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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0일 수요일

망각의사슬-18부

" ....... "
상훈은 진정제를 맡고 겨우 잠들어 있는 미영을 바라보았다.
벌써 사흘째 미영은 병원에서 주는 약과 주사를 거부한체 간혹 발작을 일으키며 울부짖곤 했다. 지금도 발작을 일으키자 간호사가 억지로 놓아준 진정제를 투여 받고 겨우 잠이들어 있었다.
상훈은 지난 사흘이 정말 악몽 같았다. 그토록 착하고 조용하던 미영이 마치 딴사람처럼 사납게 성질을 부려댔고 때로는 상훈의 힘으로도 제지하기 힘들만큼 몸부림을 쳐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훈이 지난 사흘이 악몽처럼 느겼던건 그런 변해버린 미영의 태도 때문이 아니였다. 미영은 마치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듯 했다. 약과주사는 물론 소량이나마 나오는 식사조차 거부한체 삶과의 단절을 준비하고 있는듯했다. 그나마 지금처럼 몸부림에 지쳐 잠들어 있을때 투여하는 영양제로 이미 사고로 쇠약해진 육체를 근간히 버텨가고 있는 것이다. 상훈은 그런 미영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꼈다.

" 똑..똑...!! "
" 네.... "

그렇게 미영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있을즘 병실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훈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 나야...... "
" 왔어... "
미진이 병실문을 들어서며 상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상훈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진을 맞았다.
" 미영씨는 어때..... "
" ...... "
" 상훈씨도 얼굴이 말이 아니다.... "
" 난 괜찮아..... "
미진은 괜찮다고 말하는 상훈의 얼굴을 보면서 눈동자를 살며시 떨고 있었다.
상훈의 한쪽눈은 사고인해 퉁퉁 부은체 퍼런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얼굴에 찰과상으로 인한 빨간 상처 자욱이 십여군데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상훈의 입술은 지난 며칠간 아무것도 입에대지 않은듯 바짝 타들어가 있었고 그 타들어간 입술위로 터져버린 상처가 두껍게 내려앉고 있었다.
" 식사는 하고 있는거야... "
" ....... "
" 상훈씨라도 기운내야.. 미영씨 간호하지.... "
" 됐어... 생각없어.... "
" ....... "
" 회사는 어때.... "
" 지금 회사 걱정할때야.. 회사는 신경쓰지마... "
" ....... "
미진이 별 걱정을 다한다는듯 퉁명스럽게 말하자 상훈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잠들어 있는 미영을 바라보았다.

" 자.. 이거라도 마셔봐.... "
미진이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잔을 내밀자 상훈이 커피잔을 받아 들었다.
" 마셔... 그렇게 들고만 있지말고.... "
" 미안하다.. 입이 써서.... "
" ...... "
상훈이 미진에게 건내받은 커피잔을 손에쥔체 들고있자 미진이 어서 마시라고 말을 했지만 상훈은 입이 쓰다며 마시길 거부한체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 미영씬 어때..... "
" ...... "
하늘을 올려보는 상훈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미진이 망을 건내자 상훈이 하늘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며 자신의 발끝을 바라본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 "
" 충격이 큰가봐........ "
" 그렇겠지... "
" 다.. 내 잘못이야.... 그때 놀러 가는게 아닌데.... "
"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
" 모르겠어... 모든게... 꿈같아.... "
" 기운내... 이럴수록 상훈씨가 정신차려야지.... "
" 그래.. 그래야 되는건 아는데.... 그런데.... "
" ....... "
상훈이 말을 잊지 못한체 다시 하늘을 올려보자 미진 역시 그런 상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끝을 떨었다. 그리고 미진은 생각했다. 미영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너무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상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옴을 느끼며 상훈을 자신의 가슴에 안아 보듬어주고 싶다고 말이다.
" 들어가야겠어... 미영이 언제깰지 몰라서.... "
" 그래.. 들어가봐.... "
" 와줘서 고마워... "
" 그래.... "
" 먼데까지 안나간다.... "
" 알았어.. 들어가봐... "
상훈이 일상적인 인사를 건낸뒤 몸을 돌려 다시 병원으로 향하자 그런 상훈의 꾸부정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진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혼자말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힘내.. 상훈씨... 그리고......... "
" 왜이러세요..... "
" 놔요... 이거놔요..... "
" 이러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

병실앞에 다다른 상훈의 귀에 미영의 악을 쓰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상훈이 황급히 병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 진정하시고 이러지 마세요.... "
" 놔요.. 놓으란 말이예요.. "
병실문을 들어선 상훈의 시야에 깨어진 링겔병 파편을 들고 있는 미영과 미영의 손을 부여잡은체 미영을 향해 소리치는 간호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 미영아...... "
그렇게 실갱이를 벌이던 미영과 간호사가 상훈의 외침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 뭐하는거야..... "
" 보호자분 어서 환자좀 잡아주세요... "
" ...... "
간호사의 외침에 상훈이 침대 옆으로 다가서자 간호사의 손에 붙들린 미영의 손목에서 시뻘건 피가 흐르는것이 상훈의 눈에 들어왔다.
" 미영아.. 너 뭐하는거야..... "
" ....... "
" 너.. 왜 이러니.... "
간호사로부터 미영의 손목을 나꿔챈 상훈이 미영을 침대에 쓰러뜨리며 소리를 쳤다.
" 너.. 그렇게 죽고 싶니.. 그런거야... "
" 놔줘요.. 상훈씨.... "
" 놔주면.. 놔주면 어떡할껀데... "
상훈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간호사가 병실문을 나서며 다른 간호사를 부르고 있었다.
" 놔줘요... 놔주고 나가주세요... "
" 너 정말 이럴꺼니... "
" ....... "
" 그래.. 죽어..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어... 하지만 난 너 혼자 못보내... 그러니까 같이 죽자 죽자구... "
상훈이 소리를 지르며 미영의 한쪽손에 쥐어진 유리 파편을 뱄어들고 자신의 손목으로 가져갔다.
" 그래.. 내가 먼저 갈테니가... 따라와... "
" 안돼요.. 상훈씨.... "
상훈이 빼앗은 유리 파편으로 손목을 찔러가려하자 미영이 악을 쓰며 몸을 황급히 일으켜 상훈의 손목을 잡았다.
" 이거.. 놔... 나도 너 없인 못사니까.. 같이 죽자구... 놔... "
" 아네요.. 상훈씨.. 내가 잘못했어요... 다시 안그럴께요.. 그러니까 상훈씨.. 제발 그러지마요.. 상훈씨.. 흐흑....제발... 네.. 흐흑... "
미영이 상훈의 손목을 부여잡은체 오열하자 상훈이 손에 쥐었던 유리 파편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미영을 끌어 안았다.
" 미영아.. 왜 그러니.... 네가 이러면 난 어떡하라고.. 미영아.... "
" 상훈씨.... "
" 나 너없이는 안돼.. 미영아.. 그거 모르니... "
" 흐흑.. 상훈씨... 미안해요... 하지만 무서워요.. 상훈씨.. 흐흑... "
" 내가 있잖아.. 네 옆에 내가 있잖아.... "
" 흐흑... 상훈씨가 나를 버리고 떠날것 같았어요... 이젠 불구가 되어버린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상훈씨가 떠날것 같아서 무서워요.. 흐흑..... "
" 이.. 바보야... 내가 왜 널두고 가니.... 난 아무데도 안가.... "
" 상훈씨..... 흐흐흑.... 상훈씨.. 흑... "
" 미영아.... 크흑... "

자신을 두고 가버릴 같아 무서웠다는 미영의 말에 상훈은 미영을 더욱 거세게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 다시 이러면 그땐... 나도 미여이가 말려도 먼저 갈꺼야... "
" 미안해요.. 상훈씨... "
상훈이 미영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하자 미영이 얼굴을 옆으로 숙이며 상훈의 손길을 얼굴을 기댔다.
" 그리고.. 난 미영이 곁을 떠나지 않아 절대로.... "
" 하지만.. 상훈씨.... 난 이제.... 상훈씨 여자로는 부족해요... "
" 미영아.... "
" 네.... "
" 내가 만약.... 지금 미영이처럼 됐다면.. 미영이는 나를 버릴거야... "
" 아뇨.. 절대로 안 그럴꺼예요.. 절대로... "
" 그런데.. 왜 나는... 그럴꺼라고 생각하지... "
" ..... "
" 미영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미영이를 사랑하고 있다는거 몰라... "
" 상훈씨.... "
" 미영이는 나를 약사빠른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나봐... "
" 아니예요... 정말이예요... "
" 그래.. 알아... 미영아... "
" 네.... "
" 존대말 않하기로 했잖아... "
" ..... "
" 미영아.... "
" 응.... "
" 난 미영이의 다리를 사랑한게 아냐... 물론 미영이의 모든것을 전부 사랑하지만..
그 일부가 사라졌다해서 미영이를 사랑했던 마음이 사라진게 아냐... "
" ....... "
" 미영이의 다리를 사랑했던 마음을 다른곳에 더하면 되는거 아닐까... "
" 상훈씨... "
" 그러니까... 미영이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날 믿어만줘.... 미영이가 날 믿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힘으로 세상을 살겠어.. 안그래.... "
" 상훈씨.. 흐흑... 고마워... "
" 아냐... 내가 고마워... 내곁을 떠나지 않고.. 이렇게 있어줘서.... 고마워.. "
" 흐흑.. 상훈씨..... "
" 고마워.. 정말.. 정말.... "
미영은 상훈의 가슴을 부여잡고 울먹였다. 그리고 혼자 맹세했다. 이 남자를 계속 사랑하는것이 죄가 되지않는다면 아니 죄가 될지라도 영원히 놓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비록 자유롭지 않은 불편한 몸을 지닌체 겪어야될 고난의 시간이 자신을 괴롭힐지라도이 남자만이 자신의 곁을 지켜 준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겠노라고 미영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그리고... 미영아... "
상훈이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있는 미영을 일으키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다.
" 응... "
" 너한테 할말이 있어... "
" 뭔데... "
"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간에 내말을 듣겠다고 약속해줘.... "
" 알았어... 자기가 무슨말을 하던간에 들을께... "
" 약속한거다.... "
" 음... "
상훈의 다짐에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훈이 심호읍을 하번 들이킨뒤 입을 열었다.
" 미영이 수술 한번 더 받아야돼... "
" 왜.... 또 어디가 나쁜거야... "
상훈이 수술이란 말을 꺼내자 미영이 다시 불안해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훈에게 물었다.
" ...... "
" 사실대로 말해줘... 왜 그런거야.... "
" 지금 미영이 뱃속에 아기가 있데.... "
" 상훈씨.... 그게 무슨.... "
" 미영이랑 내 아기가 지금 미영이 뱃속에 있데.... "
" 상훈씨.. 그게 정말이야..... "
" 음.... "
환하게 밝아진 모습으로 미영이 상훈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미영이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후 처음으로 지어보인 미소였다. 그런 미영의 미소를 바라보며 상훈은 곧 저 미소가 미영의 입가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 상훈씨.. 정말.. 여기에 우리 아기가 있다는거야... "
" ...... "
미영이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상훈에게 환한 모습으로 말했다.
" 그런데.. 상훈씨... 수술 이야기는 뭐야... "
" ..... "
상훈의 표정이 어두운것을 눈치챈 미영이 입가에 미소를 거두며 상훈에게 물었다.
" 미영아..... "
" 상훈씨.. 설마..... 아기를.... "
" 미영아... 아기는 나중에 가지면 되잖아... 지금 이대로는 미영이가 위험하데... "
" 안돼.. 상훈씨... 그럴수는 없어... 안돼... "
" 미영아... 내말 듣기로 약속했잖아... "
" 아냐.. 취소할꺼야... 아기는 안돼.. 상훈씨... "
" 미영아.... "
" 상훈씨.. 아기 낳을꺼야... 안돼.... 우리 아기야.... "
" 미영아... 지금 상태로는... 너도 아기도 둘다 위험하데... "
" 아냐.. 아냐.. 상훈씨.. 나 이제 밥도 잘먹고.. 약이랑 주사도 잘 맞을께요.... 그러니까.. 상훈씨... 제발 아기만은 안되요... 이렇게 빌께요... 상훈씨.. 제발... "
" 이러면 안돼.. 미영아.. 약속했잖아... "
" 상훈씨.. 이번만... 이번 한번만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게 해줘요... 제발요... 앞
으로 평생 상훈씨가 하라는 데로 하면서 살께요... 그러니까.. 이번만.. 네... "
어느새 미영은 상훈에게 다시 존대를 하며 애원했다. 그리고 그런 미영을 바라보면서 상훈은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미영은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지키는것이 자신이 상훈에게 해줄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라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어떻게되도 상관 없었다. 자신과 상훈의 사랑으로 만든 아기였다. 그런 아기를 자신이 위험하다고 해서 버릴수는 결코 없었다. 미영은 어떻게 해서도 아기를 출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상훈과 자신의 사랑의 결실을 가슴에 안아보고 싶었다. 상훈과 자신의 아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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