야...... 하하하......”
“이 씨...... 너, 죽을래?”
토닥거리며 다투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복선을 깔아 상대의 진의를 쉽사리 알 수 없는 살벌한 격전장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로의 처지를 마음 써주는 입장으로 변해 버렸다. 출세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보자면 민희와의 관계의 진전이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강주에게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여자라기보다는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켜 보호해 줘야 할 한 식구라는 입장이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사내들의 입장에 많은 여자들과 로맨스를 즐기는 것을 싫어할 리는 없지만 어디까지를 가족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민희의 마음이야 어떻든지 강주는 나름의 입장을 정리한 듯 앙다문 입술로 결의를 엿보게 한다.
“응? 부소장?......”
“네, 소장님, 접니다.”
“그래, 수고 많지?”
“네, 지금...... 세 군데 째 돌아보고 있는데요. 그...... 왜....... 대나무 돗자리 판매하는 최사장이요......”
“으응...... 그래......”
“이쪽에서 만났는데, 희한한 소리를 하네요?”
“뭐라고 하는데......”
“뭐...... 우리도 익히 아는 일이긴 하지만 점두는 아예 닦아 먹는 것 같고...... 중요한 건 이번에 아주 정식입점을 하려고 하는데 판매계약을 리베이트로 자꾸 유도를 한다고 하네요. 부가가치세 문제도 있고 해서 D.C로 가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해 준답니다.”
“그래? 음......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 계약 담당자가 누구래?”
“이상한 게 그거예요. 담당자는 통과했는데...... 윗선에서 자꾸 그런답니다.”
“그게 누구래?”
“무슨 부장이라던데......”
“그래, 알았어. 그...... 최사장한테는 계약하지 말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
강주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민희를 바라보고 민희도 강주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한 모습이다.
“민희야. 너...... 경주 남편이 한다는 변호사 사무실 위치 알고 있니?”
“응...... 거긴 왜?......”
“응, 확인할 게 좀 있어. 안내해 봐. 얼른 차에 타.”
차 안에서도 강주는 민희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외견상 보이는 대로라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의사가 개업을 해서 자기 병원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비교적 연봉이야 높은 편이겠지만 일반 월급쟁이와 다를 것도 썩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회장과 모종의 밀약으로 병원을 구하고, 병원으로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상류층 인사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이곳에서 저곳으로 품을 팔고 다니는 들병이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면 정말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지 안타까워 마치 민희의 손에서 답이라도 찾으려는 듯 땀이 배이도록 쥔 그녀의 손을 놓지 못한다.
“저 건물 삼층이야.”
“그래, 올라가자.”
사무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명함을 내밀자 반가이 맞아 준다. 잠시 후 경주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와도 인사를 나누고 용건을 설명한다. 이 사내도 이른 바 상류층 인사일 테지만 시궁창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을 터 이미 자신과는 한 구멍을 이용하고 있는 처지니 강주에게는 감회가 남다르다.
“음...... 우리 유통에서 거래처와 계약을 할 때 여기 이 사무실에다 뭔가 의뢰를 하는 모양이던데......”
“아! 네...... 저희들이 공증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부본을 보관하고 계실 텐데,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그러시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변호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무장과 직원이 움직이고 잠시 후에 테이블 위에는 수북한 문서가 쌓인다. 강주는 한참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문서를 확인하다가 직원에게 부탁을 한다.
“자, 지금 이 페이지가 나오도록 모두 준비를 해 주시겠어요?”
강주의 부탁을 듣고는 여러 사람이 매달려 서류를 넘기며 해당 페이지를 찾아 준다. 어느새 곁에 왔는지 민희도 고개를 빼고 어깨너머로 바라본다.
“후후...... 뭐 보면 알겠어?”
“어머! 이사님......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잠시 뜨끔한 느낌이다. 이젠 가족처럼 느껴지는 민희인지라 별 뜻 없이 말을 놓아버렸는데, 대뜸 이사라며 존댓말을 해오는 민희의 대답을 듣고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다. 그녀의 삶의 방식이 다시 한 번 폐부를 찌르며 강주의 측은지심을 자극한다. 마치 대단한 복선이라도 깔려 있었던 것처럼 알 수 없던 그녀의 진면목을 알고 나니 오히려 삶의 한 자락을 붙들고 놓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견딜 수 없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잠시 후 강주는 약 이십 부 정도의 서류를 추려내 카피를 부탁한다.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거...... 갑자기 찾아와서 정신만 빼놓고 갑니다. 언제 시간 만들어서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제가 이사님께 대접해 드려야지요. 언제 한 번 연락 주십시오.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럼......”
서류를 차 뒷자리에 던져두고 운전석에 올라앉아 민희를 바라본다.
“오늘 나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겨서 어떻게 해?”
“어머! 은근히 기분 나빠지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사이에......”
이미 강주에게는 민희가 측은하게만 보여 실없는 소리로 그녀를 자극한다.
“큭...... 우리가 무슨 사인데?......”
“어쭈, 최이사...... 너 자꾸 까불래? 호호호......”
“야, 서방님한테 최이사가 뭐냐? 참, 어떻게 할래? 집으로 갈 거야?”
“아니야...... 차도 병원에 있는데...... 구월동에 내려 줘.”
병원 근처에 도착해 민희를 내려주며 다시 당부를 하기 위해 손을 잡고 민희도 강주를 한참 바라본다.
“민희야, 이제 나...... 남처럼 생각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렇지만, 제부로도 생각 안 할 거야. 나하고 둘만 있을 때는...... 자기도 알았지.”
“그래, 잘 있어. 간다.”
숙소를 정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부소장 생각이 난다. 출소한 후에 술도 한 잔 못한 채 바로 실무에 투입시켜 미안하기도 하고 영통의 하모니 카페 장마담의 뒷일도 궁금하여 그곳에서 술이나 한 잔 할 생각으로 휴대폰을 찾는다.
“어! 이런......”
이미 전화가 여러 번 걸려온 모양이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옷을 벗어두고 서류와 한참 씨름을 하느라 미처 못 받은 모양이다.
“여보세요? 전화하신 분이......”
“네, 이사님이세요? 저 본점 점장입니다.”
“아! 네, 네..... 왜요? 아 참, 술 한 잔 하자고 했었지요?”
“네...... 그런데...... 지금 바쁘세요?”
“아, 아닙니다. 내가 깜빡 잊고 지금 다른 데에 가려다가...... 하하하...... 지금 어딥니까?”
“네, 이제 곧 마칠 때 됐거든요.”
“음...... 그럼 내가 그리 가지요. 매장 앞에서 기다리세요.”
할 수 없이 부소장의 일은 뒤로 미루게 되고, 장마담도 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매장에는 이미 불이 꺼지고 주차장 입구에 점장이 나와 서 있는 모습이 보여 조수석 문을 내리고 자세를 숙여 점장을 바라본다.
“어디로 갈까요? 근처에는 마땅한 데가 없는 모양이던데......”
강주가 어디로 갈지 난색을 표하자 점장은 더 곤란해진다. 이사 정도 되는 인물을 대폿집으로 안내할 수도 없고 술을 한 잔 하자고는 했는데 주머니 사정으로 보아 매우 곤란한 모양이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있다가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차창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대꾸를 한다.
“차라리...... 이사님 숙소도 마땅치 않으실 텐데...... 저희 집에 빈 방이 하나 있으니 편안하게 저희 집에서 한 잔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말씀하시기도 조용하고...... 그게 안 좋겠습니까?”
“음...... 뭐, 저야 좋습니다만, 식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요?"
“아이고...... 아닙니다. 그럼 제가 앞서 갈 테니까 따라오십시오.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럽시다.”
아파트 밀집촌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 연립주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선다. 차를 주차시키고 내리다가 뒷좌석의 서류가 생각나 옆구리에 끼고 점장을 따라 계단을 올라선다. 강주의 내심으로는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혜숙이를 내몰았던 점장의 모친도 보고 싶고 그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부인도 보고 싶어 선뜻 응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 다시 가족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피와 내 살을 갖고 태어나야만 내 자식인지 모르겠다. 사회문화 환경은 갈수록 정체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그 필연의 결과인지 살아가는 방법도 점점 복잡해져 그 이면에는 부모자식 간에 패륜의 싸움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그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혼하는 가정 뿐 아니라 애초에 사생아로 이름 지어지는 아이들도 있어 부모 없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혜숙이의 경우처럼 자식이 없어 아픔을 겪는 부모들도 있다니 이 경우에도 신의 섭리는 공평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다지만 내 이웃은커녕 내 가족의 범주도 어디까지인지 모호한 것이 슬프지만 현실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어머! 손님이 오신다고 미리 전화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아! 미안해. 갑자기 그렇게 됐어...... 우리 회사 이사님이셔. 인사 드려.”
“어머! 아유,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네, 네...... 이거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밤늦게 미안합니다.”
잠시 방안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다시 나와 여자는 술상을 마련하고 점장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술을 사러 가는 모양이다. 남편에게 처한 입장을 들었을 테니 여자의 태도가 고분고분해진다. 남편보다 훨씬 젊은 사내가 이사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여자 신세 뒤웅박 팔자려니 하고 상을 차리는 것일 게다.
술상을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그런데...... 모친도 계신다고 들었는데......”
“네...... 지금은 따로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야 직장 일로 이렇게 이사를 왔지만 어머니는 친구 분들도 다 수원에 계시니까......”
“네, 그러시군요.”
이것도 넌 센스가 아닐 수 없다. 가정을 영위하고자 가족 간에 흩어져 산다는 말이라니, 최근 조기유학 붐을 타고 헤어져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이 외지에 나가있는 부인들로부터 이혼을 당한다는 소식들이 심심찮게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도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혜숙이를 그리 하고 썩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강주의 입 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간다.
“그럼 자제분은......”
“아직......”
마치 강주의 질문 의도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점장의 뒷덜미가 뻣뻣해진다.
“자, 자...... 술 한 잔 하십시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강주의 입에서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점장이 다시 긴장이 되는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음...... 점장님이 관리하는 매장에 전체 이익률이 어느 정도 나오고 있습니까?”
“네, 요즘 가격을 많이 낮추어서 십 퍼센트 정도 밖에 안 나옵니다.”
“네...... 그렇군요. 그래 가지고 인건비하고 판매관리비 제하고 나면...... 음...... 점두에서 코너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씩이나 받습니까?”
점장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사라는 사람이 경영수업만 닦은 게 아니라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건드릴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강주야 말로 온갖 부정행위에 달통한 인물이니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네, 그건...... 오만 원 정도 받을 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건 더 받을 때도 있습니다.”
“자, 그건 영업외 이익이니까 그야말로 생으로 거저먹는 거라고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루에 점두 수입이 십만 원씩 생긴다면 한 달이면 삼백만 원 아닙니까? 뭐, 물론 매일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 생길 때도 있고 안 생길 때도 있으니까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네, 네......”
“그럼 삼백만 원의 수익이 나려면 그 매장 수익률이 십 퍼센트라니까 삼천만 원의 매출이 발생해야 생길 수 있는 수익이란 말이죠.”
“네, 그렇지요.”
“그거...... 올바르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강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점장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모른다.
“영업수지가 비록 안 좋아도 어차피 시설투자는 되어있는 마당에 가외로 발생하는 수입을 잘 챙겨서 경상수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데도 그게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양입디다. 그래서 수가 낮은 하수라는 거예요. 뭐...... 소소하게 용돈으로 쓰는 정도도 사실은 안 되는 거지만, 우리 회사 판공비 시스템도 보나 마나일 테니 나름대로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내년 농사지을 종자까지 털어서 이 회사 말아먹고 나면 그 다음엔 어디서 농사지을 겁니까?”
“......”
“뭐, 비단 점장님만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감찰하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받은 보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하는 소립니다. 특히 이것 보세요.”
강주는 옆에 내려 둔 봉투를 흔들며 말을 잇는다.
“황부장?...... 회사 간부라는 사람이 계약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 뒷돈을 빼먹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위에서 아래까지 하나같이 썩어서......”
점장이 더 이상 어찌 할 도리가 없는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부인도 덩달아 남편과 강주의 눈치를 번갈아 볼 뿐이다.
“사실 말씀을 하시니까 숨길 수도 없지만 저희 점장들도 그 돈 다 쓰는 건 아니고 일부는 위로 올리곤 합니다. 아시다시피 판공비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점장님은 그 황부장이란 인물이 스카우트를 해 왔다던데...... 이거 일이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아닙니다. 이사님...... 저야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다는 걸 이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야 그렇지...... 아무튼 점장님은 별개로 생각할 테니까 너무 염려는 마시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나 매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관리하세요. 그러고 나서 월급이 적으면 올려달라고 요구를 해야지. 암중으로 그러면 기반이 약한 회사는 금방 주저앉을 수밖에 없잖아요. 빼먹어도 요령껏 빼먹어야지. 언제든지 내가 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으니까 철저하게 관리를 하세요.”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을 대충은 알 것 같고 이제 며칠 안에 결과도 모두 나올 거니까...... 아예 알 만한 점장들에게는 미리 말을 해 주세요. 살아남으려면 마음 바꿔먹고 제대로 근무하라고...... 조만간에 전체 교육이 한 번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황부장이라는 인물하곤 확실히 손 끊으세요. 알았습니까?”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허허...... 점장님, 의외로 소심하시네요. 뭘 그리 긴장을 하고 그럽니까? 자, 이제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어머! 참...... 이사님 방을 봐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창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밤공기가 들어온다. 연립 주변으로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서늘하기까지 하여 이부자리가 낯 선 곳에서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새소리에 눈을 뜬다. 이미 점장은 출근 준비를 마쳤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서 눈을 떴으니 출근하는 사람을 바쁘게 따라 나서기도 민망하여 누운 채 잠시 기다린다.
“자, 그럼......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이사님 깨시면 식사 대접 잘 하고 행여 기분 상하지 않도록 잘 해.”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저녁에 일찍 오세요.”
“응, 간다.”
잠시 후 점장의 차에 시동이 걸리고 현관문도 닫히는 소리가 들려 세수를 하기 위해 거실로 나선다.
방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지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강주로 하여금 화장실로 한 발을 집어넣었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나와 귀를 기울이게 한다.
“네...... 지금 저희 집에서 자고 있어요.”
“......”
“이사라고 하던데 부장님은 모르세요? 무슨 봉투를 흔들면서 부장님 얘기를 하던데......”
“......”
“아유, 무서워요. 그걸 어떻게......”
상황이 짐작된 강주는 살며시 다시 방으로 돌아가 이부자리에 눕는다. 밤중에도 남편이 함께 있으니 전화를 못하고 있다가 출근한 이후에 화급히 전화를 해주는 정도라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야...... 이것들 봐라?...... 남편 모르게 황부장이란 놈하고 붙어먹는 모양인데......”
잠시 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듯 부스스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거실로 나선다.
“아이고..... 이런...... 네, 제가 늦잠을 잤군요. 점장님은 벌써 나가셨나요?”
“네, 이사님...... 어서 씻고 식사하셔야지요.”
“네, 네...... 아유, 이거 폐가 많습니다.”
일부러 넉넉하게 시간을 주려고 천천히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는다. 점장의 아내는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척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전화기를 강주는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차려진 밥상이 제법 그럴 듯하여 과음을 한 뒤인데도 식사를 하는 데에는 힘이 들지 않아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만족한 식사를 마친다.
“아...... 잘 먹었습니다.”
옷을 챙기는 척 방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서류봉투를 건드렸는지 위치가 흐트러져 있다.
“이런...... 배터리가 다 됐네요. 전화기 좀 쓸까요?”
“네...... 이사님, 여기 있습니다.”
전화기를 받아들고 점장의 아내를 바라보며 소파에 걸터앉는다.
“제 서류는 왜 건드렸습니까?”
“네. 네?...... 아닌데요? 제가 왜?......”
“지금 이 전화 재다이얼 누르면 황부장이 나올 텐데.....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황부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 볼까요? 점장도 두 사람 사이 압니까?”
다짜고짜 들이치는 강주의 질문에 점장의 아내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아무 말도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서 있다. 너무 순식간에 당하는 일이라 어찌 처신해야 할지 몰라 그럴 것이니 순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희의 기민했던 대응이 떠오르며 그녀를 그렇게 되도록 몰아간 모든 것들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라 큰 소리를 치게 한다.
“빨리 말 안 할 거야?”
“아유...... 이사님, 안 돼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언제부터 그랬어? 사실대로 말해 봐.”
“네, 네?......”
“황부장하고 두 사람 사이 말이야.”
“네...... 저이 취직 문제 때문에 부탁드리러 왔을 때......”
“내가 네 남편에 대해서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전화를 한 이유는 뭐야? 황부장이 걱정 돼서 그런 거야?”
“저...... 그게 아니라......”
“으응...... 양다리를 걸쳐 두시겠다...... 그거로군.”
“죄, 죄송해요.”
“그럼, 기왕 양다리를 걸칠 거면 확실하게 걸쳐야지.”
강주는 천천히 일어서 와이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고 점장의 아내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엉거주춤 일어서 처분만 바라고 있는 형국이다. 남편의 안전은 고사하고 강주의 짐작에 자신의 부정만 드러난 꼴이니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아득할 뿐이다.
아직 깔려있는 이부자리로 그녀를 이끌고 들어가 방문을 닫아버린다. 이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강주의 원하는 바를 채워주기 위해 옷을 벗는다.
“이리 대. 똑바로......”
책상을 짚고 서있는 그녀를 거칠게 다룬다. 골반을 잡아 돌려 강주를 향하게 하고 발기한 좆을 음문으로 들이민다. 이 여자가 개인적으로 강주에게 잘못했다면 황부장에게 기밀을 발설한 죄이겠지만 지금 강주의 머릿속은 혜숙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알 수 없는 복수심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씨바...... 후욱......”
“아아아학...... 아파요......”
아직 물도 흐르지 않은 곳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니 점장의 아내는 찢어질 듯 밀려오는 고통에 엉덩이를 빼 보려 하지만 강주의 억센 팔에 붙잡혀 고스란히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 씨바......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야. 가만히 있어. 내가 지금 너 기분 좋으라고 해 주는 줄 아냐?”
“하윽, 제발...... 살살......”
“후욱, 후욱, 후욱......”
“아학....... 하아아악....... 아아악......”
아무런 애정도 담겨있지 않은 그저 좆만 드나들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몸이란 신비한 것이어서 질에서는 액이 흐르고 점점 달아오르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강주의 좆도 물어 오는 질의 느낌에 점점 더 힘을 얻어 강하게 팽창한다.
“아아흑, 하아악...... 이사니임...... 하으윽......”
“이런...... 후욱, 씨바...... 닥치지 못해...... 내가 네 서방이냐...... 후욱......”
한참의 좆질에 점장의 아내는 이미 여러 번 물을 쏟아 질이 질펀해져 버리고 흥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항문을 건드려 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해 버린다. 지금의 이 행위가 아무래도 강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좆질에 불과한 때문인 모양이다.
“꿇어 앉아.”
갑자기 좆을 꺼내 버리고 머리카락을 쥐어 주저앉힌다. 점장의 아내는 멀뚱히 강주를 바라보다가 눈앞에 와 있는 좆을 보고 양손으로 감아쥐어 입으로 물어간다. 두 눈 가득히 열망이 끓어올라 지금이라면 무슨 짓을 시켜도 다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기도 해 강주의 입 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흐으윽...... 더 세게...... 빨리......”
“츄우우웁....... 후루룩....... 턱, 턱......”
강주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양 손에 말아 쥐고 허리를 강하게 놀린다. 목구멍 깊숙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강주의 좆 때문에 몇 번의 토악질이 올라오지만 머리를 붙잡혀 도망 칠 수도 없이 그저 당하고만 있어 호흡이 곤란한 지경까지 몰려간다.
“후욱, 후욱......”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는지 입을 벌려 틈을 만들고 숨을 쉬느라 강주의 좆이 이에 부딪힌다. 순간 통증에 멈칫했지만 강주는 허리놀림을 멈추질 않는다. 이제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지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후우우욱...... 울컥...... 꿀럭.......”
“우우웁, 우욱....... 꿀꺽....... 꿀꺽....... 우우우욱......”
강주에게 붙잡혀 도망 갈 수도 없으니 좆물을 받아 삼키고는 토악질을 하고 있다. 고통스러웠는지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고통을 주고 난 후 쾌감을 느끼는지 강주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의 팔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튼다. 아무 말도 없이, 후희를 베풀지도 않으니 자신의 욕정만 풀고 내버려 두는 것은 여자에겐 징벌이나 다름없을 터 강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하는 모양이다.
“네 탓은 아니겠지만 내 친구를 불행하게 만들고도 행복하게 못 사는 벌이라고 생각해.”
흐르는 듯 알 수 없는 강주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점장의 아내는 자기 앞일이 걱정스러운 듯 서러운 눈물만 뿌리고 있다.
“자, 이리 와서 앉아 봐요.”
“네......”
두 사람은 격앙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힌 후 나란히 소파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강주는 녹음을 하는 듯 휴대폰을 한 옆으로 내려두고 담배를 피워 문다.
“그래...... 황부장하곤 언제부터 그렇게 부정한 사이가 됐다고?......”
“네...... 그게...... 남편이 전에 있던 직장에서 자꾸 스트레스를 받고 여러 가지로 힘이 든다고 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그 회사 출신 선배가 이 회사 높은 자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서......”
“남편하고 같이 인사 차 만나 뵌 적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선 금방이라도 자리를 마련해 줄 것 같이 했었는데, 며칠째 연락을 안 해줘서 제가 전화를 드려 봤더니, 자리는 금방 마련되지만 정말 각오가 돼 있다면 인천으로 이사를 오라는 거예요.”
“그건 왜죠?......”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면서...... 후배들 취직 시켜주고 나면 금방 그만 둬 버리기도 해서 곤란한 적이 많았다고...... 정말 여기서 자리를 잡고 싶으면 아예 이사 올 곳이나 알아보라면서 한 번 건너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야 하루라도 빨리 그 매장을 그만두고 싶어 하니까, 제가 가서 방을 알아보기로 했는데. 어디로 배치를 해줄지 모르니까 부장님을 찾아 갔었지요.”
“왜, 남편하고 같이 안가고?......”
“취직이 될지 안 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데 무조건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남편은 일단 계속 출근하라고 했지요.”
“그 부장이라는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점장의 아내는 익히 자기도 알고 있을 내용을 재차 확인하듯 물어오는 강주가 의아한지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는 다시 대답을 이어간다.
“황경수 부장이요.”
“그래서요?......”
“제가 하기에 따라서 취직은 물론이고 앞으로 진급도 보장해 준다고 해서...... 그만......”
“그만...... 뭐요?......”
“그만 여관에 따라가게 됐어요.”
“그래서 거기서 황경수 부장하고 관계를 맺은 겁니까?”
“네......”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네...... 하지만 그때 한 번뿐이었어요. 믿어 주세요.”
이어서 강주는 핸드폰을 조작하며 점장의 아내에게 자세를 요구해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한다. 기가 막힐 일이지만 이미 강주의 의도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해 있으니 부끄러운 곳을 노출한 채 촬영에 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미 강주에게는 일종의 컬렉션에 불과한 일이지만 상류층 인간들을 접해 보니, 그들의 작태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아 언제 어떻게 보복을 당할지 몰라 모든 일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일이다.
“음...... 걱정 말아요. 공개할 건 아니니까...... 다만 아까 내가 본 바로는 아직도 당신을 백 퍼센트 신용하기가 어려워서 그럴 뿐이니까...... 내가 작업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행위를 한다면 그 길로 신세 망치는 겁니다. 알았어요?”
“네, 네...... 절대 안 그럴 거예요. 이젠 전화도 안 할게요. 그 서류도 보긴 봤지만 뭐가 뭔지 몰라서 아무 말도 못해줬어요, 진짜예요.”
“자, 그럼 됐습니다. 당신이나 남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해줄 테니까 지금부터는 다 잊어버리고 남편 내조나 잘 해요. 자, 내 명함을 주고 갈 테니까 혹시라도 연락할 일 있으면 하시고......”
“네...... 이사님. 그러면 비밀은 지켜 주시는 거죠?”
강주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려오고 점장의 아내는 그래도 불안한지 마당까지 내려 와 배웅을 한다.
이제 황부장은 강주에게 확실히 덜미를 잡힌 셈이다. 거래처와의 계약을 체결 당시부터 조작해 뒷거래로 배를 채워온 사실을 포착했으니 계약을 재조정한 뒤 그 돈을 회수하고 점장들의 점두코너 수익만 잘 관리하면 당장이라도 적자기조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차차 교육훈련을 통해 조정해 나간다면 이 회사를 건지는 것도 썩 힘이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차를 몰아 용현동 본사로 향한다.
모르면 몰라도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어사출도를 할 때의 기분이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차를 몰아가자 곧 전화가 울려 다시 길가에 주차를 하고 전화를 받는다.
“네......”
“아! 이사님, 저 본점 점장입니다.”
“아! 네...... 저도 지금 집에서 금방 나왔습니다.”
“네...... 그게 좀 이상한 게......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어젯밤에 이사님을 만난 걸 알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이사님 명함을 황부장에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죠?”
“음...... 뭐, 괜찮습니다. 이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바로 작업 해 버릴 거니까...... 점장님은 근무나 잘 하고 계세요.”
“네, 네...... 알았습니다. 절대 제가 일부러 알려 준 건 아닙니다. 이사님.”
“허허허...... 네, 알았다니까요.”
재삼 당부하는 점장의 말에서 샐러리맨의 비애가 느껴져 측은해지기까지 한다. 이 사람 역시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자신에게 허락된 조그만 공간의 일상 속에서만 허덕이고 있을 뿐이다. 자신 역시 수하직원의 부인인 여진이와 관계를 맺고 있어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것과 일자리를 빌미로 몸을 요구하는 황부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애써 치부해 버린다.
이렇게 강주도 자신의 몸뚱이를 전혀 다른 시장으로 던져놓고 보니 비로소 시야가 밝아지는 모양이다. 손 안에 있는 것,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전부를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철이 들어 철을 안다든 것은 절기를 안다는 것이고, 곧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성인이 되어 간다는 뜻일 게다. 회장을 만나 인천으로 건너오게 되고 이곳에서 경험하는 낯 선 상황들이 타산지석이 되어 부쩍 강주의 키를 자라게 하는 모양이다.
“흐음...... 그러면 조만간 다시 전화가 오겠지.”
황부장이 명함을 받아갔다면 금방 전화가 올 터이니 아예 운전석 의자를 뒤로 재끼고 누워 버린다. 그간 즐겨왔던 많은 여자들도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부인이었을 것이니 지금의 강주를 가장 자극하는 문제는 민희와 혜숙이의 문제일 것이다. 내 가족의 범주 안에 있는 여자들이 누군가의 사타구니 밑에서 헐떡여야 하는 이유가 단지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이유라면 더 이상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창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물자 곧 전화가 울린다.
“네, 최......”
“호호호...... 안녕하세요? 이사님...... 저 아시겠어요?”
“네?......”
“왜...... 전에 회장 언니하고 같이 만났었잖아요? 그날 저녁에 이사님은 경주 차를 타고 가시고......”
“아...... 그러면......”
“네, 제가 회장 언니 차를 운전해서 갔잖아요. 저, 이미경이에요.”
“아! 네...... 이여사...... 그런데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어머! 전화번호뿐이겠어요? 지금 인천에 와 계신 것도 다 아는데...... 호호호...... 저는 무역 일을 보시는 줄 알았더니 유통 쪽을 보신다면서요?”
자신의 행적을 빤히 들여다보듯 알고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에 강주는 기가 막힐 뿐이다.
“허허...... 참...... 기가 막히네요. 이여사 안테나가 상당히 고감도인 모양입니다.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하하하......”
“한 번 시간 좀 내주세요. 지금 좀 만날까요?”
“아! 지금은 제가 업무 중이라서 좀 어려운데......”
“어머! 이사님이 시간에 쫓길 일이 어디 있어요? 천천히 하셔도 되잖아요? 그러지 마시고 지금 좀 만나요.”
“어허...... 참...... 제가 나중에 전화를 드릴 테니까...... 정 그러면 볼 일 좀 보고 점심시간 쯤 만납시다.”
“아이 참...... 그래요. 그럼 그 전에 한 말씀만 드릴게요. 저...... 유통에 황부장 아시죠? 그 양반이 제 남편이거든요. 그렇게 아시고 나중에 다시 자세한 말씀 드릴게요. 이따가 만나요.”
“네?......”
도깨비 소굴이 따로 없다. 어이도 없고 기가 막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뭔가 잔뜩 뭉쳐 있는 실타래를 들고 실마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느낌이 바로 이럴 것이다. 회장에게 들은 바로는 그녀를 추종하는 그녀의 패거리들을 잘 사귀어 보라고 했었는데, 민희야 그런 관계를 알 리 없는 처지였으니 그렇다지만, 이 여자가 황부장의 부인이라면 그런 것을 회장이 모를 리도 없는 일인데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희를 통해서 그녀들 간에 뭔가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터에 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섣불리 황부장을 두들기기도 마땅치 않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또 다시 전화가 울린다. 번호를 보니 이번에는 회장의 전화다. 모든 것은 이 여자로부터 연출 된 것일 수도 있으니 정작 알아야 할 이 여자의 속셈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이다. 도무지 혼란스러워 그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는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네, 최이사입니다.”
“네, 이사님. 저예요.”
“네, 회장님. 좋은 아침이지요.”
“어머! 이사님...... 역시 인사도 세련된 인사예요...... 지금 인천이시라면서요? 요즘 시간을 자주 내시네요? 저 쪽 회사에는 괜찮아요?”
역시나 줄줄이 정보가 흘러 회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황부장도 사안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마누라나 회장을 앞세워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하물며 회장은 더욱이 알아서는 안 될 입장일 텐데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것에 대해 강주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네...... 며칠 돌아 볼 생각을 하고 아예 휴가를 내서 왔습니다.”
“어머! 아유......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애인한테 혼나시겠다. 호호호......”
“뭐,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네, 괜찮으시면 지금 좀 뵐까요? 제가 송도 쪽으로 가서 전화 드릴게요.”
“네...... 그러시죠. 저도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유원지 안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가끔 움직이는 직원들 뿐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강주의 속마음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묘한 심정이다. 정작 회장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일에 이제는 뭔가 해답을 찾아간다는 기쁨도 잠시, 모든 걸 보류한 상태에서 회장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한다.
“쉽게 찾으셨네요?”
“참 나...... 수원에서 왔다고 아주 촌놈 취급을 하십니다. 그려......”
강주의 대꾸에서 볼 멘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회장이 아닐 테니 그저 강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회장의 저 미소에 아랫도리에 불끈 힘이 들어갔겠지만, 구미호처럼 속을 알 수 없는 회장에게 적잖은 회의를 느끼는 터라 역시 터울을 좁힐 수 없는 무지렁이 강주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이사님, 숙제는 좀 하셨나요?”
“허허...... 아직 다 만나 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숙제를 합니까? 언제 자리 좀 만들어 보시죠.”
“호호호......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같이 점심 먹자고 했어요. 기다려 보세요.”
“그러세요? 그래...... 참, 보자고 하신 이유는요?”
“아이, 뭐가 그리 급해요? 이사님은 어쩔 때 보면 너무 전투적으로 사시는 것 같아요. 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주변도 돌아보면서 하세요.”
주변을 돌아보라는 회장의 말이 왠지 귀에 거슬린다. 당장이라도 이유를 묻고 싶지만 또 핀잔만 들을 테니 눌러 참으며 회장을 따라 나서고, 회장은 강주의 팔짱을 끼고 보트장을 따라 물가로 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물을 보며 한가로이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머릿속으로는 바둑을 두는 기사들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설전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걷는 길에 벤치가 보이자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레 그쪽으로 방향이 정해지고 막상 앉으려 하니 의자가 썩 깨끗하질 않아 회장을 바라보게 된다.
“그냥 앉아요. 괜찮아요.”
“아! 그러면 제 무릎에 살짝 걸치세요.”
그냥 앉으려는 회장의 허리를 잡아챈다. 강주 입장에서는 불편한 기분에 그냥 그녀에게 끌려 다니기 싫다는 은연중의 표시일지 모르겠다.
“어머!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호호호......”
강주는 벤치 모서리에 앉아 다리를 벌려 한 쪽 무릎을 내어주고 회장은 주변을 슬쩍 돌아보곤 강주의 어깨를 짚으며 그 위로 엉덩이를 걸친다.
“그래...... 이사님이 매장을 돌아보니 느낌이 어떠세요?”
“뭐, 답답하죠. 시설도 그렇고, 직원들도 기강이 많이 해이하고...... 심지어는 가격표가 잘못 붙어있거나 아예 없는 것도 부지기수에다가...... 구석구석 먼지투성이고...... 전반적으로 그림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시죠?”
“일단 본사에 들어가서 조직도를 살펴보고 조직 자체의 문제인지 매장 단위의 문제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황부장이란 사람도 좀 알아보고요.”
“황부장에게 문제가 있던가요?”
“......”
강주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다. 황부장이 명함을 받아 간 직후에 그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연이어 회장에게서 연락이 와서 만나자고 하니 이들의 관계를 정확히 알기까지는 나름대로 유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다. 이것이야 말로 회장에게 배운 스타일이니 일단은 속을 감춰 보지만, 강주가 가부간에 아무 대답도 없다는 건 일부 긍정하는 입장이니 회장으로선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 황부장 안사람이 미경이라고...... 이사님도 전에 한 번 본 기억이 있지요?”
“네, 안 그래도 회장님 만나기 전에 전화가 왔더군요.”
“그래요, 제게도 전화가 왔었어요. 이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쌀쌀맞게 끊어 버리셨다면서요? 호호호...... 그런데 제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왜 그런지 은근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호호호......”
“허허허...... 참 나......”
“민희나 경주도 자기들한테 전화가 안 온다고 하던데......”
경주한테야 전화를 한 적이 없지만 민희는 사정이 다름에도 회장이 저리 말하는 걸 보면 민희도 강주와의 속사정을 회장에게 털어놓지는 않은 모양이다.
“네...... 뭐, 별로 볼일도 없는데......”
“호호호...... 그래도 가끔씩 만나 보세요. 다 이사님께 도움이 될 거라니까요. 안 그래도 미경이는 오늘 보기로 했으니까...... 아유, 계집애...... 무슨 일인지 바짝 몸이 달아 가지고...... 황부장이 이사님에게 뭔가 대단히 크게 책잡힐 일이라도 저지른 모양이지요? 호호호......”
“회장님은 그게 뭔지 궁금하지도 않으신 모양입니다? 묻지도 않으시는 걸 보면......”
회장은 강주의 질문에 대답도 않고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제가 사업을 꾸려 나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지요? 국방부의 높은 사람들...... 국회의원이다. 시장이다. 군수다...... 나름대로 한다하는 인간들, 사업을 위해서 그렇게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모두가 다 하나같이 그렇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상류층 사람들의 맹점을 이용하기 시작한 거죠. 이이제이 아시죠?”
“아! 그렇다면?......”
“그래요. 내 도움이 필요해서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도와줘서 내 사람으로 만들어 두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을 내세우는 거죠. 이 클럽 저 클럽 모임이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 모두 어떤 필요에 의해서 교제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알아두면 상대방에게 나중에라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사람들 도 싫어하진 않거든요.”
“네...... 일전에 말씀하셨지요.”
“처음엔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납품심사를 하던 국방부 대령이었는데, 실무진 심사는 통과했는데도 너무 끈끈하게 굴어서 거리를 두다가 결국 거래를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다른 일로 우연히 그 부인하고 친분을 맺게 되고...... 그 여자가 바로 그 장교부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서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다른 거래를 할때 그 거래처 사장한테 소개를 해줘 버렸지요. 호호호...... 그랬는데 그게 글쎄 접대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터득을 하게 됐지요.”
“허허허...... 참....... 네...... 그랬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쌓이더라고요. 전에 헤어질 때, 나 부축해서 내려간 동생 기억나지요? 운전했던 애...... 그 애가 바로 그 황부장 부인이에요. 호호호...... 황부장이 남편에게 신세를 지기도 많이 졌지만 나름대로 고생도 제법 했어요.”
“......”
“음...... 뭐, 자세한 말을 들어 보진 않았지만 대단한 일 아니면 그냥 모른 척 해주세요. 어차피 이제 이사님이 바로 잡으면 그뿐이잖아요? 지금 미경이가 내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 그 애를 봐서라도...... 오늘 미경이 만나 보시고, 이사님도 나중에 그 애가 부탁해오면 황부장 어디 취직이라도 시켜주려고 애써줄 것 아니에요? 다...... 그렇게 서로 돕고 돕는 거예요. 그러니 상대방이 굳이 싫다고 하지 않는 한 부담 없이 만나도 괜찮아요. 제비족이나 꽃뱀도 아니니 서로에게 안전하고요. 그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말라는 건 그렇게 마음의 빚을 많이 만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오히려 가벼운 부탁 정도는 들어줘도 괜찮지 않겠어요? 이젠 그 쪽에서 오히려 이사님께 빚을 지는 셈이니까 이사님은 손해 볼 것도 없잖아요. 호호호......”
뭔가 황부장보다는 황부장 부인인 미경이가 더 쓰임새가 있는 모양이다. 강주는 민희 생각에 몹시 불쾌하기도 하지만, 특히나 회장에게는 속을 감춰야 할 것 같아서 일단 털어 버리기로 한다. 어차피 재원이야 회장의 말대로 다시 회수하면 그뿐이니 이 기회에 황부장만 확실히 장악하는 선에서 멈추기로 내심 마음을 먹고 슬며시 회장을 부축하는 손에 힘을 가해 허리를 더듬어 본다.
“하긴 그렇군요. 역시 제가 과외 선생님은 제대로 모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오히려 제 입장을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회장님.”
“호호호...... 어머! 비행기 태우셔도 포상 가불은 안 된답니다. 이사님. 우선은 숙제부터 하시라니까요.”
“허허허...... 회장님도 참...... 아휴...... 그래도 그 남편들이 알면...... 참 나......”
“호호호...... 꼭 그렇지도 않지요. 어차피 남자들도 클럽 모임에 나올 때는 그런 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부인들 그런 줄 전혀 모르고 있진 않을 걸요. 다만 현재의 사회적 지위와 바라보는 희망, 목적, 뭐...... 이런 것들 때문에 그저 모른 척, 못 본 척 하고 지낼 수도 있지 않겠어요? 서로 돈 보고 집안끼리 하는 결혼...... 그래도 남녀 간의 일이니 처음에야 물론 죽고 못 사는 것처럼 사랑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게 어디 오래 가나요? 곧 시선을 밖으로 돌리게 되고 사회적 체면 에 이혼할 수는 없으니 목표를 향해 가면서 서로가 방해받지 않고 암묵적으로 즐기는 거죠.”
“허허...... 참...... 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마 모르면 몰라도 우리 남편도 최이사님 곱게 보진 않을 걸요.”
“네?...... 절...... 왜요? 제가 뭘 어쨌다고......”
“호호호...... 우리 남편 제의는 거절하고 제 부탁은 들어주셨잖아요. 황부장이 알았으니 지금쯤은 소식이 들어갔을 텐데...... 또, 유통 사무실에는 나오지도 않고 저만 이렇게 밖에서 따로 만나고 계시고...... 그러니 벌써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않겠어요? 호호호......”
“아! 그럴 수도 있나요? 야...... 이거 조금 억울한데요. 앞으로 사장님 뵐 생각을 하니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요. 하하하......”
“호호호...... 이사님,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아마 누구도 바보처럼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왜냐면 자기만 공개적으로 바보가 되고 전혀 얻을 것도 없거든요. 그랬다가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고립당하기 십상이죠.”
“하하하......”
강주는 허리를 꺾어가며 큰 소리로 웃어 대고 회장은 눈이 동그래져 강주를 바라본다.
“갑자기 왜 그렇게 웃어요?”
“네?...... 네.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생각이요?”
“하하하...... 상류층 사람들이요?...... 그 모임에 나온다는 남자들 말입니다. 서로가 얼굴들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겠어요? 다 동서지간일지도 모르니...... 하하하......”
“어머! 호호호......”
강주는 다리가 불편한지 양다리를 모아 회장을 다시 앉히곤 슬그머니 회장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린다. 회장도 모른 척 강주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한 손을 내어준다.
회장의 입장에선 나름의 공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제의를 묵묵히 따라주는 강주에 대한 포상일 수도 있겠다. 강주는 회장이 민희의 남편과 잠자리를 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후라서 슬그머니 회장을 도발해 보기로 한다.
“아무리 운동을 해서 몸매유지를 하고, 수술을 해서 얼굴 주름을 펴도 손은 어떻게 안 되더라고요. 내 손 주름이 많이 졌죠?”
강주는 천천히 손을 잡아당겨 입을 맞춰주며 웃는다.
“어머! 호호호...... 아유...... 이사님. 지금 프러포즈하시는 거예요?”
“네...... 회장님. 잠깐만이요.”
회장을 번쩍 안아들어 자신의 무릎에 고쳐 앉히고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벤치에 엉덩이를 조금만 걸치고 뒤로 기대니 마치 골반 위에 앉힌 형국이다.
“어머나! 아유...... 이사님...... 왜 이래요?”
“잠깐만요. 회장님,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강주는 다시 허리를 세워 버둥대는 회장을 힘으로 제압해 꼭 끌어안고 회장도 곧 몸의 힘을 빼고는 강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부드럽게 머리칼을 넘겨준다. 회장의 가슴은 강주의 얼굴을 압박해 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향기를 코로 넘겨주고 매미날개처럼 얇게 비치는 회장의 옷은 부드러운 피부감촉을 그대로 강주에게 전달해준다. 나이를 잊게 해 주는 회장의 가는 허리는 풍만한 엉덩이 위에서 잔뜩 꺾여 있다.
“아...... 좋다...... 하하하......”
“아유...... 이사님. 이제 그만 내려줘...... 힘들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조금만 더요. 조금만...... 보긴 누가 본다고 그래요? 아무도 없는데......”
한참동안 강주의 손은 부드럽게 회장의 무릎을 오가며 쓰다듬고 회장은 그런 강주의 목을 양팔로 꼭 끌어안고 모른 척 시선을 물가로 보내고 있다.
“어머! 호호호......”
“왜요?”
“아유...... 이게 뭐야? 이사님도 참......호호호......”
회장은 여전히 강주의 목을 감은 채 갑자기 자지러질듯 웃으며 몸을 움찔거리고 이유를 알게 된 강주도 어색하게 따라 웃는다.
“아하...... 죄송해요. 회장님. 나도 모르게 그만......내려드릴게요.”
“아니야. 호호호...... 그냥 이대로 있어. 괜찮아.”
“네?...... 네.”
“소개해준 동생들로 양이 안차나 봐? 호호호......”
회장은 짓궂게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어 강주를 더욱 자극한다.
“아...... 아...... 회장님......”
“호호호......”
강주는 회장의 노골적인 추파에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어 마음껏 기운을 뽐내고, 회장은 모른 척 엉덩이를 맡긴 채 한동안 물가만 바라본다.
“아...... 이사님, 이제 나 내려 줘. 미경이 만나러 가야지.”
“네, 잠깐만요.”
“어머나...... 어떻게 해. 걸을 수 있겠어? 호호호......”
“아유, 회장님도 참...... 좀 가려줘요. 제가 뒤에서 걸을게요.”
“그래, 잘 따라 와야 해.”
가려주다가 이내 깡충거리며 피해 달아나 강주를 곤란하게 하는 모습이 마치 유원지에 놀러 온 어린아이같이 즐거워 보이고 강주는 어쨌거나 회장에게 한 발 다가간 느낌이어서 오늘의 만남에 나름의 수확은 있는 셈이다.
근처의 비치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가니 미경이가 반가운 듯 일어서 손을 흔든다. 황부장의 부인이라니까 오히려 자극적으로 정복욕이 일어나 다시 한 번 눈길을 보낸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이사님.”
“그래요, 잘 지냈어요?”
“이것들은 이사님만 모시고 오면 안면을 바꾼다니까......”
“어머! 언니는...... 호호호...... 말씀들 많이 나누셨어요?”
“그래...... 하지만 그 회사 정리하고, 안 하고는 모두 여기 최이사님에게 달려 있으니까 네 신랑한테도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해. 내가 너까지 미워질까 봐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물어 보지도 않았지만...... 음...... 이사님......”
회장은 갑자기 말을 중단한 채 강주를 바라보고 덩달아 미경이도 긴장한 모습이다.
“안 물어 보신다면서 갑자기 맘이 바뀌셨습니까? 허허......”
“아니...... 그게 아니고...... 살릴 수 있겠어요? 솔직한 말씀을 듣고 싶어요.”
“물론입니다. 그것도 단 시일에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단시일에요?”
“허허...... 여기 미경씨 앞에서 이런 말을 하자니 조금 미안한데...... 어차피 문제 삼지 않기로 했으니까, 지금 잘못 되어 있는 사안들 조금만 개선하고 직원들 재교육 시키면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폐쇄는 생각 안할 테니까 잘 협조해서 꼭 좀 살려 보세요.”
“아니?...... 회장님, 아직도 그 말씀이세요?”
“호호호...... 알았다니까요. 아유...... 참, 이사님은 무슨 말을 못하게 해...... 자, 어디 밥이라도 먹으러 가지요?”
“어머! 언니 잠깐만...... 그이 온다고 전화 왔었거든요.”
“어머! 황부장이?......”
“네, 마음이 많이 쓰이나 봐요.”
“호호호...... 황부장이 아주 임자 제대로 만난 모양이구나. 호호호......”
“제가 요 앞에 좀 나가서 찾아볼게요. 여길 못 찾나?......”
미경이 나가고 공교롭게 잠시 후 황부장이 들어서고 회장을 보고는 쭈뼛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새로 온 이사가 강주라는 것은 이미 아는 표정이지만 강주는 일부러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다. 회장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싸늘한 눈초리로 황부장을 노려보며 찬바람을 풀풀 날리고 그 모습을 본 강주는 회장의 시뮬레이션 액션에 기가 막혀 웃음이 터질 지경이다.
“회장님, 면목 없게 되었습니다.”
“......”
“저기...... 회장님. 여기 부장님하고 둘이 좀 의논을 할 테니까 자리를 좀 옮기겠습니다.”
“아니에요. 이사님...... 말씀 나누세요. 제가 나가 있지요.”
강주는 기왕 문제 삼지 않기로 한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그로 인해 본점 점장이나 그 부인, 기타 이 일로 괜히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김과장 등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회장이 들을 수 없도록 자리를 따로 앉기를 요구하고, 회장은 마침 들어오는 미경이를 데리고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그래...... 부인에게 이미 말씀을 들으셨을 테니 긴 말은 하지 맙시다. 제가 오후에 본사로 들어 갈 테니까 브리핑이나 잘 해 주세요. 앞으로 잘 해 볼 생각이시면 협조해 주시고요. 그리고 뭐...... 하실 말씀 있으시면 꼭 회사 업무가 아니더라도 이 기회에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황부장도 전혀 생각이 없진 않았을 테니 넌지시 말을 던져 대화를 유도해 낸다.
“하하하...... 아, 이거 참...... 지난번에 오셨을 때 진작 말씀을 해 주시지 않고...... 사장님께서도 섭섭해 하시던데...... 네, 앞으로 잘 해 봅시다. 제가 이래 뵈도 이 회사 창립멤버 아닙니까? 필요한 브리핑은 제가 다 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그리고 그동안 제가 그...... 몇 푼 안 되는 거지만 점두 행사수입은 좀 손을 대 왔습니다. 이젠 그대로 보고 할 테니 우리 다 잊어 버리고 앞으로는 윈윈 하는 걸로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아직도 분위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점장 부인의 말이 사실인지 거래처 계약에 대해서 손 댄 것이 이미 들통 났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자기 마누라와 회장이 공유하는 것에 대한 무게가 얼마나 큰지 강주가 알 바 아니지만, 사장까지 들먹여 가며 실세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바보 같은 소리에 강주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윈윈?...... 허허허...... 이것 봐요. 황부장...... 당신 정말 신세 망치고 싶어?”
“어어...... 뭐, 뭐요?”
비록 소리죽여 말 하지만 느닷없는 반말에 황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당신이 점장 마누라한테 전화로 뭔가 보고를 받긴 받은 모양인데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그 서류를 보고 뭘 알아서 얘기를 제대로 해 줬겠나? 그냥 뭔가 있나 보다 싶어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전화질로 구조신호를 보낸 모양인데, 당신 정말 뜨거운 맛 좀 봐야 되겠어...... 당신 때문에 수십, 수백 명이 대신 밥을 굶으면 안 되지 않겠어?”
“어......”
점장 부인에 대해서 거론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회장이 앉은 테이블의 눈치를 살핀다.
“보아하니 당신, 취직을 빌미로 여자들 제법 건드려 온 모양이지. 회장이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룹 이사회에 참석해서 당신 까발리겠어. 비록 회장이 대주주지만 다른 이사들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걸...... 게다가 당신 본점점장 부인에게 어떻게 했어?”
강주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기를 작동시킨다. 휴대폰에선 아침에 점장 부인과 나눈 대화가 흘러나오고 황부장은 이제 얼굴빛이 아예 푸르스름하게 변해 버린다.
“내가 이 여자를 들쑤셔서라도 당신 강간으로 고소하게 만들 거야. 나...... 이 여자 약점도 잡고 있거든......”
다시 한 번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황부장은 연이은 강주의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눈동자만 바쁘게 굴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당신 거래처 계약을 리베이트로 돌려서 당신 통장으로 거액을 착복하고 있다는 증거도 모두 확보한 상태야. 이건 회장이 봐주고 안 봐주고를 떠나서 무조건 형사구속 감이야. 어디...... 당신 한 번 죽어 봐.”
강주는 더 이상 대화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 이사님. 이사님......”
강주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장 쪽에서야 들릴 리가 없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공갈을 치니 소름 끼치도록 더욱 무서운 협박으로 들려오고 강주가 거래처 계약에 관한 얘기까지 꺼내자 황부장은 서둘러 강주의 팔을 잡으며 사정을 한다.
“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시간 좀 주십시오.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씨바......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내가 어제 이미 거래처 계약서 전부 확인을 끝낸 상태야. 거래처 간부들 불러들여서 최초 계약된 날짜부터 결재해 준 금액을 따져보면 십 원짜리 동전 하나도 빼낼 수 없도록 답이 나오게 돼 있어. 어제 대충만 계산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던데...... 당신 집이 어디야?”
“네, 네...... 본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딴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아파트 등기필증 가지고 나와.”
“네?...... 아유, 이사님...... 제가 그동안 해 먹은 거 다 합쳐도 그만큼은 안 됩니다. 이사님......”
강주는 다시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며 말을 잇는다. 미소 짓는 강주의 얼굴이 이 순간 황부장에게는 악귀나찰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끝까지 해 보자는 거야? 이거 내가 점장한테 들려주면 당신 어디서 칼 맞을지 몰라. 순순히 말 듣고 앞으로나 열심히 하면 다시 집 찾도록 해 줄 거고, 하는 게 시원치 않으면 영영 집은 날려 버릴 거야. 알았어? 당신, 아까 나보고 뭐라고 했어? 뭐?...... 윈윈?...... 그 역은 기차 안 다닌지 오래 됐어. 그 역은 제로섬 다음 역이야. 당신이 완전히 항복했는지 내가 아직 신용하지를 못하겠어. 그렇게 하겠어? 아니면 내 맘대로 할까?”
“아, 네,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이사 가라고 하지는 않겠어. 권리만 넘기고 일단 계속 살아도 좋아. 하는 것 봐서 당신이 확실히 내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다시 돌려 줄 수도 있으니까 너무 인상 쓰지 말고...... 알았어?”
“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자, 그럼 마누라 앞인데 인상 펴고 밥 먹으러 갑시다.”
황부장은 회장 말마따나 임자 제대로 만난 격이다. 물론 두 사람이 생각하는 입장은 전혀 다르겠지만 어쨌든 황부장은 허둥지둥 강주의 뒤를 쫓고 있다.
“......”
강주와 민희는 모텔을 빠져나와 근처의 편의점에서 커피를 빼 마시고 있다. 여전히 강주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고 민희는 보채는 아이를 달래듯 강주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준다.
강주는 지긋이 민희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는 강주의 모습에서 민희는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낀다. 마치 친동기간처럼 진심으로 자신의 처지를 염려해주는 강주의 마음이 느껴지는지 찡한 마음에 어느새 민희의 얼굴도 울상으로 변해 버린다.
“야, 야...... 너야말로 왜 인상을 쓰고 지랄이냐? 지랄이......”
“치...... 저리 비켜. 너 때문에 그러잖아.”
“알았어. 인상 펴...... 무슨 수가 있겠지.”
“씨...... 너부터 펴......”
“하하하...... 너 인상 쓰고 있으니까 제법 볼만 하다. 야...... 하하하......”
“이 씨...... 너, 죽을래?”
토닥거리며 다투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복선을 깔아 상대의 진의를 쉽사리 알 수 없는 살벌한 격전장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로의 처지를 마음 써주는 입장으로 변해 버렸다. 출세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보자면 민희와의 관계의 진전이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강주에게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여자라기보다는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켜 보호해 줘야 할 한 식구라는 입장이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사내들의 입장에 많은 여자들과 로맨스를 즐기는 것을 싫어할 리는 없지만 어디까지를 가족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민희의 마음이야 어떻든지 강주는 나름의 입장을 정리한 듯 앙다문 입술로 결의를 엿보게 한다.
“응? 부소장?......”
“네, 소장님, 접니다.”
“그래, 수고 많지?”
“네, 지금...... 세 군데 째 돌아보고 있는데요. 그...... 왜....... 대나무 돗자리 판매하는 최사장이요......”
“으응...... 그래......”
“이쪽에서 만났는데, 희한한 소리를 하네요?”
“뭐라고 하는데......”
“뭐...... 우리도 익히 아는 일이긴 하지만 점두는 아예 닦아 먹는 것 같고...... 중요한 건 이번에 아주 정식입점을 하려고 하는데 판매계약을 리베이트로 자꾸 유도를 한다고 하네요. 부가가치세 문제도 있고 해서 D.C로 가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해 준답니다.”
“그래? 음......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 계약 담당자가 누구래?”
“이상한 게 그거예요. 담당자는 통과했는데...... 윗선에서 자꾸 그런답니다.”
“그게 누구래?”
“무슨 부장이라던데......”
“그래, 알았어. 그...... 최사장한테는 계약하지 말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
강주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민희를 바라보고 민희도 강주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한 모습이다.
“민희야. 너...... 경주 남편이 한다는 변호사 사무실 위치 알고 있니?”
“응...... 거긴 왜?......”
“응, 확인할 게 좀 있어. 안내해 봐. 얼른 차에 타.”
차 안에서도 강주는 민희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외견상 보이는 대로라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의사가 개업을 해서 자기 병원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비교적 연봉이야 높은 편이겠지만 일반 월급쟁이와 다를 것도 썩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회장과 모종의 밀약으로 병원을 구하고, 병원으로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상류층 인사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이곳에서 저곳으로 품을 팔고 다니는 들병이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면 정말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지 안타까워 마치 민희의 손에서 답이라도 찾으려는 듯 땀이 배이도록 쥔 그녀의 손을 놓지 못한다.
“저 건물 삼층이야.”
“그래, 올라가자.”
사무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명함을 내밀자 반가이 맞아 준다. 잠시 후 경주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와도 인사를 나누고 용건을 설명한다. 이 사내도 이른 바 상류층 인사일 테지만 시궁창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을 터 이미 자신과는 한 구멍을 이용하고 있는 처지니 강주에게는 감회가 남다르다.
“음...... 우리 유통에서 거래처와 계약을 할 때 여기 이 사무실에다 뭔가 의뢰를 하는 모양이던데......”
“아! 네...... 저희들이 공증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부본을 보관하고 계실 텐데,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그러시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변호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무장과 직원이 움직이고 잠시 후에 테이블 위에는 수북한 문서가 쌓인다. 강주는 한참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문서를 확인하다가 직원에게 부탁을 한다.
“자, 지금 이 페이지가 나오도록 모두 준비를 해 주시겠어요?”
강주의 부탁을 듣고는 여러 사람이 매달려 서류를 넘기며 해당 페이지를 찾아 준다. 어느새 곁에 왔는지 민희도 고개를 빼고 어깨너머로 바라본다.
“후후...... 뭐 보면 알겠어?”
“어머! 이사님......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잠시 뜨끔한 느낌이다. 이젠 가족처럼 느껴지는 민희인지라 별 뜻 없이 말을 놓아버렸는데, 대뜸 이사라며 존댓말을 해오는 민희의 대답을 듣고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다. 그녀의 삶의 방식이 다시 한 번 폐부를 찌르며 강주의 측은지심을 자극한다. 마치 대단한 복선이라도 깔려 있었던 것처럼 알 수 없던 그녀의 진면목을 알고 나니 오히려 삶의 한 자락을 붙들고 놓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견딜 수 없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잠시 후 강주는 약 이십 부 정도의 서류를 추려내 카피를 부탁한다.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거...... 갑자기 찾아와서 정신만 빼놓고 갑니다. 언제 시간 만들어서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제가 이사님께 대접해 드려야지요. 언제 한 번 연락 주십시오.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럼......”
서류를 차 뒷자리에 던져두고 운전석에 올라앉아 민희를 바라본다.
“오늘 나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겨서 어떻게 해?”
“어머! 은근히 기분 나빠지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사이에......”
이미 강주에게는 민희가 측은하게만 보여 실없는 소리로 그녀를 자극한다.
“큭...... 우리가 무슨 사인데?......”
“어쭈, 최이사...... 너 자꾸 까불래? 호호호......”
“야, 서방님한테 최이사가 뭐냐? 참, 어떻게 할래? 집으로 갈 거야?”
“아니야...... 차도 병원에 있는데...... 구월동에 내려 줘.”
병원 근처에 도착해 민희를 내려주며 다시 당부를 하기 위해 손을 잡고 민희도 강주를 한참 바라본다.
“민희야, 이제 나...... 남처럼 생각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렇지만, 제부로도 생각 안 할 거야. 나하고 둘만 있을 때는...... 자기도 알았지.”
“그래, 잘 있어. 간다.”
숙소를 정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부소장 생각이 난다. 출소한 후에 술도 한 잔 못한 채 바로 실무에 투입시켜 미안하기도 하고 영통의 하모니 카페 장마담의 뒷일도 궁금하여 그곳에서 술이나 한 잔 할 생각으로 휴대폰을 찾는다.
“어! 이런......”
이미 전화가 여러 번 걸려온 모양이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옷을 벗어두고 서류와 한참 씨름을 하느라 미처 못 받은 모양이다.
“여보세요? 전화하신 분이......”
“네, 이사님이세요? 저 본점 점장입니다.”
“아! 네, 네..... 왜요? 아 참, 술 한 잔 하자고 했었지요?”
“네...... 그런데...... 지금 바쁘세요?”
“아, 아닙니다. 내가 깜빡 잊고 지금 다른 데에 가려다가...... 하하하...... 지금 어딥니까?”
“네, 이제 곧 마칠 때 됐거든요.”
“음...... 그럼 내가 그리 가지요. 매장 앞에서 기다리세요.”
할 수 없이 부소장의 일은 뒤로 미루게 되고, 장마담도 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매장에는 이미 불이 꺼지고 주차장 입구에 점장이 나와 서 있는 모습이 보여 조수석 문을 내리고 자세를 숙여 점장을 바라본다.
“어디로 갈까요? 근처에는 마땅한 데가 없는 모양이던데......”
강주가 어디로 갈지 난색을 표하자 점장은 더 곤란해진다. 이사 정도 되는 인물을 대폿집으로 안내할 수도 없고 술을 한 잔 하자고는 했는데 주머니 사정으로 보아 매우 곤란한 모양이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있다가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차창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대꾸를 한다.
“차라리...... 이사님 숙소도 마땅치 않으실 텐데...... 저희 집에 빈 방이 하나 있으니 편안하게 저희 집에서 한 잔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말씀하시기도 조용하고...... 그게 안 좋겠습니까?”
“음...... 뭐, 저야 좋습니다만, 식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요?"
“아이고...... 아닙니다. 그럼 제가 앞서 갈 테니까 따라오십시오.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럽시다.”
아파트 밀집촌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 연립주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선다. 차를 주차시키고 내리다가 뒷좌석의 서류가 생각나 옆구리에 끼고 점장을 따라 계단을 올라선다. 강주의 내심으로는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혜숙이를 내몰았던 점장의 모친도 보고 싶고 그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부인도 보고 싶어 선뜻 응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 다시 가족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피와 내 살을 갖고 태어나야만 내 자식인지 모르겠다. 사회문화 환경은 갈수록 정체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그 필연의 결과인지 살아가는 방법도 점점 복잡해져 그 이면에는 부모자식 간에 패륜의 싸움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그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혼하는 가정 뿐 아니라 애초에 사생아로 이름 지어지는 아이들도 있어 부모 없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혜숙이의 경우처럼 자식이 없어 아픔을 겪는 부모들도 있다니 이 경우에도 신의 섭리는 공평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다지만 내 이웃은커녕 내 가족의 범주도 어디까지인지 모호한 것이 슬프지만 현실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어머! 손님이 오신다고 미리 전화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아! 미안해. 갑자기 그렇게 됐어...... 우리 회사 이사님이셔. 인사 드려.”
“어머! 아유,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네, 네...... 이거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밤늦게 미안합니다.”
잠시 방안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다시 나와 여자는 술상을 마련하고 점장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술을 사러 가는 모양이다. 남편에게 처한 입장을 들었을 테니 여자의 태도가 고분고분해진다. 남편보다 훨씬 젊은 사내가 이사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여자 신세 뒤웅박 팔자려니 하고 상을 차리는 것일 게다.
술상을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그런데...... 모친도 계신다고 들었는데......”
“네...... 지금은 따로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야 직장 일로 이렇게 이사를 왔지만 어머니는 친구 분들도 다 수원에 계시니까......”
“네, 그러시군요.”
이것도 넌 센스가 아닐 수 없다. 가정을 영위하고자 가족 간에 흩어져 산다는 말이라니, 최근 조기유학 붐을 타고 헤어져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이 외지에 나가있는 부인들로부터 이혼을 당한다는 소식들이 심심찮게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도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혜숙이를 그리 하고 썩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강주의 입 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간다.
“그럼 자제분은......”
“아직......”
마치 강주의 질문 의도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점장의 뒷덜미가 뻣뻣해진다.
“자, 자...... 술 한 잔 하십시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강주의 입에서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점장이 다시 긴장이 되는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음...... 점장님이 관리하는 매장에 전체 이익률이 어느 정도 나오고 있습니까?”
“네, 요즘 가격을 많이 낮추어서 십 퍼센트 정도 밖에 안 나옵니다.”
“네...... 그렇군요. 그래 가지고 인건비하고 판매관리비 제하고 나면...... 음...... 점두에서 코너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씩이나 받습니까?”
점장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사라는 사람이 경영수업만 닦은 게 아니라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건드릴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강주야 말로 온갖 부정행위에 달통한 인물이니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네, 그건...... 오만 원 정도 받을 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건 더 받을 때도 있습니다.”
“자, 그건 영업외 이익이니까 그야말로 생으로 거저먹는 거라고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루에 점두 수입이 십만 원씩 생긴다면 한 달이면 삼백만 원 아닙니까? 뭐, 물론 매일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 생길 때도 있고 안 생길 때도 있으니까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네, 네......”
“그럼 삼백만 원의 수익이 나려면 그 매장 수익률이 십 퍼센트라니까 삼천만 원의 매출이 발생해야 생길 수 있는 수익이란 말이죠.”
“네, 그렇지요.”
“그거...... 올바르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강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점장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모른다.
“영업수지가 비록 안 좋아도 어차피 시설투자는 되어있는 마당에 가외로 발생하는 수입을 잘 챙겨서 경상수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데도 그게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양입디다. 그래서 수가 낮은 하수라는 거예요. 뭐...... 소소하게 용돈으로 쓰는 정도도 사실은 안 되는 거지만, 우리 회사 판공비 시스템도 보나 마나일 테니 나름대로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내년 농사지을 종자까지 털어서 이 회사 말아먹고 나면 그 다음엔 어디서 농사지을 겁니까?”
“......”
“뭐, 비단 점장님만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감찰하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받은 보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하는 소립니다. 특히 이것 보세요.”
강주는 옆에 내려 둔 봉투를 흔들며 말을 잇는다.
“황부장?...... 회사 간부라는 사람이 계약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 뒷돈을 빼먹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위에서 아래까지 하나같이 썩어서......”
점장이 더 이상 어찌 할 도리가 없는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부인도 덩달아 남편과 강주의 눈치를 번갈아 볼 뿐이다.
“사실 말씀을 하시니까 숨길 수도 없지만 저희 점장들도 그 돈 다 쓰는 건 아니고 일부는 위로 올리곤 합니다. 아시다시피 판공비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점장님은 그 황부장이란 인물이 스카우트를 해 왔다던데...... 이거 일이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아닙니다. 이사님...... 저야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다는 걸 이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야 그렇지...... 아무튼 점장님은 별개로 생각할 테니까 너무 염려는 마시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나 매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관리하세요. 그러고 나서 월급이 적으면 올려달라고 요구를 해야지. 암중으로 그러면 기반이 약한 회사는 금방 주저앉을 수밖에 없잖아요. 빼먹어도 요령껏 빼먹어야지. 언제든지 내가 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으니까 철저하게 관리를 하세요.”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을 대충은 알 것 같고 이제 며칠 안에 결과도 모두 나올 거니까...... 아예 알 만한 점장들에게는 미리 말을 해 주세요. 살아남으려면 마음 바꿔먹고 제대로 근무하라고...... 조만간에 전체 교육이 한 번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황부장이라는 인물하곤 확실히 손 끊으세요. 알았습니까?”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허허...... 점장님, 의외로 소심하시네요. 뭘 그리 긴장을 하고 그럽니까? 자, 이제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어머! 참...... 이사님 방을 봐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창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밤공기가 들어온다. 연립 주변으로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서늘하기까지 하여 이부자리가 낯 선 곳에서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새소리에 눈을 뜬다. 이미 점장은 출근 준비를 마쳤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서 눈을 떴으니 출근하는 사람을 바쁘게 따라 나서기도 민망하여 누운 채 잠시 기다린다.
“자, 그럼......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이사님 깨시면 식사 대접 잘 하고 행여 기분 상하지 않도록 잘 해.”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저녁에 일찍 오세요.”
“응, 간다.”
잠시 후 점장의 차에 시동이 걸리고 현관문도 닫히는 소리가 들려 세수를 하기 위해 거실로 나선다.
방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지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강주로 하여금 화장실로 한 발을 집어넣었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나와 귀를 기울이게 한다.
“네...... 지금 저희 집에서 자고 있어요.”
“......”
“이사라고 하던데 부장님은 모르세요? 무슨 봉투를 흔들면서 부장님 얘기를 하던데......”
“......”
“아유, 무서워요. 그걸 어떻게......”
상황이 짐작된 강주는 살며시 다시 방으로 돌아가 이부자리에 눕는다. 밤중에도 남편이 함께 있으니 전화를 못하고 있다가 출근한 이후에 화급히 전화를 해주는 정도라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야...... 이것들 봐라?...... 남편 모르게 황부장이란 놈하고 붙어먹는 모양인데......”
잠시 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듯 부스스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거실로 나선다.
“아이고..... 이런...... 네, 제가 늦잠을 잤군요. 점장님은 벌써 나가셨나요?”
“네, 이사님...... 어서 씻고 식사하셔야지요.”
“네, 네...... 아유, 이거 폐가 많습니다.”
일부러 넉넉하게 시간을 주려고 천천히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는다. 점장의 아내는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척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전화기를 강주는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차려진 밥상이 제법 그럴 듯하여 과음을 한 뒤인데도 식사를 하는 데에는 힘이 들지 않아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만족한 식사를 마친다.
“아...... 잘 먹었습니다.”
옷을 챙기는 척 방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서류봉투를 건드렸는지 위치가 흐트러져 있다.
“이런...... 배터리가 다 됐네요. 전화기 좀 쓸까요?”
“네...... 이사님, 여기 있습니다.”
전화기를 받아들고 점장의 아내를 바라보며 소파에 걸터앉는다.
“제 서류는 왜 건드렸습니까?”
“네. 네?...... 아닌데요? 제가 왜?......”
“지금 이 전화 재다이얼 누르면 황부장이 나올 텐데.....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황부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 볼까요? 점장도 두 사람 사이 압니까?”
다짜고짜 들이치는 강주의 질문에 점장의 아내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아무 말도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서 있다. 너무 순식간에 당하는 일이라 어찌 처신해야 할지 몰라 그럴 것이니 순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희의 기민했던 대응이 떠오르며 그녀를 그렇게 되도록 몰아간 모든 것들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라 큰 소리를 치게 한다.
“빨리 말 안 할 거야?”
“아유...... 이사님, 안 돼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언제부터 그랬어? 사실대로 말해 봐.”
“네, 네?......”
“황부장하고 두 사람 사이 말이야.”
“네...... 저이 취직 문제 때문에 부탁드리러 왔을 때......”
“내가 네 남편에 대해서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전화를 한 이유는 뭐야? 황부장이 걱정 돼서 그런 거야?”
“저...... 그게 아니라......”
“으응...... 양다리를 걸쳐 두시겠다...... 그거로군.”
“죄, 죄송해요.”
“그럼, 기왕 양다리를 걸칠 거면 확실하게 걸쳐야지.”
강주는 천천히 일어서 와이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고 점장의 아내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엉거주춤 일어서 처분만 바라고 있는 형국이다. 남편의 안전은 고사하고 강주의 짐작에 자신의 부정만 드러난 꼴이니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아득할 뿐이다.
아직 깔려있는 이부자리로 그녀를 이끌고 들어가 방문을 닫아버린다. 이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강주의 원하는 바를 채워주기 위해 옷을 벗는다.
“이리 대. 똑바로......”
책상을 짚고 서있는 그녀를 거칠게 다룬다. 골반을 잡아 돌려 강주를 향하게 하고 발기한 좆을 음문으로 들이민다. 이 여자가 개인적으로 강주에게 잘못했다면 황부장에게 기밀을 발설한 죄이겠지만 지금 강주의 머릿속은 혜숙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알 수 없는 복수심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씨바...... 후욱......”
“아아아학...... 아파요......”
아직 물도 흐르지 않은 곳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니 점장의 아내는 찢어질 듯 밀려오는 고통에 엉덩이를 빼 보려 하지만 강주의 억센 팔에 붙잡혀 고스란히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 씨바......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야. 가만히 있어. 내가 지금 너 기분 좋으라고 해 주는 줄 아냐?”
“하윽, 제발...... 살살......”
“후욱, 후욱, 후욱......”
“아학....... 하아아악....... 아아악......”
아무런 애정도 담겨있지 않은 그저 좆만 드나들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몸이란 신비한 것이어서 질에서는 액이 흐르고 점점 달아오르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강주의 좆도 물어 오는 질의 느낌에 점점 더 힘을 얻어 강하게 팽창한다.
“아아흑, 하아악...... 이사니임...... 하으윽......”
“이런...... 후욱, 씨바...... 닥치지 못해...... 내가 네 서방이냐...... 후욱......”
한참의 좆질에 점장의 아내는 이미 여러 번 물을 쏟아 질이 질펀해져 버리고 흥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항문을 건드려 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해 버린다. 지금의 이 행위가 아무래도 강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좆질에 불과한 때문인 모양이다.
“꿇어 앉아.”
갑자기 좆을 꺼내 버리고 머리카락을 쥐어 주저앉힌다. 점장의 아내는 멀뚱히 강주를 바라보다가 눈앞에 와 있는 좆을 보고 양손으로 감아쥐어 입으로 물어간다. 두 눈 가득히 열망이 끓어올라 지금이라면 무슨 짓을 시켜도 다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기도 해 강주의 입 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흐으윽...... 더 세게...... 빨리......”
“츄우우웁....... 후루룩....... 턱, 턱......”
강주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양 손에 말아 쥐고 허리를 강하게 놀린다. 목구멍 깊숙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강주의 좆 때문에 몇 번의 토악질이 올라오지만 머리를 붙잡혀 도망 칠 수도 없이 그저 당하고만 있어 호흡이 곤란한 지경까지 몰려간다.
“후욱, 후욱......”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는지 입을 벌려 틈을 만들고 숨을 쉬느라 강주의 좆이 이에 부딪힌다. 순간 통증에 멈칫했지만 강주는 허리놀림을 멈추질 않는다. 이제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지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후우우욱...... 울컥...... 꿀럭.......”
“우우웁, 우욱....... 꿀꺽....... 꿀꺽....... 우우우욱......”
강주에게 붙잡혀 도망 갈 수도 없으니 좆물을 받아 삼키고는 토악질을 하고 있다. 고통스러웠는지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고통을 주고 난 후 쾌감을 느끼는지 강주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의 팔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튼다. 아무 말도 없이, 후희를 베풀지도 않으니 자신의 욕정만 풀고 내버려 두는 것은 여자에겐 징벌이나 다름없을 터 강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하는 모양이다.
“네 탓은 아니겠지만 내 친구를 불행하게 만들고도 행복하게 못 사는 벌이라고 생각해.”
흐르는 듯 알 수 없는 강주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점장의 아내는 자기 앞일이 걱정스러운 듯 서러운 눈물만 뿌리고 있다.
“자, 이리 와서 앉아 봐요.”
“네......”
두 사람은 격앙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힌 후 나란히 소파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강주는 녹음을 하는 듯 휴대폰을 한 옆으로 내려두고 담배를 피워 문다.
“그래...... 황부장하곤 언제부터 그렇게 부정한 사이가 됐다고?......”
“네...... 그게...... 남편이 전에 있던 직장에서 자꾸 스트레스를 받고 여러 가지로 힘이 든다고 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그 회사 출신 선배가 이 회사 높은 자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서......”
“남편하고 같이 인사 차 만나 뵌 적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선 금방이라도 자리를 마련해 줄 것 같이 했었는데, 며칠째 연락을 안 해줘서 제가 전화를 드려 봤더니, 자리는 금방 마련되지만 정말 각오가 돼 있다면 인천으로 이사를 오라는 거예요.”
“그건 왜죠?......”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면서...... 후배들 취직 시켜주고 나면 금방 그만 둬 버리기도 해서 곤란한 적이 많았다고...... 정말 여기서 자리를 잡고 싶으면 아예 이사 올 곳이나 알아보라면서 한 번 건너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야 하루라도 빨리 그 매장을 그만두고 싶어 하니까, 제가 가서 방을 알아보기로 했는데. 어디로 배치를 해줄지 모르니까 부장님을 찾아 갔었지요.”
“왜, 남편하고 같이 안가고?......”
“취직이 될지 안 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데 무조건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남편은 일단 계속 출근하라고 했지요.”
“그 부장이라는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점장의 아내는 익히 자기도 알고 있을 내용을 재차 확인하듯 물어오는 강주가 의아한지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는 다시 대답을 이어간다.
“황경수 부장이요.”
“그래서요?......”
“제가 하기에 따라서 취직은 물론이고 앞으로 진급도 보장해 준다고 해서...... 그만......”
“그만...... 뭐요?......”
“그만 여관에 따라가게 됐어요.”
“그래서 거기서 황경수 부장하고 관계를 맺은 겁니까?”
“네......”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네...... 하지만 그때 한 번뿐이었어요. 믿어 주세요.”
이어서 강주는 핸드폰을 조작하며 점장의 아내에게 자세를 요구해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한다. 기가 막힐 일이지만 이미 강주의 의도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해 있으니 부끄러운 곳을 노출한 채 촬영에 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미 강주에게는 일종의 컬렉션에 불과한 일이지만 상류층 인간들을 접해 보니, 그들의 작태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아 언제 어떻게 보복을 당할지 몰라 모든 일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일이다.
“음...... 걱정 말아요. 공개할 건 아니니까...... 다만 아까 내가 본 바로는 아직도 당신을 백 퍼센트 신용하기가 어려워서 그럴 뿐이니까...... 내가 작업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행위를 한다면 그 길로 신세 망치는 겁니다. 알았어요?”
“네, 네...... 절대 안 그럴 거예요. 이젠 전화도 안 할게요. 그 서류도 보긴 봤지만 뭐가 뭔지 몰라서 아무 말도 못해줬어요, 진짜예요.”
“자, 그럼 됐습니다. 당신이나 남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해줄 테니까 지금부터는 다 잊어버리고 남편 내조나 잘 해요. 자, 내 명함을 주고 갈 테니까 혹시라도 연락할 일 있으면 하시고......”
“네...... 이사님. 그러면 비밀은 지켜 주시는 거죠?”
강주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려오고 점장의 아내는 그래도 불안한지 마당까지 내려 와 배웅을 한다.
이제 황부장은 강주에게 확실히 덜미를 잡힌 셈이다. 거래처와의 계약을 체결 당시부터 조작해 뒷거래로 배를 채워온 사실을 포착했으니 계약을 재조정한 뒤 그 돈을 회수하고 점장들의 점두코너 수익만 잘 관리하면 당장이라도 적자기조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차차 교육훈련을 통해 조정해 나간다면 이 회사를 건지는 것도 썩 힘이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차를 몰아 용현동 본사로 향한다.
모르면 몰라도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어사출도를 할 때의 기분이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차를 몰아가자 곧 전화가 울려 다시 길가에 주차를 하고 전화를 받는다.
“네......”
“아! 이사님, 저 본점 점장입니다.”
“아! 네...... 저도 지금 집에서 금방 나왔습니다.”
“네...... 그게 좀 이상한 게......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어젯밤에 이사님을 만난 걸 알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이사님 명함을 황부장에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죠?”
“음...... 뭐, 괜찮습니다. 이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바로 작업 해 버릴 거니까...... 점장님은 근무나 잘 하고 계세요.”
“네, 네...... 알았습니다. 절대 제가 일부러 알려 준 건 아닙니다. 이사님.”
“허허허...... 네, 알았다니까요.”
재삼 당부하는 점장의 말에서 샐러리맨의 비애가 느껴져 측은해지기까지 한다. 이 사람 역시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자신에게 허락된 조그만 공간의 일상 속에서만 허덕이고 있을 뿐이다. 자신 역시 수하직원의 부인인 여진이와 관계를 맺고 있어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것과 일자리를 빌미로 몸을 요구하는 황부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애써 치부해 버린다.
이렇게 강주도 자신의 몸뚱이를 전혀 다른 시장으로 던져놓고 보니 비로소 시야가 밝아지는 모양이다. 손 안에 있는 것,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전부를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철이 들어 철을 안다든 것은 절기를 안다는 것이고, 곧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성인이 되어 간다는 뜻일 게다. 회장을 만나 인천으로 건너오게 되고 이곳에서 경험하는 낯 선 상황들이 타산지석이 되어 부쩍 강주의 키를 자라게 하는 모양이다.
“흐음...... 그러면 조만간 다시 전화가 오겠지.”
황부장이 명함을 받아갔다면 금방 전화가 올 터이니 아예 운전석 의자를 뒤로 재끼고 누워 버린다. 그간 즐겨왔던 많은 여자들도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부인이었을 것이니 지금의 강주를 가장 자극하는 문제는 민희와 혜숙이의 문제일 것이다. 내 가족의 범주 안에 있는 여자들이 누군가의 사타구니 밑에서 헐떡여야 하는 이유가 단지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이유라면 더 이상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창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물자 곧 전화가 울린다.
“네, 최......”
“호호호...... 안녕하세요? 이사님...... 저 아시겠어요?”
“네?......”
“왜...... 전에 회장 언니하고 같이 만났었잖아요? 그날 저녁에 이사님은 경주 차를 타고 가시고......”
“아...... 그러면......”
“네, 제가 회장 언니 차를 운전해서 갔잖아요. 저, 이미경이에요.”
“아! 네...... 이여사...... 그런데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어머! 전화번호뿐이겠어요? 지금 인천에 와 계신 것도 다 아는데...... 호호호...... 저는 무역 일을 보시는 줄 알았더니 유통 쪽을 보신다면서요?”
자신의 행적을 빤히 들여다보듯 알고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에 강주는 기가 막힐 뿐이다.
“허허...... 참...... 기가 막히네요. 이여사 안테나가 상당히 고감도인 모양입니다.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하하하......”
“한 번 시간 좀 내주세요. 지금 좀 만날까요?”
“아! 지금은 제가 업무 중이라서 좀 어려운데......”
“어머! 이사님이 시간에 쫓길 일이 어디 있어요? 천천히 하셔도 되잖아요? 그러지 마시고 지금 좀 만나요.”
“어허...... 참...... 제가 나중에 전화를 드릴 테니까...... 정 그러면 볼 일 좀 보고 점심시간 쯤 만납시다.”
“아이 참...... 그래요. 그럼 그 전에 한 말씀만 드릴게요. 저...... 유통에 황부장 아시죠? 그 양반이 제 남편이거든요. 그렇게 아시고 나중에 다시 자세한 말씀 드릴게요. 이따가 만나요.”
“네?......”
도깨비 소굴이 따로 없다. 어이도 없고 기가 막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뭔가 잔뜩 뭉쳐 있는 실타래를 들고 실마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느낌이 바로 이럴 것이다. 회장에게 들은 바로는 그녀를 추종하는 그녀의 패거리들을 잘 사귀어 보라고 했었는데, 민희야 그런 관계를 알 리 없는 처지였으니 그렇다지만, 이 여자가 황부장의 부인이라면 그런 것을 회장이 모를 리도 없는 일인데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희를 통해서 그녀들 간에 뭔가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터에 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섣불리 황부장을 두들기기도 마땅치 않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또 다시 전화가 울린다. 번호를 보니 이번에는 회장의 전화다. 모든 것은 이 여자로부터 연출 된 것일 수도 있으니 정작 알아야 할 이 여자의 속셈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이다. 도무지 혼란스러워 그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는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네, 최이사입니다.”
“네, 이사님. 저예요.”
“네, 회장님. 좋은 아침이지요.”
“어머! 이사님...... 역시 인사도 세련된 인사예요...... 지금 인천이시라면서요? 요즘 시간을 자주 내시네요? 저 쪽 회사에는 괜찮아요?”
역시나 줄줄이 정보가 흘러 회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황부장도 사안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마누라나 회장을 앞세워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하물며 회장은 더욱이 알아서는 안 될 입장일 텐데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것에 대해 강주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네...... 며칠 돌아 볼 생각을 하고 아예 휴가를 내서 왔습니다.”
“어머! 아유......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애인한테 혼나시겠다. 호호호......”
“뭐,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네, 괜찮으시면 지금 좀 뵐까요? 제가 송도 쪽으로 가서 전화 드릴게요.”
“네...... 그러시죠. 저도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유원지 안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가끔 움직이는 직원들 뿐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강주의 속마음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묘한 심정이다. 정작 회장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일에 이제는 뭔가 해답을 찾아간다는 기쁨도 잠시, 모든 걸 보류한 상태에서 회장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한다.
“쉽게 찾으셨네요?”
“참 나...... 수원에서 왔다고 아주 촌놈 취급을 하십니다. 그려......”
강주의 대꾸에서 볼 멘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회장이 아닐 테니 그저 강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회장의 저 미소에 아랫도리에 불끈 힘이 들어갔겠지만, 구미호처럼 속을 알 수 없는 회장에게 적잖은 회의를 느끼는 터라 역시 터울을 좁힐 수 없는 무지렁이 강주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이사님, 숙제는 좀 하셨나요?”
“허허...... 아직 다 만나 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숙제를 합니까? 언제 자리 좀 만들어 보시죠.”
“호호호......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같이 점심 먹자고 했어요. 기다려 보세요.”
“그러세요? 그래...... 참, 보자고 하신 이유는요?”
“아이, 뭐가 그리 급해요? 이사님은 어쩔 때 보면 너무 전투적으로 사시는 것 같아요. 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주변도 돌아보면서 하세요.”
주변을 돌아보라는 회장의 말이 왠지 귀에 거슬린다. 당장이라도 이유를 묻고 싶지만 또 핀잔만 들을 테니 눌러 참으며 회장을 따라 나서고, 회장은 강주의 팔짱을 끼고 보트장을 따라 물가로 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물을 보며 한가로이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머릿속으로는 바둑을 두는 기사들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설전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걷는 길에 벤치가 보이자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레 그쪽으로 방향이 정해지고 막상 앉으려 하니 의자가 썩 깨끗하질 않아 회장을 바라보게 된다.
“그냥 앉아요. 괜찮아요.”
“아! 그러면 제 무릎에 살짝 걸치세요.”
그냥 앉으려는 회장의 허리를 잡아챈다. 강주 입장에서는 불편한 기분에 그냥 그녀에게 끌려 다니기 싫다는 은연중의 표시일지 모르겠다.
“어머!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호호호......”
강주는 벤치 모서리에 앉아 다리를 벌려 한 쪽 무릎을 내어주고 회장은 주변을 슬쩍 돌아보곤 강주의 어깨를 짚으며 그 위로 엉덩이를 걸친다.
“그래...... 이사님이 매장을 돌아보니 느낌이 어떠세요?”
“뭐, 답답하죠. 시설도 그렇고, 직원들도 기강이 많이 해이하고...... 심지어는 가격표가 잘못 붙어있거나 아예 없는 것도 부지기수에다가...... 구석구석 먼지투성이고...... 전반적으로 그림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시죠?”
“일단 본사에 들어가서 조직도를 살펴보고 조직 자체의 문제인지 매장 단위의 문제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황부장이란 사람도 좀 알아보고요.”
“황부장에게 문제가 있던가요?”
“......”
강주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다. 황부장이 명함을 받아 간 직후에 그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연이어 회장에게서 연락이 와서 만나자고 하니 이들의 관계를 정확히 알기까지는 나름대로 유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다. 이것이야 말로 회장에게 배운 스타일이니 일단은 속을 감춰 보지만, 강주가 가부간에 아무 대답도 없다는 건 일부 긍정하는 입장이니 회장으로선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 황부장 안사람이 미경이라고...... 이사님도 전에 한 번 본 기억이 있지요?”
“네, 안 그래도 회장님 만나기 전에 전화가 왔더군요.”
“그래요, 제게도 전화가 왔었어요. 이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쌀쌀맞게 끊어 버리셨다면서요? 호호호...... 그런데 제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왜 그런지 은근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호호호......”
“허허허...... 참 나......”
“민희나 경주도 자기들한테 전화가 안 온다고 하던데......”
경주한테야 전화를 한 적이 없지만 민희는 사정이 다름에도 회장이 저리 말하는 걸 보면 민희도 강주와의 속사정을 회장에게 털어놓지는 않은 모양이다.
“네...... 뭐, 별로 볼일도 없는데......”
“호호호...... 그래도 가끔씩 만나 보세요. 다 이사님께 도움이 될 거라니까요. 안 그래도 미경이는 오늘 보기로 했으니까...... 아유, 계집애...... 무슨 일인지 바짝 몸이 달아 가지고...... 황부장이 이사님에게 뭔가 대단히 크게 책잡힐 일이라도 저지른 모양이지요? 호호호......”
“회장님은 그게 뭔지 궁금하지도 않으신 모양입니다? 묻지도 않으시는 걸 보면......”
회장은 강주의 질문에 대답도 않고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제가 사업을 꾸려 나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지요? 국방부의 높은 사람들...... 국회의원이다. 시장이다. 군수다...... 나름대로 한다하는 인간들, 사업을 위해서 그렇게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모두가 다 하나같이 그렇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상류층 사람들의 맹점을 이용하기 시작한 거죠. 이이제이 아시죠?”
“아! 그렇다면?......”
“그래요. 내 도움이 필요해서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도와줘서 내 사람으로 만들어 두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을 내세우는 거죠. 이 클럽 저 클럽 모임이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 모두 어떤 필요에 의해서 교제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알아두면 상대방에게 나중에라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사람들 도 싫어하진 않거든요.”
“네...... 일전에 말씀하셨지요.”
“처음엔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납품심사를 하던 국방부 대령이었는데, 실무진 심사는 통과했는데도 너무 끈끈하게 굴어서 거리를 두다가 결국 거래를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다른 일로 우연히 그 부인하고 친분을 맺게 되고...... 그 여자가 바로 그 장교부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서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다른 거래를 할때 그 거래처 사장한테 소개를 해줘 버렸지요. 호호호...... 그랬는데 그게 글쎄 접대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터득을 하게 됐지요.”
“허허허...... 참....... 네...... 그랬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쌓이더라고요. 전에 헤어질 때, 나 부축해서 내려간 동생 기억나지요? 운전했던 애...... 그 애가 바로 그 황부장 부인이에요. 호호호...... 황부장이 남편에게 신세를 지기도 많이 졌지만 나름대로 고생도 제법 했어요.”
“......”
“음...... 뭐, 자세한 말을 들어 보진 않았지만 대단한 일 아니면 그냥 모른 척 해주세요. 어차피 이제 이사님이 바로 잡으면 그뿐이잖아요? 지금 미경이가 내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 그 애를 봐서라도...... 오늘 미경이 만나 보시고, 이사님도 나중에 그 애가 부탁해오면 황부장 어디 취직이라도 시켜주려고 애써줄 것 아니에요? 다...... 그렇게 서로 돕고 돕는 거예요. 그러니 상대방이 굳이 싫다고 하지 않는 한 부담 없이 만나도 괜찮아요. 제비족이나 꽃뱀도 아니니 서로에게 안전하고요. 그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말라는 건 그렇게 마음의 빚을 많이 만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오히려 가벼운 부탁 정도는 들어줘도 괜찮지 않겠어요? 이젠 그 쪽에서 오히려 이사님께 빚을 지는 셈이니까 이사님은 손해 볼 것도 없잖아요. 호호호......”
뭔가 황부장보다는 황부장 부인인 미경이가 더 쓰임새가 있는 모양이다. 강주는 민희 생각에 몹시 불쾌하기도 하지만, 특히나 회장에게는 속을 감춰야 할 것 같아서 일단 털어 버리기로 한다. 어차피 재원이야 회장의 말대로 다시 회수하면 그뿐이니 이 기회에 황부장만 확실히 장악하는 선에서 멈추기로 내심 마음을 먹고 슬며시 회장을 부축하는 손에 힘을 가해 허리를 더듬어 본다.
“하긴 그렇군요. 역시 제가 과외 선생님은 제대로 모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오히려 제 입장을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회장님.”
“호호호...... 어머! 비행기 태우셔도 포상 가불은 안 된답니다. 이사님. 우선은 숙제부터 하시라니까요.”
“허허허...... 회장님도 참...... 아휴...... 그래도 그 남편들이 알면...... 참 나......”
“호호호...... 꼭 그렇지도 않지요. 어차피 남자들도 클럽 모임에 나올 때는 그런 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부인들 그런 줄 전혀 모르고 있진 않을 걸요. 다만 현재의 사회적 지위와 바라보는 희망, 목적, 뭐...... 이런 것들 때문에 그저 모른 척, 못 본 척 하고 지낼 수도 있지 않겠어요? 서로 돈 보고 집안끼리 하는 결혼...... 그래도 남녀 간의 일이니 처음에야 물론 죽고 못 사는 것처럼 사랑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게 어디 오래 가나요? 곧 시선을 밖으로 돌리게 되고 사회적 체면 에 이혼할 수는 없으니 목표를 향해 가면서 서로가 방해받지 않고 암묵적으로 즐기는 거죠.”
“허허...... 참...... 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마 모르면 몰라도 우리 남편도 최이사님 곱게 보진 않을 걸요.”
“네?...... 절...... 왜요? 제가 뭘 어쨌다고......”
“호호호...... 우리 남편 제의는 거절하고 제 부탁은 들어주셨잖아요. 황부장이 알았으니 지금쯤은 소식이 들어갔을 텐데...... 또, 유통 사무실에는 나오지도 않고 저만 이렇게 밖에서 따로 만나고 계시고...... 그러니 벌써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않겠어요? 호호호......”
“아! 그럴 수도 있나요? 야...... 이거 조금 억울한데요. 앞으로 사장님 뵐 생각을 하니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요. 하하하......”
“호호호...... 이사님,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아마 누구도 바보처럼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왜냐면 자기만 공개적으로 바보가 되고 전혀 얻을 것도 없거든요. 그랬다가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고립당하기 십상이죠.”
“하하하......”
강주는 허리를 꺾어가며 큰 소리로 웃어 대고 회장은 눈이 동그래져 강주를 바라본다.
“갑자기 왜 그렇게 웃어요?”
“네?...... 네.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생각이요?”
“하하하...... 상류층 사람들이요?...... 그 모임에 나온다는 남자들 말입니다. 서로가 얼굴들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겠어요? 다 동서지간일지도 모르니...... 하하하......”
“어머! 호호호......”
강주는 다리가 불편한지 양다리를 모아 회장을 다시 앉히곤 슬그머니 회장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린다. 회장도 모른 척 강주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한 손을 내어준다.
회장의 입장에선 나름의 공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제의를 묵묵히 따라주는 강주에 대한 포상일 수도 있겠다. 강주는 회장이 민희의 남편과 잠자리를 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후라서 슬그머니 회장을 도발해 보기로 한다.
“아무리 운동을 해서 몸매유지를 하고, 수술을 해서 얼굴 주름을 펴도 손은 어떻게 안 되더라고요. 내 손 주름이 많이 졌죠?”
강주는 천천히 손을 잡아당겨 입을 맞춰주며 웃는다.
“어머! 호호호...... 아유...... 이사님. 지금 프러포즈하시는 거예요?”
“네...... 회장님. 잠깐만이요.”
회장을 번쩍 안아들어 자신의 무릎에 고쳐 앉히고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벤치에 엉덩이를 조금만 걸치고 뒤로 기대니 마치 골반 위에 앉힌 형국이다.
“어머나! 아유...... 이사님...... 왜 이래요?”
“잠깐만요. 회장님,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강주는 다시 허리를 세워 버둥대는 회장을 힘으로 제압해 꼭 끌어안고 회장도 곧 몸의 힘을 빼고는 강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부드럽게 머리칼을 넘겨준다. 회장의 가슴은 강주의 얼굴을 압박해 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향기를 코로 넘겨주고 매미날개처럼 얇게 비치는 회장의 옷은 부드러운 피부감촉을 그대로 강주에게 전달해준다. 나이를 잊게 해 주는 회장의 가는 허리는 풍만한 엉덩이 위에서 잔뜩 꺾여 있다.
“아...... 좋다...... 하하하......”
“아유...... 이사님. 이제 그만 내려줘...... 힘들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조금만 더요. 조금만...... 보긴 누가 본다고 그래요? 아무도 없는데......”
한참동안 강주의 손은 부드럽게 회장의 무릎을 오가며 쓰다듬고 회장은 그런 강주의 목을 양팔로 꼭 끌어안고 모른 척 시선을 물가로 보내고 있다.
“어머! 호호호......”
“왜요?”
“아유...... 이게 뭐야? 이사님도 참......호호호......”
회장은 여전히 강주의 목을 감은 채 갑자기 자지러질듯 웃으며 몸을 움찔거리고 이유를 알게 된 강주도 어색하게 따라 웃는다.
“아하...... 죄송해요. 회장님. 나도 모르게 그만......내려드릴게요.”
“아니야. 호호호...... 그냥 이대로 있어. 괜찮아.”
“네?...... 네.”
“소개해준 동생들로 양이 안차나 봐? 호호호......”
회장은 짓궂게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어 강주를 더욱 자극한다.
“아...... 아...... 회장님......”
“호호호......”
강주는 회장의 노골적인 추파에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어 마음껏 기운을 뽐내고, 회장은 모른 척 엉덩이를 맡긴 채 한동안 물가만 바라본다.
“아...... 이사님, 이제 나 내려 줘. 미경이 만나러 가야지.”
“네, 잠깐만요.”
“어머나...... 어떻게 해. 걸을 수 있겠어? 호호호......”
“아유, 회장님도 참...... 좀 가려줘요. 제가 뒤에서 걸을게요.”
“그래, 잘 따라 와야 해.”
가려주다가 이내 깡충거리며 피해 달아나 강주를 곤란하게 하는 모습이 마치 유원지에 놀러 온 어린아이같이 즐거워 보이고 강주는 어쨌거나 회장에게 한 발 다가간 느낌이어서 오늘의 만남에 나름의 수확은 있는 셈이다.
근처의 비치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가니 미경이가 반가운 듯 일어서 손을 흔든다. 황부장의 부인이라니까 오히려 자극적으로 정복욕이 일어나 다시 한 번 눈길을 보낸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이사님.”
“그래요, 잘 지냈어요?”
“이것들은 이사님만 모시고 오면 안면을 바꾼다니까......”
“어머! 언니는...... 호호호...... 말씀들 많이 나누셨어요?”
“그래...... 하지만 그 회사 정리하고, 안 하고는 모두 여기 최이사님에게 달려 있으니까 네 신랑한테도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해. 내가 너까지 미워질까 봐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물어 보지도 않았지만...... 음...... 이사님......”
회장은 갑자기 말을 중단한 채 강주를 바라보고 덩달아 미경이도 긴장한 모습이다.
“안 물어 보신다면서 갑자기 맘이 바뀌셨습니까? 허허......”
“아니...... 그게 아니고...... 살릴 수 있겠어요? 솔직한 말씀을 듣고 싶어요.”
“물론입니다. 그것도 단 시일에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단시일에요?”
“허허...... 여기 미경씨 앞에서 이런 말을 하자니 조금 미안한데...... 어차피 문제 삼지 않기로 했으니까, 지금 잘못 되어 있는 사안들 조금만 개선하고 직원들 재교육 시키면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폐쇄는 생각 안할 테니까 잘 협조해서 꼭 좀 살려 보세요.”
“아니?...... 회장님, 아직도 그 말씀이세요?”
“호호호...... 알았다니까요. 아유...... 참, 이사님은 무슨 말을 못하게 해...... 자, 어디 밥이라도 먹으러 가지요?”
“어머! 언니 잠깐만...... 그이 온다고 전화 왔었거든요.”
“어머! 황부장이?......”
“네, 마음이 많이 쓰이나 봐요.”
“호호호...... 황부장이 아주 임자 제대로 만난 모양이구나. 호호호......”
“제가 요 앞에 좀 나가서 찾아볼게요. 여길 못 찾나?......”
미경이 나가고 공교롭게 잠시 후 황부장이 들어서고 회장을 보고는 쭈뼛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새로 온 이사가 강주라는 것은 이미 아는 표정이지만 강주는 일부러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다. 회장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싸늘한 눈초리로 황부장을 노려보며 찬바람을 풀풀 날리고 그 모습을 본 강주는 회장의 시뮬레이션 액션에 기가 막혀 웃음이 터질 지경이다.
“회장님, 면목 없게 되었습니다.”
“......”
“저기...... 회장님. 여기 부장님하고 둘이 좀 의논을 할 테니까 자리를 좀 옮기겠습니다.”
“아니에요. 이사님...... 말씀 나누세요. 제가 나가 있지요.”
강주는 기왕 문제 삼지 않기로 한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그로 인해 본점 점장이나 그 부인, 기타 이 일로 괜히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김과장 등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회장이 들을 수 없도록 자리를 따로 앉기를 요구하고, 회장은 마침 들어오는 미경이를 데리고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그래...... 부인에게 이미 말씀을 들으셨을 테니 긴 말은 하지 맙시다. 제가 오후에 본사로 들어 갈 테니까 브리핑이나 잘 해 주세요. 앞으로 잘 해 볼 생각이시면 협조해 주시고요. 그리고 뭐...... 하실 말씀 있으시면 꼭 회사 업무가 아니더라도 이 기회에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황부장도 전혀 생각이 없진 않았을 테니 넌지시 말을 던져 대화를 유도해 낸다.
“하하하...... 아, 이거 참...... 지난번에 오셨을 때 진작 말씀을 해 주시지 않고...... 사장님께서도 섭섭해 하시던데...... 네, 앞으로 잘 해 봅시다. 제가 이래 뵈도 이 회사 창립멤버 아닙니까? 필요한 브리핑은 제가 다 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그리고 그동안 제가 그...... 몇 푼 안 되는 거지만 점두 행사수입은 좀 손을 대 왔습니다. 이젠 그대로 보고 할 테니 우리 다 잊어 버리고 앞으로는 윈윈 하는 걸로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아직도 분위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점장 부인의 말이 사실인지 거래처 계약에 대해서 손 댄 것이 이미 들통 났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자기 마누라와 회장이 공유하는 것에 대한 무게가 얼마나 큰지 강주가 알 바 아니지만, 사장까지 들먹여 가며 실세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바보 같은 소리에 강주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윈윈?...... 허허허...... 이것 봐요. 황부장...... 당신 정말 신세 망치고 싶어?”
“어어...... 뭐, 뭐요?”
비록 소리죽여 말 하지만 느닷없는 반말에 황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당신이 점장 마누라한테 전화로 뭔가 보고를 받긴 받은 모양인데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그 서류를 보고 뭘 알아서 얘기를 제대로 해 줬겠나? 그냥 뭔가 있나 보다 싶어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전화질로 구조신호를 보낸 모양인데, 당신 정말 뜨거운 맛 좀 봐야 되겠어...... 당신 때문에 수십, 수백 명이 대신 밥을 굶으면 안 되지 않겠어?”
“어......”
점장 부인에 대해서 거론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회장이 앉은 테이블의 눈치를 살핀다.
“보아하니 당신, 취직을 빌미로 여자들 제법 건드려 온 모양이지. 회장이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룹 이사회에 참석해서 당신 까발리겠어. 비록 회장이 대주주지만 다른 이사들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걸...... 게다가 당신 본점점장 부인에게 어떻게 했어?”
강주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기를 작동시킨다. 휴대폰에선 아침에 점장 부인과 나눈 대화가 흘러나오고 황부장은 이제 얼굴빛이 아예 푸르스름하게 변해 버린다.
“내가 이 여자를 들쑤셔서라도 당신 강간으로 고소하게 만들 거야. 나...... 이 여자 약점도 잡고 있거든......”
다시 한 번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황부장은 연이은 강주의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눈동자만 바쁘게 굴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당신 거래처 계약을 리베이트로 돌려서 당신 통장으로 거액을 착복하고 있다는 증거도 모두 확보한 상태야. 이건 회장이 봐주고 안 봐주고를 떠나서 무조건 형사구속 감이야. 어디...... 당신 한 번 죽어 봐.”
강주는 더 이상 대화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 이사님. 이사님......”
강주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장 쪽에서야 들릴 리가 없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공갈을 치니 소름 끼치도록 더욱 무서운 협박으로 들려오고 강주가 거래처 계약에 관한 얘기까지 꺼내자 황부장은 서둘러 강주의 팔을 잡으며 사정을 한다.
“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시간 좀 주십시오.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씨바......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내가 어제 이미 거래처 계약서 전부 확인을 끝낸 상태야. 거래처 간부들 불러들여서 최초 계약된 날짜부터 결재해 준 금액을 따져보면 십 원짜리 동전 하나도 빼낼 수 없도록 답이 나오게 돼 있어. 어제 대충만 계산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던데...... 당신 집이 어디야?”
“네, 네...... 본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딴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아파트 등기필증 가지고 나와.”
“네?...... 아유, 이사님...... 제가 그동안 해 먹은 거 다 합쳐도 그만큼은 안 됩니다. 이사님......”
강주는 다시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며 말을 잇는다. 미소 짓는 강주의 얼굴이 이 순간 황부장에게는 악귀나찰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끝까지 해 보자는 거야? 이거 내가 점장한테 들려주면 당신 어디서 칼 맞을지 몰라. 순순히 말 듣고 앞으로나 열심히 하면 다시 집 찾도록 해 줄 거고, 하는 게 시원치 않으면 영영 집은 날려 버릴 거야. 알았어? 당신, 아까 나보고 뭐라고 했어? 뭐?...... 윈윈?...... 그 역은 기차 안 다닌지 오래 됐어. 그 역은 제로섬 다음 역이야. 당신이 완전히 항복했는지 내가 아직 신용하지를 못하겠어. 그렇게 하겠어? 아니면 내 맘대로 할까?”
“아, 네,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이사 가라고 하지는 않겠어. 권리만 넘기고 일단 계속 살아도 좋아. 하는 것 봐서 당신이 확실히 내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다시 돌려 줄 수도 있으니까 너무 인상 쓰지 말고...... 알았어?”
“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자, 그럼 마누라 앞인데 인상 펴고 밥 먹으러 갑시다.”
황부장은 회장 말마따나 임자 제대로 만난 격이다. 물론 두 사람이 생각하는 입장은 전혀 다르겠지만 어쨌든 황부장은 허둥지둥 강주의 뒤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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