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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여직원 괴롭히기 -18부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눈을 뜨고 비척거리며 일어서려니 느낌이 어색한 것이 또 과음을 하고 낯선 곳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물을 찾아 둘러보지만 아무래도 숙박업소가 아닌 모양이다. 잘 정돈되어 있는 살림살이가 아니더라도 이미 방안 가득한 향기가 여자의 거처임을 말해주고 있다.
강주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옷은 한 곳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필시 누군가 도움을 준 이가 있었겠지만 달리 물을 길도 없으니 민망한 꼴을 당하기 전에 서둘러 옷을 주워 입는다.
신세를 졌든 폐를 끼쳤든 인사할 길이 없으니 후일을 기약해야 할 터 명함을 꺼내 침대 위에 얹어두고 방을 빠져 나온다.



“나, 이거야 원...... 기억이 나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기왕 남의 집 신세를 진 마당에 갈증을 푸는 문제도 간절해 냉장고를 열고 물을 마신다. 불량배들에게 당황해서 그랬는지 술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기억이 없으니 놀라긴 많이 놀랐던 모양이다.
현관으로 나서려는데 문이 열리고 마담이 들어선다.



“어어! 여기가 마담 집이었어요?”



“어머! 기억이 안 나시나 보네요? 호호호...... 벌써 가시게요? 들어가세요. 그래도 제 집에 오신 손님이신데 아침 식사는 대접해서 보내 드려야지요.”



찬거리를 사 오는지 손에는 쇼핑봉투가 들려있다. 기왕 마주쳤으니 간밤의 상황도 궁금하여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어 기지개를 편다.



“저...... 간밤에 제가 실수를 많이 했겠지요?”



“네? 호호호...... 기억 안 나시면 너무 기억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별로 실수하신 거 없어요.”



“별로라...... 하하...... 하긴 한 모양이군요.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기억이 안나니 뭐라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니라니까요. 자...... 입맛 없으시면 국물이라도 좀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참...... 저랑 같이 술 마신 친구는 잘 갔나요? 어떻게 하다가 제가 여기서 잠을 자게 됐죠?”



“네...... 그 분은 잘 가셨어요. 사장님은 너무 취하셔서 제가 모시고 온 거예요.”



“아! 네...... 참, 그리고 어제 그 무시무시한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겁니까? 그 사람들 하는 거 보니까 액션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것 같던데...... 하하하......”



“그건 정말 죄송해요. 오해가 있는 바람에...... 요즘 이 동네가 술 납품 문제로 말이 많잖아요. 대뜸 사장님을 찾으시고 사람이 더 온다고 하시니까 아가씨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아! 그리고...... 사장님은 끝내 안 오셨던가요?”



“네...... 그건......”



강주는 입안이 껄끄러운지 몇 숟가락 뜨다가 내려놓고는 일부러 준비해준 마담에게 미안한 듯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유, 입맛이 안 당기네요. 폐만 끼치고 이만 가봐야 하겠습니다. 음...... 아침에 보니까 제 행색이 말이 아니던데...... 오늘 신세 진 것은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갚도록 하지요.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허허허......”



“네, 그럼...... 이젠 혼자라도 오세요. 얼굴도 알았으니까......”



“네, 그러지요.”



차는 술집에 있을 것이고 이른 아침 아파트촌에 택시가 있을 리 없으니 멀리 보이는 쇼핑센터에 방향을 맞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간밤의 상황이야 어찌 됐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서 샤워를 한다는 것도 맑은 정신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온몸이 개운치 못하다. 목욕탕이라도 찾을 생각으로 고개를 들어 둘러보는데 전화가 울린다.



“응?...... 여보세요?”



“네, 저...... 최강주씨?......”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어머! 호호호...... 침대를 정리하다 보니 명함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아, 아...... 네...... 마담이시군요. 아까 제가 나오려고 하다 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누구 집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명함만 꺼내 두고 나오려다가...... 이제 마담에게 신세 진 것도 알았으니까 다음에 제가 카페로 한 번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용인에 땅이 어쩌니 하면서 말씀들 나누시던데...... 이 회사에 다니시나요? 그것도 소장님이신가 봐요......”



“허허허...... 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니 모르겠고, 그 슈퍼는 제가 관리하는 곳이 맞습니다. 참...... 이 근처 어디에 찜질방이나 목욕탕 없나요? 눈에 잘 안 띄네요.”



“아유 참, 여기서 씻고 나가시지 그랬어요? 지금 어디 들어가시면 출근 시간 늦지 않으세요? 뭐...... 소장님이라서 괜찮으시려나? 호호호......”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휴가 중이라서 출근 걱정은 없습니다. 그럼 큰길 쪽으로 가야 되겠지요?”



“그러면 그러지 말고 다시 오세요. 저도 오후에나 나가보면 되니까...... 제가 여쭤볼 것도 있고......”



“그러세요?...... 허허...... 이거 참, 신세를 자꾸 져서야 어디...... 초면에......”



“어머...... 초면이라니요? 이제 다시 오시면 구면이잖아요. 신세는 이미 어제 많이 지셨으니까, 걱정 말고 얼른 올라오기나 하세요. 문 열어 둘게요.”



“네, 그럼......”



역시 그만한 규모의 술집을 이끄는 마담이라 그런지 화통하기 짝이 없이 신원시원하다. 다소 어색한 기분이지만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담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으로 다시 아파트로 향한다.
어쩐 일인지 조금 전 느낀 기분과는 달리 사근거리며 들어붙는 느낌이지만 비록 불편했던 사내였어도 이른 아침에 거리로 내보내고 나니 괜히 미안해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 버린다.
또 어디를 나갔는지 집안엔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이젠 허락도 받았으니 방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이 없어 이 방 저 방 모두 열어보지만 의외로 정갈하게 갖춰져 있을 뿐이어서 난잡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칫솔도 마담이 쓰던 것 하나뿐인 것 같아 망설이다가 이내 치약을 짠다.



“바깥에 속옷 있으니까 갈아입으세요.”



속옷을 사러 나갔다 온 모양인데 갑자기 서비스가 좋아진 이유가 궁금하지만 강주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다. 이미 보여줄 것 다 보여줬는데 내외할 일이 무엇이겠나 싶기도 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맨 몸으로 나와 방금 사온 듯 보이는 속옷 포장을 뜯는다.
그녀가 커피를 끓여 테이블에 올려두며 강주를 바라본다.



“어머! 이제 보니 몸이 좋으시네요? 호호호...... 이리 와서 커피 드세요.”



“허허허...... 쑥스럽게 왜 그래요? 볼 거 다 본 사이에......”



소파에 앉아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마담은 물끄러미 강주를 바라보고는 입을 연다.



“어제 그 분이 소장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매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부인이 나이가 많으신 모양이에요? 이렇게 훤칠하신 분이 왜 그런 결혼을 하셨을까?......”



“응?...... 아, 하하하...... 저 아직 총각이에요. 결혼 안 했어요.”



“어머! 그런데 왜 매형이라고 그래요?”



“뭐, 그런 사연이 있어요. 우연한 일로 알게 되었는데 내가 거래하는 거래처 사장 후배더라고요. 그리고 그 친구 누나는 우리 매장 근처에서 다방을 했었고...... 음...... 거래처 사장이 나한테 잘 하라고 하니까 그러는 모양이지요. 내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형님 소리 듣는 것 보다는 그게 낫잖아요.”



“어머! 어쩐지...... 아유, 그런데 왜 소장님 같은 분이 그런 사람하고 다니세요? 어울리지 않게......”



“어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제도 그 친구 때문에 그나마 망신당할 거안 당한 것 같은데......”



“아이 참, 그건 오해였다니까요.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결국 그것도 다 그 사람 때문인 거나 마찬가진데요. 뭘......”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정필이 때문이라니?......”



마담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강주가 불을 갖다 대자 쑥스러운 듯 웃으며 불을 빨아들인다.



“혹시...... 그 사람...... 형이라는 사람도 알아요?”



“음...... 한 번 본 적이 있긴 하지요.”



“그 박부장이라는 사람이 주류도매 영업을 맡아서 하는 모양인데 이 일대가 요즘 경쟁이 붙어서 말도 못해요. 아유...... 순 양아치 같은 새끼들...... 어머! 내 정신 좀 봐.”



마담은 말을 뱉어놓고 후회가 되는 듯 멋쩍은 미소로 입을 가리고 강주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아, 괜찮아요. 허허......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네...... 호호호...... 죄송해요. 소장님은 그냥 편안해서 말을 하다 보니까...... 그래도 그 박부장은 좀 점잖은 편인데 어제 왔던 그 인간은 아주 상종하기가 힘들어요. 이 근처에서 보인지는 얼마 안 됐는데 자기 형 패거리를 믿고 그러는지 위세가 보통 아니에요. 어제도 소장님한테 실수했다고 일하는 아가씨 뺨을 올려붙여가지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요. 결국 다 자기네들이 시켜서 한 일을......”



“네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요. 소장님은 술에 취해서 정신도 없고, 그 사람은 나와서 행패 부리고...... 자기도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 마시고 가면서 소장님 잘 모시라고 하고 가는데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까 싶어서 할 수 없이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다니까요.”



“어허...... 이런...... 공연히 제가 면목이 안서네요. 그런데 그 주류도매 영업이라는 게 얼마나 돈이 된다고 형제간에 나서서 저런답니까?”



“단순히 그런 게 아니고...... 도매회사에서 저런 사람들을 고용해서 우리 같은 술집에 납품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얼마간 돈을 먹을 수 있을 거고 또 자기네 똘마니들도 우리 같은 술집에 심어서 월급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니까 일석이조인 셈이죠. 어제 소장님도 아마 경쟁업체에서 보낸 사람으로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계집애들도 당장 그 애들이 무서우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고......”



“아...... 그게 수입원이 되니까 패거리를 유지하기로는 썩 괜찮은 방법이다 이 말이라는 거죠?”




“역전 쪽에 있던 사람들이라던데 점점 터미널 쪽으로 퍼지고 이제는 영통에 들어와서 저러는 모양이에요. 뭐, 우리야 어디에서 받든 물건만 받으면 되고 영업부장도 어차피 고용을 해야 하니까 상관없지만 저렇게 술집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그게 싫어서 그렇죠.”



“아...... 이거 참...... 내가 뭐, 힘이라도 있어야 도와 드릴 텐데...... 이런 쪽은 전혀 문외한이라......”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그 개고기 같은 인간이 그 정도 이유로 소장님한테 그렇게 잘 할 수는 없을 텐데...... 정말 친 매형이라도 그렇게는 안 할 거 아니에요......”



“음...... 글쎄요? 그러게...... 좀 이상하네요...... 하하하...... 어쨌든 어제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간 모양이네요. 어쨌거나 그 덕에 이렇게 마담한테 특별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나는 오히려 정필이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이 참, 그러지 말고 소장님이 얘기 좀 잘 해주세요. 좀 어지간히 하라고...... 소장님 말씀은 잘 듣는 것 같던데...... 그럼 저도 우리 카페 사장님 만나게 주선해 드릴게요.”



전무의 비리 가능성에 대하여 보라에게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솔깃했지만 정필이 형제의 얘기를 듣고 나니 남의 뒤를 캔다는 것도 그들과 비슷한 부류로 취급 받을지 몰라 만정이 다 떨어져 마음을 바꿔 먹는다.



“허허허...... 사안이 내가 말한다고 들어 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사장님을 내가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고 그저 뭐, 정보 좀 얻으려고 했던 건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오버한 것 같아서 벌써 포기했어요.”



“아이, 몰라요. 책임 져요. 무조건 해 줘야 돼요...... 대신 저도 솔직히 말 할게요. 제가 사장인데요. 절 왜 찾으신 거예요?”



정필이가 이 사내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섭섭하게 처신했다간 망나니 같은 놈으로부터 괜한 후환이 있을지 몰라 마지못해 집안에 들이긴 했었다. 이제 명함을 통해 강주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보니 같은 회사 출신이고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찾았던 것으로 보아 필시 자신의 출신내력을 알고 왔을 터이니 속일 것도 없다. 강주를 잘만 사귀어 두면 오히려 양아치 같은 놈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바람막이 역할도 충실히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다시 불러들인 모양이다.



“으응? 마담이 사장이라고? 와...... 하하...... 배우 뺨치게 연기를 잘 하시네요...... 그런데 왜 이제껏 아닌 척 했어요?”



“그야 내가 직접 홀을 관리하고 있는데 사장인 걸 알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그러죠. 소방이니 경찰이니 여기저기 인사할 곳도 많고......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단 말이에요. 그나저나 빨리 말 해봐요. 내가 그 회사 출신인거 알고 왔을 거 아니에요? 모르면 몰라도 내가 소장님보다 입사 선배일 건데 선배님 말씀을 안 들을 거예요? 호호호......”



은근히 교태를 부리는 마담이 밉지 않아서 더 애를 태운다.



“허허...... 선배는 무슨...... 나이도 나하고 비슷할 거고...... 여자들이야 불알이 없어서 군대를 안 가니까 그렇지, 아마도 근무는 내가 더 오래 했을 건데......”



“그래도 소장님이 군대 있을 무렵에 나는 일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쨌든 내가 선배죠. 호호호...... 어쨌든 뭐 물어 보려고 했냐고요?”



“아니, 이젠 신경 쓰지 말라니까......후훗......”



“흥...... 그럼 오늘 아무데도 못가.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요.”



강주가 장난을 치며 애를 태우자 마담은 대뜸 강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버린다. 애교 섞인 유혹으로 답을 얻어내겠다는 뜻인 모양이다.
샐쭉 토라진 척 고개를 돌리고 무릎을 베고 누운 마담에게서 상큼한 향수냄새가 올라온다. 머리카락을 거꾸로 쓸어주며 자극해 주니 기분이 좋은지 누운 채 기지개를 켠다.



“아아아흠...... 편하다...... 음...... 좋아요. 그러면 그렇다고 치고 그 사람들 좀 제발 어떻게 해 줘 봐요. 으응?”



고개를 돌려 강주를 바라보고 부탁을 하니 바로 좆 앞에서 눈을 말똥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몹시 귀여워 강주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킥...... 지금 어디에다 대고 사정을 하는 건지 알아?”



“으응? 호호호...... 차암...... 어제는 힘도 못쓰고 그냥 쓰러져 자더니만......”



마담은 강주의 허리를 꼬집으며 눈을 흘겨 뜬다.



“어? 그랬나?...... 내가 그냥 잤다고?”



“치...... 근근이 송장 끌듯이 끌고 들어왔더니 그래도 남자라고 그 정신에도 내 옷은 열심히 벗기던데......”



“허허...... 그리고는?......”



“후훗...... 그리고는 우리 아기가 배가 고팠는지 엄마 젖꼭지에 침만 잔뜩 발라 놓더니 엎드려 자던데요?...... 호호호......”



강주는 마담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탄을 한다.



“으이그...... 그럼 그렇지...... 술 마시고 기억이 안 날 때는 꼭 한 번씩 바보짓을 한다니까......”



“해줄 거야? 안 해줄 거야?”



“그래, 내 말이라고 들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말이나 해 보자...... 우리 선배님 카페에서 그러면 쓰나? 하하하......”



“정말이지? 그럼 오늘 어디 안 가도 되면 저녁에 같이 나가요. 네?”



“그때까지 뭐 하고 놀지?”



“으이그......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어요. 호호호...... 조금만 있다가 들어와요.”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큰 짐이라도 벗은 듯 날아갈 것처럼 사뿐거리는 게 강주에게 갖는 나름의 기대가 제법 큰 모양이다.



“들어와요.”



등을 받치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강주를 향해 손짓을 한다. 마치 누드쇼를 연출하는 것처럼 몸을 가리고 침대에 기대 있는 모습이 눈앞에서 옷을 벗는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한 기분이 드니 역시 어느 분야든 전문가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강주도 장난기가 발동해 빙글빙글 돌아가며 옷을 벗고 그 모습을 본 마담은 허리를 비틀어 가며 재미있어 한다.
얇은 천을 들어내고 마담의 사타구니를 파고들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아직도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애무를 하니 마치 아기가 엄마의 젖을 애무하는 듯 하고 그녀는 강주의 등을 희고 고운 손으로 쓸어준다. 비록 오래 전 한때였겠으나 전무의 여자를 탐한다는 생각에 미치니 오이디푸스라고 했던가, 마치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의 여자를 탐하는 것 같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입사해서 바라보던 단상 위의 그들은 꿈같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강주의 품 안에서 그들의 여자들이 숨을 할딱이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품 안에 있는 이 여자에게 오롯이 몰입할 뿐이다.



“하윽, 강주씨......”



“흐으읍...... 쭈우웁......”



마담은 강주의 입을 받아들이면서도 끊임없이 강주의 등과 엉덩이를 쓸어준다. 마치 완급을 조절하듯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그녀의 손길에 마치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몸을 맡긴다.
따뜻한 미소로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에 작은 떨림으로 기대가 내비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강주의 가슴을 밀치고 더듬더듬 아래로 내려간다.



“이름이 뭐지? 내 여자 이름도 모르고 젖을 빨아서야 되겠어?”



“하윽...... 어서 넣어 줘......혜영이야. 장혜영......”



“후우욱, 쑤우우욱......”



“흐윽...... 아하...... 좋아...... 천천히......으흐응......”



혜영은 이 자세를 좋아하는지 자세를 바꿀 마음이 없어 보인다. 침대에 기대앉듯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으니 마주 안고 있는 강주는 적잖이 불편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한 혜영의 감긴 눈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잠들어 있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잠든 여자를 깨우지 않고 그녀의 원천으로 들어가려는 듯 근력을 끌어올려 팔에 힘을 주고 혜영을 불편하지 않게 틈을 배려해준다. 쉼 없이 허리 짓을 해 대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는지 혜영은 더욱 더 강주의 엉덩이를 끌어당긴다.



“흐으으응...... 흐으으으응......”



“크으윽...... 울컥......울컥......”



연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강주의 엉덩이를 끌어당기고 있던 혜영의 눈이 뜨이고 강주의 사정을 느끼는지 목을 끌어안고 함께 경련을 일으킨다.



“아학, 으으으응...... 하아아아......”



아직도 강주는 혜영의 목덜미를 빨아대고 혜영은 그런 강주의 혀를 즐기며 고개를 꺾어가며 강주를 받아들이고 길을 안내해 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숨을 고르고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혜영의 얼굴빛은 발그스레하고 다정한 눈길을 강주에게 보내고 있다.



“강주씨는 여자 경험이 많은가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



혜영은 다리를 들어 강주의 다리에 걸치고 가슴을 쓰다듬어 애정을 과시한다.



“으흠...... 나 자기랑 섹스를 한 게 아니고 편안히 안마를 받는 것 같았어요. 어쩜 그렇게 여자 기분을 잘 맞춰 줄 수가 있지?”



“그랬어? 그럼 이제 내 여자 할 거야?”



“피...... 그렇다고 누가 자기 여자 한댔나? 호호호...... 그렇다는 얘기지.”



“음...... 그런데 아침을 시원찮게 해서 그런지 배고픈데......장마담은?......”



“아이 씨...... 장마담이 뭐예요?



“뭐?...... 어쩌라고...... 내 여자 안 한다면서......”



“그런다고 장마담이라고 해요? 이름도 벌써 가르쳐 줬는데...... 칫......”



“그래, 그래...... 혜영아. 배 안 고프냐고......”



“그럼 밥 차려 줄 테니까 나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그것만 말해줘요.”



“참 나...... 궁금한 것도 많네...... 비서실 통해서 알았지.”



“어머! 아직도 나를 아는 애들이 다 있나 봐?”



“그 애도 전해 들었다고 하긴 하더라......”



“그런데 왜 왔는데......응? 응? 자기야......”



의외로 강주가 고분고분 입을 열자 혜영은 바짝 들어붙으며 나머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강주는 단내를 풍기며 안겨오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아 준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후훗...... 혜영이 너...... 옛날에 전무 비서였다면서?”



“그런데...... 그래서?”



“너...... 혹시 그만둘 때 비밀스런 자료 가지고 위자료 받아냈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건 어디서 들었어? 그건 왜?”



강주는 혜영의 등을 쓸어주며 보라와의 일을 말해 주고 모두 들은 혜영은 강주의 가슴을 꼬집으며 웃는다.



“푸훗...... 그러면 그렇지.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그럼 사실이 아니야?”



“그 무렵 전무가 점포 출점을 하기위해서 땅을 여기저기 많이 매입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자기가 제삼자를 통해서 매입해둔 땅이었더라 이거죠. 엄청나게 값을 튀겨서 떼돈을 벌고 있었는데 상무하고 시비가 생겼던 모양이에요. 뭐...... 둘 다 똑같은 도둑놈이니까......”



“응, 그래서......”



“그래서는 뭐...... 나도 그때 전무님이 첫 남자라서...... 후훗,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전무를 지켜주고 싶었거든.”



비웃는 듯 강주의 입 꼬리가 올라가며 웃음기를 머금자 혜영은 눈을 흘기며 강주의 불알을 쥐고 흔들며 앙탈을 부린다.



“죽을래? 나도 그때는 순정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지.”



“흐윽, 그래, 그래...... 누가 뭐래? 어서 말이나 해 봐.”



“자기가 기대하는 그런 거는 없어요. 전무한테 내가 말하길...... 술자리에 불러내서 상무가 마시는 술에 수면제를 많이 타서 잠들게 하고 부끄러운 사진을 찍자고 했거든. 좀 유치하지만 자기도 전무나 사장자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스캔들이 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나까지 모델로 등장을 시키더라고...... 호호호...... 자기 딴에는 비서실 여직원이 등장하면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으응...... 그래서......”



“그게 전무 실수였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자기를 도와준 건 생각도 안하고 나까지 이상한 년 만들어서 내쫓는 분위기로 가는 것처럼 보여서...... 이렇게 하면 나도 상무 편에 붙어서 양심선언 할 수 있다고 공갈을 쳤지.”



“야...... 그래도 제법 간이 크네......”



“전무가 날 물로 본 거지. 그렇지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잖아. 금고 번호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얼마나 날 물로 봤으면 필름을 허술하게 그 안에다 뒀더라고...... 그걸 가지고 내가 내빼 버렸거든. 호호호......”



“바보 같은 게 정작 상무하고는 원만하게 합의가 됐는데, 이제 내가 숨어 버리니까 드러내 놓고 찾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나중에 필름을 돌려주고 사직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게 부인 명의로 올려둔 상가에 점포를 하나 주겠다고 하더라고......”



강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남아있을 테니 최고의 값어치가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았어?”



“아니, 잘못하면 그 마누라하고 매일 얼굴 마주 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지. 위자료로...... 그러면 필름을 주겠다고......”



“그래서 줬어?”



“그럼 줘야지. 돈을 받았는데......”



“에이 씨...... 아! 혹시 그 때, 그 통장은 가지고 있어?”



“치......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는데...... 그게 여태 있겠어요?”



“번호도 모르겠지?......”



“으이그...... 차암......”



강주는 아쉬운 듯 다시 침대로 눕고 눈을 감는다. 후일을 위해 쓰일 수도 있는 아까운 정보가 허사가 되는 순간이지만 당장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 다시 보라를 통해 후임자를 소개받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 술장사를 한 거야?”



“그야 그렇지만 그 돈이 밑천이 된 건 아니고 비서실에 있다가 보면 다른 회사 임원들도 많이 알게 되거든. 그 돈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서 대출을 받으려고 이 은행 저 은행 다니고...... 또 웬 서류는 그렇게 많이 떼어 오라는지......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우연히 은행에서 만난 거래처 노인네가 날 알아보고는 신촌에 조그맣게 술집을 하나 열어 주더라고. 그 노인네 모시고 한 오 년 살았나? 푸훗...... 그래서 그 때 이 길로 들어선 거예요. 그 때 전무가 준 돈은 결국 나중에 집 살 때 쓰긴 잘 썼죠. 호호호......”



“가만...... 혜영이, 너...... 대출 준비하던 서류는?”



강주는 다시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켜 혜영을 바라본다.



“서류?..... 어딘가 쳐 박혀 있긴 할 건데...... 그건 왜요?”



“찾아 봐. 얼른.......”



“차암...... 옛날인데...... 여기 말고 엄마 집에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냥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다락에 올려 둔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내가 비서 일을 해서 그랬는지 중요한 건지 모른다고 서류 같은 건 잘 안 버리니까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그러냐니깐......”



“대출 서류라면 통장 거래 내역서가 첨부되어 있을 거란 말이지. 보통 대출기관에서는 다 요구하는 서류니까...... 그러면 전무가 송금해 준 기록도 거기에 나와 있을 거 아냐?...... 그것만 있으면 나도 너처럼 써먹을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어머! 그런가?...... 그러면 한 번 찾아 봐야 하겠네?”



“하하...... 그래...... 까짓 거 없으면 말고......”



강주는 혜영과 얘기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회의가 느껴져서 그러는지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혜영은 그런 강주에게 핀잔을 준다.



“참......알 수가 없어요. 꼭 필요한 것처럼 놀라게 해놓고 금방 이렇게 김빠지는 소리를 한다니까......”



“으응? 그렇게 됐나? 하하하......”



“어머! 강주씨, 배고프다고 안 그랬어요? 우리 밥하기 싫은데 나가서 먹을래요?”



“그럼 그럴까?”



“그런데,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전화?......”



벗어놓은 옷 속에서 전화가 울리는 모양이다.



“네......”



“네, 소장님...... 저 미쓰김이에요.”



“아...... 이 망할 놈아. 나 휴가기간에는 찾지 말라고 그랬지.”



“호호호...... 소장님. 저도 소장님 목소리 안 듣고 싶답니다.”



“그런데 왜?......”



“택배가 왔는데...... 고가상품이라고 본인확인 좀 하겠다는데요?”



“아! 그게 왔나 보구나. 그래 바꿔줘 봐.”



전화통화를 마치고 옷가지 위로 다시 던져둔다.



“뭐예요? 강주씨?”



“음...... 별 거 아니고 택배로 주문한 물건이 매장에 도착한 모양이야.”



“그럼 가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게...... 일이 우습게 됐네. 내가 며칠 후에 가게로 갈 테니까 그 일은 며칠만 좀 참아 봐.”



“꼭 와야 해요.”



어느덧 해가 중천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다. 수원에 도착한 강주는 한 번 더 물을 뒤집어쓰고서야 매장으로 가기 위해 창고를 나선다.



“어머! 이게 뭐예요? 호호호...... 다른 사람 같아요. 소장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발가락을 꿰는 신발을 끌고 나오니 영락없는 백수 차림이다. 그나마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서 그런대로 봐 줄만 한 모습이니 매일 넥타이에 근무복 차림만 보던 주차장의 상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웃는다.



“아! 하하하...... 뭐...... 시원하고 좋은데 뭘 그러세요?”



사무실에 들어서니 한 옆에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고 미쓰김은 강주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고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야, 인마...... 입에 파리 들어갈라.”



“어머...... 어머머......”



“자식...... 야, 너하고 나하곤 벌써 볼 일 다 본 사이에...... 이게 뭐 이상하니?”



“아유 참......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손님들 보면 안 창피해요? 소장님이...... 그렇게 입고 다니면......”



“허허...... 참, 야...... 소장이 무슨 벼슬이냐? 그러고 있지 말고 그쪽 좀 들어 봐. 주차장으로 나가자.”



“아이 참, 남직원들 안 시키고...... 끄응......”



휴가기간이니 복장이야 아무려면 어떻겠는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어쩌면 이 허름한 복장이 최근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자신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려운 사업가일수록 값비싼 고급승용차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다고 하니 역시 자유분방한 복장으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강주에게 일어나고 있는 여유와 변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자, 수고했다. 미쓰김은 들어가서 일 보고.......”



사무실에서 들고 나온 커다란 상자를 보고 상인들의 시선이 모인다. 포장을 뜯어내자 납작하게 접혀있는 휠체어가 나오고 옆에는 묵직한 배터리가 있어 한 눈에 전동 휠체어임을 알 수 있다. 한 옆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던 지수가 휠체어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와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어머! 오빠...... 이게 다 뭐예요?”



“응...... 허허허...... 보면 몰라? 휠체어지 뭐야?”



“아유 차암...... 누가 그걸 몰라요? 웬 물건이냐는 말이죠.”



“민철이는 어디 갔어? 안 보이네?”



“형님이 아침에 병원 데리고 갔어요.”



“어! 그래?...... 오늘 일요일도 아닌데...... 어쩐 일이지? 혜숙이가 시간이 나던가 보네?”



“아유 참, 오빠는...... 요즘 방학이잖아요. 보충수업 말고는 시간 자유롭게 쓸 수 있대요.”



“아! 그렇겠구나...... 그나저나 요즘 우리 지수를 안아주질 못해서 어쩌지? 오빠가 동서남북으로 바빠서 말이야.”



“어머! 오빠는...... 누가 들어요. 조용히 하세요.”



당황한 지수의 얼굴이 보기 좋게 빨갛게 달아오르고 입가에 웃음이 피어난다. 그 사이 얼굴의 그늘이 사라져 한껏 피어오른 지수의 얼굴은 정말 학창시절 메이퀸이었다는 혜숙이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거 민철이 주려고 샀어.”



“어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과 남편을 생각해주는 강주의 마음 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시누이 혜숙이의 배려로 강주에게서 여자의 기쁨을 누리고부터는 하늘 아래 두 남편을 모시고 사는 입장이어서 매사에 민철을 보기가 떳떳하지 못하였는데 그런 마음을 헤아리는지 틈만 나면 자신과 남편을 챙겨주는 강주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흑......”



“야, 야...... 지수야. 왜 그래?......”



“흑...... 죄송해요. 오빠...... ”



“뭐가 미안해? 참 나...... 내가 이깟 것 하나 선물하는 게 뭐 대수라고...... 저기 봐라. 요즘 애들 장난감도 이렇게 굴러다니는 게 있더라고...... 이게 있으면 지수도 한결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잖아. 킥킥...... 그래야 오빠하고 연애도 자주 할 수 있을 거고...... 그렇지? 킥킥......”



강주의 장난에 그제서 고개를 들고 웃는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아유, 몰라요...... 웃기지 마세요. 큭......”



“히힛...... 지수...... 너......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아이 차암......”



지수는 강주의 등을 큰 소리가 나도록 때리고 자기 자리로 가서 큰 눈을 희게 뜨고 째려본다. 지수의 입가엔 행복이 묻어있어 마주보는 강주도 한껏 웃어준다.
빨간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혜숙이가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린다.



“어머! 강주씨...... 너, 드디어 모가지 당했나 보구나. 그 옷차림이 뭐니? 도대체...... 호호호......”



“하...... 계집애. 또 시작이다. 저, 저...... 주둥이를 어떻게 콱......”



“호호호......”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 다투는 모습이 지수에겐 더 없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뛰어가 민철이의 휠체어를 차에서 내려 앉혀준다.



“어! 형님...... 오늘 쉬시나 봐요? 어디 놀러 가시지도 않고......”



“응...... 그래. 병원 다녀오니?”



“네. 그건 뭐예요? 웬 휠체어를......”



“응, 조금만 기다려 봐. 이제 다 됐어.”



바쁘게 손을 놀리는 강주 옆에 혜숙이가 쪼그리고 앉는다.



“강주씨, 이거 전기로 가는 거야?”



“응, 보면 모르니? 바보야......”



“이거 누구 건데? 민철이 줄 거니?”



“그럼, 내가 타고 다닐까 봐?......”



“얼마 들었는데?......”



“이백오십만 원...... 왜? 너...... 감동 먹었지?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 그렇지?”



“나쁜 놈...... 너 또 어느 년 등쳐먹었니?”



“그럼 그렇지...... 네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올 리가 없지.”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민철이와 지수는 배꼽을 잡고 허리를 꺾는다.



“와...... 형님, 이거 정말 저 주실 거예요?”



“그래, 자. 다 됐어. 일단 조립은 다 됐으니까. 나중에 접을 때는 이 배터리만 들어내고 접으면 되는 것 같더라. 이거 읽어 보고......”



강주가 전해주는 매뉴얼을 받아보는 민철이도 입가에 환한 웃음이 걸리고 혜숙이는 뒤돌아 서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아 모른 척 사무실로 들어간다.



“아이고...... 소장님...... 아직 인천에 안 가셨어요?”



“네, 부소장님. 이제 가야지요. 무슨 물건이 배달 됐다고 해서요. 자, 그럼 부소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 마시고 볼일 잘 보십시오. 제가 부탁드린 거 잊지 마시고요. 허허허......”



“아, 네...... 염두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나오니 민철이는 어느새 휠체어를 갈아타고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혜숙이와 지수는 서로 손을 잡은 채 바라보고 서있다.



“혜숙아, 가자.”



“응? 어딜?......”



“모처럼 만났는데...... 드라이브 어때?”



“어머! 형님, 좋으시겠어요?”



옆에 서 있는 지수가 혜숙이의 팔을 놓으며 등을 떠민다. 혜숙은 강주를 따라 나서려다가 쉬는 날도 없이 매일 고생하는 지수가 마음이 쓰이는지 차라리 지수를 데려가라고 하지만 내심 인천으로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강주가 오히려 난감해진다.



“에이...... 인천에 가려고 했는데, 지수는 자리 비우고 멀리 못 갈 거 아니야?”



“아! 형님, 인천 가시게요? 그럼 데리고 갔다가 오세요. 모처럼 바람도 쐬고...... 마침 이것도 있으니 코너는 제가 보면 되겠네요. 와...... 이거 굉장히 편한데요. 하하하......”



“그럴까? 그럼...... 갔다가 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네, 형님. 그럼 저녁에 저희 집에서 한 잔 하게 회감이나 좀 떠 오세요.”



“야, 인마. 회감이야 여기도 지천인데...... 그래, 알았다. 자...... 지수야. 타라.”



“어머! 이 차는 또 뭐야? 와...... 고급차네? 너 정말 수상한데...... 이건 또 어느 년 골을 빼 먹은 거니?”



“하여튼 계집애가 막말은...... 이걸 그냥 어디로 확 시집을 보내 버릴 수도 없고...... 잔소리 말고 너도 저녁에 동생 집으로 와.”



차를 타고 떠나는 두 사람에게 혜숙이와 민철이가 손을 흔든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영진유통의 일을 말해 준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지수의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어머! 오빠 정말 대단해요. 그럼 지금 그 매장에 가 보는 거예요?”



“후훗...... 응...... 매장은 잠깐 보기만 하면 되니까 거리 구경이나 좀 하고 회나 사서 돌아오지. 뭐......”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따라서 흥얼거리는 지수의 모습이 한껏 여유롭다. 강주를 만나 삶이 윤택해진 정도라면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지만 강주가 곁에 있어 보장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은 천양지차일 것이다. 안팎으로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민철이와 그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인심이 곡간에서 나온다는 옛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주를 만나 가정이 깨져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강주 덕에 가정을 유지하고 사는 것인지는 지수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제일 뿐이니 과연 한가로운 자들이나 질문을 던질 일이다.



“회장님, 저 최강주입니다.”



“네, 최이사님. 어머! 인천에 들어오신 거예요?”



“네, 지금 본사 쪽부터 한 바퀴 돌아볼까 합니다. 오늘은 겸사겸사 동생을 데리고 와서 여러 곳은 못 볼 것 같습니다.”



“네, 차라리 다행이네요. 제가 지금 무역에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거든요. 최이사님, 언제 오실지 몰라서 명함은 본사 매장 사무실 아가씨한테 맡겨 뒀어요.”



“아니...... 암행을 하라면서 명함을 맡기시면 어떻게 해요? 하하하......”



“아유, 하필 우리 인쇄소가 그 쪽이라...... 어차피 이사님이 매장 한 번만 보면 끝일 텐데, 그 다음은 얼굴 알아도 상관없잖아요. 호호호...... 본사에서만 모른 척 하시면 소문이 나더라도 매장에서야 어쩔 수 없겠지요.”



“네, 아무튼 잘 알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지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용현동에 도착해 넓은 주차장을 끼고 있는 한 매장으로 들어선다. 위는 본사 사무실로 보이고 일층을 매장으로 쓰고 있어 손님은 많이 들 것으로 보인다.
지수는 강주에게 다정하게 붙어 팔짱을 걸고 나란히 걷는다. 누가 봐도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니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 선남선녀가 따로 없다.
지수는 바구니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입구에 있는 카트를 끌고 오며 딴청을 부린다.



“오호라! 아주 오늘 뽕을 뽑을 작정이구나......”



“아잉...... 오빠...... 호호호......”



“응? 큭큭...... 아...... 녹는다. 좋아. 좋아...... 봐준다. 하하하......”



지수는 모처럼 강주와 둘만 있는 것이 행복한지 온몸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교태를 부리고 강주는 웃으며 혜숙의 어깨를 안아준다.



“여보......”



“응?......”



“킥킥......”



“왜?......”



“으응...... 그냥...... 오빠한테 여보라고 하니까 왠지 이상해서......”



“뭐, 난 듣기만 좋은데...... 그리고 너...... 내 마누라 맞잖아? 너...... 나하고 응응응 할 때 여보라고 몇 번이나 하는지 알아?”



“피...... 그거야 흥분했을 때니까 그렇지. 뭐...... 호호호...... 알았어요. 난 언제까지나 오빠하고 민철씨 마누라로 그렇게 살 거야.



“그래, 그래야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지수는 카트를 밀고 가는 강주의 팔에 매달려 나란히 걷고, 강주는 야채코너로 접어들면서 직원에게 묻는다. 아직 한창 손질 중인지 여기 저기 빈 공간이 많다.



“저....... 정구지가 어디 있나요?”



“네? 정구지요? 그런 거는...... 없는데요.”



“아! 네, 고맙습니다.”



“지수야, 너도 필요한 거 있으면 전부 사.”



“네, 지금 보는 중이에요.”



“얼른 보고 나가서 점심부터 먹자. 아침도 시원찮게 했더니 배고파 죽겠다.”



“호호...... 네......”



공산품 통로에 여기저기 물건을 잔뜩 늘어놓고 한창 진열에 바쁜 여직원들에게 다가가 묻는다.



“여기...... 생리대가 어디에 있나요?”



“어머! 푸훗...... 저쪽 뒤로 가 보세요.”



여직원들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부인 생리대를 찾고 있으니 그 모양이 우스운지 입을 가리고 웃으며 턱짓으로 방향을 일러준다.



“아! 네...... 고맙습니다.”



“아유...... 오빠는 창피하게 생리대는 왜요?......”



“응? 하하하...... 차에 넣어 두려고 그러지. 그거 얼마나 유리창이 잘 닦이는데...... 혜숙이는 잘 알고 있을 걸...... 다음에 너도 한 번 닦아 봐. 킥......”



“으이그...... 내가 이런 변태 오빠를 믿고 살아야 하나...... 카트 이리 줘 봐요. 저 쪽에 가서 물건 좀 골라오게......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어요.”



물건이 잔뜩 깔린 복잡한 통로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며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깡충거리며 물건을 고르던 지수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듯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바라본다.



“어머나!”



“왜?......”



“아, 아니에요.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참 닮은 사람도 많이 있네요.”



“에이, 난 또 뭐라고...... 자, 이제 대충 봤으니까 나가자.”



“오빠, 명함 받아 가야 한다면서요?”



“응, 밥부터 먹고...... 어차피 다시 올 건데...... 나도 아침부터 쫄쫄 굶었어. 어서 가자.”



“네......”



지수는 아직도 뭔가 아쉬운지 여러 차례 두리번거리며 매장을 나선다.



“왜, 뭐 빠뜨린 거 있어? 그럼 나중에 다시 올 거니까 그때 사고 우선 밥부터 먹자.”



“네, 알았습니다. 호호호......”



차 트렁크를 열어 짐을 실어두고 밖으로 나선다. 일부러 인천까지 왔는데 지수에게 회를 사 줄 생각으로 걷다보니 한참을 걸어 시장 입구까지 내려오게 된다. 자리를 잡고 김과장에게 전화를 건다.



“아! 김과장님?......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아! 최소장님.”



“잘 지내십니까? 저 지금 회사 근처에 있는 횟집에 와 있는데 식사하셨습니까? 모처럼 김과장님도 보고 싶고 해서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아이고...... 식사야 했지만 그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네, 그럼 골목 따라서 쭉 내려오시면 시장 입구에 송도횟집이라는 곳입니다.”



김과장은 신을 벗고 올라서면서 반가운 듯 손을 흔들고 옆에 있는 지수를 보고는 마치 잘 아는 사람처럼 인사를 한다. 이미 강주의 화려한 여성편력을 잘 알고 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닐 게다.



“그래...... 어떻게 지내시는데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네, 잘 지냅니다. 다만 한 번씩 사장님이 최소장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좀 곤란해서 그렇지요. 하하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인천까지......”



“아, 지금 휴가 중입니다. 모처럼 동생 데리고 나들이 나온 겁니다. 참 그나저나 위로 실세 부장이 한 사람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 사람하고는 잘 지내시죠?”



“네, 저야 뭐...... 제가 맡은 일만 하니까 부딪힐 일은 별로 없습니다. 아는 척하고 열심히 해 봐야 일거리만 자꾸 늘어날 텐데요. 뭐...... 허허허......”



“하하하...... 아, 그래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셔야 여기서 뿌리를 확실히 내리실 거 아닙니까?”



“아이고, 처음에야 물론 그랬지요. 그런데 공연히 주변에서 미움이나 살 것 같아서 그냥 그럭저럭 지냅니다.”



역시 김과장다운 생각이다. 하지만 그도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그의 판단기준을 나무랄 일도 아니고 비웃을 일도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는 가정에서나 소속된 직장에서나 아픔을 체험해 본 사람이 아닌가? 절박한 상황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현대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즈음에 나름의 삶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일 테니 그저 격려를 해 줄 뿐이다.



“그래요. 잘 지내시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아가씨하고도 잘 지내지요? 하하하......”



강주의 물음에 지수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쑥스러운 듯 대답하는 모습이 여전한 모양이다. 김과장과 한참의 이야기 뒤에 커피를 대접한다기에 마침 사무실 구경도 할 겸 모른 척 따라 올라간다. 지수도 강주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암행감찰을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맹랑하게도 시치미를 떼고 따라나서는 것이 은근한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어! 아니, 사장님 아니십니까? 하하...... 안녕하셨습니까?”



이층 계단을 오르려는데 영진 사장이 내려온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강주를 보고 뛰어 와 손을 잡는다. 사장도 강주의 복장을 보고 얼른 알아보질 못한 모양이다.



“어이구...... 이거 최소장님 아니세요? 여기는 어떻게 연락도 없이......”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근처에 지나다가 생각이 나서 김과장님도 뵐 겸 와 봤습니다. 어디 가시는 길인가 봅니다.”



“아! 네...... 야, 이거 최소장님이 오셨는데 모임이 있어서 안 갈 수도 없고, 다음에 한 번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만납시다.”



“아, 그러시죠. 뭐...... 오늘만 날이겠습니까?”



사장이 일행이 있는지 계단을 돌아보고 뒤 이어 계단을 팔랑거리며 내려오는 여자의 하이힐 소리가 들린다. 회장은 분명히 무역에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했는데 경쾌한 발소리가 강주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음......”




“어머!”



낮은 신음소리로 서로를 보고 놀란 기색이 분명하지만 다른 이들은 사장의 행동에 이목이 집중돼 미처 알아보질 못한 모양이다. 사장의 뒤를 따라 내려온 여자는 언젠가 회장과 모임에 참석했을 때 함께 시간을 보냈던 민희였다.



“자, 그럼 제가 다음에 한 번 연락을 넣겠습니다.”



사장은 강주와 헤어져 돌아서고 따라가는 민희가 뒤를 돌아보며 웃어 보이자 강주는 감정을 감추고 슬그머니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 사장에게 이야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파티션 뒤로 상담을 하는 곳인지 원탁과 의자가 몇 개 놓여있고 강주와 지수는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잠시 후 여직원이 커피를 올려두고 나가고 김과장이 웬 사내를 안내해 와 소개를 시킨다.



“전에 사장님이 말씀하시던 그 최소장입니다. 최소장님, 우리 부장님이십니다.”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아, 아...... 네, 앉으세요. 저 황부장입니다.”



황부장도 사장에게 들은 바가 있는지 조금은 경계를 하는 모습이더니 이내 긴장을 풀어 버리고 거들먹거린다. 수하에 있는 김과장보다 훨씬 아랫사람으로 보이는 젊은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저희 매장은 들어가 보셨습니까? 요즘 바빠서 많이 엉망이지요?”



사장이 가끔 거론하는 인물이라 황부장도 의왕매장은 다녀갔을 터 은근히 꿀리기 싫은지 매출이 높은 본사 매장이랍시고 과시를 하는 모양이다. 장난기 가득한 강주가 모른 척 받아줄 리가 없다.



“네, 많이 바쁜 모양이더군요. 직원들을 많이 늘리셔야 하겠어요.”



강주의 속을 알 리 없는 황부장은 흐뭇한지 한마디 더 늘어놓는다.



“허허허...... 안 그래도 지금 채용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최소장 같은 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곧 신규출점을 할지도 모르는데......”



“아! 그러십니까? 뭐, 월급만 많이 주신다면 한 번 생각해 보지요. 하하하......”



김과장이 속없이 더 반가워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강주가 온다면 꽃 피는 춘삼월이 다시 오는 격이니 그도 그럴 것이다. 이내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지만 어쨌든 강주와 연이 닿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강주가 찾아 온 것만 갖고도 뿌듯한 모양이다.
찻잔을 들고 쪽문 밖으로 나서니 테라스 밑으로 매장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음...... 여기도 주차장이 넓어서 손님들이 많이 오겠군요.”



“네, 아휴...... 인간들이 차를 갖고 다니면서도 그렇게 배달을 시켜요. 거...... 어차피 아파트까지 차로 가면 몇 걸음만 들고 가면 되는 걸......”



“허허허...... 그렇죠? 배달사원을 많이 늘리셔야 하겠네요?”



“그래도 그럭저럭 합니다. 뭐 밀리는 시간에만 그렇지. 그래도 정신무장을 튼튼히 시켜둬서 끄떡없이 해 냅니다. 우리 본사 매장은 제가 아침마다 조회를 하면서 직접 챙기거든요. 마침 우리 점장이 제 후배 녀석인데 이곳으로 스카우트 해 온지 얼마 안 돼서요.”



계속되는 황부장의 잘난 척 하는 모습에 옆에 있는 지수의 눈이 하얗게 돌아가고 입술이 삐죽거린다. 뭔가 한마디 해주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아! 역시 그러시군요. 자...... 그럼 다음에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동생도 있고 해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네, 그래요. 최소장도 잘 생각해 보고 우리 회사로 올 맘 있으면 연락해요.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해 줄 테니까......”



“아,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 김과장님도 나오지 마세요. 차는 여기 주차장에 있으니까......”



“네, 그럼 최소장님...... 자주 좀 오세요. 언제 저녁에 오셔야 술이라도 한 잔 나눌 텐데......”



사무실을 나서 계단을 돌아서자마자 지수의 입이 열린다.



“아유...... 저 사람 재수 없어...... 어머! 오빠는 뭐 하러 그런 소리를 다 듣고 있어요?”



“응? 하하...... 재미있잖아.”



“오빠, 오늘 점포 평가하러 온 거라면서요? 그럼 여기 이 매장은 몇 점이나 나오는 거예요?”



“음...... 글쎄다...... 뭐, 기준 따라서 다 다르겠지만 내가 볼 땐 영 좋게 안 보이던데...... 우리 장난 좀 쳐 볼까?”



“무슨 장난이요? 어머! 전에 형님한테 들었는데...... 호호호...... 오빠 또 사기 치려고 그러는 거예요?”



“저 황부장이라는 사람이 자신만만해 하니까 한 번 시험 삼아 해보지 뭐...... 자, 차에 타라.”



“네, 후훗....... 어떻게 할 건데요?”



“넌 그냥 모른 척 나만 따라 다니면 돼.”



차를 타고 주차장을 나서 점심을 먹은 횟집으로 다시 가 가게 앞에 주차를 하고 가게로 들어선다. 이제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 홀에는 손님도 없이 한산하다.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가 손님이 온 줄 알고 나오다 강주를 보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어머! 또 오셨네요?”



“아! 네...... 아휴...... 밖이 너무 더워서...... 우리 사무실 직원들이 지금 물가로 놀러가려고 여기저기 물건을 사고 있는데...... 아줌마, 여기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갈게요.”



“아! 네...... 아유, 그러세요. 밖이 많이 덥죠?”



“네, 아주 미치겠습니다. 참...... 전화 한 번 써도 될까요? 뭐,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느니 아예 여기서 물건 좀 배달을 시키는 게 좋겠는데......”



“네, 그거야 뭐...... 얼마든지 그러세요.”



주인 여자는 카운터 위의 전화를 쓰기 좋도록 돌려놓고는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고 강주는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한다. 담배를 꺼내 물고 잠시 지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방에다가 소리를 친다.



“아주머니......”



“네......”



“아! 우리가 빼 먹은 게 있어서 시장에 잠시 갔다 올 건데요. 물건 주문을 잘못 한 것 같아서...... 그 사이에 배달 오면 맥주 다섯 박스만 더 갖다 달라고 해 주시겠어요? 저희들 금방 갔다가 올게요.”



“네, 그러세요. 맥주 다섯 박스요? 아유...... 놀러 가는 분들이 많으신가 보다......”



“하하....... 네, 그것도 부족할지 몰라요. 저녁에는 여기 돌아와서 한 잔 더 하든지 하지요. 뭐......”



강주는 지수를 데리고 시장 골목 그늘에 숨어서 식당을 지켜보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지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강주의 꽁무니에 매달려 열심히 숨어 다닌다.
잠시 후 한 짐이나 되는 많은 짐을 가게 안으로 갖고 들어간 배달사원이 다시 나와서는 시계를 바라보다 할 수 없다는 듯 빈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다시 맥주를 싣고 오려니 짐을 가게에 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 그 사이 왔다 간 모양이네.”



“아유...... 기다리다가 금방 간 모양인데......”



“아! 그랬어요? 와...... 짐이 제법 많네...... 자, 지수야. 트렁크 좀 열어라. 미리 실어둬야겠다.”



“네.”



강주는 차에 물건을 모두 싣고 지수를 차에 태워 그길로 차를 몰아 매장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지수는 난생처음 해보는 도둑질에 가슴이 떨리는 모양이다.



“아유...... 오빠 들키면 어떻게 해요.”



“허허...... 참, 우리 얼굴 아무도 모르잖아. 전화도 내 거 안 썼고...... 괜찮아. 혹시 들켜도 그저 내가 시험 삼아 해 본 거니까 안심해도 돼. 별 걱정을 다 한다.”



“아! 참, 그렇지...... 호호호......”



“자, 나는 명함 받아가지고 나올 테니까 너는 아까 못 산 거 있으면 더 사고 있어.”



“네, 오빠. 많이 살 거니까 천천히 나오세요. 호호호......”



지수에게 당부를 해 두고 사무실로 들어서니 여직원과 점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강주를 맞는다.



“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음...... 여기 내 명함을 맡겨둔다고 했는데......”



“어머! 그러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여직원 과 점장은 몹시 당황했는지 벌떡 일어서고 여직원이 서랍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내며 이름을 묻는다.



“저...... 혹시 성함이......”



“아...... 최강주라고 합니다.”



“네, 이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허허허...... 네, 그래요. 고마워요.”



절을 꾸벅 하는 여직원에게 명함 케이스를 받아들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점장이 뛰어나와 만류를 한다.



“아! 이사님,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십니까?”



“아! 이런...... 허허...... 참, 그럼 차나 한 잔 주시겠습니까? 자, 반갑습니다.”



“네, 이리 앉으시지요.”



점장을 만나게 되었으니 알아듣게 조치를 취해놓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모양이다. 회장과 의논할 때만 해도 함량미달의 점장이라면 다른 직원들의 무사안녕을 위해서라도 조치를 해 버릴 생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얼굴을 알리게 되어 버려 그것도 민망한 노릇이다.
나름대로 잘 보여야 할 점장의 속도 모른 채 하필 배달사원이 이 때 뛰어 들어온다.



“아, 점장님...... 와, 이거 미치겠습니다. 지금 네다바이 당한 것 같은데요.”



“뭐, 뭐야? 어디서...... 얼마나......”



“아! 그거 영수증 이리 가져와 봐요.”



강주가 일이 커지기 전에 만류하고 나서자 그 속을 알 리 없는 점장은 얼굴이 흙빛이 되고 경리 사원과 배달사원은 점장의 눈치만 보고 서 있다. 강주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 준다.



“그거 직원들 교육상태가 어떤지 내가 테스트 해 본 겁니다. 자, 아가씨가 이 돈 가지고 나가서 처리 좀 해 줘요.”



“네?...... 어이쿠 이런......”



점장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황부장에게 듣자니 타 회사에 있다가 옮긴지도 얼마 되질 않았다던데 앞일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자, 자......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합시다. 그래도 점장님은 오늘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모른 척 지나갈 일인데 이렇게 마주치게 됐으니 기회를 한 번 더 드리지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사님.”



“배달사원은 어떤 이유에서든 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물건을 놓고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네, 네...... 다시 교육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야채코너에 있는 사원들이 부추 앞에서 정구지를 달라는데 못 알아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적어도 담당 사원이면 자주 쓰이는 사투리 정도는 알아들어야지요.”



“네......”



“그리고 아까 점심시간인데도 나물 종류가 다 준비되질 않았던데 일손이 많이 부족합니까? 그러면 인원보충이라도 요구를 하지 그랬어요?”



“아, 그게 아니라 계속 하는데도 워낙 물건 양이 많다 보니까......”



“그게 잘못이라는 거예요. 종류별로 조금씩 전부 다 선을 보인 후에 나머지 진량을 포장하면 그런 일이 없지요. 그저 일을 시켜 두고 나 몰라라 한다는 반증이에요. 피드백 몰라요? 항상 검토가 뒤 따라야지요?”



“......”



“신선식품은 그것대로 늦어지고 있는데 쓸데없이 과자 부스러기는 잔뜩 길바닥에 깔아두고 손님들 징검다리 밟듯이 다니게 하면 남들이 보면 장사가 잘 돼서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질 않아요. 정작 급한 것은 뒤로 미루고 잔뜩 깔려 있는 걸 채우느라고 손님이 물건을 찾는 데 턱짓으로 방향이나 알려주고......”



“네, 주의하겠습니다.”



“인원 배치에 대해서 더 연구할 필요가 있겠어요. 지금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겠지만 어쨌든 점장님은 내 얼굴을 봤으니 그것도 인연인데 기회를 한 번 더 드릴 테니까 개선 노력을 해 보세요. 다음에 다시 한 번 점검하러 나오겠습니다.”



“저...... 그럼 오늘 평가는......”



“음...... 오늘 일은 일단 무시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 일이 다른 매장이나 본사에 알려지면 점장님은 무조건 평가에 관계없이 옷 벗어야 합니다. 이건 기획실에서 추진하는 거니까 본사에서도 모르는 일이에요.”



“아! 네. 잘 알았습니다.”



지수와 함께 산업도로를 달려 수원근교로 들어온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궁전 같은 건물들이 강주를 보고 손짓하는 것 같아 지수를 흘끔 쳐다본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다니다 보면 백설공주가 사는 줄 안다니 기막힌 노릇이다.



“지수야...... ”



“네, 오빠......”



“히힛......”



“왜요?.....”



차를 길 밖으로 몰아 길가에 즐비한 모텔 중 한 곳으로 차를 집어넣자 지수가 어깨를 때리며 앙탈을 부린다.



“아유, 이럴 줄 알았어요. 어쩐지 엉큼하게 웃더라...... 호호호......”



“야, 우리 오랜만이잖아. 지수도 좋지?”



“호호호...... 네.”



입구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꼬마 녀석이 얼른 뛰어와 번호판을 가려준다. 백설공주와 사는 난장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어린다. 제법 교육을 받은 모양인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잽싸게 움직이는 모습이 우습다.



“아, 시원하다...... 지수야, 너도 들어와. 얼른......”



“싫어요. 오빠 먼저 하고 빨리 나오세요. 나, 화장실 가고 싶어......”



몰랐으면 모를까, 그 말을 들었으니 강주가 빨리 나갈 리가 없다. 물기를 뚝뚝 흘리며 지수의 팔을 잡아끌고 눈치를 차린 지수는 기겁을 한다.



“어머! 오빠, 미쳤어...... 싫어...... 갈수록 변태같이 굴어......”



“어! 너 말 안 들으면 옷 다 젖어. 우리뿐인데 뭐가 창피해? 자, 빨리...... 나, 너 하는 거 보고 싶어.”



“아유...... 정말 못살겠어......”



지수는 할 수 없이 강주의 팔에 이끌려 변기에 앉아 옷을 벗는다. 강주는 지수의 옷을 받아 밖으로 던져두고 물을 뿌려준다.



“아이...... 물 뿌리지 마...... 아이 참.......”



“하하하...... 뭐, 어때?...... 비데라고 생각하면 되지.”



강주가 성큼 다가가자 지수는 허리를 숙여 강주의 좆을 잡아 손으로 만져주더니 입으로 물어준다.



“어어...... 흐윽...... 아하......”



“으음...... 턱, 턱...... 철벅, 철벅......”



순간 소변을 보는지 동작을 멈추며 요란한 물소리를 낸다. 생각보다 소리가 크다고 생각했는지 강주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얼굴이 붉어진다.



“참 나...... 뭐가 창피해서 그래? 난 지수가 예뻐서 미치겠는데......”



“정말?......”



“그럼...... 참지 말고 큰 것도 볼 거면 봐.”



“이그...... 변태...... 냄새 나잖아?”



“물 내리면 되잖아......”



“그럼 진짜 한다. 나 지금 배 아프단 말이야......”



“후훗, 그래. 하라니까......”



“그럼 흉보기만 해 봐.”



지수의 머리를 다시 찍어 눌러 허리춤으로 가져가고 자연히 허리를 숙이며 골반이 열리는지 힘을 주는 것이 느껴진다.



“아아....... 크윽...... 창피해......”



고개 밑으로 지수의 등이 보이고 허리 밑으로 퍼지는 커다란 엉덩이가 움찔거린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용무를 보는 것이 너무 부끄럽지만 강주 앞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게 또한 지수의 생각이니 거침없이 강주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얼른 물을 내린다.
지수는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강주의 요구대로 따르고 나니 마치 험한 산을 함께 등반하고 내려오는 듯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강주의 짓궂은 행동이 모두 자신을 예뻐하는 것으로 보여 너무 행복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엎드려 봐. 오빠가 물로 씻어줄게.”



부끄러운 곳을 보여 달라는 강주의 요구에도 얼른 엉덩이를 들어주는 지수의 행동이 너무 귀엽다. 샤워기를 세게 틀어 지수의 엉덩이를 씻어준다.



“자, 이제 돌아 봐.”



한껏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라 있는 지수를 돌려 세우고 음순을 쓸어준다.



“아흑, 오빠......”



“자, 거기 잡고 엎드려......”



좆으로 길을 열어본다. 물기가 있어 이미 길이 열려 있는데다 이미 지수도 호흡이 불규칙한 것이 느껴진다.



“후욱, 쑤우욱......”



“아흑, 흐으응...... 오빠......”



거울에 비치는 지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허리를 놀린다. 팔꿈치로 세면대를 짚은 채 엉덩이를 잔뜩 내밀고 있는 지수의 허리선이 유난히 가늘어 보인다.
지수의 풍만한 엉덩이는 강주가 들이칠 때마다 출렁이는 파도를 일으키고 등허리까지 파장이 이어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지수는 이제 아예 고개를 쳐 박고 신음소리를 흘리며 엉덩이를 강주에게 내맡기고 있다.



“아학, 아학....... 하윽.”



“흐으으윽...... 조금만......”



사정의 기운을 느끼는지 강주의 놀림이 빨라진다. 지수는 사타구니 한 부분은 자기의 것이 아닌 듯 얼얼하여 몽롱한 기분이다. 강주의 기분을 돕고자 고개를 들어 뒤를 보며 열심히 마주쳐 간다.



“흐윽.......”



“으으으윽...... 울컥......”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꼬마가 쪼르르 달려가 번호판 가리개를 치우고 사라진다. 얼굴도 안 보는 것 같더니 나름의 신호체계가 있는지 어찌 알고 잘도 움직인다.
지수는 한껏 행복한 기분으로 강주의 에스코트를 받아 차에 오른다. 오늘 일로 더욱 더 자신은 강주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오빠, 돈 아깝다. 그렇지?”



“왜?......”



“치...... 침대 근처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호호호......”



“으응? 그러게...... 하하하...... 그래도 잘 쉬었잖아? 자, 이제 늦었으니 부지런히 가 보자.”



차를 후진으로 빼 내 꼬마를 부르더니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고 차를 뺀다. 연신 차를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이 백미러에 잡힌다. 페달을 밟아 얼마나 움직였을까 전화가 울린다.



“네......”



“저...... 소장님......”



“응? 부소장? 아...... 고생 많았지? 지금 나온 거야?”



“네...... 지금 막 나와서 전화 드리는 겁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 아...... 다 잊어 버려요.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집으로 가고 내일 일찍 수원으로 내려와서 나한테 전화해요. 마침 부소장이 할 일이 있으니까......”



“네, 알았습니다.”



“참...... 부소장 집사람은 저기...... 의왕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조금 늦을 거야. 그렇게 알고......”



“아! 그랬군요.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그래요. 음...... 부소장이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뭐...... 어쩌다 보니까 내가 제수씨 취급을 해 버렸어요. 그건 이해하고......”



“아, 아...... 아닙니다. 앞으로도 제가 소장님은 형님처럼 생각할 테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하하...... 그래요. 그럼 내일 만나는 걸로 합시다. 그간 어쨌든 고생 많았어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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