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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0일 수요일

망각의 사슬-1부

" 쏴아아.... 철..썩... "

바닷가로 달려들던 파도가 바위와의 힘겨루기에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듯 산산히 부서진 몸뚱아리를 허공속의 하얀 포말로 흩어놓자 때를 기다렸다는듯 바닷가를 감싸돌던 차가운 겨울 바람이 파도의 포말을 휘몰아 우두커니 서있던 하나의 인형을 향해 몰아쳤다. 그러나 바람의 시샘어린 짖굿은 행동에 아무런 움직임없이 자신을 덮치던 포말을 그대로 맞아버리고 있는 인형에 바람은 머쓱해진듯 겨울 바닷가의 해변을 따라 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었다.

수진은 자신의 얼굴을 덮치는 파도의 차가운 포말을 그대로 맞으며 바닷가를 향하고있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몇번인가 또다시 자신을 희롱하듯 다가서는 겨울바닷가의 차가운 바람을 그대로 맞았지만 계속되는 겨울 바람의 장난에 더 이상 응할마음의 여유가 없다는듯 서서히 몸을 돌려 겨울 바닷가의 한적한 해변을 벗어나고 있었다.

" 커피 흐리게 한잔 주세요.... "
" 네... "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주인듯한 사십대 가량의 남자는 홀로 외롭게 겨울 바닷가를 찾아와 커피를 주문하는 수진을 힐끗 바라본체 카운터 앉아있던 남자의 아내인듯한 여자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부부는 수진이 사랑의 상처를 받았거나 아니면 신상에 무언가 커다란 변화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그렇지 않다면 겨울 바닷가를 여자 혼자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그러나 수진은 그런 부부의 일상적인 관심어린 눈빛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창밖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윽한 커피의 향기가 수진의 후각을 자극하며 몸안으로 스며들자 수진은 차가운 바람속에 내맡긴체 얼어버린 몸이 서서히 풀려감을 느꼈다. 그렇게 얼어있던 몸이 서서히 녹아감을 느끼자 수진은 다시 창밖으로 보여지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하며 결코 다시는 생각하지 않고 싶었던 기억의 잔상이 피어오르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아랫 입술을 물었다.

" 여...보.... "
" ..... "

수진은 얼어 붙은듯 그자리에 선채로 벌거벗은 하체를 침대 시트로 가리며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진의 남편 곁에서 벌거벗은 몸을 미처 가리지 못한체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는 자신의 친구인 주영을 발견하자 선영은 떨려오는 자신의 몸을 주체하기 힘든듯 아랫 입술을 굳게 문체로 두 사람을 노려 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을 노려보던 수진이 자신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감을 느끼자 한쪽손에 들고있던 꾸러미를 두 사람을 향해 던진뒤 몸을돌려 현관으로 뛰어갔다.

수진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싶지않았던 기억이 떠오르자 바닷가를 향했던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감아버린 수진의 마음은 커피잔을 부여잡은 떨리는 손을 통하여 울고 있었다.


주영은 말없이 앉자있는 태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의 친구 남편이자 자신의 육체를 처음으로 안아버린 남자였던 태우였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태우나 자신은 그토록 조심했던 자신들의 관계가 수진에게 모두 발각된 현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심하고 있었다.
주영은 이렇게 벌어지고만 상황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구의 남편과 몸을 섞을 당시부터 언젠가는 이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지난 일년간을 아무런 변화없이 무사히 태우와의 관계를 지속해오자 주영은 어느덧 자신을 감싸고있던 수진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안감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에맞춰 주영은 수진이 업무차 출장을 가게되어 수진이 집을 비울땐 수진이 잠들었을 침대위에서 태우와 함게 섹스의 열락에 빠져들기도 했고 어느땐 수진이 집에 있던 순간에도 태우와 순간적인 섹스를 가지기도 하는듯 그 수위가 높아져 갔지만 다행이 수진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고 그렇게 지난 일년간 외줄을 타듯 이어왔던 태우와의 관계가 이제 모두 드러나 버린 것이다. 더우기 자신의 친구인 수진의 집에서 태우와 함께 침대에 나란히누워 미처 끝내지 못했던 섹스의 열락에 취해있던 모습으로 그대로 말이다.

" 이제 어떡하죠... "
" .... "

주영이 태우를 향해 먼저 입을열자 태우는 주영을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못한체 연신 담배만을 피워대고 있었다.

" 태우씨... "

주영이 재촉하듯 태우를 다그치자 태우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재덜이에 비벼끈뒤 주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할지... "
" .... "
" 일단 수진이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하지만 그게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어.. 수진이 어떻게 나올지... 이혼을 하자고 할텐데... 걱정이야... "
" ..... "

태우의 말을 듣고있던 주영은 자신의 무릎에 얹어있던 손에 힘을주어 주먹을 쥐었다.
지금 태우는 이 상황 앞에서 자신의 입장 따위는 아무 생각이 없는듯 보였다. 오로지 자기에게 닥쳐올 상황에서 자기의 안위가 걱정될뿐 친구앞에서 커다란 죄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입장 같은것은 걱정되지 않는듯 했다. 주영은 그런 태우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몸을 처음으로 허락한뒤 열락의 흥분에 휩싸이며 찾을적마다 느껴졌던 태우의 그 넓은 가슴이 오늘은 초라하게만 느껴졌고 지금 이 상황에서 버림 받은듯 홀로 서있는듯한 자신의 모습이 느껴지자 주영은 알수없는 허탈감에 아랫입술을 힘주어 물며 고개를 떨궜다.

" 걱정하지마.. 내가 잘 해결해볼께... "
그런 주영의 마음을 눈치챈듯 태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주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어떻게요.. 어떻게 해결을 할껀데요... "
주영은 자신의 가슴속에서 태우를 향해 듣고싶은 말이 있다는듯 태우를 향해 낮지만 강한 어조로 물어왔다.
" 모르겠어.. 지금으론.. 하지만 잘 해결해야지... "
" ..... "
" 너무 걱정 하지마... "
" 알았어요.. 태우씨만 믿고 있을께요.. 무슨일 생기면 전화줘요... "
" 알았어... "
" 갈께요.. 그럼... "

주영은 태우와의 대화속에서 아무런 결론을 얻을수 없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애당초 태우를 찾아왔을때는 태우의 입에서 어떠한 결론에 도달한 답을 들을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태우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체 그저 잘해결 하겠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 태우를 바라보며 주영은 이번 상황의 한복판에서 어쩌면 자신만이 상처를 받은체 돌아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수가 없었다.
차라리 어서 빨리 수진이 돌아와 모든것이 해결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진이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붇던 자신을 두들겨 때리던 어서 결론이 나서 자신이 가야할 길로 떠나고 싶었다. 그길이 자신이 원하는 길이던 원하지 않던 길이던 말이다. 주영은 그런 생각이 들자 일주일째 소식이 없는 수진을 떠올렸다.


" 혼자 오셨나 보죠... "
" 네.... "

힘겹게 산을 오르던 수진을 향해 낯선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내자 수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무관심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 여자분 혼자서 산을 찾으시다니.. 산을 굉장히 좋아 하시나 보죠.. "
" ..... "
" 아.. 이런.. 제가 방해가 됐나보죠.. 죄송 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
" 네.. 수고 하세요.. "

자신의 말에 수진이 아무 대답이 없자 낯선 남자는 수진에게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거냈지만 수진은 또다시 아무 표정없이 예의상 마지못한듯 인사를 건냈다.

수진은 자신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내던 남자에게 조금은 미안했지만지금 자신의 마음은 그런 낯선 남자의 호기심을 채워줄만큼 한가하지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남자의 모습이 조금씩 멀어지자 수경은 저려오는 다리의 통증을 느끼자 덩그라니 밑둥만을 남긴체 잘려나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주먹을 쥔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두들겼다. 대학에 다닐때만 해도 가끔 친구들을 몰아 산에 오르고 했지만 몇년 동안 한번도 산에 오르지 못했던 탓일까.. 산에 오르는것이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몸은 문명의 이기속에 길들여진체 나약하게 변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발걸음을 산 정상으로 향했다.

" 야....호.... "
" 야.. 호.. "

정상에 오르자 어디선가 고함을 외치는 남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수진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두손을 모아 고함을 친뒤 서로를 다정하게 끌어 안은체 환하게 웃고있는 연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연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외롭게 겨울산의 정상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자 수진은 시선을 돌려 산정상 아래로 길게 뻗어있는 산능선을 쫓아 시선을 움직였다.

" 이것좀 드시죠... "

한참을 산능선을 쫓던 시선을 막 거두며 하늘을 바라보던 수진의 귓전으로 나즈막한 음성이 들려오자 수진은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며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목마르시죠.. 이것좀 드시죠.. "
조금전 산 중턱을 오를때 수진에게 인사를 건내던 남자가 이온 음료가 담겨있는 피티병을 내밀며 자신을 바라보는 수진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고맙습니다... "
망설이던 수진이 인사를 하며 손을 뻗어 피티병을 건내 받으뒤 마개를 열어 음료수를 한 모금을 들이키자 목안에 감돌던 갈증이 음료수를 따라 씻겨내려 가는듯한 느낌에 우울했던 자신의 마음도 덩달아 조금은 가라 앉는듯 했다.

" 잘 마셨어요... "
" 아닙니다.. 그냥 마시세요.. 전 또 하나 있읍니다.. "
수진이 음료수 병을 건내자 남자는 또다른 한쪽손에 들려있던 음료수 병을 들어 보이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산에 오르면 참 좋죠...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마음도 넓어지는것 같고요... "
" .... "
말없이 산 아래를 굽어보던 수진에게 남자가 다시 말을 건냈다.
" 이런 말씀 실례가 되겠지만... 묻어두고 가세요... 산이란 그렇게 때로는 잊고 싶은
기억을 묻어 두기도 하고.. 나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가기도 하는 곳입니다.. "
" ..... "

수진이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느낀듯이 말하는 남자를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산 아래 굽이쳐 있는 풍경에 시선을 둔체 수진에게 계속 말을 건냈다.
" 산이란 존재... 참..마음이 넓은 존재 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짜증나는 것들을 우리가 버리고 가도 언제나 산은 아무말없이 그런것들을 다 품어주니까요... "
수진이 남자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며 산 자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남자는 그제서야 수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제가 너무 주제 넘었죠.. 죄송 합니다.. 산에 자주 오르다보니 어느 정도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산을 찾았구나 하는것쯤은 알겠더군요... 모쪼록 다 버리고 가십시요.. 그럼 저 먼저.... "
" .... "

마치 고승이 설법을 펼치듯 남자는 수진의 마음 정곡을 찌르는듯한 말을 남긴체 몸을 돌려 다시 산아래로 몸을 이끌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수진은 다시 시야를 돌려 산자락을 바라보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 버리고 가라고... 그러면... 한 수진.. 넌...뭘 버려야 하는거지.... "

그렇게 수진은 자신은 이 산에다 무엇을 버리고 가야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은뒤 긴 함숨을 내뱉으며 몸을 돌려 조금전 남자가 내려갔던 그길을 따라 발걸음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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